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재_이현희_박국진 층별 개인展

2014_0217 ▶ 2014_022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김춘재_Chapter4. 강산무진展 / 1층 이현희_기억의 징후展 / 2층 박국진_그 날 이후展 / 3층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김춘재 ● (전략前略)...『강산무진』의 작품은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한다. 하나는 자연을 생명으로 바라보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시선과 다른 하나는 자연을 하나의 사물로 바라보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언제든지 개발할 수 있다는 시선이다. 그러한 두 개의 시선은 『강산무진』을 표현하고 있는 재료와 기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강산무진』의 그림에서 사용하고 있는 재료는 서양 근대의 산물인 유화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강과 산은 벌거벗은 민둥산과 같지만 동양화의 산점투시(散點透視: 심원법, 고원법, 평원법의 혼합)를 통해 웅장한 산세들을 입체감과 양감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한 산과 강의 세밀한 묘사는 달리 말하자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의 화폭에서 느껴지듯이 인간과 자연이 하나인 세계를 은유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자연은 인간과 다르지 않는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내포하고 것이다. 그렇기에 『강산무진』의 개발의 풍경은 산과 강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자연의 생명력을 하나의 사물과 같이 크레인과 불도저들을 통해 하나하나 해체시키는 웅장한 광경을 목도하게 하는 것이다.

김춘재_강산무진_캔버스에 유채_259.1×173cm_2014

『강산무진』은 개발 풍경의 패러다임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을 탈바꿈시켜 놓은 터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자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지를 인간 이외의 생명들도 사는 곳으로 여기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의 그림 속의 사람들과 같이 기암절벽 사이사이에 터를 잡고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태도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김춘재의 『강산무진』의 장면과 같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터전도 언제가 개발을 하여 또 다른 미래의 청사진을 꿈꾸고 있는가. ■ 조관용

이현희_가장의 공간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13

이현희가장假裝의 공간 어릴 적 이불을 가지고 만든 천막이 처음 획득한 나의 공간이었다. 이 비밀공간은 작은 손길에 바로 허물어질 정도로 부실했지만 천을 펼치기만 하면 견고한 성이 되기도 하고 미지의 동굴이 되기도 했다. 가장의 공간은 이러한 유년의 '아지트'에서 나와 마주한 감정과 뒤섞인 기억의 파편으로 생성된 공간이다. ● 텅 빈 좁은 공간, 그것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어느새 천 조각들은 치부(恥部)가 되어버렸다. 타의에 의해 정리해야 했고, 그저 한때의 놀이로 기억 속에 담아두었다. 이름 하여 철이 들어야 했으므로... ● 나의 작업은 감춰지고 내면화된 치부를 표출하며 출발했다. 걷혀진 장막과 열린 서랍, 흘러나온 천 조각들은 유년시절의 창조적인 비밀공간을 재현한다.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의 조각들이 조합되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상세계의 틈이다. 개인은 성장이라는 틀 안에서 수많은 혼란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대리물과 허상을 만들어 낸다. 가장(假裝)의 공간은 분열하고 그 안의 불안은 결집되어 마지막으로 작업 안에서 구체적으로 표면화 된다. 이는 현재 이상화 된 공간 안에서 겪는 일종의 사유적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최근 주목한 것은 일상에서 내재되어있는 결핍(缺乏)이다. 현실 속 결핍은 허상에 의해 가려지고 변이한다. 이전의 작업방식보다 세분화 시키고 이야기의 연상과정을 거쳐 이미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결핍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통해 내적불안을 마주하고 질문을 던진다. 가려진 것은 무엇일까. ■ 이현희

박국진_유물-01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3

박국진 ●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점차 인공적인 모습들로 변모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삶의 가치에서 중요한 것들이 잊혀가고 인스턴트로 된 음식들과 더불어 획일화된 삶의 방식들과 일회성적인 감정들이 나무하며, 소모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사회를 사는 것이다. ●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 '현상'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것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형상은 시작되었다. 사실, 그러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본질은 무엇인지, 무엇이 먼저인지 또는 순환의 고리라는 고루한 사고마저 형상화하는 것, 이러한 일련의 총체적인 '물음' 에서 형상은 구체화 된다. ● 형상의 접근 방식은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세계관에서 바라보는 유토피아(utopia)적 세상, 즉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완벽한 사회를 말하는 것 또한 아니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 혹은 이상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러한 세상은 내가 작품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는데 누군가는 지구의 미래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우주의 다른 행성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면, 각자의 상상 속 세상으로 해석해도 무관한 부분이다. 이러한 개인의 세계관(Weltanschauung)으로 각종 매체를 통하여 뉴스거리와 이슈화 되고 있는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관조적인 태도로 작품을 제작한다. 즉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또 세상을 봄으로써 작품을 제작하는 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 박국진

Vol.20140217c | 김춘재_이현희_박국진 층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