젓, 토 ROE, VOMIT

이한비展 / LEEHANBI / 李漢妃 / painting   2014_0205 ▶ 2014_0216 / 월,화,수요일 휴관

이한비_salted pollack roe_캔버스에 유채_160×215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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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화,수요일 휴관

스페이스 V SPACE V 서울 마포구 토정로 235(신수동 431-3번지) 토형빌딩 맘스산후조리원 1층 Tel. +82.10.5060.6343 blog.naver.com/gspacev

환상을 유지하는 강단 있는 작가의 삶 ● '그립다'라는 감정은 인류가 세상에 태어난 수만년전 (혹은 수백만년전) 부터 몸에 지니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 정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립다'라는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왔다. 어떤 이들에겐 병이 되고 한(恨)도 남기지만 인류가 닦아온 예술창작의 원천이 되어왔다. "기억속에 없는 것을 우리는 표현도 제작도 못한다. 창조란 회상의 능력일 뿐이다." (최인훈, 바다의 편지 中)

이한비_salted pollack roe_캔버스에 유채_160×227cm_2013

그녀의 작업실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샘내(양주 화정리 인근)에 살았다. 학교 가는 길에 털북숭이처럼 주렁주렁 붉게 피어있는 꽃, 털 뭉치 같이 이상한 모양의 꽃, 보살피는 이 없이도 잘 자라는 맨드라미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 한편으론 무서웠다. 엄마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시다. 아버지는 서라벌예대 연극연출과, 서라벌예대를 졸업하시고 결혼 후 명동에서 사업으로 성공하셨단다. 그녀를 임신했을 때 살던 성북동 집을 어떤 연유에선지 팔고 양주 샘내로 이사했다. 의정부에 있는 마당 있는 집에 살았었다. 엄마는 마당에서 노란 꽃을 자주 그리셨다. 그녀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은 분절된 채로 선명하다. 그녀는 모태화가다.

이한비_imminent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12

'그녀가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엄마의 자궁 속 일지도 몰라' 맨드라미는 너무 많이 그렸다. 이제 그만 그리고 싶어. 입안을 벌려 보면 혀가 보여. 그 동굴속에서 살아있는, 꿈틀거리는... 혀로 먹고 뱉는다. 토(吐) 할 수도 있다. 먹고 먹히는 관계, 그걸 슬프게 바라보는 눈... 왜 슬프지?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배신감, 믿는 사람에게 받은... 연애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이 있다. 치료도 받고 나이 드니까 괜찮아졌다. 결혼 없이 혼자 살아가려면 ... 어? 저 그림 속에는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네. 빨간 립스틱으로 칠해진 눈가에 맺힌 눈물, 빨간 명란젓에 흐르는 윤기, 명란젓을 좋아해? 개불을 그리려다가 유사하게 생긴 명란젓을 찾았다. 개불을 그리려 했던 이유는? ... 어떤 사건이 있었다. 잊어버리고 싶다기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어떤... 아무한테도 말 못하는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서 말하고 싶었다.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었다. 말로 표현을 못하니까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또한 숨기고 싶은 것도 있었다. 자기 눈에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표정을 숨기고 연극배우 같은 얼굴을 다시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혹은 무엇을 숨기려는 것일까?

이한비_imminent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12

서울미술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2학년들만 하는 전시회에 손가락에 피를 내고 피안에 비쳐진 자신의 얼굴을 그려서 전시한 적이 있었다. 울고 있었다. 숨기고 싶어서 말을 바꿨다. 어릴 때 툇마루에 피가 고여 있었다. 언니랑 아빠랑 사이가 좋았고 나랑 엄마랑 친했다. 빨강이 아니면 내 그림이 아닌 것 같다. 유화물감엔 형광색은 없는데 빨강과 보라가 조화를 이루면서 맨드라미의 화려한 붉은 빛과 색이 표현된다.

이한비_imminent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2

드로잉 북을 보여줄래? 빨간 드로잉북 표지에 금색으로 쓰인 夢寐難忘!? 한자(漢字)는 언제 공부했어? 2001년인가? 스무살 되던 해에, 상해에서 언니랑 2년 동안 살 때 어학당에서 중국어공부를 했다. 이젠 놀만큼 놀아서 더 놀 생각은 없다. 작가로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말하는 거랑 글을 쓰는 게 잘 안되어 그림으로 표현 하는 거다. 최정화, 박이소 작가를 좋아한다. 이번이 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작은 대안공간들이었는데 사라진 공간들도 있다. 캔버스를 짜거나 액자를 할 돈이 없으니 그냥 걸어야겠다. 스페이스 브이는 어떤 공간이야? 마포구 신수동 고기집 많은 동네 1층인데 80평이고 통유리벽으로 밖에서도 잘 보인다. ● 그녀의 작업실에서 이렇게 두서없이 한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잃어버린 꿈의 동굴 la grotte des reves perdus』이 생각났다. 그녀의 작업실(동굴속) 여기 저기 걸려있던 붉은 이미지들이 마치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차를 마시고 질문을 하고 답하고 하는 동안 그녀는 간간히 눈물을 흘렸다. 옛날생각을 하면 눈물이 자꾸 난다고 했다. 앞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눈물과 동굴속 그림을 보면서 그녀의 그리움이 다른 세계(혹은 바다)를 향해 열려있고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그런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단련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며 현실을 피하거나, 망각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환상을 유지하는 강단 있는 작가의 삶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경우 환상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유지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최인훈, 바다의 편지 中) (2014년 1월11일) ■ 박찬응 *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잃어버린 꿈의 동굴 la grotte des reves perdus』은 1994년 남 프랑스 Chauvet 동굴에서 발견된 원시시대(32,000년전)의 벽화에 대한 다큐멘타리이다. 이 다큐멘타리는 인간의 예술의 시작점과 19세기 후반에 등장할 영화예술의 원초적 기원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담겨있는 기록이다.

이한비_tongue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2
이한비_젓, 토 roe, vomit展_스페이스 V_2014

붉은 꽃 덩어리의 나열은 이전까지의 나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로 자리잡아왔다. 나는 기억이 없던 어린 시절 마룻바닥에 보인 붉고 탱탱하게 윤기가 흐르는 핏방울을 보았고, 학교 가던 길에 피어있던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만지기 무서웠던 맨드라미꽃을 보아왔다. 기억 속에 자리잡은 두 붉은 이미지는 후에 나의 붉은 취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맨드라미가 내가 붓을 잡기 시작한 서른 즈음부터 이뤄진 붉은 취향이었다면 그것은 나 본인만이 알고 있는 요소, 환경 속에 인식 되어진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을 담아왔겠다. ● 스스로 재미없어진 맨드라미에 대한 중심을 해체하기 위해 눈에 검은 칠을 하고 울고 있는 시선, 그리고 혓바닥으로 옮겨 좀 더 붉은 덩어리 이미지에서 확장된 여러 개의 질문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되었다. 울고 있는 눈의 이유, 내 앞에 보여진 상황들. 상황을 통한 과정, 과정에 의한 자극과 결론. ● 맨드라미라는 붉은 물질 에서 출발하여 상처로 이뤄진 효과가 눈앞에 펼쳐지고 내 눈. 눈물 흘리는 시선. 그리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있고 다시 뱉어 낼 수 있다. 햝을 수 있다라는 혓바닥. 빨간 물질. 물질들과 상황들에 의한 충격. 내 눈앞에서. 빨갛게 충혈된 눈. 내 눈앞에서.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내 혓바닥. 과정 중에 떠오른 붉은 물질은 계속 연결되어 일어나며 끓여내고, 끌어낸 장치가 되어 이것을 바라보는 시선. 과정 중에 경험했던 눈물, 에서 펼쳐진 자아 속 에서 진행된 논쟁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내가 그들과 사물,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교차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 내면에서 머물렀던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붉은 덩어리의 배경과 현재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다. 현재와 현재를 이뤄내고 있는 불안전한 기억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해석된 꽃에서 덩어리에서 핏덩어리로, 빨간 이미지들의 연결, 그것들 사이에 발생하는 분열과 감정. 쉽게 노출된 女性性, 혹은 버려졌다가 다시 입혀지는 순환되는 사회를 묘사해본다. ● 먹을 수 있고 토할 수 있는 현재를 재현한다. 성과 처녀의 지배로 인한 요소를 발견하여 화폭에 결과물을 담는다. 성에 의한 공포. 공포를 느끼게 된 배경. 배경이 된 사회로 더 나아가 거기에 기교를 붙여 상징화된 붉은 두번째 세번째 물질을 담아내며, 이미지속에서 볼 수 있는, 먹을 수 있는,뱉을 수 있는, 먹고 싶은, 이라는 의미를 병치시킴 으로써 작았던 내 안의 개인적인 상징에서 상징의 배경이 된 큰 현재를 구성하며 접근하게 된다. 맛있게 먹었다가 토하고 싶으면 토한다. 맛있게 먹었다가 너무 맵고 쓰면 눈물 흘린다. 되게 맛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맛없다. 토하던지 싸면 된다. ■ 이한비

Vol.20140205b | 이한비展 / LEEHANBI / 李漢妃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