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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근展 / YANGTAEGEUN / 梁太根 / sculpture.photography   2014_0624 ▶︎ 2014_0715 / 월,공휴일 휴관

양태근_불안정한 생명-흔적들 Unstable life-Traces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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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62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화랑 JEAN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효자로 25(통의동 7-35번지) Tel. +82.2.738.7570 www.jeanart.net

에코토피아(ecotopia)를 향한 여정"유토피아가 그려지지 않은 세계 지도는 힐끗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그것은 인간이 언제나 발 딛고 서 있는 나라 하나를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Oscar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Champaign, Ⅲ: Project Gutenberg; Boulder, Colo: Net Library, 1891, p. 9.) ● 예술은 인간의 삶을 투영한다. 예술가는 자신-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한 시대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에 담아낸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에서 추출한 수많은 기억과 흔적들을 통해 그가 여태껏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계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실재하는 본질적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그것과 구별되는 새로운 현실이자 완전하면서도 형상화된 총체성인 예술 세계가 창조된다. -그것이 예술 내적인 것이든 외적인 것이든 간에-예술가가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세계와 예술가가 갈망하는 이상이 결합된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양태근_꽃과의 동침 Slept with Flower_브론즈_71×29×26cm_2014

양태근은 삶의 흔적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퇴적층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창조하는 작가이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지워진 세상-자연과 자연을 이루는 존재들의 본성-의 흔적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생태학적 인식과 자연 존중의 철학은 작가가 오래 전부터 천착해온 주제이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자연물들과 문명의 산물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작업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작가는 옥시모론(oxymoron)적인 혼종성을 보여주는 세계를 꾸준히 창조해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에코토피아(ecotopia)를 향한 작가의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잊혀진 세계의 흔적을 쌓아가는 작업은 고단한 노정(路程)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영혼이 향하는 종착지를 위한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흔적은 존재-형상-의 부재이자 순수한 현존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에 무엇인가 존재했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현재 그것이 사라졌음을 상징한다. 실제로 오늘날 자연의 자리는 비어있다. 인간들의 세상은 자연을 계속 지우려 한다. 인간은 자연을 완전히 지울 수 없으며, 지울 필요도 없고, 지워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자연을 망각의 지대로 추방시킨다. 이에 양태근은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처럼 부유하고 사라지는 자연의 흔적들을 붙잡아 인간-문명-의 흔적들 위에 쌓아올린다.

양태근_이중자 Deuteron_브론즈, 철_18×62×3.5cm_2012

자연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작가는「불안정한 생명-흔적들」(2014),「흔적」(2014),「터-삶의 구역」(2014)에서처럼 나무, 흙, 산, 하늘, 동물들의 흔적을 만들어 조형화시킨다. 그 중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동물의 흔적을 되찾는 작업들이다. 형상 그 자체가 아니라 형상이 사라졌음을 암시하는 흔적의 형상화는 물질의 세계를 초월하는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손으로 일일이 동물의 발자국이나 화석처럼 변한 동물들의 흔적을 만드는데 이것은 상처받고 추방당한 자연을 어루만지고 치유하고자 함이다. 또한 작가가 인간 삶의 뿌리라 생각하는 자연을 직접 체현(體現)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 자연의 본성을 되찾기를 원한다고 하여 양태근이 자연의 질서를 부정하면서 자연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자연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인간과 동물의 바른 관계에 대하여 고민할 뿐이다. 쉽게 말해 이성을 지닌 인간은 동물-자연-보다 우월하며 인간의 행복과 발전,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적인 정당화를 문제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非)인간 동물(non human animal)은 인간과는 다른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며 소유와 지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것은 물건처럼 사용되고 처분되며 폐기된다. 인간은 동물들을 사육하고, 먹고, 실험의 대상으로 사용하며 심지어 잔인한 오락의 용도로 활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나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과 같은 동물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생존 원리를 벗어난 것이다.

양태근_무의식 세계 2 Unconscious world2_캔버스에 프린트_80×150cm_2014

작가는 오로지 인간만이 행복을 느끼고 즐기며 고통과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물이 위로라는 것을 모른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며, 행복에 관한 의식이 없다고 슬픔이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의 말처럼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독립된 삶의 주체이자 지각적 존재로서 세계 안에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양태근은 타자-동물-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도덕적 감정을 강조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가 만드는 동물의 흔적들은 상흔(傷痕)으로 전이(轉移)된다. ● 상흔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에코토피아의 세계를 향하기 위한 자기 반성이자 치유를 위한 것이다. 숨겨진 상처를 치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작가는 상흔을 드러내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주제, 구체적인 경험으로 눈을 돌린다. 이는 양태근이 추상적이거나 낭만적인, 막연한 유토피아(utopia)적 자연관을 거부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완벽하게 조화된 생태학적 이상향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실상에 대한 명확한 현실 인식과 비판, 개혁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몽상이나 상상, 막연한 향수에 젖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태근_또다른풍경1 Another Landscape1_캔버스에 프린트_80×55cm_2014

"산을 횡단하는 도로에서 / 삵이 죽고 금방 뭉개지면서 희미해졌다. (중략) // 단풍나무 그림자도 함께 찢어졌다가 겨우 머리 일부만 찾았다 / 팔십 센티미터 삵의 길이만큼 숲의 / 어둠도 줄었다 / 로드킬의 길은 / 환기되지 못하는 길에 갇혀 있다" (송재학,「로드킬」,『송재학 시집: 내간체를 얻다』, 서울: 문학동네, 2011, p. 73.) ● 로드킬(road kill)은 동물이 자신의 터전을 벗어나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뜻한다. 로드킬은 가장 완벽하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다. 로드킬은 1970년대 이후 급속히 전개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철도와 도로가 기하급수적으로 건설되며 급격히 증가하였다.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의 모습을 지워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가장 먼저 –땅과 하늘과 바다에-인공의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자연을 더욱 빨리 정복해나갔고 문명을 널리 퍼뜨렸다. 나무는 베어지고 땅을 파헤쳐졌고 야생 동물들은 터전을 잃었다. ● 로드킬은 양태근이 흔적에 집중하게 된 중요한 동인(動因) 중 하나이다. 작가는 로드킬의 현장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 작가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고민하게 되었다. 문명을 상징하는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야만스러운 살생은 과연 인간과 동물 중 누가 더 야만적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일방적인 폭력에 짓밟힌 동물들은 일시에 형태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미한 흔적만 남는다. 그리고 이내 그 흔적도 지워진다. 비단 로드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문명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로드킬만큼 일방적이고 난폭한 폭력이 등장하며 자연은 사라진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로드킬이나 파괴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구체적으로 담지 않는다. 모호한 이미지만 남겨놓은 뿐이다. 그러나 그 희미한 형상에서 나오는 시각적 울림은「분노」(2014),「예전엔 우리들 세상이었지」(2014),「청동 오리들의 집회」(2014)에서처럼 우리를 압도한다. 이 모호한 이미지들 안에는 인간의 폭력으로 사라진 동물에 대한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자연의 흔적이 사라지듯이 언젠가 우리를 포함한 인간 문명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라는 무언의 경고와 연민이 담겨 있다.

양태근_우리들은 어디로...Where we are..._캔버스에 프린트_60×110cm_2014

한편 양태근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신작(新作)에서 사진을 새로운 매체로 선택하였다. 작가는 손으로 동물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빚어냈던 것처럼 사진 이미지를 일일이 겹쳐 흔적 쌓아올린다. 사진은 빛의 흔적이기에 이미 그 자체로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흔적이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명확했던 이미지들은 겹쳐질수록 뿌연 흔적이 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이 흔적들은 사라지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본성을 슬퍼하는 작가의 눈물과 애도를 담아내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생성하고 지속시킨다. 이미지의 중첩은 자연과 함께 했던 인간의 유구한 시간을 함축하는 동시에 눈으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본질적인 이미지와 영혼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적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사회 운동적이고 물리적 현실에만 집중하는 작가로만 규정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양태근은 사회적 교의를 전파하는 작가가 아니라 삶에서 얻어진 다양한 기억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궁극적으로 양태근의 에코토피아는 공존의 가치를 향한다. 공존이라는 단어는 '나'라는 인간과 '너'라는 자연이 함께하는 평등한 관계 속에 함께 하는 '우리'라는, 진부할 정도로 근본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지향하게 이끈다. 운명의 사슬 속에서 세계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인간과 자연의 상호공존이 이루어지는 에코토피아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그것은 지워지고 잊혀진 자연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작가의 손길 안에 이미 담겨 있다. ■ 이문정

Vol.20140624g | 양태근展 / YANGTAEGEUN / 梁太根 / sculpture.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