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ble Invisible

권오열展 / KWONOYEOL / 權五烈 / photography   2014_0318 ▶︎ 2014_0331

권오열_Estranged Woods-1206_C 프린트_72×105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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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318_화요일_05:00pm

기획 / 2014 5th New Discourse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cyartspace.org

사물을 보는 시각적 한계 지점에서의 시각적 확장에 대하여 ● 권오열 작가의 사진작업에는 세계에 대한 그의 시각이 담겨 있다. 단순히 어느 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세계를 보는 시각 방식과 관련하여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을 포착함으로써 이를 통하여 작가의 작업방식과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러한 대상 즉 자신의 시각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하여 노력해 왔고 지금도 자연 속의 여러 장소를 찾아 다니기도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작업을 '발견의 증명'이라고 언급 하기도 하였다. 이는 사진작업을 하기 이전에 작가는 무엇인가를 미리 발견하듯 먼저 마주치게 되고 그것을 자연의 사물에서 찾아내어 그 사물로 증명하듯이 담아내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권오열 작가의 관심이 사회 내의 제도와 질서와 같은 영역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그대로 자연의 사물로부터 그 구조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음을 최근의 사진작업들 가운데 발견하게 된다.

권오열_Estranged Woods-1310_C 프린트_76.8×139.2cm_2013

작가가 다루고 있는 사물들은 얼룩, 꽃잎, 나뭇잎 혹은 물질의 결정과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불규칙함 속에 차이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균질한 질서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자연 속 사물들이다. 그래서 작가가 포착해 낸 화면에서는 그 사물들 하나하나가 다른 모양들이지만 무리를 지어 있는 듯한 형상에서 일정한 규칙적인 패턴들이 연속되는 듯하여 일종의 시스템과 같은 질서마저 느끼게 됨을 알 수 있다.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1미터 남짓한 면적의 사진 안에 담겨진 사물의 형상은 화면 크기가 더 커지거나 작아지더라도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불규칙하면서도 어떠한 규칙성 하에 모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로 인하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영역은 사진이라는 프레임의 한계의 안쪽임에도 프레임 밖의 영역까지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부분이 전체의 패턴을 무한 반복하게 된다는 프렉탈(fractal)적 구조가 자연 속에 담겨 있음을 작가가 발견하게 되면서 여기에 빗대어 자신의 작가적 관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적인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작가는 혼돈과 질서가 같은 구조일 수 있고,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구조가 그러하며,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같은 구조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시각적, 인식적 한계에 대해 작가적 시각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권오열_Membrane-1202_C 프린트_97.5×177.6cm_2012

인간의 가시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은 사실 일부분이다. 그리고 인간은 시각적 정보를 근거로 하여 인식하고 판단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이면 구조를 보면 더 넓고, 더 많은 세계를 볼 수 있음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을 보는 이로 하여금 규칙적이거나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자연 속 사물의 일부분에서 보이게 되는 패턴과 같은 시각적 구조에 주목하게 만들면서 단순히 사물이라는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시각의 확장과 인식의 확장에 대한 관점을 사진이라는 매체 속에 수렴시켜 보여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본다'라는 행위는 단순히 시각적 자극을 인간의 외부로부터 인간의 내부로 전달하는 과정에 불과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주체로서 타자를 인식하는 행위이자 사유의 발판이 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시각적 지평, 즉 세계관을 형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라고 할 때 시각적 정보의 한계는 세계를 보는 시각의 한계로 연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작업에서 이 시각의 한계를 사진에서의 프레임의 한계와 겹쳐 보이게 함으로써 프레임 밖을 볼 수 있는 시각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권오열_Membrane-1210_C 프린트_76.8×115.2cm_2012

인간의 가시 영역이 한계적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곧바로 인식의 한계로 연결 된다는 점에서 사물들의 표피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의 구조를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가운데 프레임들을 화면의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프레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시각과 인식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태도가 사물이라는 물리적 세계를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를 보는 시각으로 이행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존재적 좌표에서 볼 때 인간은 사물이나 사회로부터 그 정보의 일부분만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한계적 위치에 있기에 인간이 세계를 보다 넓게 볼 수 있는 방법은 그 정보의 표피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구조들을 보는 방법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물 자체 보다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차이와 반복에 주목하면서 그 패턴의 연쇄를 바라보는 방법에 주목하였던 것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패턴과 같이 반복되는 환영적 이미지로 인하여 시각적 자극에 둔감해지는 지점에서 적절한 프레이밍을 시도하여 이미지 군집의 외곽에 경계를 만들어 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물 자체의 환영적 이미지에 시각이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이미지들의 구조 자체에 머물러 있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잎사귀나 얼룩의 개별 형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구조의 연장과 확장이라는 작가적 시각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절묘한 시각적 장치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오열_Visible/Invisible-1219_C 프린트_177.6×118.4cm_2012

권오열 작가의 작업에서는 개별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가 모여서 나열된 구조 속에서 그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 노력들을 볼 수 있으며 그 이미지들이 반복되고 있는 듯 한 패턴을 어느 범주에서 프레이밍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들을 작업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가 보는 영역의 범주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작가는 그가 작업에서 다루고 있는 사물들이 일상 가운데 사소해 보이는 사물들 일 수 있지만 그 이미지가 갖는 시각적 한계를 넘어 사물들 사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는 가운데 사물 이면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음에 착안하여 사물 자체보다는 사물을 보는 방법에 대한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미지의 시각적 구조와 그 구조의 자기유사성을 갖게 되는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세계에 이르기까지 보는 이의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목하였다는 것이며, 이때 그의 작업이 가시적 범주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주고 있다는 것은 평가할 만한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 이승훈

권오열_Visible/Invisible-1223_C 프린트_115×76.8cm_2012

내가 담아낸 숲은 어떠한 지점에 대한 부분 이미지이다. 숲을 온전히 담아 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숲에 대해 얘기할 수가 없다. 숲을 알 수 없기에 숲을 향한 나의 욕망은 나를 좀 더 깊숙한 숲으로 이끈다. 그렇게 나는 새롭고 낯선 숲을 찾아 헤맨다. 내가 담은 숲은 어쩌면 당신이 기대한 숲의 전경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담아낸 숲의 전경은 보여 지는 이미지처럼 아름답지도 숲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숲'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 권오열

Vol.20140328b | 권오열展 / KWONOYEOL / 權五烈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