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적 서정성으로 빚어진 조형적 공간과 아름다움

박돈展 / BHAKDORN / 朴敦 / painting   2014_0624 ▶︎ 2014_0731 / 월요일 휴관

박돈_자화상_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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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제11회 이동훈 미술상 수상작가 초대展

관람료 / 성인_500원 / 학생_3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금_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5 5전시실 Tel. +82.42.602.3200 www.dma.go.kr

대전시립미술관(관장 이종협)은 제11회 이동훈 미술상 수상작가인 박 돈 화백 초대전을 오는 6월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개최한다. 이동훈 미술상은 작가이며 교육자로서 대전·충청지역 미술계를 개척하고, 한국 근·현대미술계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고(故)이동훈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자 2003년도에 제정되어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하는 미술상으로, 전년도 11회 수상자인 박 돈 화백의 70년 화업 인생을 한자리에서 이해할 수 있는(50년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작품들은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철저하게 모든 작업의 과정을 생략치 않고 지켜내고 있는 작가정신의 근본을 담 고 있는 치열한 힘의 공간을 전시장에서 느낄 수 있다. "진경(眞景)은 보지 않고 그릴 수 있겠지만 느끼지 않고 그릴 수는 없다"는 박돈 화백의 조형공간은 어느 곳을 그렸느냐는 중요치 않다.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그렸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돈_도심(都心)_1958
박돈_흰탑(塔)의 꿈_1972
박돈_일출송(日出頌)_1992

박돈(1928~ . 본명 박창돈)은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1949년 남하한 실향 작가이다. 평생을 회화에 대한 신념으로 일관하며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해 온 그의 예술세계는 구상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실험정신에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적 정서와 조형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맑고 소박한 심성에 바탕을 둔 서정성 짙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토벽 벽화 같은 느낌이 드는 향토적 화면과 토기ㆍ백자 항아리, 시골 풍경의 소년ㆍ소녀, 초가 등의 소재들로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내는 작가다.

박돈_해변유정_2009

가장 한국적인 그림과 서양적인 그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그 차이를 가장 손쉽게 따져본다면, 흔히 작품의 표현기법이 무엇인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가에 있을 것이며 한동안 그러한 방법론에 따라 한국화와 서양화를 구분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단순구분법으로는 더 이상 한국화와 서양화를 나눠본다는 것이 의미 없는 시대에 도래한 것 같다. 현대 과학의 발달은 모든 영역의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고유한 경계조차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눈 깜짝 할 사이에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감당하기조차 숨 가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미술의 영역 역시 예외일수 없음이다. 평면과 입체가 넘나들며 계속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독자적이고 고유한 예술장르는 허용되지 않는다. 확장된 재료적 사용이나 기법적 측면은 동서를 넘나들며 현란하게 다채로운 조형어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 장연(長淵)에서 시작된 화가의 꿈 ● 박돈 화백은 실향 작가이다. 낭만적인 서도민요, 몽금포타령으로 유명하고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황해도 장연(長淵) 출신이다. 문장과 언변에 뛰어났으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한사코 관리직을 마다하고 굳이 사업가이길 고집했던 아버지 박준규의 9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서 정서적 흥취를 누리며 성장한 박돈 화백은 윤택했던 가정환경 덕분에 모든 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 시절에도 유치원과 초등학교(가톨릭계통의 장연 경애치원, 경애소학교)를 다녔고, 남달리 자상하셨던 아버지였으나 화가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은 허락지 않으셨기에 박돈 화백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화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남몰래 다지며 그 꿈을 키워 나간다. 중학교(재령의 명신중학교), 해주사범 강습과, 해주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해주미술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맞게 된 해방의 감격도 잠시 1949년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산치하에서 벗어나고자 남하하여 자유인이 된 박돈 화백은 남다른 망향감으로 밀착된 조형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향토적 소재를 통한 실향의 아픔과 추억으로 점철된 조형어법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조형세계를 구현하며 그만의 예술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 남하 후 부산에서 활동하며 6. 25를 맞은 박돈 화백은 1954년 서울로 이전하여 국전출품 등 제작에 힘을 기울인다. 1960년까지 국전에서 특선 3회와 입선 5회라는 선전을 거두며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하며 단번에 한국미술계의 정상에 우뚝 선다. 박돈 화백은 1950년대 말, 한국회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창작미협(創作美協)의 창립멤버로 출발하였고, 새로운 구상을 지향하는 구상전(具象展)의 핵심적 작가로 활동하는 등 자신의 회화에 대한 고집스러운 신념과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조형적 세계를 확립하기 위한 끊임없는 모색을 집요하게 추구해 온 작가였다. 박돈 화백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조형적 공간구조는 전체적으로 수직과 수평의 정적인 구도로 고요함과 숭고함이 압도적인 화면을 형성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대략 19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70년대 이후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특히 남하 한 직후 50년대의 시기는 개인적으로도 절망감으로 참담했던 시기였다. 당시 일상의 모습을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조형의 추상성을 실험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힘든 일상의 모습은「자화상, 1954」이란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있으며, 특히 「완철이, 1957」,「백구의 가족, 1955」,「세잔풍의 영주, 1955」,「민둥산, 1956」 등 조형공간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감각적으로 처리되는 배경 덕에 더욱 비중 있게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박돈 화백의 회고적 심정이 이제는 조형적 공간을 넘어서 서정적 관념화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사람, 1957」,「들, 1958」,「도심, 1958」,「밤의 소년, 1959」 등 50년대 후반에 오면서 변화하는 조형적 경향성은 1960년대「초설보, 1960」 이후의 작품들을 예견케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유화가 갖는 특유의 질감과 표현 그리고 실험성 짙은 추상적 제작과정이 보이며 눈사람이나 소년모습 등 구체적 형상은 해체되고 분할된 색면 공간 속에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선적인 이미지로 처리되고 있으나 결국「들, 1963」의 작품에 이르면, 아예 형태감마저 사라져 버리고 기하학적으로 면 분할된 공간 위에 달과 같은 푸른색 형태, 꽃잎, 나뭇잎사귀들과 같은 형상들 사이사이에는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없이 단지 공간 위에 보일 듯 말 듯 한 존재감으로만 남겨진다.「정, 1965」 작품 이후에 나타나는 작업에서는 단일한 톤의 공간 속에 나타나는 망향적 정서가 내밀히 깃든 이미지들이 평면적으로 나열되기 시작한다. 비둘기 혹은 사슴, 말, 황소 등 최근 작업까지 이어지는 이미지들은「숲의 생리, 1968」,「양지, 1968」 등 70년대시기로 오면 차분한 톤의 배경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묻어나는 수직적 구도 속에 확실하게 표현되고 있다.「말머리, 1971」,「흰 탑의 꿈, 1972」,「우공의 휴일, 1973」,「정, 1978」 등의 분위기는 2000년대 작업의 분위기로까지 이어지며 황색톤 중심의 화면을 구성하며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확장된다.「백자의 유정, 1974」,「오리, 1978」,「토기의 고향, 1983」,「일출송, 1992」,「남매의 아침, 2010」 등 일련의 작품들에서 더욱 깊어진 시적인 공간감은 우리를 자극한다. 형태의 존재감은 확실한 구도 속에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질감의 실현으로 마치 한 폭의 수묵화 속에 펼쳐지는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한다. 이제 박돈 화백은 자신의 조형적 공간에서 유화가 갖는 특유한 재료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박돈_인왕호의 일출노래_2013

예술은 인간이 만든 자연이다 ● 서양화가로 출발하였지만 70년대 이후 오히려 동양화가 좋아졌다는 화백은 '화장품 냄새, 향수 냄새가 나는 그림은 싫다', '미는 자연스러움이다'에 있다는 등 스스로의 예술관을 밝히고, 자신의 조형적 공간에서 유화가 갖는 특유의 광택감을 배제시킨다. 물감을 조금씩 묻혀 수십 번이고 칠해서 두툼한 마티에르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박돈 화백은 작업과정에서는 단 한 순간도 편리함을 허용치 않았다. 어떠한 시류에도 타협치 않고 한 순간도 일신을 위해 흐트러짐 없이 작가적 자세를 지켜왔으며,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어떤 상황에서도 내어주지 않았던 그는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내 작품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고, 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며 꼿꼿한 성격을 주저치 않는다. ●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이는 그의 조형적 공간에는 둥근달이 차오르는 듯 우아한 백자나 질박한 멋을 담은 토기의 등장은 박돈 화백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한국미의 근원적인 원천이었음에 틀림없다. 전통적인 한국의 살아 숨 쉬는 정신이 느껴지는 박돈 화백의 조형공간은 이제 시간도 머문 듯 적요함이 가득하다. 고요함 가운데 감지되는 강렬한 힘은 현실에서는 다가갈 수도 움켜잡을 수도 없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박탈감이 탄생시키는 새로운 생명력이다. 작업의 원천적 힘이 되고 있는 고향에 대한 망실감은 이제 민족적 정신과 정서로 거듭 승화되어 서사적 작품으로 탄생하고 있다. 노(老) 화백의 공간은 단지 비어 있는 無의 공간이 아니며,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철저하게 모든 작업의 과정을 생략치 않고 지켜내고 있는 작가정신의 근본을 담고 있는 치열한 힘의 공간이다. 진경(眞景)은 보지 않고 그릴 수 있겠지만 느끼지 않고 그릴 수는 없다. 는 박돈 화백의 조형공간은 어느 곳을 그렸느냐는 중요치 않다.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그렸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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