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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606_금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4_0625_수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org
오랜 웅크림 뒤의 깊은 호흡 ● 그동안 크고 작은 그룹 전시들에 참여하며 새로운 작업들을 계속 만들어 왔지만, 지난 5년은 개인적으로도 작가로서도 긴 호흡을 가진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은 개인적 삶에서도 소소한 변화를 맞이한 시간들이었으며,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또한 그 가운데 변화해하는 기술과 미디어, 그리고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해하려한 시간들이었다. 아는 것이 늘어가며 보이는 것은 많아지고 머리와 입은 마구 달려가지만, 한편 머리가 가는대로 가슴과 손이 바로 함께 따라가는 것은 아님을 스스로 성찰한 시간이었다. 과연 나의 작업도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꼭 변화하여야 하는가, 내 작업의 의미와 위치를 가늠해 보기 위해 수없이 질문들을 던졌던 시간들이다. 지속 속의 변화, 변화 속의 지속 ● 5년 전 "우연한 만남, 조우" 라는 주제로 전시를 마치며 당분간 계속하여 이러한 작업을 해 볼 것이라 계획하였다.꺼내놓을 보따리들이 아직 남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연하고 자발적인 기억(involuntary memory)에 대한 생각과 이러한 기억을 매개할 프루스트의 마들렌느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을 통해 삶 속 우연적으로 펼쳐진 경험들을 어떻게 의도적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을까, 어떻게 작품이 그러한 우연과 의도 사이의 다리(bridge)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동시에, 이번 전시에는 우연적 만남 속에 필연적 순환과 반복의 loop이라는 레이어를 한 겹 더 펼쳐 보고자 한다. 본 전시 주제인 호흡은 이러한 우연과 의도 사이의 피드백룹(feedback loop)에 대한 탐색을 의미한다.
기술적 호흡, 미디어적 호흡, 자연의 호흡 ● 나는 많은 작업에서 자연을 소재와 대상으로 다룬다. 내 작업에서 자연에 대한 접근과 표현은 주로 자연에 대한 감응 자체, 혹은 그 감응을 맞이하는 순간적 상황의 재현과 창조, 그리하여 그러한 경험과 마주하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자연을 자주 다루는 일차적 이유는 아마도 개인적 취향과 감수성이 많은 경우 자연과 함께 하는 경험으로부터 발로하기 때문에 그러한 듯 싶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표현이 매체적으로는 영상설치 형식의 작업, 혹은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작업을 통해 시도되어 온 이유 역시 좀 더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다. 첫 번째로 드러나는 자연, 미디어, 기술(Nature, Art, and Technology)라는 조합은 내 자신 안에서 그때그때 적합하고 흥미로운 표현으로써 직관적으로 선택되어 온 듯 하지만, 근래 드는 생각은 미술관 속에서 이러한 자연적 경험을 재현하거나 만들어내는 작업이 결국 자연적 상황에 대한 연출이며, 또한 그것이 미디어 혹은 다른 매체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자연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일, 즉 인공자연의 연출과 연관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인공자연의 연출 가운데 종종 자연적 우연성과 미디어적 의도성의 결합되는 부분이 자연과 미디어, 기술을 엮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실타래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에 의한 컴퓨테이션날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작품들은 그것이 코드레벨이던 혹은 전기전자적이고 기계적인 레벨이던지 간에 닫힌 폐쇄회로(closed feedback loop)에 기반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술적 상호작용은 생산단계에서 발생되는 근원적이며 존재론적 조건 때문에 종종 예술작업 내에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이라할지라도 미리 계획되어있고 심지어 예측되고 예상가능한 경험, 그래서 단순한 나머지 단조로워지고 마는 경험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칫 기술적 호흡은 단조로운 호흡으로 이어진다. 한편 자연에서의 경험, 자연에서의 호흡은 대부분의 경우, 결코 인위적이지 않은 만남, 우연성 가득한 조우처럼 경험된다. 테크놀로지의 의도성과 단조로움과 대비되어 자연 속의 경험이 더욱 풍요롭고 우연적이며, 감성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대비는 그 대비 자체가 흥미로운 동시에, 또한 매우 다른 서로를 극복하여 갈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러한 접근이 미디어와 자연을 계속하여 다루게 되는 더 근원적 이유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번 『깊은 호흡』전에서는 자연에 대한 감응 자체, 혹은 그 감응을 맞이하는 순간적 상황의 재현과 창조, 그리하여 그러한 경험과 마주하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 접근하는 가운데 그러한 자연과 미디어 사이의 우연과 의도적 결합에 대하여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기계적mechanic 혹은 컴퓨터 매체의 코드적 층위에서 오는 미디어적 호흡과 자연의 호흡을 호흡과 평행선 상에 겹쳐놓아 보기도하고 또한 가능하다면 일치시켜도 보고자 한다.
바다의 숨소리 ●「바다의 숨소리」라고 하는 작업은 오래 전 우연하게 마주했던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바닥에 놓인 행사용 스피커 주변을 줄 끝에 늘어진 마이크가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이 때 기계적 피드백룹에 의한 노이즈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신기하게도 마치 파도소리와 같이 들렸던 경험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빈 방 바닥에는 스피커가 덩그러니 놓여있으며 천정에서부터 내려온 마이크가 진자처럼 움직임을 반복하며 호흡하는 듯 파도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는 사운드 설치 작업을 머릿속에서 구상하였다. 기계적 피드백이 마치 자연적 피드백으로 연결되는 상황을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 진자운동은 마치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처럼 앞뒤로 움직임을 반복한다. 또한 이에 따라 파도가 생기고 부딫치고 떠나가는 소리가 반복된다. 텅 빈 미술관 공간에서 파도소리, 바다의 숨소리를 채워본다. 기계의 호흡과 자연의 호흡이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진자운동이 여럿 반복되어 겹치지며 바다 한 가운데 파도의 겹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무심하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파도를 공간 가득 그려본다. 북악산 바라보기 ● 한창 혜화동 작업실에서 진자운동과 함께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개념적으로 연결시키는 드로잉 작업에 몰두하다가 우연히 내 시선은 큰 통유리창 밖으로 혜화동 뒤편으로 펼쳐진 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곤 마치 이러한 파도의 겹은 산등성이가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과도 묘하게 서로 닮아있다는 상상에 미치게 되었다. 그동안 오랜 시간 설치 작업을 진행해 왔다. 공간의 문맥에 조응해야 하는 설치는 그러므로 현장성을 가지는데, 바로 이 점이 설치에서 느껴지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번 자하미술관 역시 큰 유리창 너머 북악산이 전시장 일부를 채우고 있는 환경이다. 자하미술관 전시에서 그 공간이 가지는 특수한 자연적 환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러한 실제 자연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의 인공적 자연의 연출이라? 실제 자연과 유사자연은 서로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가 우연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북악산은 바로 자하미술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그 북악산이라 한다. 다른 곳에서 바라본 서로 같은 곳이었다.
들이쉼과 내쉼 ● 호흡은 들이쉼과 내쉼의 반복이다. 호흡은 비록 그것이 무의식적이라 하여도,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목숨을 (육체적인 의미에서) 존속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이다. 또한 이러한 들이쉼과 내쉼의 반복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하는 세상과의 계속된 만남, 마주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들이쉼과 내쉼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조차 계속하여 세상과 쌍방향적 만남을 이어간다. 따라서 깊은 호흡, 특히 명상을 하며 가지는 심호흡은 때로는 세상에 대한 깊은 관조와 연결된다. 그러나 또 다시 명상과 관조는 정신적 참여뿐만 아니라, 신체 안팎으로 대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강한 신체성을 지니기에 체험적이다. 이번 깊은 호흡은 기계와 자연의 호흡에 대한 탐구이자 그들의 순환적 룹을 보다 확장시켜보는 호흡이 되길 기대한다. 또한 이러한 호흡이 개념적 혹은 관념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감각과 참여의 차원에서도 함께 접근될 수 있길 바란다. 작업적 시도와 작업을 통한 기대.. 결국 또 다시 우연과 의도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있는 것이리라. ● P.S. 「바다의 숨소리」에 대한 본격적인 작업을 하는 동안인 2014년 4월은 내내 세월호 사건으로 매체를 통해 팽목항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바람이 강하고 파도가 높아 실종자를 수색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보도하며 미디어는 연일 어린 목숨들이 행여 바다 속에 생존하고 있을까, 바다 속에 혹시 모를 생존자들이 숨쉴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공기주머니(air pocket)가 과연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하여 연일 논하였다. '바다의 숨소리'라는 제목으로 작업을 하며 애초에 시원하며 때때로 매우 낭만적인 파도 소리를 머릿 속에 그리고 있었으나, 연일 너무나 큰 슬픔 앞에 거대하고 무자비하고 냉정하게 들리는 바다의 숨소리만을 듣고 있는 듯 하였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과 연결된 태아가 숨쉬는 것과 같이, 바다가 정말 생존자들의 호흡과 연결될 수 있는 숨소리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하였다. 결국 그들의 호흡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바다의 숨소리가 그들의 숨소리를 대신하여 서글프게 들린다. ■ 자하미술관
Vol.20140606b | 이현진展 / LEEHYUNJEAN / 李玄珍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