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이완 In repose

마저展 / MAJEO / painting   2014_0305 ▶︎ 2014_0323

마저_공간의 이완 In repose_캔버스에 유채_116×46.5cm×6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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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3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플라스틱 화조화로 그린 '공간과 욕망의 이완' - 친숙함과 낯섦의 새로운 경계 ● 마저 작가의 그림은 아주 독특한 첫인상을 지니고 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민화풍(民畵風)의 소재들이 등장하는 그림들이다. 특히 화조(花鳥)가 대부분이어서 더욱 친숙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어딘가 모르게 낯선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꽃에 비유하자면, 생화(生花)보다는 조화(造花)에 가깝다. 이에 대해 작가는 "그림을 플라스틱처럼 그리거나, 자연스러움을 인위적 혹은 인공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마저 작가는 '현대풍 플라스틱 민화'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에선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친숙하고 낯설다'는 느낌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습관에서 나온다. 시골의사 박경철도 『감정은 습관이다』라는 책에서 "습관이 된 감정은 점점 더 강해진다."고 강조하면서, '감정습관'이란 용어를 선보인다. 우리의 뇌는 유쾌한 감정이건 불쾌한 감정이건 익숙한 감정을 선호하며, 뇌는 그것을 느낄 때 안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습관이 된 감정'을 더 확대하고 강화한다는 얘기다. ● 마저 작가는 바로 '익숙한 감정을 어디서 다시 느낄지 주위를 살피는 우리 뇌의 습관'에 의외의 '새로운 자극의 감정습관을 보여주려는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우리의 익숙했던 민화에 대한 재해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성을 새롭게 치환(置換)시켜, 보는 이에게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그런 마저 작가의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중심 키워드로 플라스틱 화조화, 조충도, 오색(五色)실등을 들 수 있다.

마저_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거기에 없다 I'm not there when I know it_ 캔버스에 유채_185.5×58.5cm×2_2008
마저_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거기에 없다 I'm not there when I know it_ 캔버스에 유채_185.5×58.5cm×2_2008_부분

'공간의 이완'을 통한 소통에너지 ● 마저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의 주요 테마는 '공간의 이완'이다. 여기서 '이완(弛緩)'의 사전적 의미는 "풀어져 느즈러지게 되다, 주의나 긴장 따위가 풀려 늦추어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대로 풀어쓰자면, '풀어져 느즈러진 공간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흔히 공간은 안과 밖, 이곳과 저곳 등을 양분하는 물리적 개념이지만, 마저 작가는 여기에 심리적인 공간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녀의 그림에 나타난 '공간의 이완'은 모든 공간속으로 투사되는 과정이며, 그 투사된 에너지를 통합해 새로운 자극을 선보인다. ● 작가는 꿈속의 꿈, 그 너머의 꿈,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들, 다시 그 공간성에서의 혼돈처럼, 평소 가졌던 현실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출하고 싶은 작가적 열망이 지금의 그림형식을 낳았을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연결하는 '차크라(chakra) 철학의 시스템'을 시각적으로 선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마저_조충도 Jochungdo_캔버스에 유채_73.5×60cm_2013

플라스틱 화조화로 그린 현대민화 ● 최근에 선보이는「플라스틱 화조화」시리즈 역시 일상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시에, 세상의 이면을 발견하자는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통 눈앞에서 빛나는 행복에만 집착하지만, 그 행복 이면의 숨은 욕망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면 전혀 색다른 정경이 펼쳐진다.   마저의「플라스틱 화조화」시리즈는 진정성을 상실한 '이미테이션 삶'을 가장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처음엔 아이가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무심코 바라보다 떠오른 아이디어라고 한다. 이어 2차원도3차원도 아닌 '납작해진 공간구성'이 특징인 민화(民畵)에서 그것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가 지금은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응용한「조충도(鳥蟲圖)」시리즈까지 발전시키고, 가상세계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컴퓨터 3D 미디어 영상작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마저_조충도 Jochungdo_캔버스에 유채_73.5×60cm_2013

또한 마저 작가의 그림은 유화(油畵)지만, 한국화 화법을 응용해 '겹겹이 쌓는 중첩 채색기법'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유화의 진득한 무게감과 수채기법의 투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저 작가의 현대민화는 단순히 외면의 조형성은 물론 내면의 정신성까지 차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자도 없는 전통민화의 평면성을 3차원의 공간적 입체화로 재해석 마저의 현대민화는 무궁한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그녀 그림에서 모란꽃은 다양한 삶을 구가(謳歌)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모란도 중심의「공간의 이완」연작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욕망이 작가로서 삶의 원동력이자, 큰 장애물이었던 자신의 현실적 체험담이 투영된 작품인 셈이다.

마저_조충도 Jochungdo_캔버스에 유채_73.5×60cm_2013

이외에도 그림마다 무수한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마치 새와 곤충들은 선문답을 나누듯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다. 어떤 곤충은 실제로 날개를 잃고 아파보이기도 하고, 흑백의 쥐는 오색실을 물고 줄다리기를 하는가 하면, 허공에 노랑공기가 꽉 들어차 따뜻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런 마저의 그림은 진짜와 가짜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한 해답을 쫓는 화두(話頭)를 설명하고 있다.

마저_조충도 Jochungdo_캔버스에 유채_73.5×60cm_2013

오방색 실로 이어진 삶의 윤회 ● 마저의 최근 작품인 조충도(鳥蟲圖) 시리즈를 보면 하단에 그림자가 보인다. 빛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물이나 거울에 투영된 것이다. 어떤 것은 위의 형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지만, 간혹 어느 것은 변형된 모습을 보인다. 이런 그림자는 매우 깊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자아와 영혼의 혼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인적 무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물그림자'는 과거에 대한 잠재의식의 기호이기도 하다. ● 또 6폭 모란도 병풍 형식의 작품에선 다양한 색조의 새들이 부리에 오방색실을 물고 있거나, 다리에 감고 등장한다. 이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현실, 자유와 속박을 함께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보인다. 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의 끈'이기도 하다. 바로 부처는 '만족을 모르는 욕망'이 윤회의 원인이라고 하며, 그 욕망이 없어질 때 윤회는 끝난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현생에서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 그래서 우리 삶 자체가 욕망의 연속이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일 수도 있는가 보다.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업이 되어 되돌아온다. 이런 무지(無知)가 낳은 '욕망의 덫'이 바로 마저의 오색실인 셈이다. 오색실은 불가(佛家)에선 '하늘에서 오색찬란한 기운이 내리듯 부처님의 법력(法力)이 우리 중생(衆生)에게 전해져서 모든 고통(苦痛)에서 해탈(解脫)됨'을 상징한다. 때문에 마저 작가는 그 욕망의 덫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줄 해법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스스로 내 안에서 답을 구하라는 자가정진(自家精進)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번 개인전에는「공간의 이완」이란 주제의 민화병풍 형식의 작품, 신사임당 초충도를 응용한「조충도」시리즈, 영상작품 등 16점 정도가 선보인다.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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