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증명

신민철展 / SHINMINCHEOL / 申旼澈 / painting   2014_0310 ▶︎ 2014_0404 / 일요일 휴관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11:00pm / 일요일 휴관

충정각 SPACE CHUNGJEONGGAK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360-22번지 Tel. +82.2.313.0424 www.chungjeonggak.com

존재의 증명-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 ● 복잡 미묘한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된 기억으로 둔갑하여 아찔하게 어지럽기까지한 봄이라는 놈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 이 아찔한 계절에 역사의 기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대안공간 충정각에서 사유를 통한 복잡한 감정의 선들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결과물로서 관람자와 서로의 감정들에 대해 대화하고자 하는 신민철의 전시가 한 달여간 열린다.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90.9×49.8cm_2014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재가치의 확립을 위한 증명을 자신들만의 방법대로 숨 쉬듯 하며 살아간다. 존재하지 않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순간 그는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도 여실히 증명할 수 밖에 없음이기 때문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주체로서의 자아'를 대표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말인데 이 '주체로서의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만이 가진 모든 다양한 언어들로 존재의 증명을 하며 살아간다. '주체로서의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주체적 사유의 존재를 통해 존재하며, 데카르트가 제시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서 존재의 증명을 확립하고자 한다. 사람은 가장 고차원적인 심적 능력인 사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발현시키고자 하는데, 사유한다는 것은 순간적이고 개별적인 지각의 이해를 넘어서서 현실의 경험에로 통합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람들은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무한한 감정들을 현실의 경험에 통합시키고, 앞서 서술했듯 자신들의 다양한 모든 언어들로 사유의 결과물들을 토해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72.7×50cm_2014

여기에 스스로 발가벗겨진 채 자신 고유의 사유의 결과물들을 진실로 토해내고 '그림'이라는 언어로 대화 하고자 하는 한 젊은 작가가 있다. 신민철은 존재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더 복잡한 감정의 선들로 인한 대화의 방법으로 선택한 그리는 행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메시지 자체를 기억해내어 빈 캔버스에 토하듯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화자가 된다. 그는 빈 캔버스 위에 수많은 감정들 속 진심으로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아우라를 붓질하고 또 붓질하고 색들을 쏟아 부으면서 화면의 밀도를 높여감과 동시에 행위 자체를 직접 캔버스에 기록해나간다. 이는 미적 가치가 구현된 제작의 결과물보다 표출하는 행위에 더욱 가치를 두며, 그의 존재 증명의 행동 양식인 그린다는 순수한 행위 자체로 환원시키는 의미 또한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화면 속 언뜻 그림자처럼 보이는 흔적들은 작가 고유의 감정의 색들로 단단히 꽉 차 있다. 그만이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은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배설하듯 즉흥적이지만 꼭 토해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53×33.3cm_2014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53×33.3cm_2014

모든 대화의 시작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비로소 성립된다. 이에 그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로 발생되는 수만 가지의 감정선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스스로를 발가벗긴 채 그의 감정들을 정직하게 보여주며 대화하고자 한다. 그의 대화의 화면 속 등장하는 감정선들의 아우라로 이루어진 '그리는 행위'를 통한 흔적의 형태들은 문화적 원인으로 발생되는 가치 감정을 통한 흔적, 사랑하는 사람과의 감정 공유를 통한 느낌과 분노, 절망, 질투 등의 심리적 감정을 통한 흔적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로 발생되는 요구 수준을 통한 사회적 감정들로 고스란히 캔버스 위에 채워져 있다. 그의 작품은 존재하여 대화를 하기 위한,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은 대화의 창인 셈이다. 감정을 동반한 삶의 행위 속에서 사유하거나 그렇지 않은 수많은 감정의 메시지들을 그는 화자가 되어 색과 도구를 이용한 행위로 표현한 '대화의 창'을 통하여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응답해줄 청자를 숙연히 기다린다. 기다림의 과정 또한 화자의 역할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4
신민철_존재하다._캔버스에 유채_29.7×25cm_2014

그의 대화의 창 속 등장하는 수많은 감정들에 따라 무의식중에 선택되어진 그만의 감정이 오롯이 묻어나는 색과 감정선들의 아우라는 '주체로서의 자아'를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내가 숨 쉬고 있으며 존재한다고 증명하게끔 하는 것이다. 화자는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의 이야기들을 현란하거나 혹은 덤덤하게 표현하고 청자인 우리들의 가슴 속에 Visitor가 되어 노크한다. 이에 모른척하거나 문을 열고 대화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은 눈을 감고 귀와 입을 꾹 닫고 꼭꼭 숨어 지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만족감을 원한다면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 1902~1987)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진실로 듣게 되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 뒤에는 질서 정연한 심리적인 규칙들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규칙들은 우주에서 전반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똑같은 질서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듣는다는 만족감과 자신이 우주적인 진리와 만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만족감 모두를 얻게 된다." 신민철 그는 대화의 창 속에서 조심스럽지만 만족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 우사라

Vol.20140317b | 신민철展 / SHINMINCHEOL / 申旼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