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smos City

박준형展 / PARKJUNHYOUNG / 朴俊炯 / painting   2014_0212 ▶︎ 2014_0218

박준형_Chaosmos#005_캔버스에 유채_162×246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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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도시에 얽힌 다층적 그리드와 매칭 트랜슬레이션, 그 두 번째 ● 1. 도시를 화폭에 옮기는 작가들은 드물지 않다. 문명의 한 상징이자 구성원들의 삶의 거처인 공간을 담아내는 작가들 또한 상당한 편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작가들 가운데 박준형의 작업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우선 눈에 띄는 건 가시적인 형상이다. 그의 도시는 흡사 글렌브라운의 회화처럼 꿈틀거리는 역동성을 띤다. 「Chaosmos#004」에서 읽히듯, 격정의 붓놀림이 드러나고, 그러면서 정반향의 도시가 놓인다. 그렇기에 꽤나 고의적이고 이질적이다. 그의 도시가 지닌 또 하나의 변별력은 감성적 측면에 있다. 즉, 타자들이 느끼는 묘한 감정의 원인, 뭔가 인위적이지만 딱히 규정하기 힘든 그것이다. 앞의 해석을 기준으로 종합하면 박준형의 도시는 계획적으로 정비된 현실의 도시와 이상적 가치를 포함한 다층적 상황과 심리가 용해된 도시이다. 이는 시각적 인지가 수월한 묘사로서의 도시이면서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읽혀지는 도시이다. 그 둘은 하나의 화면에 또는 각각의 개체로서 존재하는데, 엄연히 다르지만 같은 도시이고 같은 도시 같지만 다른 도시라는 게 맞다. 왜냐하면 2014년 작 「Chaosmos#005」이나 「Chaosmos#006」에서처럼 물성 가득한 화면과 평면성을 지닌 화면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도 유화 작업들은 사실 계산이 요구되는 아크릴판에 구현된 이미지를 상치해 전혀 다름 느낌을 선사했던 이전 작업의 연장이다. 개별적 틀을 넘어 나름의 변주를 예단케 하는 분동이 됨과 동시에 물리적, 현실적 측면과 내면적, 심리적 교합의 대리로서 기능했던 작업들의 발전된 순연이라는 것이다.」

박준형_Chaosmos#006_캔버스에 유채_60×155cm_2014

사실 박준형의 그림들은 '도시'라는 단어를 연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계획'이나 '질서', '정렬'과 같은 관계어 마냥 빈틈없이 잘 짜인 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다만 이러한 여운을 흔드는 요소들이 어느 한쪽에 이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설계적이며 건조한 감각은 무뎌진다. 하트비히 에벌스바흐(Hartwig Ebersbach)의 그림에서의 물감 덩어리가 휘돌다 자릴 잡은 듯한, 중층적 공간으로 인해 한편에서의 엄중한 질서는 또 다른 한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고 이 둘의 융화는 익숙하고 재현적인 도시풍경이면서도 허구적인 도시풍경으로의 전이를 맞들고, 구상이면서 추상인, 건조한 도시성과 작화적 내면성을 회화적 진중함으로 해석하려는 작가의 시선이 '이성과 감성'이란 간극 아래 구동되고 있음을 알린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일차적으로 발견되는 건 화면구성이다. 병렬과 병치적 대비, 데칼코마니마냥 대조를 이루는 화면으로, 확실히 흥미로운 감흥을 선사한다. 과거 아크릴 작업도 그러했고 2014년 새롭게 선보인 작업 또한 동일한 맥락을 이룬다. 특히 2013년 작업은 각각의 매체로 존재하든 아니면 하나의 화면에 병립된 상태로 놓이든, 대개 균질한 이미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는 조감법(鳥瞰圖) 아래 상대적 디테일을 내보이며 또 하나는 거칠고 두터운 유화를 얹힌 상태로 놓인다. 때문에 이 둘의 합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듯한 여운을 던져주며, 그 둘의 간극은 묘한 혼란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병치라는 구성은 궁극적으로 메시지의 전달을 강조하는 장치로 가동됨은 물론 현대회화의 실험성을 획득하기 위한 작가적 노력이 녹아 있음 또한 가리킨다.

박준형_Chaosmos#004_캔버스에 유채_113×194cm_2014

2. 내용면에서 박준형의 작업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나와 타자와의 관계성에 의미를 둔다. 유화로만 제작한 2013년도 작품들도 그러하다. 흔한 동네 풍경을 비롯해, 도시 거리, 건축물, 주차장과 같은 평범한 장소 속에 얼마든지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고지하는 것이 외형적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담은 작품들에선 도시란 원래 다양한 것이 혼재되어 있는 일종의 복잡한 구조체이자 저마다 다른 다양한 내재성이 투영되어 있음을 객관적 시선에서 드러낸다. 이는 도시란 인간을 위해 건축된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이지만 다른 면에서의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이면서 진화해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지정하는 것이며, 그런 도시를 타자의 주체로 전이시킨 세계 속에 놓았을 때 여타 대상들과 교류하고 접촉하는 나와 우리는 그 유기성의 생성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묻고 있음을 가리킨다. 다만 이전 작업과 다른 것은 온전히 유화로만 작업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얼마 전만 해도 세심한 도안을 아크릴 화면에 옮기고 도시화 혹은 거부할 수 없는 공동체적 상황에 유입되는 일련의 도시프로세스 및 사적 의미들을 공적인 상응 속에서 피워냈다.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가 구축한 수많은 관계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의 내외적 초상을 화면에 담으며,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현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되풀이되는 일상과 곧 소멸되면서도 이내 재생되는 사회적 알고리즘과 일회적으로 소모되고 재구성되는 현대의 단면들을 '도시'라는 테제 아래 서술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작업은 재료적 측면에서 단순해졌다. 「Chaosmos#005」에서처럼 굳이 복잡하게 계산하는 대신 감각을 앉혔으며, 그건 유화라는 안료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의 그림이 특징인 명료한 지각을 요청하면서도 혼재되어 해석을 자유롭게 하는 다면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준형_Chaosmos#06_캔버스에 유채_80×128cm_2013

하지만 재료, 즉 안료의 활용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단초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할 부분은 작가적 의도가 무엇인가이며, 도시라는 자체에 대한 해부와 그 내부와 외부에서 꿈틀거리고 조응한 채 일상을 소비하는 도시인들의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발현 및 유지되고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자문일 것이다. 기실 작가는 「Chaosmos#06」에서마냥 단순해 보이는 작업을 통해 동일한 성격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도시라는 하나의 거푸집 아래 획일화될 수 있는지, 누군가 그 틀을 벗어나 경계를 알 수 없는 공간과 시간 속에 개별적으로 존재할 경우 어떤 상황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허나 이는 외적인 것으로, 현대인의 삶을 녹여내고 자아와 만나 빚어지는 또 다른 자아와의 갈등과 고민 속에서 한없이 부유하는 정체성을 '도시'라는 명사를 통해 확인하려는 것이 의도와 의중의 본질에 가깝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인간들의 욕구, 욕망에 대한 철학적 기술의 독해이며, 작가는 이를 양면의 도시와 공유한 채 직접적이진 않은, 그러면서도 분명한 의도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영화 언어로 빌려 말하면 일종의 단면과 단면의 결합, 즉 일상에 관한 귀속이라는 평범한 신(scene)과 그것을 이탈하려는 신(scene)의 조합으로 도시 및 도시적 삶과 존재에 관한 시퀀스(sequence)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철학적으론 구분과 탈구분, 경계와 탈경계,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집단, 커뮤니티와 언커뮤니티, 소외와 교류, 소속과 비소속, 독립적 혹은 합의적 공동체라는 다양한 개념을 그리드화 시켜 또 하나의 미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종의 '매칭 트랜슬레이션(Matching Translation)'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박준형의 근작에 남다른 의미부여가 가능하도록 이끄는 구동체이다.」

박준형_Chaosmos#003_혼합재료_123×162cm_2013

3. 흥미로운 건 예전 작업의 경우 위와 같은 요소들이 비교적 단번에 읽히는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한번 우회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건 어찌 보면 자본주의적 생산사회에 선행하는 도시적 공동체 의식, 특정한 목적성을 지닌 집단에 상존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전체 속에서의 개인이기도 한 도시인들에 대해 제3자의 관점에서 고백하고 있지만 가시성과는 달리 확연한 인지성과는 떨어진 그 무엇이었다. 필자는 이를 당시 비평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즉, "A와 B의 문제에 속한다. 즉, A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더불어 실존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B는 존재본질(essentia)에 대한 현실존재(existentia)의 탐구, 개개의 개별적인 개체이자 개인과 주체를 작품 내부에서 배양하고 있기에 이 두 가지의 병립은 구상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수월한 읽음을 어렵도록 했다". 허나 오늘날의 작품은 보다 이해에 진입해 있다. 궁극적으로 정형화될 수 없고 끊임없이 유동적인 동시대의 도시성과 경계가 모호하고 흔들리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심할 시간조차 허락지 않는, 연약하며 불안한 시대의 개인적 정서를 자신만의 상징과 기호를 통해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있음을 정돈된 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특히 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의 형상들에 반해 비교적 동적인 흐름을 드러내는 다른 한편의 공간성은 사회적 묵시적 합의나 그것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작가의 욕구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들은 도시자체에 대한 표면적 안내나 묘사라기 보단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적 의지의 반영이라는 측면에 무게감이 있다. 특히 한쪽에 덧대어진 거칠고 두터운 안료의 향연은 제한 없는 공간성에 대한 갈구, 예술성의 확장을 꾀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경계가 흐릿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 살아가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인간들의 현실을 보다 밀도 있게 투사하려는 조형적 노력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 그의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오늘날 작업에서 전달되는 요소, 다시 말해 형태와 색이 주는 변증법적 긴장감으로 인한 화면은 그 자체로 한발 더 나아갔음을 스스로 입증한다. 붓 터치가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물감이 겹겹이 쌓여 있음에도, 작품은 2차원의 회화를 3차원의 환영으로 둔갑시키는 표면이 그러하다. 그러면서 정리된 듯한 불명확함의 명시성은 반대로 우리에게 사고의 종합을 위한 주체적 공간을 열게 하며, 명백하게 잘 알려진 도시라는 익숙한 주제를 낯설게 한다. (*본 비평은 지난해 초 본 필자가 작성한 박준형 작가의 개인전 비평을 토대로 한 것으로, 작품 변화를 고려해 연장 기술한 것임을 밝힙니다.) ■ 홍경한

박준형_Chaosmos#03_혼합재료_85×120cm_2013
박준형_Chaosmos#동교동삼거리_캔버스에 유채_123×162cm_2013

A Multilayered Grid Entangled in the City and Matching Translation, Secondly ● 1. Artists who render cities onto canvas are not rare. There are a considerable number of artists who treat this residential space, which is a symbol of civilization and the life of its inhabitants. Among those many artists, how shall the work of Park Jun Hyoung be interpreted? What first attracts the eye is visual form. His city, much like in the painting of Glenn Brown, is charged with a squirming dynamism. As read in Chaosmos#004, vigorous brushstrokes emerge while a city facing forward is being built. It is very intentional and heterogenous. Another distinction of his city is its emotional aspect. In other words, there is a reason it gives off a peculiar feeling, which is difficult to regulate even though it is artificial. If the interpretation that follows is brought together, Park Jun Hyoung's city is one where psychology is dissolved into a real planned and organized city that is multilayered with ideal values. This is a city where visual perception is easy to portray, yet it is read with the heart more than with the mind. The two parts exist on one surface as individual entities, undoubtedly different but seemingly the same. This is because like in the 2014 works Chaosmos#005 and Chaosmos#006, a screen that is full of material coexists with a screen that is flat. 「The 2013 works in oil are a continuation of previous works that present a completely different feeling as they conflict with the images realized on an acrylic plate where measurement is required. Beyond the individual frames, the balance of each one's variation and physicality, the works that functioned as the agent interlocking the realistic aspect and inner psychology are a later development.」 ● Associating Park Jun Hyoung's drawings with the word "city" first brings to mind related words like "plan", "order" or "alignment" and a strong sense of compactly knit construction. The elements that rattle these lasting impressions introduced on one side are planned, and dry senses become dulled. In the drawings of Hartwig Ebersbach, a lump of paint seems to have whirled around and landed, and through the multilayered space one side is of strict order while the other side naturally collapses. In the same way, the harmony of the two sides is that while a familiar, representative cityscape, it carries on the metastasis of a fictional cityscape. The artist's eye that interprets planned, abstract, dry urbanity and artistic internality with painterly prudence informs us that it is driven beneath the gap of "rationality and emotion." In this way, what is primarily discovered in his work is surface composition. Through a screen that makes parallel and juxtaposed contrast, decalcomania with comparison, he puts forth interesting inspiration. It was the same in his past acrylic works, and the newly displayed works of 2013 also create the same context. In the 2013 pieces, whether they exist by each medium or or are built by a compatible context in one screen, generally homogeneous images are often expressed in different ways. One is under a bird's eye view that displays relative details and another is built through the placement of rough and thick paint. He gives the lasting impression that the two exist together or not at all, and presents a peculiar sense of disorder. Ultimately, the juxtaposed composition, of course as a device to emphasize the conveying of a message, also shows that for the sake of acquiring the experimental nature of modern painting, the artist's effort is dissolved. ● 2. Regarding content, Park Jun Hyoung's work focused on the "city" gives meaning to the relationship between oneself and others. This is true of the 2013 pieces done only in oil. Observing how many different point of views can exist within ordinary places, including common neighborhood scenery, city spaces, buildings and parking lots, can be external interpretation. However, in the works that represent time, the city is originally a complex structure where various things are mixed together, and the projection of each intrinsic variation is revealed from an objective viewpoint. And though the city is a mass of iron and concrete built for people, in another aspect the artist designates the city as an organism and evolving living thing, and when that city is placed inside a world metastasized by another agent, he raises the question of the significance of the organic formation in the exchange and contact with other objects. The only way it differs from earlier works is that they had been done entirely in oil. Just a while ago the artist rendered careful design onto the canvas with acrylic and through public correspondence developed personal meaning and a city process series about urbanization and the undeniably communal state. The great and complex city, an independent existence that has built countless relational networks, and the internal and external portraits of modern people who cannot be free, are conveyed on the canvas. As attention is fixed on the reality that is unfamiliar and never familiar, the repetition of daily life at once dissipates and immediately the regenerating social algorithm and modern cross sections that wear out and reconstruct at one time are depicted within the theme of "city." The works of today have become simpler in terms of medium. Chaosmos#005, placing emotion rather than complicated measurement, shows the sufficiency of color in oil painting. While the characteristic of his drawing is that it calls for clear perception, the various aspects of free interpretation are still valid. ● However, the materials, such as the use of color, are not all there is to understanding his works. Our interest must be in the artist's intention, and, having dissected the city itself and corresponded with its interior and exterior, asking how the identity of those who are consuming daily life in the city is revealed and maintained, and what it means. In Chaosmos#06, through what looks simple the artist considers whether those sharing the same personality can become uniform in the city mold, and how to understand the case where someone deviates from the framework and exists individually without boundaries of space and time. Externally, the confirmation through the noun "city" of an endlessly wealthy identity, where the lives of modern people are dissolved and where in meeting the self another self is created within conflict and struggle, is close to the essence of intention and mind. Therefore, the most important thing in his work is the philosophical skill in reading the human desires that naturally erupt in the city, and having shared with both sides of the city, the artist's indirect yet clear intent can be seen. 「Borrowing from the language of film, this is the sequence of urbanity and urban life, a cross section and its layers, like the combination of an ordinary scene attributed to daily life and the scene that breaks away from it. Philosophically, various concepts such as dividesion and un-division, boundary and un-boundary,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individual and group, community and un-community, alienation and exchange, affiliated and unaffiliated, and independent or consensual community are put into a grid and to say that "Matching Translation" produces aesthetic value would not be wrong. This drives the possibility of giving unique significance to Park Jun Hyoung's latest work.」 ● 3. It is interesting that in the case of previous works, the factors mentioned above were not actually read at first. There may be an indirect aspect. In some ways the artist took a third person viewpoint of the communal sense of the city that precedes capitalist productive society, and the city dwellers who are individuals within the whole while having to exist in a group with a particular purpose. But unlike with visibility it was something different from cognition. The writer wrote the following at that time: The problem lies between A and B. A is very realistic and, if taken from an existential stance, is an investigation of existentia and essentia, and in the cultivation inside the piece of each individual entity and the subject, though the compatibility of the two is planned it makes for an unexpectedly difficult reading. ● However, the work of today has entered the realm of seeing and understanding. Ultimately it cannot be standardized, and in these fragile and anxiety ridden times that do not even allow for time to grapple with the endless fluidity of urban life and one's own vague and wavering identity, the use of orderly materials speak of the artist's effective management of personal emotions through his own symbolism and signs. In particular, the regularly arranged forms on one side contrasted with a space that shows dynamic flow on the other side is a look into implicit social consent and that from which the artist desires to break away. In that respect, more than superficially informing or portraying, much rests on the reflection of the artist's desire to break free from a fixed "frame." In particular, the abundance of rough, thick pigments layered on one side can be the projection of the artist's longing for limitless space and intention to expand artistry. That can be explained as the artist's effort to use density to formally project the reality of people, artist included, living in a way where boundaries can not help but be blurred. Moreover, the elements conveyed in today's work, the dialectic tension of form and color themselves, demonstrate that he has advanced a step. With the harsh swirling of the brush and layers of paint, the two dimensional surface of the painting disappears into the third dimension. At the same time, the clarity of the seemingly organized unclearness opens up to us an independent space where thoughts are synthesized, and the well-known, familiar subject of the city becomes unfamiliar. (* This writing considers the changes in the work of Park Jun Hyeong and is an extension of a critical review written by the writer for Park Jun Hyeong's solo exhibition at the beginning of last year.) ■ HONGKYEONGHAN

Vol.20140217b | 박준형展 / PARKJUNHYOUNG / 朴俊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