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춤을 DANCE WITH COLOR

임남훈展 / LIMNAMHUN / 林南勳 / painting   2014_0611 ▶︎ 2014_0617

임남훈_배우 김형범_캔버스에 유채_130×80cm_2014

초대일시 / 2014_06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얼굴의 존재론과 선물의 윤리 ● 얼굴은 '인간'의 것이다. 얼굴은 직립한 채 거의 정면으로 살아내는 인간의 표식이다. 엎드린 짐승은 전방위(全方位)로 살아가고 그러므로 짐승은 얼굴이 없다. 얼굴은 대면, 대결, 대치, 대적하며 생존하는 인간의 낙인이다. 얼굴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야하는 인간의 업이다. 정면을 응시하면서 인간은 문명을 축적했고, 빛나는 이마로 직진하는 인간의 역사적 운명은 시간 역시도 정복했다. 얼굴은 유한성 안으로 초월적 시간을 불러들이고 무상(無常)한 자연에 대적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얼(soul)-굴(屈)은 내면을 갖는 인간의 기표이다. 인간은 얼굴을 쓰고 깊이를 감추면서 드러낸다. 얼굴은 물리적 삶과 정신적 실체라는 인간의 고유한 이중성을 육화해낸다. 신경과 근육 위에 덮인 피부/껍질로서의 얼굴은 영혼을 담지한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 짐승에서 나와 초-물질적/형이상학적 존재로 올라가고 있다. ● 얼굴의 인간성은 눈을 중심으로 확산한다. 눈은 얼굴의 중심이고 얼굴 자체이다. 눈의 봄은 세계와 존재를 대상화하고 고정하고 이해하고 소유한다. 근대적 세계관은 모두 보기의 은유로 구성되어 있다. 볼 수 없는 것까지 시각장 안으로 불러들여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중에 문명은 신의 권역까지 넘보게 되었다. 짐승과 신 사이에서, 유한성과 무한성 사이에서, 물질학과 형이상학 사이에서 자신의 상승, 진보에 대한 관념을 구축해왔던 인간은 이제 자연(自然)도 신성(神性)도 거의 상실한 채로 불구화되고 있다.

임남훈_배우 조달환_캔버스에 유채_130×80cm_2013

영혼의 출구로서의 얼굴과 인식의 기원으로서의 눈 사이에서 인간은 인간이거나 비인간이다. 인식은 더 밝은 눈을, 영혼은 더 맑은 얼굴을 간구한다. 제대로 정확하게 보기와 진실된 반영은 근대적 시각성과 초상화의 윤리였다. 그리고 인식의 곤궁(困窮)은 눈의 무능을, 영혼의 상실은 얼굴의 무의미를 요구할 지경에 이르면서 위험에 처해 있다. 그것이 이 시대에 눈과 얼굴이 무'가치'한 이유이다. 인식의 전횡과 폭력, 그리고 신의 죽음이나 부재는 얼굴이 지워지고 눈이 거의 사라진 인간으로, 심지어 인간이 거의 부재하는 황량한 풍경으로 동시대 삶을 재현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 이 시대에 인간을 말한다는 것, 이 시대에 초상을 그린다는 것. (인간의)얼굴. 도대체 누가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희망을 유지한 채 살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 눈으로 본다는 것은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황지우)라고 고백하며 슬픔에 빠진 시인의 자의식 외에/이후에 무엇을 낳을 수 있을까? 인간의 실패가 갖고 온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얼굴은 낡았고 타락했고 사라지고 있다. 몰락의 악취와 슬픔의 서정성을 제외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다시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재현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까? 도대체 누가, 어떻게? 우리는 얼굴을 그리는 자를 희구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의 출현을, 그의 시도를 의심해야 한다. 더욱이 인간의 실종과 동시적인 회화의 위기 이후의 회화에서라면.

임남훈_가수 홍대광_캔버스에 유채_130×80cm_2014

임남훈의 회화는 화가와 모델의 새로운 '대면'을 통해 출현한다. 그는 자신이 그린 인물, 자신에게 3시간 가량의 대화에 시간을 할애한 모델, 자신에게 자신의 '꿈'을 들려준 이에게 '작품'을 선물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인물들을 '위해' 그리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고, 또 자신의 노동의 산물인 그림을 선물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첫 번째 전시를 기획할 때 작가의 의도였다. 그는 자신에게 얼굴, 영혼, 꿈을 보여준 이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자신의 쾌락을 돌려줄 것이다. 『증여론』의 저자 마르셀 모스에게 주는 자(giver)는 받은 것이 없는 자이다. 주는 자는 오직 선물을 줄 뿐이다. 효율성에 매몰된 자본주의의 제한경제 바깥 영혼이 깃든 선물을 끊임없이 주고 받음으로써만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매개물 포트래치(potlatch). 임남훈은 자신과 대화하면서 꿈을 들려준/준 사람들에게 그 꿈을 돌려준다. 그의 회화는 포트래치이다.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자유, 고독이 모독받는 시절 예외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증명하는 예술가의 실존 방식을 끝끝내 붙들고 살아낸 이가 오직 캔버스에서 출현한 형상의 '이름'에게 그 캔버스를 돌려주기 위해 그린다는 이야기...... ● 그는 인간에게 무슨 빚을 진 것일까? 두텁게 쳐바른 물감의 더께로 편평한 인간의 거죽을 보호하고 그 '안'에 존재의 두려움, 쓸쓸함, 고귀함, 위엄, 슬픔 같은 것을 불어넣는 이 '재생(再生)'의 과정은 그가 인간에게 진 빚을 갚는 과정일까? 그러므로 무구한 자가 죄지은 자를 구한다는 종교적 이념이 출현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제식은 계속 있게 될 것인가? 내가 인간의 얼굴로 지은 죄를 씻어줄 자는 죄 없는 자라면, 그것이 회화로서의 종교가 해왔던 실천이라면, 예술가-성직자의 형상을 우리는 임남훈에게서 알아보아야(recognize) 하는가? (별도로 그는 인간-예수의 형상을 재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과업에 매달리고 있다.)

임남훈_배우 김영호_캔버스에 유채_162×97cm_2014

화가 임남훈의 첫 번째 개인전 『색과 춤을』은 화가의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몇몇 배우들의 초상으로 구성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화가였다는 화가 자신의 '허풍'을 경청하기엔 그의 화가로서의 이력은 보잘 것이 없다. 그는 40이 넘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이제껏 그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소명과는 무관한 일들로 생계를 꾸리거나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이력과 경력을 길게 채우는 관행이 직업적 근면함이나 전문가적 화려함을 증명하는 시절 그는 가난뿐인 이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스스로의 고백처럼 극빈층 출신이다. 그는 그 사실을 밝히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가난은 그의 낙인이고 심지어 그의 경력이고 결국 그의 위엄이 되었다. 가난은 풍요의 배경, 그림자, 음화이다. '궁핍한 예술가'는 자본주의의 배경, 그림자, 음화이다. ● 박탈당한 자들의 편에 서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데 골몰하면서, 얼-굴을 찾고 있는 화가 임남훈. 그는 자신을 모욕하고 배신하고 떠나간 이들을 줄곧 보아왔음에도 모욕하고 배신하고 떠나는 역할은 맡길 거부했다. 그는 부유하고 화려하고 잔인한 삶의 거죽이 벗겨지는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허약함, 위선, 거짓에 대해 증언하기도 거부했다. 대신에 그는 그 모든 악취, 폐허, 불구, 치욕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보호하는 자리에 남아 인간을 되살리고 요청하고 복원하는 임무를 화가로서의 자신의 운명으로 출현시켰다. 그것이 그에게 인간의 신성이 할당한 역할이었다. 복수의 길과 냉소의 길 대신에 그는 선물의 길을 선택했다.

임남훈_배우 이혜숙(드로잉)_캔버스에 유채_130×80cm_2014_부분

그의 인간들, 그의 얼굴들은 어떤 순간을 드러낸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들(의 힘)에도 불구하고 출현하는 예외적 순간이고 표정이고 영혼이다. 그는 그것을 본인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간주하는 얼굴 위에 물감으로 입혔다. 그는 스케치가 끝나면 그 위에 나이프를 사용해서 물감을 두텁게, 아주 두텁게 올린다. 두 세 시간이면 그의 페인팅은 완성된다. 붓을 사용했을 경우와 비교해 거의 3배 이상 사용된 물감 때문에 캔버스는 물리적 깊이를 갖는다. 모델과의 닮음보다는 모델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느낌이나 표정을 포착하는데 주력하는 화가의 캔버스는 물감의 물성과 보색성으로 인해 강렬한 표현주의적 풍경을 드러낸다. 마치 비늘처럼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물감들로 인해, 그리고 견고하게 굳은 물감의 힘으로 인해 얼굴은 보호막을 입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임남훈의 얼굴들은 신경과 근육이 아닌 연약하고 물렁물렁한 살, 상처입기 쉬운 살을 그 안에 갖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생존의 피로와 관계의 슬픔과 개인의 쓸쓸함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낯섬. 그러므로 그의 모델이 되었던 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돌려받은 뒤 그 얼굴을 사랑하고 닮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이면서 나 아닌, 그러나 어떤 깊이를 갖고 있는 타인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 얼굴은 사실 내가 갖고 다니는 타인이다. 얼굴은 나의 것이지만 그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낯선 것이다. 신경과 근육 위에 얹힌 시간의 더께인 얼굴은 세계와 상황 혹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취약한 주변부적 자리이다. 그곳은 내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이질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침범하고 넘나드는 접경지대이다. 나의 얼굴은 세계, 너에게 드러나는 나의 안이자 세계와 너의 표식이다. 거울과 사진에서 일순간 만나는 얼굴은 내가 계속 나를 낯설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결국 나의 타인임을 증명한다. 임남훈은 모델에게 '얼굴'을 돌려준다. 그것은 모델이 알아볼 수도 오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있을 낯섬으로 현전한다. 그것을 자신이라고 (결국)알아본 이에 의해 얼굴은 인간화되고 이름을 얻는다.

임남훈_배우 황정민_캔버스에 유채_130×80cm_2014

이름은 존재의 얼굴이거나 존재가 숨는 가면이다. 이름은 언제든 무, 익명, 집단으로 돌변할 수 있는 인간에게 책임, 사랑, 희망을 요구할 때 사용되는 구실이고 기회 혹은 가능성이다. 이름은 그저 사라져가는 존재들, 이름없는 것들, 다수에게 존재의 고유함, 소속의 권리를 부여한다. 임남훈은 자신의 초상화에 그/그녀의 사회적•공적인 역할과 이름을 함께 붙임으로써 얼굴이 갖는 공공성과 사회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그/그녀의 공동체적 책임과 역할, 즉 관계성 역시 그/그녀의 이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역할이라는 이름, 개인 존재에게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화가-임남훈의 의식. 임남훈의 개인 초상화는 한 번에 한 사람씩 만나는 그의 대화의 방식, 한 사람에게 영혼을 불어넣을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마련된 종교적 의식이다. 그는 자신의 인간에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회화적 형상 안으로 현실의 인간을 밀어넣음으로써 일시적으로, 순간적으로 예술을 호출한다. ● 회화는 오래도록 신성의 문제를 건드려왔다. 신은 타자의 얼굴로 우리에게 불현듯 급습한다. 신은 우리가 인간이길 요구하는 이름이다. 회화는 낡은 구식의 제스쳐로 유화라는 느린 물성으로 인간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오래도록 담당해왔다. 화가는 사회와 인간의 주변부에서 사회와 인간의 미래를 호출해 사회와 인간의 침몰을 지연시킨다. 화가는 캔버스와 물감의 존재론으로 현실에서 비껴서서 현실을 수정하고 끌어올린다. ■ 양효실

Ontology of the face and the Ethics of Gift ● The face belongs to 'human' beings. The face is a sign of a human who stands erect, face-to-facedly. Crawling animals get along omnidirectionally, and thus have no face. The face is a stigma of a human who survives while confronting, contesting, counterposing, and competing. The face is karma of a human who must roll the wheel of history. Human beings have built civilization while staring at front, and the historical fate of those who go straight with gleaming foreheads has also conquered time. The face is a symbol of a human who summons the transcendental time into the finitude and competes against transient nature. The face, 'eol(soul)-gul(bending)' in Korean, is a signifier of a human with an inner self. A human wears a face and conceals the depth while revealing it. The face embodies the human beings' intrinsic duplicity of having material life and mental truth at the same time. As a skin covering the nerves and the muscular fibers, the face contains the soul. A human being comes out of an animal and ascends to a trans-substantial/metaphysical being. ● The humanity in the face spreads around the eyes. The eyes are the center of the face, or the face itself. They objectify, fix, understand, and possess the world and the beings. Modern view of the world comprises all the metaphors of seeing. While making the invisible into the visible in the field of view, the civilization has come to covet god's territory. Human beings who have cultivated the idea on the rise and the progress of themselves between animal and god, between physics and metaphysics, now became disabled almost losing both their nature and the sacred. ● Between the face as an exit for the soul and the eyes as an origin of the cognition, a human being is either a human or a non-human. The cognition begs for the brighter eyes, and the soul for the clearer face. It was the ethics of the modern visibility and the portraits to see exactly and properly, and reflect truthfully. And it is dangerous that the poverty of the cognition calls for the incompetence of the eyes, and the loss of the soul for the meaninglessness of the face. This is why the eyes and the face is 'worthless' these days. Because of the tyranny and the violence of cognition, and the death or the absence of the god, our contemporary life is represented as a human without a face, almost without eyes, or even as a desolate landscape lacking human beings. ● To talk about human beings and to draw a portrait in this day and age. The face (of a human.) Who can dare to hope against hope anachronistically? To have a face, or to see through eyes, what can it create other than, or after, the self-consciousness of a poet confessing "It's all ruin wherever I loved"(Ji Woo Hwang)? Can it be possible to talk about human beings better than by telling about the sorrow brought about by their failure? The face is ragged, depraved, and is disappearing. How can one look again into the face of the humans and investigate human potential, except for the stench of the collapse and the lyricism of the sorrow? Who can, on earth, and how? We will desire the one who draws a face, but we must doubt his appearance and his attempt. And all the more so, when it comes to the painting after the crisis of painting coincided with the disappearance of the human. ● Nam Hoon Lim's paintings appear through the new 'confrontation' between the painter and the model. He will present 'the work' as a gift to the person he painted, to the model who spent about three hours of conversation with him, to the person who told him his/her 'dream.' He will pay all the expense required to draw 'for' the persons he met, and will present the painting, the product of his labor, as a gift. This was the author's intention when his first exhibition project was planned. He will return what he likes most, his pleasure, to those who showed him their faces, souls, and dreams. For Marcel Mauss, the author of The Gift, the giver is the one who has never received. The giver only presents a gift. The potlatch that mediates those who maintain relations only through giving and receiving the gifts their souls indwell, outside the restricted economy of capitalism buried under efficiency. Nam Hoon Limgives the dreams back to those who told/gave theirs while talking with him. His painting is a potlatch. There is a tale that an artist, who with an indomitable will tries to prove himself, in the time when pride, freedom, and solitude are insulted, paints only to give the canvas back to the 'name' of the figure appears on it. ● What kind of debt he owes humans? Is it a process of paying the debt, which can be called the process of 'regeneration' where he protects the flat human skin with thick paints and imbues it with fear, loneliness, nobility, dignity, and sorrow? Henceforth the religious idea appears that the innocent saves the guilty. So, will the ritual of forgiving human sins last? If it is the guiltless who can clear the sin I committed with the human face, and if it is what religion as painting has done, can we recognize in Nam Hoon Lim the figure of artist-cleric? (He is also striving for another personal project of representing the figure of human-Jesus.) ● Nam Hoon Lim's first private exhibition 『Dance with Colors』 comprises the portraits of his friends, acquaintances, and several actors. He 'boasted' that he was born to be a painter, but his career as a painter is too insignificant to take his comment seriously. He held his first private exhibition when he was over forty, and so far he has been training students, or making his living by things not very relevant to his calling as a painter. He kept within his sphere with his career of poverty, during the time when the ostentation of one's background and career proved professional diligence and impressiveness. As he confesses, he was a destitute poor, and he does not hesitate to declare it. Poverty is his stigma, even his career, and finally his dignity. Poverty is the background, the shadow, the negative of wealth. The 'poor artist' is the background, the shadow, the negative of capitalism. ● Nam Hoon Lim, the painter, who is searching for the face('eol-gul,' the soul-bending), and bending himself to the representation of the figure of disappearing humans, on the side of the dispossessed. He refused to take the part of insulting, betraying, and leaving, while witnessing those who did it all to him. He also refused to attest to the human weakness, hypocrisy, and falsity revealed under the rich, splendid, and cruel skin of life. Instead, he remains in the position of protecting the 'human' despite all those stench, ruin, deformity, and disgrace, and makes the duty of reviving, requesting, and restoring the human as his fate as a painter. This is what the sacred of the human has allotted to him. Instead of revenge and cynicism, he has chosen the way of the gift. ● The humans and the faces he portrays reveal certain moments. Those are exceptional moments, impressions, and souls that appear in spite of (the power of) the negatives. He covers those with paints on the faces the owners or people around them think they know. After the sketch, he puts the paints very thickly on it, using the knife. His painting is finished after two or three hours. Because of the amount of paint used three times more than in the work done by brush, the canvas has physical depth. The painter focuses on capturing the subjective and psychological feelings or impressions rather than the resemblance, and the canvas reveals the powerful expressionist landscape due to the physical property and the complementary color of the paints. Because of the thick paint that seems possible to be taken off as if it is a scale, and because of the power of the paint set hard, the faces look like wearing protective coats. Lim's faces seem to have weak, soft, and vulnerable flesh inside, not nerves and muscular fibers. The strangeness of the human being that cannot be reduced simply to the fatigue of surviving, the sorrow from relationships, or the personal solitude. Thus, those who have been his model will love and resemble the faces after taking them back. It is because the face will come as the other who is and is not me at the same time, having a certain depth. ● My face is, in fact, the other I carry with me. The face is mine, but it is a strange thing that I think I know well. As accumulated layers of time put on the nerves and muscles, the face occupies the vulnerable and peripheral position of a human being who lives in the world, surrounded by the situations, and within the relations. It is the borderland where the foreigners continuously intrude and trespass while I think I guard the place. My face is the world, it is my inside revealed to you, it is the sign of you and the world. The face I encounter in the mirror or in the photograph proves that I will always feel myself strange, that I am my stranger. Nam Hoon Lim gives the 'face' back to his model. It has its presence as the strangeness the model can either recognize, mistake, or deny. The face becomes a human and gains name by the one who (finally) recognized that it is himself/herself. ● The name is the face of a being or the mask he/she hides behind. The name is an excuse, a chance, or a possibility used when we demand responsibility, love, and hope of a human being who is ready to be changed into nothing, anonymity, or group. Names grant the uniqueness of beings, and the rights of affiliation to the disappearing beings, the nameless beings, and the many. Nam Hoon Lim underlines the publicity and the sociality of the face by attaching the names and the social, official positions of the models on the portraits. Each of them reveals that his/her communal responsibility, role, and the relationality are also his/her name. The name of the role, and the painter-Lim's consciousness assigning social responsibility to a personal being. Lim's personal portrait project is his way of conversation as meeting one person at once, and it is also a religious ritual for one chance to inspire a person with spirit. He instills the reason for living in his humans. He summons art temporarily and instantaneously, by pushing the human in the real life into his pictorial figure. ● Paintings have long been touching the problem of the sacred. The god suddenly raids on us with the face of the other. The god is the name that demands we should be human. Paintings have long been in charge of the heavy question of humanity, with old gestures, and with the slow materiality of oil-painting. The painter calls the future of the society and human from the fringe of them, and delays the sinking of them. Standing aslant, the painter reforms and raises the reality with an ontology of canvas and paints. ■ Yang Hyo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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