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이展 / LEEJEANEY / 李眞伊 / painting   2014_0523 ▶ 2014_0601

이진이_For Her_캔버스에 유채_53×40.9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_01:00pm~07:00pm

미광화랑 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701-3번지 Tel. +82.51.758.2247 www.mkart.co.kr

정지된 순간, 현재를 일탈케 하는 ● 일상의 장면이다. 그래서 때로는 연극적인 장면 같다는 인상도 없지 않다. 마치 특정한 한 장면을 포착한 듯 한 것도 그런 연유이다. 느긋하게 소파에 누운 사내 아이, 나이 살이 느껴지는 여자, 혹은 허리베개만 있는 창가의 소파. 전철역의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 도서관 또는 커피숍의 정경이 보인다. 그의 시선이 실내에서 실외로 나갔다 다시 도서관이나 커피숍의 실내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이번 작업은 모두 실내 장면이다. 요즘 일상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진이_For Her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4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보게 된 사내아이는 마주보기에는 부담스럽다. 특별한 자세도 특별한 표정도 없이 그저 일없이 느슨하고 무료한 자세일 뿐 어떤 의미나 상징적인 읽을거리를 주지 않는다. 도리어 보는 이를 마주보는 한 사내 아이의 표정은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한다. 그저 그렇게 있는 것에만 시선을 두게 한다. 잘 그려진, 굳이 그렇게 묘사해야 할 대상이나 어떤 정당성이나 필연성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저 목격하고 지나가게 한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여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시선의 방향이 달라 보는 이가 그녀를 바라보아도 덜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녀의 곳곳을 훑어보아도 민망스럽지 않다. 관음적 시선을 주는 포즈도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보는 것,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에 몰두한 표정이다. 그녀를 훑어보는 시선을 머쓱하게 한다. 느슨하고 무료하다 못해 잠시 장소와 시간을 잊은 듯 한 표정을 읽게 된다. 엄연한 현실장면이 때로 현실이 아닌 어떤 다른 곳에 자신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녀의 시선은 순간 지금, 이곳의 시간과 공간을 놓치게 한다.

이진이_For Some-15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3
이진이_For Some-23_캔버스에 유채_130×162.2cm_2014

책을 읽거나 책상에 엎드린 인물들은 익명적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분장한 듯한 얼굴들은 개인적 표정을 보이지 않고, 그저 일상의 한 사람으로 그곳에 있을 뿐이다. 철저하게 익명의 인물로 거기 있는 것이다. 자신을 보이지 않음으로 화면은 현실적인 구체성을 재현하기보다 은유적 장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창밖으로 강가의 숲과 풀밭과 모래사장이 보이는 도서관 정경은 익숙하기보다 어색하고 어딘가 현실적 구체성이 떨어지고, 창가에 세운 도리아식 기둥들은 장소와 시간을 어느 순간 비현실의 시간대로 옮겨가게 한다. 한순간에 예견치 못한 '무엇', 어떤 것이 드러나는 환상을 보여준다. 개별성이 아닌 무엇, 그들이 아닌 어떤 것으로, 이 시간대가 아닌 어느 시간을 보여준다. 정지의 순간이자 이동의 순간이다. 시간과 공간이 전혀 예견치 못한 상황으로 침투하는 그런 순간적 이동을 보여준다. 소파 위의 쿠션들도 묘사라기보다 거기 있는 것, 어떤 이야기도 배제된 채, 거기 있는 시간을 보이려 한다. 사물이 아니라 시간, 혹은 그곳의 시간성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서사의 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멈춰선 어떤 순간을 보인다는 점에서 대상이나 장소의 묘사라 보기 힘들다. 시간과 무관한 어떤 순간이란 대상에의 시선보다 장소의 일탈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도 그에게 있어서 쿠션에 다르지 않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재로서 소도구가 아니다. 어떤 단절의 순간, 이동, 그것이 환기하거나 생성시키는 '무엇'이다. 그런데 묘사된 인물들의 스타일이 묘하다. 묘사방법의 독특함이랄까 아니면 인물을 읽는 그녀의 시선이라고 할까. 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분장한 듯한 얼굴은 표정이 비슷하고 피부조차 비슷하다.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에 열중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세지만 인물들의 개별성을 읽기 힘들다. 익명성을 가진 인물들이라 그런지 그들의 행위조차 개인적 특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거의 없다.

이진이_For Some-24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4
이진이_For Some-41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4

이런 인상, 화면 전체를 이끌고 있는 그의 방법이랄까 장치는 그의 묘사방법, 채색방법에 주목하게 한다. 인물의 표정을 지우고 매끈하게 만드는 묘사법, 완벽하게 구체적이면서 현실감을 탈거하는 묘사와 채색방법은 인물간의 차이를 없애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익명화하는데 효과적이다. 개별적 얼굴을 배제하고 남은 것은 얼굴이라는 그것 자체이다. 최소한의 형태만 남기고 나머지는 생략한 것이다. 주름도, 피부색도, 남녀 간의 근골의 차이도, 없다. 손 역시 균일한 색상과 묘사로 명암의 흐름을 잡아낸다. 잔잔하고 치밀한 묘사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일한 질감으로 어떤 차이도 보이지 않는다. 주름의 깊이도 각질도 시간의 흔적을 보이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굳은살 없는 곱고 잘 다듬어진 손이다. 발도 그렇다. 입고 있는 옷도 시간이나 제스처를 받아내고, 그것을 담고 있지 않다. 옷 그 자체로 흠 없이 완벽하게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색만 다를 뿐 꼭 같은 재질감을 가진 표면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탁자, 의자, 종이컵, 가방까지, 모두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나무, 플라스틱, 유리와 금속들이 재질감의 차이가 없다. 재질감은 현실적인 묘사에 효과적이다. 그리고 현실을 잘 드러나게 한다. 그의 동일한 재질감으로 묘사된 사물들은 현실의 구체성을 보여주기보다 잠시 머뭇거리게 한다. 탁자위의 신문지나 종잇장, 책장에 문자가 없는 것도 시간대를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배경의 처리도 한 색으로 밀어버린 것이 많다. 현실이라는 구체성은 때로 배경에 의해서 얻게 된다. 그러나 그의 배경을 현실을 부정하거나 배제하려 한 흔적으로 보인다. 그의 배경 처리는 현실의 구체성을 유보시키고 있다.

이진이_For Some-3136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3

이진이의 작품에서 보아낼 수 있는 몇 가지 인상적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을 살펴봤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볼륨만 있고, 재질감이 없는 대상들, 미세한 명암의 차이만 있고 인물의 개별성이 드러나지 않는 방법의 구사는 그의 소재들이나 화면이 현실적인 장면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이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일탈의 순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를 넘어서는 순간으로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무료한 시선을 바라보면서 순간 등장인물 자신이 그런 순간에 있을 법한 일탈의 순간을 같이 공유하게 한다. 어떤 사유도 없이 그저 거기 있는 순간의 만남이다. 이진이의 작품에서 대상이나 상황 재현의 묘사력을 보아내기보다 일탈의 아찔함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닐까?. ■ 강선학

Vol.20140524g | 이진이展 / LEEJEANEY / 李眞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