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면 Backside

손은아展 / SONYUNA / 孫銀娥 / painting   2014_0319 ▶︎ 2014_0325

손은아_Backside 13-9147_캔버스에 유채_80×116cm_2013

초대일시 / 2014_03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낡은 면-Backside ● 버려지고 쓸모없는 물건에서도 나름의 미를 찾아내는 게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진 지금, 길을 가다 또는 여행을 하다 찾아보는 낡은 면들은 언제나 사진기 속에 차곡차곡 담아둔다. 낡은 면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풍경에서 비롯된다. 얼마만큼을 싣고 달렸는지 알 길 없이 수없이 부딪히고 일그러진 금속판의 표면엔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 갖가지 재미나 형태를 보이는 면으로 이루어진 화물차의 모습을 말하기도 하고, 수 없이 많은 짐을 날랐을 천막 달린 트럭의 엉긴 밧줄과 그로 인해 생긴 닳고 닳은 천막의 주름들, 또 비바람에 풍화되어 표면이 마모된 나무와 녹슨 금속 슬레이트로 덮인 담벼락이나 좁은 골목의 구석진 자리들, 해가 들지 않아 축축한 땅 냄새나는 그늘 속 풍경들, 폐차장에 버려져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누운 부서지고 분해된 차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며, 이들은 항상 나의 이목을 끄는 작품소재들이다.

손은아_Backside 14-3079_캔버스에 유채_116×80cm_2014
손은아_Backside 12-9560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2

이러한 소재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가져 온 믿음, 즉 화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이나 형상의 가치를 찾아내어 아름다운 형태와 구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건대 나의 낡은 면들은 그 것 안에 마치 효용을 다해 점점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지친표정과 인생의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삼킨 채 주름진 사람의 얼굴과 닮아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이라는 것은 언제나 작가의 경험과 그에서 얻어진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 인생에 대한 태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저 젊기만 하던 때를 벗어나 인간이 피해갈수 없는 생로병사에 대한 슬픔과 고통을 접하면서, 비로소 생명의 근원에 대해 점점 의문을 두게 되기도 하며,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고 보니, 인생은 기본적으로 슬프고 허망하며, 노년은 무기력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리던 차의 버려진 모습이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형태들이 사연 많은 세월을 견뎌 온 노인의 모습처럼 다가왔다는 것이다. 과거엔 그저 물성을 직접 묘사하는 기술적 향상에 대한 재미와 사실적 표현의 회화에서도 기본적인 조형미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도구로서 선택된 소재에 불과하였는지 모른다.

손은아_Backside 12-G_캔버스에 유채_60×100cm_2012
손은아_Backside 14-tb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4

Backside 라는 것은 이러한 사물들의 뒷모습, 뒷면도 되지만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노인의 초상이나 뒤안길 같은, 초라하지만 결코 추하지 않은 뒷모습 같은 느낌을 담아내는 것을 말하며, 우리가 흔히 눈 여겨 보지 않고 지나치는 사물이나 풍경의 그늘, 사람의 절제되고 감춰진 마음들을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단어다. 뒷모습이지만 앞모습처럼 얼굴의 주름이나 감춰진 표정을 느낄 수 있고, 앞모습이지만 전혀 생각이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이면을 가진, 마치 낡은 차의 모습이나 표면들이 사람의 다양성만큼이나 각기 다른 초상화와 같은 느낌으로 보여 지길 바란다. 세밀한 녹의 모양이나 형태들은 잔 붓으로 일일이 그리고, 여기저기 긁히고 벗겨진 페인트 색이나 오염되어 묻은 때를 일일이 묘사하려는 것은 객관적인 실재성을 배가하려는 게 아니라, 마치 사람의 얼굴에서 보여 지는 표정을 묘사하듯이 낡고 초라한 사물이나 풍경의 단면에서도 마치 생명체인양 감정을 가진 것처럼 깊은 무게감이 표현되길 바라는 것이다. 녹의 모양이 하나도 같은 형태가 없는 것처럼 대량생산으로 만들어 내어 같은 차종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낡은 차들은 차번호라는 행정적 주체성 말고도 새로이 생겨난 녹의 형태와 다양한 일그러짐을 통해 나름의 고유성을 지니게 된다.

손은아_Backside 12-8654_캔버스에 유채_90×140cm_2012
손은아_Backside 10-P_캔버스에 유채_90×140cm_2010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붓을 든 모든 날마다 새로운 기분과 감정과 생각을 가지게 되어 마치 일기를 쓰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완성되기까지 떠오르는 수 만 가지 생각의 찌꺼기들, 일상으로 비롯된 갈등으로 인한 감정의 묵은 때를 그림에다 묻히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 탓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고행과 같은 시간이 실제 사진이 갖는 사실성보다 좀 더 회화답고, 깊어지는 톤의 느낌으로 만들어져 갈 때 묘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만족감이 다시 또 다른 낡은 면을 찾아 새로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동기가 되곤 한다. 사실적인 묘사를 하다고 해서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 추구하는 극단의 객관화와 실물인가 보여 지는 착시에서 오는 허무함을 추구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실적 묘사도 주관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 사진의 색이 가지는 형형색색의 화려함 대신 빛바랜 사진과 같은 채도 낮은 단색과 중간 톤을 많이 사용하여 분위기 있는 양감을 강조하고, 디지털 프린트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실사에 가까운 느낌보다는 좀 더 만들어진 회화에 가까운 느낌이 더해지길 바래왔다. ● 대학 시절부터 동기나 은사님으로부터 사진을 찍어 프린트하면 될 것을 뭐하려 그리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시절만 해도 구상을 하는 이가 거의 없었던 때였으니 들었던 말이련만, 생각해 보건데 그 질문은 직접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수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되물었던 질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미디어와 최첨단 장비들이 미술작품의 도구가 된지 오래고, 다른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수 만 가지 다양한 생각의 개념풀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 때 나에겐 아마도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그림들이 갖고 있는 물성들과 붓질이라는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그림에 대한 묘한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미술가에게 적용되는 과정은 성실함과 우직함이며, 요령을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 미술은 축복이며 선물이다.' 라고 말한 모 평론가님의 글이 반갑게 느껴지고, 선배작가님의 '붓질은 가장 전통적이고 숭고한 회화 표현 방법이다'라고 말한 부분들을 자주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꾸준한 노력으로 완성한 그림이라도 꼭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거나 희대의 명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노력에 대한 가치는 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손은아

Vol.20140319a | 손은아展 / SONYUNA / 孫銀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