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SCENES_열린장면

원선경展 / WONSUNKYUNG / 元旋瓊 / painting   2014_0401 ▶︎ 2014_0407

원선경_빛 2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3

초대일시 / 2014_0401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www.cyartgallery.com

길을 잃은 이름과 자유로운 이미지의 세계 사이에서 ● 작가 원선경의 작업은 사물의 이름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가 과거에 했던 작업 중에는 신발이나 장갑, 숟가락과 같은 대상물을 사람이 초상사진을 찍듯이 정면이나 측면 방향으로 반듯하게 그려낸 드로잉 작업이 있다. 그 작업들은 마치 신분증에 이름과 함께 프로필 사진을 넣는 것처럼 사물의 이름과 이미지의 관계를 그려낸 것이었다. 이 당시 개별 이미지들은 개별 제목들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동어 반복과 같은 이미지와 제목 사이의 관계 설정은 오히려 평상시 늘 불러왔던 사물의 이름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그러나 집중적으로 반복시키고 있었기에 여기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도록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원선경_흐르는 것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3
원선경_거대한 조각 1_캔버스에 유채_70×150cm_2011
원선경_기억_캔버스에 유채_150×70cm_2012

이러한 과거 작업들과 비교해보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들은 사물의 이름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관심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물의 이름 혹은 사물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선경 작가의 최근 작업들에서는 과거 작업들과는 달리 작품 속 이미지들만으로는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어렵다. 간혹 무엇을 그린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는 있지만 사물의 전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일부를 그려낸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을 보아도 그려낸 대상이 무엇인지 좀처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제목을 보고 그의 작업을 읽어가게 되면 제목이라는 일종의 안내서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과거 작업들에서의 제목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의 제목들은 그렇게 친절하고 명확하게 길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화 작품에서 제목으로부터 혹은 이미지 형상적 유사성을 가지고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쉽게 판단하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는 사실 살펴봐야 할 지점들이 많이 있다. 일상 속의 사물을 관찰하는 경우에도 사물의 한 단면만을 보고 무엇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게 된다.

원선경_물과 별 연작_캔버스에 유채_각 지름 30cm_2014
원선경_껍질(skin)_캔버스에 유채_150×70cm_2014

인간의 눈은 언제나 사물의 한 측면 밖에 관찰할 수 없다. 물론 방향을 바꿔가며 또 다른 측면들을 관찰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물의 모든 측면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멀리서 사물의 전체의 형태를 볼 때와 사물에 근접하여 표면이나 세부 구조를 보게 될 때 관찰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인식의 내용도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눈은 기계장치 없이 사물을 투시하거나 사물의 내부를 볼 수는 없으며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해상도 이상의 범주 즉 분자나 원자 혹은 그 이상의 미세구조는 당연히 볼 수 없다.● 그런데 원선경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시점의 전환만을 가지고 이러한 인간의 시각적 인식의 한계로부터 시작하여 무엇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이름을 부르는 행위의 한계 지점에 대한 문제를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한계지점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사실 일상 속 사물의 이름은 자신이 이름 지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타자들이 정한 이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사물의 기능이나 특징의 일부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도 많지만 임의적일 경우도 많다. 어떠한 경우이든 그 이름은 사물을 보는 통로가 되고 습관적으로 그 통로를 통해서만 그 사물에 대해 보고 인식하게 되기 쉽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선입견 없이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름 지어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인간이 그만큼 사물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퇴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원선경_빛 1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1

원선경 작가가 그의 최근작들에서 작품의 이미지와 제목 사이에서 길을 잃도록 만드는 것은 아마도 기표와 기의 사이의 지시적 시각으로부터의 습관적인 인식 방식에서 벗어나 사물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하나의 과정이자 작가적 대안 제시로 판단된다. 작가는 그의 작업을 명확한 어느 사물을 지시하기 보다는 이중적 혹은 다원적 모호함 속에 두어 제목이나 설명과 같은 외부의 지시체계와는 달리 이미지 스스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관객과 작가 사이에 그리고 작가 스스로의 인식체계 안에서 언어적 연결 고리와 지시적 해석의 억압을 벗어나 열려있는 자율적 이미지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그의 작업 과정에는 아마도 모티브가 되었을 만한 사물들도 있었겠으나 그 사물들과는 상관없이 작품 속 이미지 자체에서 재창조된 형상들로 인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이름들이 작품 제목으로 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이며 결국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난해한 제목들로 인하여 이름 없이 작품을 보거나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미궁과 같은 상황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 이승훈

Vol.20140402h | 원선경展 / WONSUNKYUNG / 元旋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