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lor of life

장 마리 해슬리展 / Jean-Marie Haesslé / painting   2014_0225 ▶ 2014_0518 / 월,공휴일 휴관

장 마리 해슬리_Capricorn_캔버스에 유채_183×234cm_1983

초대일시 / 2014_0224_화요일_05:00pm

후원 / 주한 프랑스문화원 주최 / 고려대학교 박물관 기획 / 고려대학교 박물관_금산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합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Korea University Museum 서울 성북구 안암로 145 Tel. +82.(0)2.3290.1514 museum.korea.ac.kr

프랑스 작가 장-마리 해슬리의 작업은 자유로움과 우아함을 모두 지닌다. 뉴욕의 추상 표현주의 그룹에 속하는 그는 여러 해 동안 소호 옆 유명한 다운타운 지역에 위치한 스튜디오에 기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 지역은 밀려들어오는 관광객들에 의해 점령당했고, 뉴욕은 더 이상 예술을 행하는 쉬운 장소가 아니게 되었지만, 해슬리는 영감으로 가득한 이 환상적인 도시 안에서 광기어린 작업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가진 행운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의 작업은 '순수 회화는 죽었다'고들 주장하는 예술 세계의 풍문들, 특히 뉴욕파와 연관된 스타일에 반박하고 있다. 해슬리는 20세기 중반 이후 뉴욕파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법을 보여준다. 그의 색채 조합에는 독특한 터치, 예를 들면, 반 고흐의 영감 넘치는 색채 팔레트와 연관된 듯한 것을 보여준다. 198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그만의 강렬한 스타일을 통해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면서, 때로는 타당해 보이며 심지어 합리적이기까지 한 추상의 스펙트럼을 다양화시키는 면모를 보여준다.

장 마리 해슬리_Sentinelle_캔버스에 유채_168×168cm_1989

초기작들에서는 힘을 뺀 스타일을 선보였다. 해슬리의 화법은 초기작이 갖고 있던 거친 표현력을 유지하면서 발전되고 진화되었다. 1980년대 젊은 시절 작업을 보면, 「Capricorn」( 1983) 에서 볼 수 있듯이, 비틀리고 변형된 혼란스러운 형태가 넓은 컬러 스펙트럼에 의해 강조되는 브루탈리즘(Brutalism: 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 블록 등을 사용하여 추하게 여겨지기도 한, 특히 1950–0년대의 건축 양식)의 느낌이 있다. 여기에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색의 조합이 추상 표현주의에 전면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며 회화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해슬리 작업에 있어서의 색상은 어떠한 상태라기 보다는 사건으로 보인다. 관객의 시선에 주문을 거는 작가의 본질은 색의 능력을 회복시키는데에 있는데, 이 때의 색은 결코 정적이거나 고요하지 않다. 그는 작품 속에서 예술과 삶을 찬양하며 전통적인 통제 수단을 벗어난 둘의 조합에 관한 지식에 천착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업에 있어 개념적인 근원이 아닌 그 작업에 대한 느낌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작업에 대한 그의 영민함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Sentinelle」(1989)에서 보여지는 파란 배경 위의 붉고 희고 검은 형태의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원래의 글 일부 또는 전체를 지우고 다시 쓴 고대 문서)같이, 감정적인 대립을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 마리 해슬리_Bare Bones_캔버스에 유채_137×162cm_2009

「Sentinelle」에서 색과 형의 폭동은 구조에 대한 해슬리의 전투적인 감각에 의해 생겨나는 회화적 긴장감을 보여준다. 어린 아이의 낙서 같은 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원시적인 행위를 환기시킨다. 이것을 혼돈이라 할 경우, 이것은 대혼란을 발생학적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선택에 의해 매우 정교하게 배치된 혼돈이며, 또한 행위나 생각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여지는 광란이 자발적으로 완성을 이루는 혼돈이다. 뉴욕파의 특징을 액션 페인팅이라고 한다면, 해슬리가 이들 중 특히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액션 페인팅적인 행위는 작가를 대표하는 전면화적인 풍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작업의 풍부한 밀도를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1990년대 초반, 「Large Figures」(1992)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여성 누드의 그래픽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페인트 블록 위에 적용하는 실험을 했다. 이는 추상적인 언어와 상징적인 이미지를 융합하려는 시도였으며, 구상과 비구상 사이의 이론적, 회화적 이슈에 대한 해슬리의 감성을 보여준다. 그의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이는 이후 작업에 영감으로 작용하면서 추상의 본래 언어를 다시 사용하게끔 한 것이다.

장 마리 해슬리_Cocktail Time in Babylo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3×257cm_2010

실제로, 2000년 이후 십년간,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해슬리가 소재를 어느 정도까지 잘 다루느냐를 알 수 있다.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배열에서 정교하고 복잡한 회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스타일이 어디에 속하든 관계없이 즉흥적인 감성의 힘으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작가만의 재능을 드러낸다. 수십 년의 경험을 토대로 직관적으로 작업하며, 작가는 신중하게 결정한 조직들이 뿜어내는 무수히 작은 효과들로 가득한 추상화의 창조에 스스로를 헌신한다. 「Bare Bones」(2009)에서는 다양하게 분배된 색으로 뒤섞인 형태들을 의도적으로 긁어내어 색과 형태 모두에 흔적을 남겨 그 표현효과를 배가시킨다. 해슬리는 구성을 하는 동시에 해체를 하며, 각각의 행위에 동등한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의 이러한 능력은 그가 긍정적인 영역과 부정정인 영역의 심판자로서 회화의 거장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설명한다. 예술 창조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구성과 해체에 동등하게 작용하는 추상화의 과정을 발견하는데서 그의 선택은 영감을 얻는다.

장 마리 해슬리_Nirvana VII_캔버스에 유채_168×168cm_2013

그의 최근 5년간의 작업을 보면, 비록 이미저리가 자연에 가까워보이긴 하지만 팰림프세스트 같은 페인트의 밀도를 다시 찾아볼 수 있다. 「Nirvana VII」(2013)에서 붉은 배경 위에 겹겹이 쌓인 붉은 물감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겹겹이 쌓인 양귀비를 연상시킨다. 「Night Sky」(2010)에서는 표면의 다크블루 색상을 밝힐 정도의 빛이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붉은색과 녹색 부분은 항성의 구조를 암시하는 듯 하다. 작업의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보다는 작업을 전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즉, 작업의 각 부분에서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느낌이 하나로 완성되는 일화로서 경험해야 한다. 해슬리의 작업에서 즉흥적으로 발생시킨 형태는 작가의 의도를 초월한 감각의 지성을 증거하는 것이며, 이것은 작가가 주재한 즐거움일 것이다. 「Transcription」(2013)의 빨강, 노랑, 파랑의 물감 얼룩은 더 넓은 공간을 찾으며 자라나는 밀집된 군중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밀집성은 작업에서 마치 색이 빛의 갈구를 은폐하는 듯한 강한 긴박함을 부여한다. 「Transcription」과 같은 작업은 선명도가 일반적, 혹은 더 높은 정도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환영에 속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이 처음부터 해슬리의 창의력의 핵심 목표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의 손을 통해서, 예술은 단순한 흥분을 넘어서 지극히 현대적인 황홀감을 선사한다. 해슬리의 작업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도전받고 설득 당할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운인가. ■ 조나단 굿먼

장 마리 해슬리_Night Sky_캔버스에 유채_168×168cm_2010
장 마리 해슬리_Transcription_캔버스에 유채_168×168cm_2013

Of French background, Jean-Marie Haessle retains both freedom and elegance in his paintings, attributes that also belong to the abstract-expressionist milieu of New York, in the famous downtown neighborhood of Soho, where Haessle has maintained a studio for many years. Today, unfortunately, the neighborhood is taken over by crowds of tourists, whose traipsing about and naïve gawking spills over from the sidewalk into the street. New York is no longer an easy place to set up a practice in art now, but Haessle has the advantage of a large space, where he continues to paint remarkable works that are both manically busy and under the inspiration of the exclamatory. His recent efforts refutes the art-world murmur that painting is dead, especially the styles associated with the New York school. Haessle's case is both indicative of and outside New York's tradition of painting since the middle of the twentieth century—there is something a touch unusual in his color scheme, for example, which has been linked to the inspirational palette of Van Gogh. The current retrospective, which draws on work done as early as the early 1980s, demonstrates how an artist can plausibly—and even rationally—range through the spectrum of abstraction even as he celebrate the Dionysian in his highly energetic style. ● The style has been filled with barely contained force from the start. But Haessle's idiom has also developed and grown—this has happened despite the fact that a wild expressiveness has remained the first and foremost quality of his art. In the work Haessle did as a young man, in the 1980s, there is a kind of brutalism to the painting, in which a roiling scheme of shapes that twist and turn is accentuated by a broad range of color, as happens in the 1983 work Capricorn. Here we have the allover energy of abstract expressionism, but with seething masses of flat hue, which give the painting its considerable power. Color in Haessle's art is not so much a state as an event; the artist retrieves from color its ability to cast a spell on our gaze, but it is never static or quietist. Haessle often celebrates both art and life in his paintings, furthering our knowledge of both in compositions that break the back of traditional means of control. It is thus the feeling of the art we remember, not its conceptual origins. This is not to deny the intelligence of Haessle's work; rather, it is to recognize the emotional confrontations in, for example, the painting Sentinelle, in which red and white and black shapes form a palimpsest over the work's blue ground. ● The riot of colors and forms in Sentinelle show us that painterly tensions in Haessle's work tend to arise from a combative sense of structure. There is much scribbling and doodling—childlike activities—that reminds us what a primal activity the act of painting remains. Yet if this is chaos, it is a chaos masterfully arranged by choices that explain the mayhem as a principle of origination, whereby the frenzy attains a spontaneous completion, only seemingly free of considered action or thought. If the New York School can be characterized as action painting, then surely Haessle is prominent among its practitioners. Indeed, it is a practice that he has continued into his current activity, which supports an opulent density without removing the allover idiom for which he is known. In the early 1990s, Haessle experimented with works that took graphic images of female nudes and applied them over blocks of paint, as happened in 1992 paintings of large figures. This feels like an attempt to meld openly figurative imagery with the language of abstraction, and it shows Haessle's sensitivity to both theoretical and painterly issues between figuration and nonobjectivity. Whatever the original reasoning for the art may have been, it had an inspirational affect on the works that followed, which took up again the vernacular of the abstract. ● In fact, the decade beginning with the year 2000 and then the next decade continuing on into the present demonstrate the extent to which Haessle is a master of his medium. Ranging from relatively simple arrangements of form to paintings of exquisite complexity, this body of work shows Haessle improvising with an uncanny notion of rightness, no matter the anarchist elaborations of his style. Working intuitively, and basing his deceptions on the experience of several decades, the artist commits himself completely to the creation of abstraction as a tissue of decisions, often deliberately crowded with small effects. In Bare Bones(2009), the jumble of forms is given an equally broad use of color, enhanced by scraping, which does visionary damage to both. It is clear that Haessle is both constructing and deconstructing his art at the same time, so that the two activities are given equal measure. This, I feel, is where his mastery shows best—as the arbiter of positive and negative space, Haessle becomes a painterly auteur. His choices are inspired because they invent an abstraction that speaks to us equally of building up and tearing down, the basic necessary activities in the creation of art. ● In the recent works, those of the last five years, we find again a palimpsest-like density of paint, although the imagery seems to look more closely at nature. Nirvana VII(2013) shows us a red on red painting, reminding its audience of masses of poppies heaped upon each other. Night Sky(2010) indicates a dark blue mass illuminated to an extent by light behind it; patches of red and some green seem to illustrate sidereal structures. Finding out exactly what the imagery means feels less important than experiencing the painting as a totality—that is, as an episode of feeling, complete in the instantaneous occurrence of its parts. It is a joyful undertaking that Haessle presides over, one in which the occurrence of form bears witness to a larger intelligence than even that of the painter himself. In Transcription(2013), blots of red, yellow, and blue look like they are in a dense crowd, seeking more space to develop and grow. But that density is exactly what gives the painting its feelings of intense urgency, as if the color were masking a soliciting luminescence. Paintings such as Transcription belong to the visionary, where clarity occurs both in a regular way and upon a higher level. Yet we are wise to remember that this goal has been key to Haessle's creativity from the start. In his hands, art becomes more than merely exciting; it takes on something of the beatific in a very contemporary way. We are lucky to be challenged by, and then convinced of, the many strengths of Haessle's art. ■ Jonathan Goodman

Vol.20140225a | 장 마리 해슬리展 / Jean-Marie Haessl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