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OPIOLOGY

김유라展 / KIMURA / 金有羅 / painting   2014_0205 ▶ 2014_0210

김유라_Twinkle skull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4

초대일시 / 2014_02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그린다(drawing)는 것, 끌린다(drawn)는 것! ● 작가에게 전시란 하나의'사건'이다. 어떤 형태로든 미술이 라는 정합성을 유지하고 숱하게 찾아오는 어려움을 견뎌낸 증거이다. 그 정합성이 얼마나 일관적이었는지, 그 시련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바로 전시라는 행위다. 김유라의 이번 전시는 수년간의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정리하는 과제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그에겐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로잡은'특정'이미지의 체계를 미술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 김유라에게 줄곧 잠입해온, 아니 삶의 또다른 구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특정 이미지를 풀어쓰자면 어떤 오타쿠적 이미지라고 할 것이다.'다꾸(다이어리 꾸미기)'라고 불리는 이 문화는 유년 시절의 상상계적 정체성을 간직하고 싶은 비합리적 소망과 수집과 중독이라는 음성적인 몰입의 형태가 한데 뒤섞여 나타난다. 대부분 일본에서 발아해 동시대 여러 장소들을 유영하는 이미지들에게 작가는 마음을 빼앗겼고, 다소 집요할 정도로 몰두하고 수집해서 그것을 미술로 옮기는 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아서, 유행의 단순한 결과로 폄하되는 일이 잦았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그의 작업이 즉각 이해되지 않는 이도 여럿 있을 것이다. 정체불명의 팝(pop)적인 이미지가 동시대 미술의 추상적 보편성을 구성하고, 그것을 상업적 모티프로 삼는 시장 주도의 미술이 횡행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살 만한 소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에는'경계'라는 것이 있어서, 그 좁은 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설사 미술로 이해되고 해석되고 감상되는 절대적인 틀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떠한 특수한 술어로도 제한할 수 없는 다수성(알랭 바디우)을 지닐 것이고, 그 다수성에 김유라의 작업이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확신이 있다. 그런 점에서 김유라가 만들어내는 특정 오타쿠적 이미지들은 유행의 미술적 재현이라는 단순한 표상내용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감각적인 대상들의 세계를 향한 작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그의 작업을 옹호하는 것이 모든 작업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모든 작가의상상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상대주의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미술, 나아가 예술이 갖는 보편적 의미와 가치를 애써 부정하고 싶은 호기를 부리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그저 한 작가의 일상과 작업 과정을 수년 동안 지켜본 자로서, 그의 개별적인 작업이 갖는 순수한 의미를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누고 싶은 작은 바람을 담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라_Twinkle skull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4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흥건히 젖은 시대이건만, 우리가 미술의 제도 내에서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의 사유는 보편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듯하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을 응시하다보면'좋은'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이는 어떤 암묵적인 공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 편협한 시선에 어긋난 그림에 대한 싸늘하고 매몰찬 반응도 정해져 있다. 그런 상황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말보다 먼저 감정이 있다"는 나라 요시토모의 고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럴듯한 말을 발설하기 위해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지 말고, 얕게 고민하지 말고, 주위에 신경을 쓰지 말고, 자신의'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그의 말을 상기시킨다. 모든 현상 속에는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는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사랑! 특정 화가가 아름다운 어떤 것에 대해 사랑을 느끼고 강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미술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미술이란 말인가. 무엇을 그릴지, 아니 냉정하게 판단하건대 이른바'먹히는'그림을 그리기 위해 스펙을 쌓고 고민하는 자보다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대책없이 열려있는 김유라와 같은 자의 순정이 외려'미술적'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본래 예술을 결정하는 기준은 객관적인 가능성이아니라 주관적인 신빙성이 아니었던가. 간혹 자기 확신, 아니 자기 최면에 걸린 듯한 그림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은 경계해 야겠지만, 예술이란 전적으로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항상 동일하게 존재하는 어떤 것을 담아야 한다고 믿는 자와 예술을 논하는 것만큼 무미건조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을 향한 강렬한 열망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허무와 함께할 때 존재할 것이다. 동시대의 수많은 예술 가운데 이해받는 것도 있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존재하는 것의 진정한 원형을 인식하고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이러한 병존의 원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확고한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지 않은 세계를 재단하려 든 다. ● 이제 더이상 완전한 의미에서 실재와 참의 존재를 믿지 않는 시대에 예술은 이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잠잠해져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의가 정당하게 요구되려면 그와 동일하게 아름다움에 대한 각양각색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유라_Temple of golden kuma_Solid gold leaf, epoxy putty, color on wood, acrylic box_ 135×21×21cm_2014

다소 단순한 도식이겠지만,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존하는 동시에 벗어나는 의미를 담는다면 김유라의 그림은 '욕망'이라는 단어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pictures want?)』를 쓴 W.J.T. 미첼 교수(시카고대학)는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예를 들며 그리기(drawing) 자체의 기원을"사랑의 시작"에서 찾고 있다. 그의 정교한 논지 전개에 따르면"회화는 사랑의 도구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을 하는 사물이자 어떤 대상에 '끌리는(drawn)'사물"이다. 그리기(drawing)와 끌린다(drawn)는 것! 결국 무언가를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잡아당기고 끌어당기고 매혹하는 행위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욕망의 문제는 곧 이미지의 문제요, 그리기는 우리를 끌어당기는 욕망의 문제라는 것. 그 자연스러운 힘에 미술사에 명멸한 이름난(없는) 화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욕망이라는 단어는 알다시피 혹은 느끼다시피 다소 불순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 밝음보다는 어두움, 정신보다는 육체를 통로로 삼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물화되는 시대에 욕망은 인간의 능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향한 완벽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어떤 이에겐 결핍으로 비워지고 어떤 이에겐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각양각색의 모습이 우리 시대의 욕망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욕망을 바라보는 응시의 태도, 그 욕망의 기원을 추적하는 사유의 태도, 그것을 구체적 요소들을 사용해'배치'하는 양태 속에서 당대미술은 형성된다. 김유라와 같은 젊은 작가가 어떤 오타쿠적 이미지를 바라보는지, 그 시선의 결과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를 지켜봄으로써, 나와 같은 기성세대는 우리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우리 시대의 어떤'조건'들에 참여할 자격을 누리게 된다. 욕망이라는 어떤 서사를, 그것이 파생시키는 어떤 메타서사를, 그것을 놓고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세대간의 차이를 하나의 명제로삼아 당대미술의 다양성에 또 하나의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작가와의 교류는 늘 적절한 자극을 안겨준다. 그래서 좋다.

김유라_Hi guys!_나무에 아크릴채색_17.5×15.5×4cm, 15.5×17.5×4cm, 28×17.5×4cm_2014
김유라_Par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72.7cm_2014

그렇다고 김유라의 작업이 젊은 작가라는 이름만으로 무마되기엔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앞에서 서술한 명제를 작업의 토대로 삼아 다소 정교한 미술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작업을 그럴듯한 인식의 지평들과 연결시키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 가운데 자신만의 수집적 행위의 미술적 '개입'을 급진적 명제로 만드는 학습도 요청하고 싶다. 가령, 자신이 몰두해온 오타쿠적 이미지의 사적(私的) 미시사에 대한 고백, 그것이 한 개인의 취향의 문제로 머물지 않고 우리 시대의 일정부분에 묻혀 있는 감각언어(sense-language)로부터 생겨나는 폐쇄적 세계관을 형성함으로써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이성언어와 차별화시키는 건 어떨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인용이 있어야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완전히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인용이 쌓일 때 특정 작가의 특정 이미지는 미술과 미학의 차원을 넘어 정치의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미지가 욕망에 그치는 것보다 그것이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암시하는 것은 작가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책무일 것이다. 이제 김유라는 자신이 선택한 이미지의 욕망이 윗세대와 동시대적 공간에'분쟁(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을 일으키는 것을 작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림이란 이러한 것이라는, 그리하여 이미지의 분쟁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저 어딘가에 자리하는 자기 확신을 가진 존재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추어올리는 그런'용기'를 갖춰야 한다. 좋은 미술이란 그것이 무엇을 소재로 삼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리하여 어떤 주제의식을 담보했는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의 움직임에 무심한 평정의 마음과 오직 그리기에 힘쓰는 집요한 태도로 하나의 명제를 형성하는 작품'군(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때 우리는 그것을 좋은 미술의 하나로 부른다. 바라건대,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특정한 미술이 많아지기를, 그 속에 김유라 역시'특정한 종류'로 읽히는 작가로 남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내가 한 시절을 마무리하는 젊은 작가 김유라에게서 기대하고픈 윤리일 것이다. ■ 윤동희

김유라_The garden of dream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3

Drawing vs. Drawn ● For artist, an exhibition is an 'event'. It is a proof that the artist somehow manages to maintain art and endure various obstacles. An exhibition shows how consistent an artist has been or how s/he has endured all the difficulties. Kim Yu-Ra's exhibition is more like an assignment that wraps up her undergraduate and graduate school years. To her, however, this exhibition is significant in that it completes artistically the system of 'specific' images which has attracted her so much for quite a long time. Kim Yu-Ra's 'specific' images that has infiltrated to her and thus constituted her life are otaku-like ones. This cultural trend called 'Da-kku (meaning decorating diary) is a mixed form of irrational wish for cherishing her own Imaginary identity and covert immersion of collection and addiction. The artist was fascinated with popular and contemporary images that originated in Japan. Thus she has obsessively been immersed in such images and collected them and finally expressed them in her own art. Her artistic work has been often disparaged as another follower of a trend. In fact, there are still viewers and critics who do not understand her work clearly. Given that unidentified pop images constitute abstract universality of contemporary art and become a commercial motif in its art market, her subject itself worries art professionals. However there are always some people who attempt to enter through a narrow gate which leads to the'boundary'. Even though there is the absolute frame by which art is understood, interpreted, and appreciated, art must have multitude (Alain Badiou) where art cannot be limited by any specific predicate. And it is for sure that Kim Yu-Ra's work should be placed somewhere in this multitude. In this sense, Kim Yu-Ra's unique otaku images are not only artistic representation of a trend. Rather they are artistic in the world of sensible objects. Of course I do not support her work based on relativism that artists' every imagination can be art and every art has the same value. I also do not want to deny universal meaning and value of art. As a person who has observed her life and working process, I just wish that I would share genuine meaning of her work with you through this essay. ● Today beauty overflows. Even though beauty is immersed everywhere, the reasoning on beauty within the artistic system seems only limited to provide universal explanation. If we look closely at our gaze at an artwork, we could understand we have a tacit formula that adds an adjective 'good' to the artwork. Also there is always a cold and harsh response to an artwork that is not in the frame of such prejudiced gaze. Whenever I witness such harsh response, I was reminded of Nara Yoshimoto's confession, "Before word, there is emotion." I was reminded of his saying that "to tell a plausible story, we must not think too deeply or agonize too superficially or pay too much attention to others and then must draw our own 'painting'."In every phenomenon, there is beauty that awakens our love. After all, love! What could be art if it is not art that a certain artist feels love about something beautiful and arouses strong yearning?I believe that pure love of Kim Yu-Ra who absorbs helplessly sensuous beauty that strongly attracts her own emotion is more 'artistic' than an artist who tries hard to expand professional experiences to draw 'marketable' paintings. Isn't it true that originally the artistic standard is not objective possibility but subjective reliability? Even though we should be cautious about unconditional affection toward paintings full of self conviction or under self-hypnosis, there is nothing moreinsipid like discussing art with people who believe art should not be changed and permanent and exist consistently. Strong longing for something permanent exists only with unavoidable futility about things vanishing. In various contemporary arts, there must be something to be understood and also something that cannot be understood. Nevertheless, people who believe that they can perceive and experience the true prototype, are not willing to accept this coexistence principle. They judge the world that is not definite with their belief in the definite world. In this era when nobody believes reality and truth any more, voices arguing what art should be like must be silenced. In order to claim fairly for agreement on beauty, we should listen to various voices about beauty. ● This is a bit simple diagram, but when we try to keep a gaze at art at the same time as getting away from that gaze, Kim Yu-Ra's artworks could be called as 'desire'. W.J.T. Mitchell (professor, Chicago University), an author of What Do Pictures Want?, searches for the origin of drawing in "the beginning of love" by giving an example of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an English romanticism landscape painter. According to his elaborate argument, "drawing is not only a tool or an object of love but also an object that itself loves and an object that is 'drawn' to other objects." Drawing and drawn! Thus an act of drawing or carving something necessarily involves an act of pulling, drawing, and attracting.The issue of desire is actually about images and drawing is thus the issue of desire that draws us. With no way out so many renowned (nameless) artists in art history have been drawn and entangled by such inevitable force. The word 'desire'has somewhat impure nuance, as you may know or feel. It seems that it is more close to darkness rather than brightness or takes body rather than mind. In such materialistic era, desire is sometimes glamorized with perfection that human ability can ever realize. Desire takes various forms. For some people, it is emptied by lack or for others, it is filled with fullness. Contemporary art has been formed by the gaze at such desire, the ways of thinking of the origin of such desire, and the ways of 'arrangement' of such desire. By observing what kind of otaku images young artists like Kim Yu-Ra look at or how she places the result of such gaze, the older generation like me could enjoy participating in a certain 'condition' of our era that we have missed. This interaction with a young artist always gives me fair motivation in that I can add another explanation on to the diversity of contemporary art by dealing with a narrative of desire, a meta narrative that is derived from desire, and a generation gap involved with desire. Thus I love it. ● Kim Yu-Ra's youth cannot soothe everything. She has many tasks to complete. First she needs to create more elaborate artistic devices. I would like to ask her to try to develop a radical thesis of artistic 'intervention' of her own act of collecting without overreaching in attempt to connect her work with plausible cognitive prospect.Let's say, how about creating an exclusive world view that is derived from somewhat hidden sense-language and her personal narrative of her otaku images? She should keep in mind that with far more extensive citation she will be able to express what she would like to emphasize. When such citation builds up, a certain artist's unique images is able to reach a political scope beyond artistic and aesthetical dimension. It is an artist's obligation that his/her images need to imply something meaningful in the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beyond images themselves. Now Kim Yu-Ra should aim to stir up 'Le Differend (Jean Francois Lyotard)' in this contemporary space between the desire of her own images and her older generation. She should have courage to give the bird to self-confident people who try to prevent any possible 'differend' of images by defining what a drawing should be. Good art does not depend on what it takes as a subject matter or how it represents it or what it aims to deliver. When an artist consistently creates a group of artworks as one thesis with a persistent attitude of drawing and with a calm mind that does not care about the world out there, we consider such artworks good. Hopefully, there will be more specific art created by specific artists who draws specifically. And moreover Kim Yu-Ra could be considered as such 'specific' artist. That is what I wish her to have as ethics at this point of time of wrapping up one period of her life. ■ Yun dong-hee

Vol.20140207c | 김유라展 / KIMURA / 金有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