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놀다2014

장두일展 / CHANGDUIL / 張斗一 / painting   2014_0304 ▶ 2014_0315

장두일_5월의 꿈_한지, 혼합재료_65×53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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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3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2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예술-유희'를 통한 천지인(天地人)의 소통과 치유 - 장두일의 작품세계1. 문명의 표피, 고향의 상실 무엇을 위한 예술인가, 이 물음은 창작과 해석의 양 방향에서 언제나 당면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무국적의 미술언어 시대, 난무하는 예술현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화의 정체성 문제는 여전히 질문만 있고 답은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두일은 동양과 한국의 예술사유를 환기시키는 작업으로 한국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역시 작품으로 그 답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유년의 기억과 자연이 품고 있는 이마쥬를 소박하고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한편, 다양한 매체 변용을 통해 문명의 표피에 가려진 삶의 속살을 암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 모티브는 지순한 삶의 원형과 동양적 예술사유의 가치인 천지 간의 일원적 교감을 환기시키는 일이다. 현대인의 고향 상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곧 자연의 상실이고, 정신의 상실이기도 하다. 동양의 전통은 서양과는 달리 자연과 사물과 인간, 물질과 정신의 일원적 융화와 조화에 가치를 두고 있다. ● 예술의 여러 기능 중에서도 현실의 삶을 고양시키는 필연성을 생각할 때, 이 작가의 작업은 더욱 그 가치가 높게 느껴진다. 진부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오성과 감성의 자유로운 유희로 이루어지는 미적 판단과 상상력의 세계는 물리적 시간성을 넘어 순간과 기억을 영원 속에 각인하고, 현실의 삶을 미적으로 고양시킨다. 작가는 상실한 자연과 고향, 그리고 유년의 기억들을 다시 땅으로 불러내어 대지 한가운데 일으켜 세운다. 그의 작업에서 캔버스는 땅이 되고, 하늘이 되고 인간이 사는 세상이 된다. 바로 천지인의 소통이 회복되고 상실된 정신의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 제목들이 암시하듯이 「시간의 집적」과 「땅에서 놀기」 등으로 표출되는 삶과 예술의 유희 속에서 관중들은 현실의 조건과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작가와 함께 미적 세계의 무시간성을 음미하게 된다.

장두일_전원_한지, 혼합재료_33×53cm_2013
장두일_유년_한지, 혼합재료_53×46cm_2013

2. 예술-유희, 삶과 예술의 속살 ● 서양의 쉴러나 호이징어가 유희충동과 놀이를 예술창작의 근원으로 역설했다면 동양에서는 그보다 훨씬 앞서 장자가 이미 '예에 노님'(遊於藝)을 통해 예술의 경지를 설파한 바 있다. 지상에서의 모든 놀이와 정신의 유희야말로 예술의 속살이라고 할 만하다. 장두일은 일면 직설적인 어법으로 기억 속 유년의 놀이들을 현재화하면서 문명의 표피에 가려져 있던 삶과 예술의 지층, 즉 그 깊은 시간의 덮개들을 벗겨내고 삶과 예술의 속살을 대면케 한다. 작가는 장지에 아교와 배합한 토분을 칠하고, 그 위에 수묵을 중첩시켜 비정형의 얼룩들과 함께 특유의 화면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런 화면 질감은 그 자체가 삶의 주름이 각인된 시간의 지층이 되고, 그 위에 스크레칭과 붓질로 다양한 이마쥬들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화면은 땅과 하늘이 되고, 물이 되고, 인간 삶의 현장, 그리고 기억 속 자연의 편린들이 켜켜로 드러나는 심상 공간이 된다. ● 매체선택이 이미 작가의 이념을 반영한다. 그는 질박하면서도 생략된 화법으로 주 모티브를 구현하는 데서 나아가 최근 몇 년 간은 골판지, 스티로폼 등의 오브제로 퇴색한 기와나 옹기 같은 질감을 내어 화면 가득 쌓아올리는 작업도 선보였다. 오래된 기와 파편들은 한국인의 삶과 세월의 질감, 그리고 시간의 퇴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림이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일루전이라면, 실제 오브제가 아닌 시뮬라찌옹의 일루전을 통해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시간성과 리얼리티를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그런데 이 번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에는 오브제 집적의 입체성을 살리면서도 평면 회화의 강점을 하나로 아우르는 작업도 눈에 띈다. 이 작가의 작업과정을 돌아보면 모티브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여하히 현대인의 감각에 어필할 것인가 하는 한국화가로서의 연구와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이같은 작품들은 한국적 미의식을 담아내면서도 매체적 변용을 통해 그 정신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작가의식의 표출이기도 하다.

장두일_전원_한지, 혼합재료_80×117cm_2014
장두일_땅에서 놀다_한지, 혼합재료_41×53cm_2014

3. 물화(物化)를 통한 천지인의 소통, 치유 ● 예술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정신적 치유에 관여한다. 특히 오늘날 현대인의 병은 문명의 이기 속에서 파편화된 정신적 질곡과 깊이 연루되어 있고, 누구나 환자의 대열에서 비켜나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지혜는 일찍이 천지인의 소통을 통한 불이(不二)와 포일(抱一), 물화(物化)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예술의 경지를 살펴왔다. 이 같은 예술관은 후기구조주의의 정신사적 문맥에서 선구적 서양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새로운 출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동양의 정신적 자산은 더욱 값진 '새로운 영지주의'(new gnogticism) 전개의 중심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들은 사실 너무도 아름다운 고향들을 마음 속에 지니고 산다. 그 고향을 망각하지 않는 한, 정신적 실향민들에게 여전히 우주와 자연은 인간을 위해 열려 있다. 장두일은 토분과 물감과 먹으로 삶의 그 같은 이마쥬들을 부단히 건져 올려 우리들에게 대면케 한다. 그리고 하나로 아우러지는 땅과 하늘과 인간의 소통이 얼마나 우리의 병을 치유하는가를 실감케 한다. 이런 공감을 자아내는 그의 작품들은 창작의 과정에서 작가 스스로가 모든 사물들과 시공간과의 물화를 이루어냈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어떠한 현학적인 지적 놀이와는 거리를 두고 매우 담백하며 질박하고 단순한, 때로 투박하면서도 해학적인 조형 어투로 보는 이들의 감성에 어필해온다. 마치 우리 민족의 민화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미의식과 감성적 측면도 엿보인다. 자연스럽고 편안하면서도 파격의 미가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은 작가 스스로 마음의 비움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주관을 덜어낼 때만 객관과 사물과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장미진

장두일_시간의 집적_베니어판에 혼합재료_56×49×10cm_2014

'땅에서 놀다 2014'의 주제는 일상 속에 놓여 있는 희망으로서의 삶과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상적 생활 장면을 소재로 한 평면작업과 입체적 성격의 파편(破片)을 동시에 배치하여 장르간의 성격을 새롭게 재구성 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 평면회화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표현기법은 스크래치 기법으로 유년(幼年)과 전원(田園)시리즈에서 볼 수 있다. 수용성물감에 흙과 돌가루 등을 섞어 땅의 질감을 일상에서 채득한 형상과 함께 해석하여 따뜻한 생활 정서를 풀어내고 있다. 어릴 적 마당이나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의식적으로 땅에다 엄마 아빠의 얼굴 그리듯, 가급적 속기를 뺀 선의 표정으로 다양한 생활감정을 표현하였다. ● 반면 파편을 쌓아 놓은 입체적 화면은 도자기 또는 기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된 수많은 시간의 파편들을 다양한 모양과 표정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시간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지거나 버려져 쓰임을 다한 파편에 대입하여 쌓아 올려 집적하거나 상자에 담아 표현하였다. 작가는 파편을 만드는 과정이 무념의 사색 또는 무의식으로 이어지는 수행의 시간과 접점에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 어른들이 지닌 꿈과 희망이 유년기 어린아이가 바라는 그것과 다름 아니듯 우리는 누구나 희망의 미래를 꿈꾼다. 첨단의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땅에서 뛰놀았던 유년시절의 일상은 삶의 원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 장두일

Vol.20140214f | 장두일展 / CHANGDUIL / 張斗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