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相

양성철展 / YANGSUNGCHUL / 梁誠哲 / photography   2014_0212 ▶ 2014_0218

양성철_국립박물관-철조비로자나불좌상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초대일시 / 2014_021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2월18일_10:00am~12:00pm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그리움의 얼굴, 자비로운 미소의 의미 ●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얼굴일 것이다. 먼 옛날 코린트의 한 소녀가 전쟁터로 떠나게 될 연인의 얼굴에 촛불을 비추고 그 그림자의 윤곽선을 벽에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 그림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보려 했을 것이다. 이것을 애처롭게 보던 소녀의 아버지가 그 윤곽선을 따라 진흙을 발라 얼굴의 형상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로마시대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가 그의 저서『박물지 Historia Naturalis』에 기록하고 있는 최초의 부조에 관한 내용이다. 그래서 '그림'이라는 말의 뜻에는 '그리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 불상은 부처를 구원자로 이상화하고 신격화하면서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도록 직접 가르침을 주셨던 부처는 중생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기 전에 간절하게 그리운, 보고 싶은 얼굴이기도 했을 것이다. ● 부처의 입멸 후에야 그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정리한 불교 경전이 결집되었다. 살아계실 때는 직접 접하면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형상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으로 보고 기도할 수 있는 실제의 형상이 있다면 종교적인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상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입체적인 불상은 평면적인 그림보다 중생들에게 부처의 실재성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성철_고령-대가야박물관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양성철_의성 내산리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양성철은 각기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상의 불상(佛相)을 촬영하였다. 그 중에는 노련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조각한 듯 매끄럽고 세련된 선을 드러내는 불상이 있는가 하면, 숙련된 기술은 없지만 독실한 어느 신자가 새긴 듯 투박한 모습의 불상도 있다. 그러나 이 거칠게 조각된 불상에서 어떤 힘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의 사진 속에는 둥글고 완만한 볼륨을 가진 동양적인 얼굴형이 있는가 하면, 눈매를 깊게 파고 콧대와 코끝을 뾰족하게 세운 서구적인 얼굴형도 있다. 불교를 신봉했던 간다라 지방은 기원전 4세기 초엽에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이후 그리스 문명의 영향이 남아 있던 곳이었다. 그때 불교도들은 제우스나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면서, 부처의 상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예 헤라클레스의 얼굴을 그대로 모방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인의 얼굴이 아닌, 서양인의 모습을 한 불상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양성철_화순-운주사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우리는 부처의 실제 얼굴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세계 도처에 있는 수많은 불상들 중에서 어떤 형상이 부처의 얼굴과 가장 닮았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부처의 가르침과 완전한 인격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표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불상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인도에서는 숭배의 대상은 아름답고 완전한 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불상은 부처님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이상적이고 초인간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 불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큰 귀와 육계(肉髻)라고 하는 정수리 위에 혹처럼 불룩 솟은 살, 눈썹 사이에 있는 제3의 눈이라고 하는 백호(희고 부드러운 털), 소라 모양으로 꼬여 있는 머리카락을 이르는 나발이다. 불교의 경전에는 부처의 형상을 32가지의 큰 특징과, 80가지의 작은 특징으로 나누어, 32상 80종호에 따라 만들었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특징을 다 표현한 불상은 없다고 한다.

양성철_군위-하곡동석조여래좌상, 경북유형문화재 제1호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양성철_경주 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98호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양성철_경주-굴불사지석조사면불상, 보물 제121호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양성철은 오랫동안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한 작업을 해왔다. 그가 주목하는 얼굴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만큼이나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된 얼굴이다. 취중 촬영! 그는 가식 없이, 가면을 벗어버린, 스스로를 무장 해체시킨 상대의 맨 얼굴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 그런 그가 이제는 불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 장의 사진을 보자(철조 비로자나불좌상). 옆으로 길고 가늘게 뻗은 그윽한 눈매, 살짝 올라간 입 꼬리, 입 주변 근육의 모양을 보아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마치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처럼, 웃는 듯 아닌 듯 오묘한 얼굴이다. 부처의 형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얼굴이다. 명상에 잠긴 듯 부드러운 눈매로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모습을 통해 자비로움과 위엄이 잘 드러나야 한다. 위엄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불상의 모습에서 중생들은 마치 부처를 실제로 마주하고 있듯이 공경하면서 위안을 얻으려고 했을 것이다. ● 우리나라 불상은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주로 화강암으로 조각되었다. 철불과 금동 불상이 있지만 화강암이 가장 보편적인 재료였다. 그의 사진 속의 불상들은 형체가 불분명해진 것이 많다. 불상의 코나 손가락을 갈아서 마시거나 간직하고 있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미신 때문에 훼손된 것도 있고 복구한 티가 나는 것도 있다. 더러 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을 맞으며 이목구비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도 있다. 그렇게 점점 지워지다보면 불상은 다시 바위와 돌이라는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양성철_군위-인각사석불좌상, 경북유형문화재 제339호_피그먼트 프린트_70×50cm_2013

양성철은 불전이나 노천에 놓여있는 불상, 또는 원래 있던 절을 벗어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다양한 불상을 찍었다. 경주 남산의 어느 오솔길에 가까운 바위면에서 만나게 되는 불상도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불상의 전체 모습이나 위치하고 있는 환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진 속의 불상은 정면에서 때로는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포착되었고, 얼굴만 클로즈업하거나 목선 정도만 보이도록 촬영되었다. 보통 인물의 얼굴에만 집중할 때와 동일한 접근 방식이다. 앉아 있는 부처인지 서 있는 부처인지도 알 수 없다. 손의 모습에 따라 부처를 구별할 수 있다는 수인(또는 인계)도 알 수 없다. 간혹 얼굴 없이 목만 남아있는 형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것은 오히려 그 부재의 얼굴을 상상하게끔 하는 효과가 있다. ● 이처럼 얼굴 이외의 요소들이 작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가 불상을 종교적인 차원보다는 얼굴의 조형성과 미적 관점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이것이 불상을 찍은 수많은 사진들과 그의 작업이 다른 점이다. 일부 인간적인 모습을 한 부처의 얼굴에 어린 미소, 투박한 선과 모양은 삼국시대 이후 불교가 이 땅에 토착화되면서 독실한 신자나 스님의 얼굴도 불상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양성철_국립박물관_피그먼트 프린트_80×160cm_2013

얼마 전 故 김수환 추기경이 불상을 본 소감을 옮겨놓은 기사를 읽었다. "석굴암에서 넋을 놓고 불상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 바티칸에서 성상을 볼 때는 5분 이상 한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저는 내 안에 불교적인 피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와 대화를 나누고 거기에서 나오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은 감동적이었다. 가톨릭교 추기경으로써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다른 종교에 대한 그의 유연한 사고와 태도가 놀라웠다. ● 불상은 다양한 시대를 거쳐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얼굴이자 종교적인 상징이다. 오늘, 양성철의 불상 사진을 보며 사진의 모든 대상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사진을 통해 부처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곧 나의 얼굴,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런지... ■ 김소희

Vol.20140211e | 양성철展 / YANGSUNGCHUL / 梁誠哲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