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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드 타임展   2014_0619 ▶ 2014_070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은혜_김재훈_박민준_박하민 배정윤_백나래_김솔아

관람시간 / 12:00pm~07:00pm

에이에이 갤러리 aA gallery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8-11번지 aA 디자인 뮤지엄 2층 Tel. +82.2.3143.7311 www.aadesignmuseum.com

묶인 시간, 묶인 관계-동시대 작가들의 허구적 대리인 ● 예술은 자연을 포착하기도 하고, 인공의 풍경을 담아내기도 하며, 인간 개인의 모습과 그 내면을 다루기도 한다. 나아가 작품 위에 자리한 작가의 대리인들이 '작가의 이야기'를 피사체로 채택함으로써 한층 더 흥미로워진다. 여기에 모인 작가들은 가치관, 개인의 카테고리에서 경험한 문화, 규범, 예술적 언어 등 공통되는 지점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전시는 허구의 대리인을 빌어 작가로부터 시작되는 최초의 질문과 예술가 저마다 이야기에 접근해가는 태도, 사건을 해결하려는 방법과 같은 합의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대리인이란, 사실은 관람객의 통절한 체험에서 그 성격이 우러나온다. 전시를 보며 우리는 보통 그림이나 조각품에 언표를 싣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성격의 대리인들이 생성된다. A의 감상평이 B가 느낀 감상평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작품을 제작한 '진짜 미술가'는 그 모든 대리인들을 통일하는 '주체'로서 근대적 자아주의로 일관한다. 그리고 몇몇의 관람객은 그들이 본 작가의 대리인이 제작자일 것이라고 예상을 하기도 하지만, 관람자가 작품의 의미를 읽어냄으로 작품을 만든 예술가를 실제로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소통과는 달리, 작품의 '화자'와 작품을 만든 '제작자'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의 의미를 읽어 내려고 할 때, 관람하고 있는 본인의 머릿속에 일정한 장치를 부여하지 않고 재편성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때 부여된 장치는 눈앞의 작품을 넘어 저편 어딘가에 있을 '인격'을 만들고, 비로소 작품에 시점이란 개념이 성립토록 한다. ● 작품의 읽기 과정을 통해 상정되는 화자가 실은 기능상의 허구적 대리인인 이상, 그것은 작품을 만든 제작자로 보기 어렵고, 작품의 전기적 사실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될 필연성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염두에 둘 때 제작자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추측이 일정한 방향성 아래에 하나의 캐릭터로 응축될 수 있게끔 허구적 대리인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일을 주관해야만 한다. 가령,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넘나들며 증거를 수집하는 자, 인간의 불완전한 욕심을 주시하는 관찰자, 맨질맨질한 표면을 흑적으로 채취하는 수행자, 사회적 흐름을 그마만한 가치를 갖는 사물로 대리하려는 감정사, 침묵을 동반한 상태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선수, 풍경의 틈바구니에서조차 죽음을 찾아내고 관장하려는 연금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와 공상 사이의 경계마저 뿌옇게 보는 몽상가와 이번 전시를 준비한 작가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시대 작가들의 대리인에 관한 시의적 개념을 실감해볼 수 있기를 바라고, 변화의 시대에 생성된 예술과 이곳에 모인 작가들의 관계를 살필 수 있길 희망한다. 제작자와 작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대리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미술작품의 내적 구조를 두텁게 만든 일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관람자가 되어 밀착된 경험을 함께 공유한 것은 이번 전시가 남긴 커다란 선물일 것이다. ■ 강유진

백나래_○○_스테인리스 프레임, 플랙스, LED_58×45×37cm_2014

선천적으로 가진 심한 난시는, 그게 무엇이든 '볼 때'에 애초부터 초점을 맞추지 않는 버릇을 만들어 주었다. 두 개, 세 개로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 안에서 시선을 고정시키려는 노력은 허사가 되기에 늘 본인의 시선은 부유하고 있다. 명확하게 보기를 포기한 채 한 곳에 시선을 걸어두다 보면 뿌연 세계는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흐릿하게 뭉개진 현재의 틀에서, 공상으로 벌어진 틈 사이로 비집고 보이는 환영의 장면들은 저 너머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은밀한 기분을 들게 한다. ■ 백나래

김솔아_Blank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4

같은 시간 다른 공간, 같은 공간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시간들이라는 큰 맥락 안 에서의 발견을 흥미롭게 여긴다. 처음에는 비슷한 동기로 한 일련의 발견들과 수집된 이미지들 그 자체에 집중을 하다 자연스럽게 그것과 관계하고 있는 내적인 근거를 유추하고자 함이 기본적인 작업의 근간이 되고 이로 부터 형성 된 이미지들은 작가적 시점의 근거이자 증거들로 기록되어갔다. 이미지가 내적 근거인 증거들과 관계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때의 그 지점을 명확하게 다시 짚어내기에는 역부족으로 후에 결국 미루어 짐작하는 태도로 마주해야 할 때 생기는 무력감에 대한 것일 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공간과 시간들은 시각적 재료로 여겨지는 정도로 퇴색되어서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된다. 알지만 사실 아는 것 같지도 않은 느낌과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 김솔아

박민준_잘만 굴러가는구만_고제_100×280cm_2014

잘만 굴러가는 구만. ● 처음 시작은 작은 나사였다. 작업에 기존에 사용하던 나사가 아닌 다른 나사를 끼워 넣었다. 그러나 나사를 바꿔 끼우는 행위로 작업의 전체적인 형태와 기능에 문제를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작업의 전체적인 결과물은 우리가 속해 있는 커다란 사회와 같았고 이것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나사는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과 같았다. 구성원 하나 바뀐다고 변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후에는 나사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이와 같은 속성을 가졌으며, 결과물은 더 커다란 무언가를 움직이게 할 커다란 바퀴모양이 되었다. 본인은 과정이 틀어지거나 달라지더라도 결과가 잘 나오면 만족하는 약간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도덕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잘못되거나 전혀 다른 방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융통성 있게 변경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좀 더 나아가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것들을 비판하고, 사회적으로 어떠한 공동체 안에서의 즐비한 제한과 규제가 조금은 완화되었으면 한다. ■ 박민준

박하민_move 움직이는 결계_주운 돌_가변크기_2014

마주친 이미지와 텍스트들. 이것들은 친절한 텍스트(출처, 오게 된 경로, 발신자의 정보들에 앞선)와 부드러운 이미지의 성질이 덧입혀졌지만 강요의 성질을 위함이 다분하다. 보호, 투과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 무엇들로부터 보호의 기능과 동시에 빛이 투과되는 이것이 처한 상황은 여닫이 창문과 창문 사이, 빛과 내부 사이, 허공과 유리 사이 또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연적으로 마주친 이러한 것들은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유령들이 가시적 또는 비가시적 상태로 덧입혀져 있는 것들이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설정된 관계들은 침묵으로 동반 되었지만 입장들 사이에서, 이 유령들에게 상처를 받는데, 여기 제시하는 것들은 그것들에 대한 거부와 불가능한 순응 사이 어디쯤을 배회하고 있는 모습과 닮아 있다. 들어오는, 내 뱉어지는 목소리들 또는 그 과정이 이루어지며 불안정하게 상처 입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 박하민

김재훈_시계 탁본-1_한지에 연필_40×23×10cm_2014 김재훈_거울 탁본-2_한지에 연필_40×30×3cm_2014 김재훈_안경 탁본-1_한지에 연필_5×15×3cm_2014

끊임없이 나에게 스스로 미술을 왜 시작했는지 묻는다. 작업을 하는 이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에 대한 의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러다 처음 미술을 시작했던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때는 막연히 그림을 그리는 반복적인 행위였던 것 같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재료는 연필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연필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살아오면서 경험하거나 들었던 것들은 연필 선처럼 한 겹 한 겹 올라와 하나의 면이 되고 그것이 이제는 하나의 막이 되었다. 내가 지금껏 보고 지내온 세월들은 내가 그린 고정관념 속에 박혀 허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번뇌를 해결하는 지점으로 나는 탁본을 통해 하나 하나의 선에서 나의 흔적을 찾으려 시도했다. 탁본은 비석, 기와, 기물 따위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종이에 그대로 떠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탁본은 흔적을 채취하는 행위이다. 사진 같은 것들은 전체를 찍을 수가 있지만, 반드시 실물대로 찍을 수는 없다. 그러나 탁본은 간단하게 언제나 그대로의 크기로 뜰 수 있어, 그 본질에 더 잘 표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탁본은 원래 도드라진 부분이 까맣게 떠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작업에서 탁본하는 사물들은 도드라진 부분이 없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탁본이 되지 않는 사물들 탁본하는 행위이다. ●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부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그 안에 갇혀 산다. 그 누구도 지금 사는 시대와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우리는 모두 하나의 틀에 묶여있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하는 작가로서 존재하지 않는 내 자신을 창조하는 행위는 힘들다고 본다. ●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탁본 사물들은 거울(내 자신), 안경(내가 보고 느끼는 공간), 시계(시대)이다. 탁본을 함으로서 사물의 기존 본질은 없어지고 가능을 잃는다. 탁본으로 인해 쌓인 선들은 무의미한 행위의 결과이다. 그 행위를 통해 표면에 묻어 나오지 않은 흔적을 찾아낸다. 내가 속해있는 시간과 공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고 스스로의 흔적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고자 하는 행위를 시도한다. ■ 김재훈

배정윤_Landscape of / 14_캔버스에 유채_145.4×272.7cm_2014

빗금의 풍경 ● 내 작업은 애착이 깊은 '그녀'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죽음이란 단어는 멀지않은 곳에 떠다녔지만, 그저 안개 속에 희뿌옇게 보일뿐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성큼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그녀'를 아슬하게빗겨갔고, 그녀는 아이 같은 울음, 비명, 애원 그 날것의 모습들을 토하며, 혼비백산이 되도록 몸부림쳐 겨우 그것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 때에 남겨진 잔상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무뎌져있는 나에게 구체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죽음은 빗겨갔지만, 흔적으로 계속해서 남아있고, 그녀를 또 다른 곳에 도달하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희뿌연 것이 아닌 형상으로 다가온다. ● 언젠간 도달할 내재되어있는 곳. 여전히 그녀는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나 또한 그렇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는 내가 서있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도달 해있고, 걸어가고 있다. 그 곳은 날 것의 모습으로 이루어져있다. 뒤섞여버린 사진첩처럼 시간과 기억의 파편, 흔적들이 뒤엉켜 있다. 서로 엉키기도 분리되기도 하며 또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 그렇게 우린 조금 다른 곳에 있고, 이는 현실 속 그녀와의 관계에서 나를 삼켜버릴 듯한 수많은 불완전한 덩어리를 낳았다. 그녀를 향한 애착은 그녀와의 동일시로 이어져 끝없는 질문과 두려움의 덩어리를 낳았고, 모순적 행동 - 죄의식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에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 갈 수는 없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그녀'에게 다시 회귀하기 위해 나는 그녀의 풍경 안으로 들어가 관찰하며, 그린다. '이곳'에서 빗금의 풍경을 마주하고 수 많은 불완전한 감정의 덩어리를 관류하면서 분리시키고 새롭게 조합한다. ■ 배정윤

김은혜_시간의 축적_캔버스에 유채_145.5×89.4cm_2014

인간은 끊임 없이 자신의 그릇을 만들며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각자의 그릇을 빚어가고 곱게 치장하기도 하며 아무도 볼 수는 없지만 내면의 자랑거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런 그릇의 모습은 매우 단단해서 잘 넘어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상황 같은 그릇은 아니지만 자신의 기준 또는 다른 이가 보는 기준에 맞추어 최대한으로 살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이것을 쌓는 행위는 어떠한 수행자적 태도와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 그릇을 쌓아가는 그 행위를 통해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 듯한 그릇에 닿은 물의 표면. 이것은 마치 누군가의 땀과 눈물인 듯 하다. 우리는 '퇴보' 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발목이 묶여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위태롭지만 쌓여가는 그릇 속에 상처와 내면의 공허함이 드러난다. 이것을 계속 쌓는 것 은 내적 갈등을 동반한다. 갈등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한 욕심을 보게 된다. ■ 김은혜

Vol.20140619a | Tied time 타이드 타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