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호展 / GIMHUIHO / 金希昊 / painting   2014_0404 ▶︎ 2014_0410 / 월요일 휴관

김희호_vitality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4

초대일시 / 2014_0404_금요일_04:44pm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두들 GALLERY DOODLE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2가 14-59번지 2층(문래우체국 옆) Tel. +82.10.4940.3035 cafe.naver.com/gallerydoodle facebook.com/GalleryDudl dudl.kr

'빛'이 없다. ● 그림에 '빛'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화면에서 형(形)과 색(色)을 상상 할 수 있겠는가? 김희호작가의 작품을 보면 화면에서 존재해야 할 최소한의 빛마저 없애려 노력한 흔적들이 화면을 뒤덮고 있다. 화면 깊숙이 강한 색채들을 타임캡슐을 묻어버리듯 그곳에 깊이 파묻고 강한 느낌의 색채들로 뒤 덮어 버린다. 그런데 거기엔 풍경이라 느낄 수 있는 낯익은 형(形)이 존재하고 물감안료들이 짓이겨져 엉겨진 채로 본연의 속성을 억제시킨 색(色)들이 감지된다. 색(色)을 얹고 얹으며 다시 원래대로의 상태로 회귀(回歸)하려는 붓질이 그대로 시야에 노출된다. 때로는 화면에서 빛처럼 환한 원색들이 몇 개의 점으로 압축되어 강열함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끝'과 '시작'의 '경계'를 알리는 기호처럼 인지된다. 작가의 말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이미 그 시작은 진행형이라는 신호를 알리듯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시작점이 어디인지 끝점이 어디인지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 그 현실적인 경계를 무너뜨리고 '순환'되어야할 새로운 시작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소리쳐 알리는 듯이 보인다. 어떤 이들이 경계를 두려워하든 안하든 또는 그 끝을 인식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새로움의 시작은 늘 진행형임을 이야기 하고 있고 화면에서 '빛'을 없애는 과정들은 '빛'을 재생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준비 과정이라는 것이다. '완전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보면 순환되는 구조, 소멸과 생성의 이치를 보게 되는데 작가는 작업을 빛으로 표현되어지는 색을 '지우기'로 시작하며 최소한의 빛을 허용하여 사각의 화면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작가는 내면의 깊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현실적 경계의 허상들을 지워내고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은 빛을 찾아가는 자기만의 보물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희호_Lavender 1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2
김희호_Lavender 2_캔버스에 유채_105×105cm_2012
김희호_Lavender 3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3

김희호작가의 첫 개인전의 가능성과 모티브가 된 작품들은 2012년에 제작된 'Lavender' 시리즈였고 이 작업들을 통해서 작가 자신의 색과 작업의 목적을 찾기 위한 여행의 출발지가 되었다. 'Lavender1'과 'Lavender2'는 색조와 구도에서 대비를 이루는 좋은 예인데 Lavender1에서 안정적인 구도와 강열한 색조를 대비시켜 화면의 질서를 유지했다면 Lavender2에서는 청색조의 모노톤과 불안정한 사선구도, 그리고 포인트 색조로 화면의 균형을 잡았다. 이 그림들은 형상은 분명했지만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보였고 이후에 나올 작업들을 잉태하는 모태가 되었다고 하기에 충분한 작가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서 작가 자신은 사회인에서 작가로의 전이를 예고했고 이미 작가로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이후에 나오는 작품들의 진화를 잠시 살펴보면 'insomnia' 'tune'(2013)에선 작가에게 내재되어 있던 회화성이 극대화 되고 형(形)을 완전히 해체하기에 이른다. 2014년으로 넘어오면서 작가는 새로운 형(形)과 색(色)을 화면에 드러내게 되는데 2012년의 작업보다 한 단계 진화된 회화적 적극성을 느낄 수 있다. 'vitality', 'Being', 'through or to', 'Flows' 등의 제목에서 보듯이 단어가 아닌 형용사와 동사를 사용해 작가의 상상력의 범주가 넓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희호_insomnia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3

최근에 들어 첫 개인전을 준비하는 김희호작가는 '4'라는 숫자에 집중하고 있다. 필연인지 전시 일정이 4월 4일로 잡혔고 '4'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전시타이틀로 "사"를 등장시켰다. 숫자 '4'를 한글 '사'로 표기함으로 다의적인 해석을 유도하고 '작품 좀 사!!!'라는 위트 있는 상상까지 가능한 타이틀은 작가의 에너지만큼 강해 보인다. 동서양에서 이 '4'라는 숫자에 대한 해석과 철학은 다양한데 이 전시에서의 '4'는 ' reload ' 혹은 'recycle'라는 의미로 '사'라는 기호는 '이미 새로움이 시작 되었다'로 해석 가능하다. 김희호작가의 여러 작품을 보면 '빛'을 다루는 방식에서의 극과 극을 이루는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연상된다. 바로크 시대의 빛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표현했던 카라바조의 그림의 특징과 대조를 이루며 당시에 성스럽게 다루었던 기독교의 성인들을 리얼한 표현을 통해 처절했던 현실을 드러냈던 방식과도 대칭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카라바조와는 역으로 처절한 현실세계를 지우기에 몰입하고 이미지를 성역화 하고 있다. '김희호'의 눈을 통해서 전혀 다른 세상의 풍경과 성스러움(원시적 상태의 공간?)으로 재생되어진다. 약 400년전의 카라바조가 보여주었던 이상을 처절한 현실로 환원시켰던 것과 대비를 이루는 지점이다. 성인들을 현실화하고 현실을 성역화 하는 작업은 시공을 초월해 같은 접점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김희호작가는 예전의 카라바조처럼 강한 에너지로 현대인들의 시각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김희호_tune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13

'죽음은 시작이고 시작은 끝이다 / 이 모든 것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의식하지 못했을 뿐. / 자각하지 못했을 뿐. / 나는 매순간 죽는다 / 나는 매순간 태어난다 / 한계는 없다 / 그 끝도 없다' (작가노트에서)

김희호_#note1_캔버스에 유채_45×38cm_2012

작가의 이런 표현에서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며 하루하루를 무엇을 향해서 가는 것인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반복을 느낄 수 있다. 이미 그 해답은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음까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고민을 인식함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붙들고 있는 줄을 놓았을 때 새로운 줄을 잡을 수 있다는 아주 쉬운 원리를 알면서도 간과하며 치열한 시대의 흐름에 제 몸을 맡겨버리고 만다. 적어도 동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작가는 이런 흐름을 거부하고 있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차단하기 시작했고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고 작지만 스스로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빛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작가의 여정의 이미 시작 되었고 한계는 없으며 그 끝도 없다. 한 작가의 3년에 걸친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우리들은 분명히 '행운아'들이다. 작품 한개 한개 작가의 고민과 에너지가 녹아 있음에도 글로 다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김희호작가의 첫 개인전 이후의 새로운 작업들을 기대하는 즐거움으로 위안삼고 부족한 글을 마친다. ■ 유지환

Vol.20140406c | 김희호展 / GIMHUIHO / 金希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