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

김정환展 / KIMJEONGHWAN / 金政煥 / painting   2014_0222 ▶︎ 2014_0228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우편엽서, 돌가루_162.2×130.3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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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효령로 72길 Tel. +82.2.2105.8133 www.kepco.co.kr/artcenter

김정환의 작품 세계, 그 피의 기억들 ● 비평은 작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언어적인 폭력이다. 비평이 작품의 몸통을 깊이 찔러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 핏방울 역시 언어적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피를 흥건히 채우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리 말하건대, 김정환의 작품은 비평가로 하여금 언어적인 피 흘림의 공격을 가했으면 하고서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 그가 여러 작품들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내고 있는 문양(文樣)들이 필자의 눈에 흘러내리는 피의 형상(形狀)으로 보이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가끔씩 푸르고 붉은 색채의 난입으로 색채적인 균형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동양의 거대한 묵필을 예감케 하는 검정의 형상들이 주조를 이룬다. 검은 피의 흘러내림, 더군다나 흘러내리면서 화폭 전체를 향해 은근히 스며드는 데서 피의 속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흘러내리다가 멈춘, 멈추면서도 스며듦을 통해 살아있는 양, 하지만 애초에 붉디붉은 상태였으나 말라붙어 고착된 나머지 더없이 검게 변해버린 피의 흔적으로 읽어내게 된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편지봉투, 돌가루_162.2×130.3cm_2014

피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는가? 지상의 위력에 의해서건 또는 천상의 위력에 의해서건, 깊게 상처받은 자, 살해당한 자, 더없이 억압된 자, 쫓겨나버린 자, 또는 그래서 부재하는 자의 여지없는 현존을 알린다. 피는 틀림없는 기억의 전령이다. 피는 남들이 쓰다 함부로 버린 기억이 뒤늦게 되살아나 위급하게 두드리는 한밤중의 노크 소리와 같다. 피의 기억을 채우는 내용은 무엇이던가? 푸드득 살아 오르는 삶의 그 섬뜩한 잔인성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들을 근원에서부터 평등하게 만드는 그 삶의 잔인성이 아니던가. ● 필자가 보기에 김정환의 붓질은 왠지 모를 이러한 피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이렇듯 서양 미술의 풍모를 보이기 전에, 일찍이 서예에 깊이 빠져들었고 전각의 세계에 심취하기도 했던 그의 예술적 이력을 보아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예술가로서의 그는 개인적인 기억을 넘어서서 집단적인 기억으로, 집단적인 기억을 넘어서서 인간 일반의 기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데에 예술 정신의 과업을 설정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예술은 말 그대로 피를 말리는 작업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의 작업에 대해 피의 기억으로 점철된 인간 존재를 표현하려는 것이라는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필자로서는 이와 관련해서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철되는 구성 방식을 분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주고받은 수없이 많은 진짜 편지 봉투와 엽서들을 배치하여 조성하고 있는 배경이 있고, 그 배경 위를 강렬하게 흘러내리듯 뒤덮는 회화적인 형상이 있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편지봉투, 돌가루_193.9×130cm_2014

형상 배후의 육필로 쓴 편지와 엽서는 심지어 1930〜40년대의 것들도 있다. 이제 디지털 이메일의 시대를 맞아 그야말로 역사적인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물들이다. 일상의 안부를 담기도 했겠지만, 어디 그뿐이겠는가. 절절한 사랑의 성취와 상실, 사회와의 충돌에 의한 상처, 환희에 찬 생의 찬미와 저주로 일관된 원한,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 세상을 그지없이 우롱하는 광기,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는 처절한 생의 고뇌, 비상의 날개가 찢겨나간 나머지 완전한 우울의 추락, 그 외 등등. 그가 수집하고자 한 것은 편지봉투와 엽서에 새겨진 주소와 이름들에 담긴 각자의 고유한 존재였으며 그 피에 젖은 기억들이라 하지 않을 까닭이 전혀 없다. ● 그 위에, 그 피에 젖은 이름들과 기억들을 마주하고서 작가 김정환은 거대한 형상을 그려내어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마치 각자의 고유한 피의 기억들을 한꺼번에 매장하고서 '총(塚)'을 이룬 뒤 그 앞에 비문을 새기듯이, 검정을 비롯한 짙은 색채의 회화적인 형상, 화폭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피의 회화적인 형상을 내세우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회화적인 형상들은 뭇 인물들의 다양한 기억들을 예술적인 위력으로 담아내어 그들의 피에 젖은 삶의 이력을 축성하고자 하는 희생제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리넨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편지봉투, 돌가루_90.5×65cm_2014

어느 작가치고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마는 이로써 작가 김정환은 만인이 남긴 기억의 덤불 속에 몸을 숨긴다. 하지만, 숨김으로써 드러나고 드러남으로써 숨기는 법, 형상과 배경간의 은폐와 비은폐(非隱蔽)의 교차적인 상호작용이 돋보이면서 게슈탈트적인 형상적 교환이 화폭을 지배한다. 그에 따라 다수의 익명(匿名)과 작가의 기명(記名) 간의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익명 아닌 익명이 생겨나고 기명 아닌 기명이 생겨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익명이 되고, 그 익명을 바탕으로 작가의 기명이 생겨난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 위에 새김으로써 그 이름들 속에 묻히면서 익명으로 되고, 자신의 익명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을 고유한 기명으로 만든다. ● 이 같은 끝없는 교란을 통해 개념미술적인 효과가 작동한다. 화폭에 이미지 말고 문자들을 활용한다고 개념미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념미술의 핵심은 말 그대로 개념을 작품으로 삼는 선언적인 행위이다. 작가 김정환은 이번 전시 작품들을 통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의 기억들을 자신의 작품으로 삼는다고 선언하는 셈이기에 개념미술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개념미술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뚜렷한 피의 기억으로서의 언어활동인 편지쓰기 일반을 그대로 작품의 기반으로 가져오고, 그와 동시에 그 기억을 대변할 수 있는 회화적인 형상작업을 결합하여 통일성을 이루었을 때, 그러한 개념미술적인 작업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근원적인 인간 존재 자체를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리넨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편지봉투, 돌가루_55×100cm_2014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개념미술적인 작업의 원천이 동양의 전통으로 빛나는 서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기억은 다름 아니라 문자의 기억이다. 또한 문자의 상형에 새겨진 시원적인 그 피의 기억들이야말로 서예의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여백의 위력을 거머쥠으로써 자신으로 수렴시키고, 그 수축의 힘을 통해 여백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문자 상형을 구현해내는 서예의 위업, 그 서예의 위업이 작가 김정환의 작품에서 구현되고 있다. 이에 우회적인 방식으로나마 다른 측면에서의 개념미술적인 작업을 엿보게 된다. ● 비평이 작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언어적인 폭력이라면, 비평은 관람자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는 언어적인 폭력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술에서는 폭력 이외에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방도는 없다. 예술이란 처음부터 평온한 일상의 삶에 은폐되어 있는 잔인한 삶의 폭력을 들추어내어 그것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잔인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 김정환이 그 수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들을 작품으로 변환시키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리넨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편지봉투, 돌가루_53×40cm_2014
김정환_기억의 날인 Signatures of the memor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용된 편지봉투, 돌가루_91×72.5cm_2014

이렇듯 타인들의 삶을 묶어 예술로 변환시키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의 자격은 비단 그가 예술가이기만 해서가 아니다. 주식 애널리스트라고 하는 그의 생업에 대해 예술적으로 저항과 초월의 폭력을 일삼는 데서 이미 획득되어 있다. 이중배리적인 그의 존재의 균열이 이미 피의 기억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한편으로 추상표현주의적인 간명함을 지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언캐니 미술처럼 섬뜩하게 다가온다. ● 필자로서는 작가 김정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비평과 작품을 잇는바, 삶의 잔인성에서 배어나는 피의 기억들을 냉엄한 예술적인 폭력으로 잘 갈무리해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거늘 어찌 그의 작업을 계속 주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조광제

Vol.20140222a | 김정환展 / KIMJEONGHWAN / 金政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