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되다

2창수展 / LEECHANGSU / installation.painting   2014_0613 ▶︎ 2014_0625 / 백화점 휴점일 휴관

2창수_민들레 왕관_유리판에 채색_25×16×15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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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613_금요일_06:00pm

롯데갤러리 2014년 창작지원展 1부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롯데갤러리 대전점 LOTTE GALLERY DAEJEON STORE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9층 Tel. +82.42.601.2827~8 www.lotteshopping.com

일찍 일어난 벌레는 일찍 먹이가 된다. ● 일상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어떠한 노력을 해도 본인 자체가 벌레라면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될 뿐이다. 처한 현실극복을 위한 노력도, 보다 큰 사회 구조 안에서는 극복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화려하게 치장된 자본 구조에 자본 약자는 나약 할 수 밖에 없는 먹이 감이 된다.

2창수_For the Love of God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65×30×35cm_2011
2창수_For the Love of God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65×30×35cm_2011

이번 10회의 개인전의 주제는 어느 부지런한 벌레, 부속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전시는 자본에 대한 복속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로 각자의 생각을 가두려는 것과 자본으로 이끌려는 종교 자본에 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하였다. 또 국가라는 단일 생명체를 위해 많은 소모적 부속이 되어버린 자아에 대한 표현, 하나하나 아름다운 개체의 모습을 잊은 전체주의적인 상징물 모습을 통해 나란 존재가 무슨 의미일까? 란 물음을 담으려 했다.

2창수_자본은 어디에도 영향을 준다_유리판에 채색_41×60×22cm_2012

곳곳에 등장하는 파리 ● 독립 자아로 표현한 파리는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 개체로 생각하고 표현한 주제이다. 쉽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파리로 인하여, 거대한 구조 덩어리가 극복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너무도 흔한 곤충이지만 파리는 자아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이다. 개미나 벌과 같은 통치에 의한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을 나누지 않는다. 그림에 등장하는 파리는 때로 군집을 통해 어떤 형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인 군집을 통해 또 다른 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군집의 힘은 나로 인해서라는 착각을 가지게 하며 이 세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스스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나약하지만 모인 대상의 힘이 거대하다는 착각은 곧 내 힘이 강하다는 세뇌를 이끌어준다. 그러나 개개인은 사회적으로 그리 중요치 않다. 사회에서 나의 존재감은 사회와 임시로 격리되던 입대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내가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았던 내 주위 모든 것들이 휴가 나왔을 때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잘 유지되는 모습을 보고 나란 존재의 필요성을 생각했다.

2창수_자본은 허상이라도 달다_유리판에 채색_33×20×16cm_2014
2창수_자본은 허상이라도 달다_유리판에 채색_33×20×16cm_2014_부분

나와 같은 대중의 착각 이유는 사회를 이끄는 시스템 기초 대상인 대중에게 세뇌가 이미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가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믿게 만들고 이로 인하여 서로간의 관계를 사회전방위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한다. 서로가 서로를 견고하게 밀착시켜 개인적 사고를 갖거나 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나와 다른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비판해왔던 가를 생각하면 그간 다른 것은 = 틀린 것이라는 공식으로 사회를 세뇌시켜왔다.) 이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통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통치를 움직이게 하는 자본과 관계가 있다. 그로 인해 보통사람은 보통생각과 보통의 삶을 살며 이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언론과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세뇌시킨다. 결국 지배층은 피지배층간 서로를 견제 시키며 도덕이라는 족쇄를 서로에게 채워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지배층간 세뇌를 통해 "우린 서로 행복해요!"를 외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과연 행복할까?' 종교, 교육, 언론을 통해 누누이 우린 행복에 대해 세뇌되어 왔다. 사회적 평등은 내가 수행 가능한 위치에 머무는 것이 평등한 것이라고 세뇌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적 평등의 원리를 위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행복이라고 정의된다면 분명 안정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안정은 지배층을 위한 안정이고 피 지배층은 행복하다는 세뇌를 이미 당한 것이다.

2창수_부작란도_유리판에 아크릴채색_62×45×15cm_2014
2창수_와인잔_유리컵에 채색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 개념은 나에서 찾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것에서 찾는다. 참 세련된 행복 법이다. '행복은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누려야 행복하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국가는 이러한 행복을 많은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통제한다(?). 다수의 행복을 실현시킨다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의무를 강요하며 보이지 않는 소수 지배층의 완벽한 행복을 실현 시킨다. 더 많은 행복추구를 위해 국가 간 약소국을 식민 국가로 만들어 냈으며 이것을 통한 행복은 지배 국가가 가져갔다. 이것을 현 사회와 연결시키면 우리가 지금 어떠한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누가 행복할까를 생각하면 쉽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할 것이다. 식민 지배를 받는 국민들도 스스로가 행복하다 느낀다. 그들에게 종교, 교육, 언론을 통하여 더 처절한, 더 힘든 약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이로 인하여 '난 행복하구나!' 를 세뇌시킨다. 더 비참한 현실을 보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느껴야 하는 행복한 국민이다. ■ 2창수

Vol.20140612g | 2창수展 / LEECHANGSU / installation.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