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내, 딸, 혹은 비어있음

이진영展 / LEEJINYOUNG / 李珍暎 / installation.drawing   2014_0228 ▶ 2014_0317 / 월요일 휴관

이진영_빨래_혼합재료_250×90×50cm_가변설치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다마스253 갤러리 ADAMAS253 Gallery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53번지 헤이리예술인마을 Tel. +82.31.949.0269 www.adamas253.com

어머니, 아내, 딸, 혹은 비어있음 ● 이진영의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많이 닮았다. 그의 작품에는 아내, 어머니, 딸과 같은 여성 정체성에 충실하게 머물고 있으면서도 한 순간에 덧없이 스러질 것만 같은 어떤 자아가 표현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주요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사랑받는 아내이자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일상의 평온한 흐름에 순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일상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무화(無化)시킬 것 같은 고즈넉한 읊조림 속에 자신의 의식을 내맡긴다. 이진영의 작품도 빨래 손질, 장난감 정리, 폐품 처리 등 주부의 손길을 거치는 소소한 집안일을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이진영은 그것을 전형적인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활동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어머니도 딸도 아닌 어떤 존재의 내밀한 자기 물음으로 이끌어 간다.

이진영_빨래_혼합재료_60×40×25cm_2014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여성 정체성은 가정이라는 공간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물론 그러한 정체성의 구속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느슨해졌지만, 그러한 정체성을 부여받은 이는 여전히 살림의 주체이자 책임자로서 '바깥'에서 돌아온 남편, 자식, 아버지의 먹는 일, 자는 일, 입는 일을 돌보게 된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먹고, 자고, 입는 일의 순환 속에 살림을 돌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성적인 존재로 변해 간다. 만약 그녀에게 바깥 생활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가정이라는 공간은 동일한 사태가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 회귀의 장소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그녀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정체성을 지녔던 존재로 여겨진다. 가정의 안팎을 드나드는 남편, 자식, 아버지에게 집안에 붙박여 가사를 돌보는 아내, 어머니, 딸의 모습이 종종 영원히 변치 않을 무엇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 하지만 어떠한 정체성도 그것을 부여받은 존재의 모든 것을 움켜질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강력한 정체성도 언젠가는 균열을 일으켜 와해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존재는 어떠한 정체성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잔여를 남긴다. 가정이라는 공간과 일체가 되어 영원히 어머니나 아내로 있을 것만 같은 존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소설에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사랑받는 아내를 그러한 잔여 속에 용해시킨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자신이 돌보는 가족과 살림살이에 대해 고요한 어조로 읊조리고 있는 여인들은 주변 인물들에게 영원한 어머니이자 아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정작 그들은 어머니도 아내도 아닌 어떤 낯선 존재가 되어, 눈앞을 스치는 삶의 광경을 사자(死者)처럼 처연하게 되뇌고 있다.

이진영_옷걸이_혼합재료_70×180×20cm_2014

이진영의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 자아도 집안일을 세심하게 돌보는 어머니이자, 아내이자, 딸로서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아이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남편이 입었던 옷, 아버지가 오랫동안 사용하였던 소지품과 같은 친숙한 사물을 매개로 하여, 아이-어머니, 남편-아내, 아버지-딸과 같은 가족 정체성을 부각시킨다. 그런 까닭에 이진영의 작품은 얼핏 보았을 때 그러한 가족 관계가 남기는 삶의 자취를 영속적으로 보존하려는 시도처럼 해석될 수 있다. 즉 어머니, 아내, 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살림살이에 남아 있는 가족의 자취를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더욱 신실한 어머니, 아내, 딸로 계속 남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표현기법인 '투명한 물질로 감고 쌓기', '진공팩으로 흡착하기', '물건에 지문 새기기'에 담겨 있는 보존, 축적, 각인의 의미도 이와 같은 통속적인 해석과 우연하게 맞물린다. ● 하지만 이진영의 작품 곁에 조금만 머물러 있어보면, 그러한 해석은 자연스럽게 수정된다. 가족들이 썼던 살림살이를 투명한 물질로 감고 쌓고 흡착시키는 이진영의 행위는 최초엔 무엇인가를 보존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처럼 다가오지만, 사물의 모습을 뒤덮을 정도로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무엇인가를 지우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행위로 변모한다. 이진영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물건들에 배어있는 '친숙한' 자취가 아니라, 그러한 친숙함을 무심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감고 쌓고 흡착시키는' 행위의 끝없는 흐름이다. 아이들이 처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지품과 같이 소중한 자취를 담고 있는 물건도 그와 같은 흐름 앞에서는 덧없이 해체되어 버린다. 이진영은 가족들이 바깥으로 나간 뒤 빈 집에 홀로 남아 살림을 돌보는 어머니, 아내, 딸이라는 존재가 사실은 가정이라는 공간의 신실한 수호자가 아니라, 그러한 몰(沒) 인간적인 흐름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이진영_Packing_혼합재료_100×180×70cm_2014

이진영의 작품에서 살림살이의 외양을 완전히 잠식하며 무한히 외연을 키워나가는 불투명한 덩어리들은 원통형의 비닐 롤, 지층처럼 누적된 진공용기, 바위덩어리 모양의 비닐 뭉치와 같이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된다. 그것은 어머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딸도 아닌 어떤 낯선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그 존재는 여전히 가정이라는 공간에 머물며 아이들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남편의 옷가지를 손보며, 아버지의 유품을 정돈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그에게는 무덤덤하고 낯설다. 예전에 자신이 어머니였고, 아내였고, 딸이었다는 기억만이 그 존재를 일상 속에 머물게 한다. 상품에 기입된 유통기한이나, 지문 찍는 일에 이진영이 관심을 보이며 작품에 반영하는 것도 이러한 허약한 머무름과 관계된 것일 테다. 왜냐하면 유통기한은 쓸모의 종료를 알리는 숫자이고, 지문은 그것을 찍은 이의 부재를 알리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진영_드로잉_혼합재료_18×18cm_2014
이진영_드로잉_혼합재료_22×27cm_2014

버지니아 울프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이진영의 작품에 나타난 자아, 혹은 낯선 존재는 돌이킬 수 없이 텅 비어 있다. 이진영이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인상적으로 언급하였듯이 그 존재는 '예전에 그랬었지...' 라는 독백에 잠식되어 있다. 가족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빈 집에 홀로 남은 그 존재는 어떠한 정체성에서도 벗어나 있는 무형의 덩어리가 되고, 낯선 흐름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읊조림과 같이 사자(死者)의 시선을 담고 있는 그 흐름는 '예전에 그랬었지...' 라는 독백만을 되뇌며 자신이 가졌던 모든 정체성을 용해시키며 텅 빈 여백 속에 흩어져 간다. ■ 강정호

Vol.20140228c | 이진영展 / LEEJINYOUNG / 李珍暎 / installation.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