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al

정재은展 / JEONGJAEEUN / 鄭在恩 / painting   2014_0618 ▶︎ 2014_0701 / 월요일 휴관

정재은_Structure and speed 02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2cm_2005

초대일시 / 2014_061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에이블 파인 아트 엔와이 갤러리 서울 ABLE FINE ART NY GALLERY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1층 Tel. +82.2.546.3057 www.ablefineartny.com

존재와 부재, 차연에 관한 회화의 혼성곡 ●1. 인간 존재와 부재에 관한 문제는 20세기 이후 모든 예술장르에서 중요한 화두로 꼽힌다. 일예로 인간 존재의 변화가그 존 재를 둘러싼 환경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만약 존재가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관계의 지속성은 유효한지에 대해 묻고 있는 카프카(Franz Kafka)의『변신』이 그렇고, 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자'와 '존재'에 관한 심도 있는 철학적 물음을 담고 있는 주제 사마라구 (Jose Saramago)의『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도 그렇다. 세기말 혹은전후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의 예술은 특히 존재성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아래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 탐구와 그 비극성을 여러 사건을 통해 전개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자문을 구한 장용학의『원형의 전설』은 수월한 탐독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충돌과 조화, 존재성에 관한 의문과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인간 존재와 부재라는 기의는 현재까지도 수없이 많은 예술장르를 통해 단절을 극복해 오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근래 선보인 영화 『공기인형』은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부재, 우리들 내면의 공허함을 건조한 시선으로 세밀하게 그려내고있다. 이뿐이랴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부재한 것을 욕망하며 욕망의 대상이 소유 불가능한 것일수록 방황하게 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물음표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밖에도 인간 존재의 불안과 삶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통찰하며 우울한 현대를 다룬 작품들은 널려있다. 그것을 주요 화두로 일생을 보냈던 예술가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만 봐도 인간의 존재성에 관한 탐구란 시공을 지배해온 주요 의제로 부족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인간자체 내지는 인간 존재와 부재를 미술에서 찾지 않는다면 이는 결례다. 미술사적 맥락에서도 인간 존재와 부재에 관한 문제는 밀도 있게 다뤄져 왔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가장 보편적인 사례로 꼽는 다다(dada)는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폐함과 불안감이 인류의 심리를 지배하면서 그 이전의 문명과 사회체제를 부정하며 촉발된 전방위적인 예술운동이었다. 다다이스트들은 기존의 모든 도덕적 ? 심미적 가치가 무의미한 것임을 밝힘과 동시에 개인의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고, 모든 낙관주의가 그 문명에 의해 파괴되었을 때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당면 과제에 천착했다. 그 대안 없는 끝엔 결국 허무만 남았어도 상상력을 해방시켜 의식에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던 초현실주의(Surrealism)로 이어지며 인간 존재에 관한 사유의 연장을 도모했다. 이는 미술사적 긍정성 외에도 인간 본질에 관한 질의를 유효하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정재은_Structure and speed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cm_2005
정재은_Structure and speed 07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62.2cm_2005
정재은_Interval 101_캔버스에 혼합재료_194×972cm_2010

2. 사실 중세 이후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종교나 합리적인사고, 인간적인 가치들은 때로 인간 존재와 부재 사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원하던 그러지 않던 긍정의 대상이기도, 절대적으로 부정되던 시기도 있었다. 세기말 혹은 전후에 유독 드세긴 했어도 보편적인 주제였다. 앞서도 기술했듯 예술가들은 그것을 스투디움(studium)으로 지정해 각각의 화면에 담았고 글로 대화하려 했으며 영상이나 행동으로 드러내려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동일한 관점의 문제들이 오늘도 연속성을 띠며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아니,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욱 거세지고 있으며 표현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 정재은의 작업 또한 같은 맥락에놓인다고 볼 수 있다. 정재은의 작업은 일차적으로 공간성과 시간성에 국한된다. '공간'이 지닌 유무형의 개념을 관통하고 공간자체의 특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인식 가능한 형상을 지닌 그의 그림 속 건축물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목도 가능하다. 표현의 적시성을 위해 종종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나, 일정한 구조체의 명확성만 보더라도 그의 공간에 대한 탐구는 비교적 솔직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그의 연작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화적 시점에서 진행되는 공간의 재구성이다. 작가의 조율에 의한 공간의 재조립은 근본적으로 재배열과 재해석을 통해 이뤄진다.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하나의 화면에 놓이고 그 표면에 기표들을 얹힌다. 인물과 자연 풍경, 도시적인이미지들을 콜라주로 덧입히며 그 위에 투명하거나 실제로 드러나는 드로잉을 화면 전체, 혹은 부분에 걸치게 한다. 이러한 조형방식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일체를 형성하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타자들에게 익숙하지만 또 다른 층위의 감성을 제공하도록 한다. 여기서 건물들은 시각적 구심점이자 동시에 심행의 구동체(驅動體)로 남는다. 이것은 의미론적으로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탈현실이라는 두 차원을 연결 짓는 실질적 고리이며, 시공의 배열에 따른 '차이'의 증좌이기도 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현재와 과거를 덮는 그리드(grid)와 같다. 그러나 그 내부엔 시간이라는 줄기에 매달린 인간의 역사(관념적-물리적 역사), 인간 존재와 부재의 차이(그는 이를 자크 루이 데리다가 말한 차연이라 표현한다.), 의미와 무의미 등이 이입되어 있다. 사진을 이용한 콜라주 형식의 인물들, 자연과 도시환경의 오버랩, 시간의 흐름과 정지성을 상징하는 다양한 기호들, 그리고 「Structure and Speed」를 비롯한 「Interval」과 같은 연작들의 제목에서 그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구조와 속도, 간극 등을 포함한 '존재증명'과 '부재증명'임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엔 공간과 시간에만 의존한 듯 여겨지지만 그건 일종의 착시요, 그것의 본질은 단순한 시공의 문제나 물리적 흐름 등이 아닌 그것에 녹아 있는 주체, 다시 말해 인간의 존재성과 부재라는 것이다.

정재은_Structure and speed 03_캔버스에 혼합재료_40.9×31.8cm_2005
정재은_Interval 07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12

3.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은 과거 무채색이 강했던 작품들과는 다른 강렬한 색깔들이다. 단조로우면서도 일견 복잡한 건축물과 사물들 사이에서 부유하고있는 이 색깔들은 관자의 시선을 모으도록 유도하는 가시적 장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함의된 내용과 연계된 의도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포괄적으로 존재와 부재에 대한 넓은 암시이며, 동시에 회화적 지층을 뚫고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지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다양한 상징과 언어들을 통해 창의되는 정재은의 이야기들은 결과적으로 '안'과 '겉'의 문제에서 '안'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문명이라는 최대의 배설물(cloaca maxima-라캉)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철학적이다. 또한 그 어떤 것, 그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자기동일성이나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간격의 삽입이'차연'을 형성한다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표현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의 작품들은 분석적이다. 하지만 관련 이해에 종속되지 않는 한 그의 그림들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관계성 모색을 넘어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내레이션하는 지점까지 이끄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원래는 존재했으나 떠나간 사람들, 어제의 시공과 오늘의 시공 간 간극에 따른 여운을 좆기엔 다소 간의 난관부터 넘어서야만 한다. 구조주의적 도식, 강하게 부유하는 컬러, 거대한 폼의 형상, 면과 선의 종횡으로 인해 즉시각적으로 숙지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린 겉과는 다른 내용을 담지하고 있는 그의 작품을 올곧이 이해하려면 의외의 시간을 투자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은의 작업들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약간의 친절한 이해(이해를 위한 방법론은 작가의 몫이다.)가 수반될 경우 그 궁극엔 롤랑바르트 (Roland Barthes)가 말한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읽는 건 그의 그림이 지닌특징이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역설적이게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남는다거나 그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다는 철학자이자 화가 칼릴지 브란(Kahlil Gibran)의 언구를 떠올린다. 화자가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탓이다. ■ 홍경한

Vol.20140619f | 정재은展 / JEONGJAEEUN / 鄭在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