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ria 아포리아

함미혜展 / HAMMEEHYE / 咸美慧 / painting   2014_0312 ▶︎ 2014_0318

함미혜_포기한 밤_장지에 먹, 채색_78.5×122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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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31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 7길 37(팔판동 115-52번지) Tel. +82.2.737.4678 www.gallerydos.com

감정 덩어리 ● 인간은 몸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신체에는 우리가 경험한 모든 순간들의 기억이 기록되는 살아있는 저장소와 같다. 수없는 순간들의 생각과 느낌이 쌓이고 쌓여 내면에 가라않은 채로 머물다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다. 쉽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과 기억은 영혼과 결합되어 덩어리진 형태로 표출되며 그 중에서도 고통은 함미혜의 창조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내부로부터 솟아올라 몸과 뒤섞인 감정 덩어리에는 기법의 우연적인 효과와 표현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어 그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킨다. 작가는 표현의 대상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는 부정의 상태를 의도하고 있으며 전시제목인 'Aporia'는 이러한 궁극적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상태를 대변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함미혜_혼잣말_순지에 먹, 채색_118×182cm_2013

작가에게 고통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는 기쁜 것이다. 고통은 삶을 새로운 눈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듦으로써 생각하지 못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고 알지 못했던 언어들을 알게 한다. 작가의 내면에 잠식하고 있던 감정의 파편들은 고통이라는 힘에 의해 이상하고 기이한 덩어리의 형태가 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시키는 과정에서 형과 형 사이에는 다양한 감정의 구조들이 반영된다. 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존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함미혜의 작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불편하리만큼 억지로 웅크린 인간의 형상이다.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알 수 없는 것들과 뒤엉킨 채 덩어리진 형상은 모호함 그 자체이다. 팔이나 다리 등 인체의 일부분만 노출된 채 얼굴과 같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은 철저히 가림으로써 막연한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작가는 신체의 형상을 중심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자신의 즉흥적인 감성에 따라 섬세한 붓질을 추가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계획되지 않은 채 흐르는 감정대로 풀어지는 형상의 경계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과 형태를 만들어낸다. 신체는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운 성향을 띄며 작가가 지닌 다양한 감정을 반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긴장과 이완은 화면에 자연스러운 운동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는 매 순간마다의 감정이 변화함에 따라 인체의 형태도 변화하는 필연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함미혜_他我1, 2, 3_장지에 먹, 채색_각 122×92.5cm_2013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인 장지와 먹을 기본으로 다양한 재료와 색을 혼용함으로써 구분 없이 뒤섞인 감정의 덩어리들을 풀어놓는다. 덩어리가 형성되는 공간은 추상적인 혹은 방과 같은 사적인 공간이며 공통적으로 고립된 느낌이 강하다. 일부 작품에서 등장하는 먹 선으로 표현된 유려한 천들은 신화적인 느낌을 부여하는데 그 위에 엉킨 인체 덩어리에서 마치 세속에서 벗어나 고뇌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최근작에는 원근법에 의한 일상의 풍경이 등장한다. 이는 예전에 묵혀두었던 감정과 우연히 지나친 공간의 만남이 가져오는 뜻밖의 결과를 감정의 덩어리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작품의 이야기는 철저히 작가 본인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세계나 사물의 재현이 아니라 감각 자체의 예술이다. 우리를 사로잡는 손끝에 잡힐 듯 꿈틀거리는 힘들을 표현하고자 하며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없음'으로 돌리는 새로운 시작과도 같다. 형체가 명확하지 않은 기이한 덩어리를 바라보는 것이 편치는 않다. 그것은 대상을 화려하거나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욕구에 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껍데기가 아닌 우리가 숨기고 싶은 실존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정체불명의 덩어리를 보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뭉그러뜨리고 들러붙게 만든 고통과 절망이 가진 힘일 것이다. 작가는 신체를 왜곡하는 행위에 몰입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공통의 경험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함미혜가 만들어내는 구상과 비구상 사이의 경계선 상에 놓인 불편한 형상은 우리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직접 작용한다. ■ 갤러리 도스

함미혜_이상한 우연_장지에 먹, 채색_73×91cm_2014

아포리아의 상태, 일단 어떠한 당혹스러움에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나는 일상 속에서 경험한 어떤 감정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설명할 말을 찾기 시작하다가 그게 '무엇'인지 규정하는 순간 그 이면에는 놓치는 게 생기고 만다. 억지로라도 무엇이라고 규정해보지만 그것은 100% 전부 표현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하다고 규정하는 데에 그 어떠함과 상관없는 얼마나 많은 부스러기들이 포함되는지. 나는 설명하기를 포기한다. 무언가를 분명히 경계 지을 수 없는 지점,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하면서도 설명되지 못하는 역설 속에 나만의 아포리아가 형성되고 심리적인 고통이 생긴다. 사소하고 미묘한 고통은 일상의 행복하고 안정된 상태를 흔들어 놓는데, 나는 이 때 어딘가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막연하게 혼란스러운 부정적인 상태와 가깝게 된다.

함미혜_고민_장지에 먹, 채색_73×91cm_2014

흔히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고통'이라는 것이 나에게 정말로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지 않도록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다. 아니, 한편으론 해소해야 한다. 나는 작업을 통해 일상에서 경험한 '설명 못 할' 심리적 고통의 형태를 똑같이 반복해보기로 한다. 손을 통해 전송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들 중에서 그 의도와 순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에 사소하고 작은 터치와 흔적들, 자세히 봐야 보이는 희미한 것들, 있는 듯 없는 듯한 선의 움직임과 같은 아주 작은 변화들에 집중한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이며 흐릿한 것들을 되살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감정적인 당혹감, 심리적인 고통이라는 것이 나에게 부정적인 경험이 아닌, 건강한 행위이며 의미 있는 형태로 남게 한다. 즉흥적이고 우연적으로 지나간 흔적들을 조금씩 다듬고 만져나가면 그 자체로 또 새로운 형상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의식에서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만들어진다. 어딘가 불완전하고 불편한 형상은 이렇게 반복된다. 나만의 아포리아 그 끝에서 나타나는 이 모호한 덩어리. 나는 이 불편한 형상이 오히려 편안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선, 터치, 흔적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한데로 모아 놓고, 거의 우연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들을 일정 부분 통제하고 있는 덩어리라는 장치는 곧 나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삶에서 경험하는 모순, 이질성, 혼란, 그것들이 서로 엉키며 만들어내는, 어쩔 도리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함께 있어야만 하는 고통스럽지만 자연스러운 한 인간의 내적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다.

함미혜_울고 싶은 날_장지에 먹, 채색_73×91cm_2014

아포리아가 단지 막다른 골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새롭고 훌륭한 출발점 역할을 하듯이, 나는 이 아포리아에 빠져 모호함 속에 맴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지점에서 그리는 행위에 대한 몰입을 통해 진짜 나에 대해 조금씩 자각해나간다. 뭉글뭉글한 덩어리들은 어쩌면 지나간 어느 순간의 뾰족하고 모난 나의 감정을 둥글둥글하게 말아놓은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뭉글뭉글한 감정덩어리들을 의미 있는 공간에 그려 넣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하고, 새롭게 보고, 오해하고, 위로한다. 또 새로운 경험을 위해 돌아다닐 준비를 한다. 이것이 내가 나를, 나의 삶 그대로를 인정하고 다루어가는 방법이다. ■ 함미혜

Vol.20140316b | 함미혜展 / HAMMEEHYE / 咸美慧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