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ive Story-the wild SWAN lake

이연숙展 / YEON LEE / 李蓮淑 / installation   2014_0503 ▶ 2014_0518 / 월요일 휴관

이연숙_Vanished landscape with 5 steps distance_the wild SWAN lake_ 비닐봉지, 철 프레임, 조명_180×120×30cm×3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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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 홈페이지_www.yeon-lee.com

초대일시 / 2014_0510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헤이리 ART FACTORY Heyri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15(법흥리 1652-134번지) Tel. +82.31.957.1054 www.artfactory4u.com www.heyri.net

기억의 에코 - 일시적인 것의 야영 - 비닐 ● 산업 사회는 덧없음으로 채워진다. 도심 테러가 벌어졌던 1990년대 중반 파리에서는 세심히 디자인 된 견고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쓰레기통이 사라졌다. 파리적 분위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선택한 것은 바로 녹색 비닐 봉지였다. 근대 도시의 원형이라 자부하던 파리의 오만함도 갑작스런 도발로 인해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자존심을 대신해 파리는 한동안 초라한 비닐 봉지가 부질 없이 흐느적거리고 있는 도시가 되었고 어쩌면 반투명한 비닐봉지는 이후 반복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테러의 전조와 다름 없었다. 견고함이 일시적인 소모품으로 대체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위험 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 '반투명성'이다. 공공기관 내부를 방문하거나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동시에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자신의 일부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덕분에 일회용품은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적으로 쓸모 있는 사물로 남겨질 수 있게 되었다. 이연숙의 작업에서 가장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바로 비닐 봉지, 일회용 물건과 같은 물질에 있다. 일회용품은 말 그대로 가볍고 쉽게 버릴 수 있기에 편리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이연숙_Vanished landscape_detached house_비닐봉지, 스테인리스 프레임, 조명_가변설치_2014

조각 ● 그러나 만약 이 일회용품이 기억을 갖는 특별한 대상 혹은 물질이라면 어떨까? 이연숙은 버려질 운명에 처해진 비닐 봉지를 자신의 기억과 연결지어 작업의 주요한 재료이자 소재로 삼는다. 더 나아가 사유를 위한 '물질'의 가능성까지 모색한다. 그의 작업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기억'이다. 주로 어머니와 연결된 이 기억은 작업의 정서적 측면을 아우른다. 다른 하나는 '물질'이다. 조각을 전공한 이연숙에게 물질을 통한 형상화란 매우 익숙한 사유와 행위일 것이다. 고전주의 조각이 추구했던 견고함과 비시간성(기념비적 시간성)과 달리 시간, 공간, 중력의 힘을 수용하여 하나의 조각이 곧 유기적인 삶의 여정일 수 있다는 새로운 조각으로의 이행도 이미 익숙한 역사의 페이지가 되어 접힌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조각과 물질, 시간 그리고 공간과의 경쟁적 태도에서 수용적 태도로의 이행이 근대 이전 견고함의 시대에서 근대 이후 유동적인 시대로 이행한 것은 질서, 체제, 가치 등이 끊임없이 액화되거나 무게를 줄이는 경향이 중요해지는 것과 크고 작은 연관성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연숙의 가벼운 조각, 일회적 조형작업은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는 있는 것일까? 그리고 반 세기 전 일어난 가벼운 조각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기억-이미지 ● 우선 가볍고 일회적인 재료를 사용하게 된 것은 고전주의 조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유학 시절 어머니의 기억을 환기시켜준 사물이 바로 비닐 봉지였다는 점이다. 비닐 봉지는 물건들을 담는 기능을 가진 사물이 아닌 어머니와 자신 사이의 기억을 표상하는 사물이라 부를 수 있다. 앙리 베르그손은 물질을 이미지의 총체로 보았다. 여기서 이미지는 단순히 보이는 대상을 일컫는 게 아니라 가시적인 것이자 관념을 담고 있는 물질로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물질은「이미지들」의 총체이다. 관념론자가 표상이라고 부르는 것 이상의, 그리고 실재론자가 사물이라 부른 것보다는 덜한 어떤 존재-즉「사물」과「표상」사이의 중간 길에 위치한 존재-이다." (앙리 베르그송,『물질과 기억』, 아카넷, 22쪽)

이연숙_Hidden-scape_비닐, 알루미늄 봉, 비즈 레이스_가변설치_2014

시간 ● 일시적인 것이란, 지속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연숙이 비닐 봉지에서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 것을 계기로 그의 작업 세계는 이전과 이후로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작가가 탄생과 함께 버려질 운명인 이 사물을 이용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연결시키면서부터 하찮은 물질인 플라스틱 백은 창작의 첫번째 질료이자 다양체(multiple)로 변용되거나 진화된다. 작가는 비닐 봉지를 하나의 고치로 삼아 그것으로부터 실을 뽑아 직조를 한다. 이 기억의 직조물들은 전시 기간 동안 사회적 조건 바깥의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데, 이렇듯 사건이 된 하찮은 것들의 퍼레이드를 '일시적인 것들의 야영'이라 부르고 싶다. 이연숙이 건드리는 물화된 기억은 거대한 뿌리를 심어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기념비적 조형물이 아닌 일시적으로 특정한 공간 안에서 일정 기간을 머물다, 혹은 그 안에 잠시 기생하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보편적 표상이 아닌 시장에서 장을 보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비닐 봉지를 들고 장을 보는 소박한 어머니의 모습에 더 가깝다.

이연숙_Mother and Her mother_Castle in the sky 14_비닐봉지, 스테인리스 프레임, 조명_가변설치_2014

여성적 기억의 위장술 - 기억 ●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학습에 의해 생성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안드로이드라면? 어머니, 가족, 유년의 기억은 마치 영화『블레이드러너』에 등장하는 조작된 기억이 내장된 복제인간과 같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려 한 것은 인류의 종말이나 기계와 인간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 진정한 인간의 가치에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기계화된 기억, 표준화된 삶이라는 허상이 결국 고유한 나만의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 혹은 타인으로 위장된 삶을 좇는 꼴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베르그손은 단순 기억(memoire)과 감성적인 기억(souvenir)을 구별한다. 감성적 기억은 미래를 향한 목적을 띠지 않은 채 사건의 내용, 예를 들면 시간, 날씨, 장소 등을 외면하지 않는다. 반면 단순 기억은 오로지 앞을 향해 달려간다. 그것은 행동을 위한 기계적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연숙에게 비닐 봉지,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은 말 그대로 물질과 기억이 교차하는 첫번째 미디엄이다. 작가가 주목한 비닐 봉지와 달리 플라스틱이란 재료는 매우 견고한 합성물질이다. 그러나 이연숙이 다루는 비닐 봉지와 플라스틱과는 다소 차이를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비닐 봉지, 혹은 통상적으로 말하는 비닐이란 재료가 그의 작업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초기의 비닐 봉지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표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의미보다 작업의 주재료로 바뀌었고 더 나아가「Small is Beautiful」에서는 플라스틱 에센스(쌀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덩어리로 농축된 비닐의 재료)를 설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Vanished Landscape-your place」(2013)의 경우,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집'-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이 비닐 봉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이 불안정한 장면을 거대한 두 개의 조명기가 비추고 있고 이 모든 상황 주변은 비닐 막이 쳐져있고 바닥에는 모래알처럼 플라스틱 에센스가 깔려 있다. 관객은 비닐 막이 쳐진 공간 안, 플라스틱 에센스 위에 서서 위태로운 집을 관찰한다.

이연숙_사소한 것은 또는작은 것은_네온_가변설치_2014

여성 ● 이연숙의 작업은 균형과 불균형 사이에 존재한다. 비닐이란 나약하지만 쉽게 부패하지 않는 인공 재료로 이루어진 설치들 주변에는「Women's Dream, Voice of Voice, Shadow of Father」(2013)와 같은 작업들이 배치되어 있다. 불안정한 상태와 장식적인 오브제들 간의 배치는 기억에 대한 아련함과 더불어 여성적 욕망의 베일을 드리운다. 자크 데리다는 니체를 기반으로 여성적 글쓰기, 여성과 주체에 대한 담론을 생산한 바 있다. 그는 여성의 글쓰기는 남성과 대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여성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여성적 표피들, 그 화려한 위장의 기술을 타자의 존재와 다르지 않으며 여성의 위장은 전형에 반한 것이자 긍정이라 역설한다: "예술, 문체, 진리에 관한 문제들은 여성에 관한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공통된 논지의 단순화가 '여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단시킨다. 여성이나 여성의 여성다움이나 여성의 성본능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미 알려진 개념이나 지식의 방식으로는 이들을 찾아낼 수 없다, 설사 그들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 해도." (자크 데리다,『에쁘롱-니체의 문체들』, 동문선, 63쪽)

이연숙_Vanished landscape with 5 steps distance_the wild SWAN lake_ 비닐봉지, 철 프레임, 조명_180×120×30cm_2014

실천 ● 기억은 시간의 순서대로, 논리의 구조대로 우리의 뇌 속에 저장되지 않는다. 이처럼 파편화된 기억들은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배치되어 기억 저장소의 상태를 제시한다. 기억이란 이미지들이 고정되고 배열되는 일종의 위치잡기 혹은 움직임들이라 여겼다. 기억-이미지들의 배치/움직임은 신체의 반응을 만들어 낸다. 기억을 되찾고 이 이미지들을 재배치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사뭇 장식적 배치처럼 보이는 파편들, 집적들은 기억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 듯하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현재에 축적된 과거의 노력들 전체에 대한 이러한 의식도 역시 기억이다." (앙리 베르그손, 같은 책, 123쪽) 과연 기억이 힘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베르그손은 다시 말한다. 부질없는 행위라도 기억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기억을 되찾으려는 노력이자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왜냐하면 기억은 결국 이러한 이미지들에 의해 현재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기억을 환기시키는 효과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들에게 기억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어머니, 기억, 추억, 회상, 여성, 욕망..., 이연숙에 세계 속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배회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의 배회는 작가의 기억 속으로의 초대때문이 아니라, 기억이란 질서의 바깥으로부터 문턱을 향해서, 그리고 그 안으로 진입하기 위한 (어쩌면) 부질없는 의지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파편들은 공간과 시간을 만나고 관찰자들과 조응하면서 각자가 생산/상상하는 의미들을 찾아갈 것이다. 기억 이미지는 다시 어떤 의미를 생산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의미의 절대성으로 결코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초대한 예술적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이미지가 어떻게 작동되는지일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세계가 더 유혹적이고 위험하길 바란다. ■ 정현

Vol.20140505d | 이연숙展 / YEON LEE / 李蓮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