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순간들 Moments of Being

양혜령展 / YANGHYERYUNG / 楊惠玲 / painting.installation   2014_0430 ▶︎ 2014_0525

양혜령_Travel across the continent. U.S.A_발견된 오브제들_가변설치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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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주말,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양혜령의 "틈"의 재현으로서의 풍경화 ● 서양의 풍경화는 실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했지만, 동양에서의 산수화는 이와 완전히 다른 목적과 방향을 지녀왔다. 동양의 산수화는 산과 물로 대표되는 자연을 통해 도가 사상과 유가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이상적 메타포였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심지어 풍경(風景)이라는 어휘조차, 벌레(虫)와 같은 미물들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바람과 볕(景)을 통해 파악되는 정경을 의미한다. 양혜령 작가는 이러한 동양의 비실재적 관념 산수와 서구의 물질적 풍경의 사이를 오가며, 공간과 그 공간에 대한 기억 혹은 사고의 "틈"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양혜령 작가의 풍경들은 기존의 문화나 철학이 사유할 수 없는 공간을 드러내며, 이 공간은 서구의 이분법적 대비 구조에서는 의미 체계로 재현 불가능한 "제3의 공간"이다. 서구에서는 전통 철학이 "낯선 것을 친밀하게 길들이는" 작업을 목표로 삼고 전통 회화가 "낯선 외부 자연을 친밀하게 감정이입하는" 재현이었다면, 양혜령의 풍경화는 마치 데리다가 "친밀한 것이 이미 낯선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친밀한 자연의 기억으로부터 낯설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혜령은 풍경화를 통해 재현할 수 없는 빈 공간을 재현하며 장소의 문제는 곧 인간과 자연 모두의 존재 문제를 환기시킨다.

양혜령_Somewhere_패널에 혼합재료_24×36cm_2013
양혜령_붉은 호수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4

일찍이 파울 클레는「정원의 기억」과 같은 작업에서 공간에 대한 불완전하고 파편화된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장소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하기도 했다. 풍경의 소재들은 실제의 공간 속에 위치한 물질적 대상이지만, 그 공간은 존재가 시간의 차이를 통해 이동하고 벗어날 때 기억 속에 위치되며 이미 실제 공간과의 틈을 드러낸다. 풍경화는 바로 이렇게 실제로 재현할 수 없는 빈 공간 혹은 틈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은 항상 유동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사진으로 찍은 풍경도 시간이 지나면 실제의 모습과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의 문화 속에서 파악되는 자연의 재현은 항상 불가능하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풍경화는 항상 자연과 문화 사이의 끝없는 심연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틈은 의미로 이해되거나 재현될 수 없는 존재의 문제를 곧바로 불러온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가의 예술적 구상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양혜령_Dotonbori river-Osaka_캔버스에 유채_146×97cm_2014
양혜령_Lyon and no where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24cm_2014

양혜령은 실제로 체험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풍경을 반복하여 회화적으로 재구성한다.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은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수치화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선원근법적인 그리드를 통해 화면이 구성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채워진 것들은 작가가 체험한 뒤에 남아있는 기억의 잔상들을 담아내는 회화적 형상들이다. 따라서 양혜령의 풍경화는 실제로 재현된 풍경이 아니라 일종의 창조적 공간이 되며, 그 사이의 틈을 드러내는 새로운 "빈" 공간이 된다. 그 틈을 더욱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오브제 작업인데, 평면의 풍경화 주위에 배치되는 오브제들은 작가가 직접 방문했던 곳에서 수집해온 실제 사물들로서, 장소에 대한 기억과 회화의 창조적 작업 사이를 매개한다. 즉 자연과 문화 사이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혜령의 반복되는 풍경화는 장소 혹은 공간에 대한 사로잡힘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내용이나 의미로 파악될 수 없는 존재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양혜령_Where we going?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80cm_2014
양혜령_Always be with you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89.4cm_2014

양혜령에게 있어서 풍경의 반복된 재현 역시 그 풍경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음을 나타내 보이며 고유하지 않은 그 장소의 "없음"을 드러낸다.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반복한다"고 했던 프로이트의 말처럼, 반복되는 풍경화 작업을 통해 의미차원의 해석을 중지시키고 존재 차원의 새로운 만남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詩)가 명명할 수 없는 것을 명명하는 것처럼, 양혜령의 풍경은 자연과 문화 사이의 재현될 수 없는 빈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 장원

Vol.20140429h | 양혜령展 / YANGHYERYUNG / 楊惠玲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