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 虛心

강순자展 / KANGSOONJA / 康順子 / painting   2014_0604 ▶︎ 2014_0617 / 월요일 휴관

강순자_허심(虛心)_종이에 수채_24×24cm_2014

초대일시 / 2014_06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에이블 파인 아트 엔와이 갤러리 서울 ABLE FINE ART NY GALLERY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1층 Tel. +82.2.546.3057 www.ablefineartny.com

비움의 미학-허심(虛心) ● 섬세하고 노련한, 또한 상큼하고 생기 넘치는 필치로 다듬어진 재현 이미지 너머, 텅 빈 공간 어디선가 힘찬 기운이 엄습하는 그림. 도대체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우라(aura)라고 하기에는 임팩트가 강하다. 문자 그대로 기운이 생동하는 화면, 그것이 바로 강순자의 수채화이다. 그의 그림은 새벽녘의 정기가 서린 정화수(井華水)를 머금은 것일까. 작가의 그림에는 지극정성과 혼신의 정열이 서려있다.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하이퍼리얼의 묘사력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일필휘지의 호방한 운필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어서만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내면과 작품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조율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자신의 가치를 가장 충실히 투영시키기 위한, 즉 조화적이고 심미적인 극치(極致)를 위한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성찰에서 오는 것 말이다. ● 강순자의 수채화는 주옥같은 교과서적 그림들을 뒤로 하고, 2012년을 기점으로 일신된다. '자연과의 대화' 즉 자연 속의 심미적 대상에서 오는 감동을 화폭에 담는 풀스크린 버전의 재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내면이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를 조심스럽게 화폭에 실현하는 개념화, 혹은 추상화가 돋보이는 화면이다. 예나 지금이나 작가의 그림은 수채화의 전형이라 할 만큼 묘사력과 구성 및 색 구현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작업이다. 다만 재현방식이나 구성이 사진적 프레임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보다 다른 새로운 접근과 동기들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결국 '잘 그린 그림'보다는 '자기다운 그림' 혹은 '깊이 있는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결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만의 심미적인 경지와 가치를 펼치기 위한 새로운 세계, 그것이 바로 『허심(虛心)』연작이다.

강순자_허심(虛心)_종이에 수채_24×24cm_2014
강순자_허심(虛心)_한지에 수채_33×41cm_2014
강순자_허심(虛心)_종이에 수채_35×53cm_2013

허심』의 화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무엇보다 주어진 있는 그대로의 현실 혹은 대상에 충실했던 것에서 벗어나, 대상의 해석과 재구성에 강세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보는 바와 같이 허심 연작은 여백이 휑하니 비어 있다. '비움'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작가의 가치와 미의식의 요체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표현방식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허허로운 무념무상의 공간이 우연히 던져진 것은 아닐 것이다. '비움의 미학'은 동시대 문명의 화두이기도 하다. 빠름과 채움을 능사로 여겨온 우리의 문명에 대해 이만큼 강렬한 메시지가 있을까. 물론 '허심'에서의 여백이 단조롭게만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과거에도 여백을 대단히 기묘한 환상과 기운이 번득이는 드라마틱한 적극적 공간으로 연출하곤 했다. 물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수채 특유의 물성적 표현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흡수성이 좋은 목면 용지 특유의 마티에르와 물이 상호작용을 통해 뿜어내는 은유적이고 판타지 같은 분위기를 조율해내는 감각이야말로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화면 후경으로 설정된 매화 고목이 있는 작품을 주목하라. 마치 발묵(潑墨)의 몰골법에서 오는 그윽한 운치와, 춤추는 듯한 운필의 역동성이 백미인 문인화처럼 표현한(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정밀한 묘사력과 대비되면서도 시너지를 일으키는 오묘한 조합이야말로 앞으로 작가가 어떤 충격파를 전하게 될지 자못 기대되는 국면이다. 지금까지의 여백 연출과 표현에 대응하듯 작가가 등장시키고 있는 소재는 주로 막사발이다. 물론 꽃가지나 꽃송이가 단출하게 조합되고 있는 정황도 전통 회화의 '기명절지'(器皿折枝) 양식에서 보다 개념화시킨 조합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표현하고 있는 제재는 역시 막사발이다. '무기교의 기교'라는 놀라운 경지의 미의식이 빚어낸 결정체로서의 막사발. 작가는 바로 자신의 미학적 정수인 '허심'의 상징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강순자_허심(虛心)_종이에 수채_60×90.9cm_2014
강순자_허심(虛心)_종이에 수채_35×53cm_2013
강순자_허심(虛心)_종이에 수채_24×24cm_2014

막사발의 재현은 너무나 리얼한, 하이퍼리얼을 보여주고 있어 그것은 역설적으로 리얼을 초극한 전혀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로 지각되고 있다. 그것의 재현성은 실물보다 더 실물 같아 묵직하다 못해 바람만 스쳐도 금속성 음이 울릴 것 같은 환영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아무런 기교도, 일정한 정형적 규범도 매뉴얼도 없는 그야말로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창조된 그 피조물을 작가는 무관심적 관심의 심미안으로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소재의 등장은 '허심'이 '허무'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달리 읽혀져야 하는지를 강하게 설파하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없음'. 창조의 장해가 되는 '없음'이 아니다. 있지만 비워져야 할 것, 비워야 채워질 수 있는 것, 이렇듯 존재의 심오한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일컫고 있는 것이리라. 계영배(戒盈杯), 즉 '채워짐을 경계하는 잔'의 교훈을 얻고 있다 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작가는 단지 '비워져 있어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욕(無慾)의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리라. ■ 이재언

Vol.20140604d | 강순자展 / KANGSOONJA / 康順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