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윤성지展 / YUNSUNGJI / 尹誠智 / installation   2014_0628 ▶︎ 2014_0716 / 월,공휴일 휴관

윤성지_신자유주의 Neoliberalism_ wood, sound, wall painting, light site-specific installation_오픈스페이스 배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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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14_0628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오픈스페이스 배 OPENSPACE BAE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297-1번지 Tel. +82.51.724.5201 www.spacebae.com

신자유주의를 직면하다 ● 온통 배밭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풍경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오픈스페이스 배에는 창고 형태의 전시공간이 있다. 풍경이란 것이 그렇듯 내가 서있는 곳 보다는 바라보는 곳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여느 시골에나 있을법한 창고 형태의 오픈스페이스 배 전시장은 바라봄의 대상이 될 때 정이 묻어나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전시장 안은 바깥 창이 하나 없어 그곳이 산 속인지 아니면 도심 속 폐허인지 알 길이 없다. 전시장 내부는 거칠게 마감된 빈 창고 형태로 어지간한 설치작품으로는 이 공간의 거침과 어울리기 쉽지 않다. 흥미롭게도 내부를 확인하고 밖에서 다시 바라보는 전시장은 낭만적 풍경이 아닌 외딴 곳에 내동댕이쳐진 소외된 장소로 읽힌다. 윤성지 작가에게 배는 후자의 풍경으로 해석되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산 속 어딘가에 유폐된 오픈스페이스 배. 그러나 고리원자력 발전소로부터 고작 11킬로미터 떨어진 위험천만한 장소. 신자유주의로부터 배제됨과 동시에 그 희생의 경계 안에 들어서 있는 배는 그래서 윤성지 작가의 『신자유주의』전시가 펼쳐지기에 서글프게도 잘 어울린다. ● 『신자유주의』가 펼쳐진 전시장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으로 밀어 넣는 엄청난 사운드는 말 그대로 진격의 폭풍우다. 다른 모든 소리가 묻혀버리는 그 장소에서 나는 어떠한 생각을 할 여지도 없이 '신자유주의'와 'Neo Liberalism'이라는 거대한 텍스트가 마주한 그곳에 위치하게 된다. 각목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트는 전시장 둘레에 80센티미터의 통로만 남겨둔 채 공간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데 틈새로 넘어가거나 발로 차서 부술 수 있는 정도의 바리케이트다. 그렇게 견고하지 않은 바리케이트. 넘어서려면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너머의 공간으로 가고픈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폭풍우가 몰아치는 현장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 공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를 가로막은 바리케이트가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리케이트 끝 어딘가에는 밝은 빛이 가득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둠을 벗어나 희망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벽면을 비추고 있는 몇 개의 전등만 발견할 수 있다. 막다른 길이다. 희망에 대한 희망이 있을 뿐 오히려 절망이 가득하다. 절망에 대한 원망을 내뱉다 다시 주워 담는다. 빛은 빛일 뿐인데 희망으로 오해한 나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작가를 탓할 것인가. 빛을 탓할 것인가. 아님 신자유주의를 탓할 것인가. 결국 나의 어리석음을 탓한다. 시스템에 기생하고 심지어 가톨릭 신자였던 나에게 이런 상황은 즉각적인 자기반성을 촉구한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렇게 전시장을 배회하는 내내 쏟아지는 폭풍우는 건조하게만 다가오던 신자유주의의 의미를 온 몸에 스며들도록 강제한다. 뜬금없었던 텍스트가 강력한 이미지가 되어 나의 뇌리에 박힌다. 벗어날 수 없는 늪에 온 몸이 깊숙이 빠져버린 것처럼. 신자유주의에 직면하자 모든 것이 블랙홀처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 이번 『신자유주의』 전시는 기존 윤성지 작가의 작업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녀의 기존 작업은 일상적 맥락에서 탈출한 텍스트와 현장의 설치물이 만나 산뜻하고 유쾌한 알레고리적 사유를 펼친다. 달리 말하면 구조화되거나 규범화되기 전의 주체가 세상을 날 것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예컨대 Wet wood and others에서 오브제는 일상을 벗어나 움직이고 있다. 젖은 것 같지 않은 젖은 나무와 영문도 모른 채 절단된 소파, 그리고 알 수 없는 글자들로 구성된 캔버스는 정상과 규범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선 공간을 선사한다. 하지만 익히 만날 수 있는 현대미술 작품과 동일 방식으로 배치됨으로써 이 오브제들은 다양한 독해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오브제가 무의미함과 일탈로 무장해 있으면서도 전시공간에서는 일상적으로 소비되어 자연스레 1,2,3차로 의미발생이 파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가볍고, 산뜻하고, 유쾌하면서도, 엽기적인 것 등과 어울린다. 『신자유주의』에서 오브제는 일차적이다. 텍스트도, 바리케이트도, 빛 그리고 소리도 일차적이다. 모든 것이 일차적 의미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관람객에게 쏟아진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직접적이다. 게다가 무겁고 어둡고 진지하고 상식적이다. 그녀는 신자유주의에 짓눌린 채 전시를 체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노골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그 노골적 연출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의미가 지연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신자유주의가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가 과거와 다른 뉘앙스로 수행된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문제를 다루는 데 어떤 수사적 발언이 필요하겠는가. 정확히 문제를 직시하는 것. 냉정하고도 냉정한 태도만이 요청될 뿐이다.

윤성지_신자유주의 Neoliberalism_ wood, sound, wall painting, light site-specific_오픈스페이스 배_2014

그녀가 볼 때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신자유주의'이다. 세월호의 책임을 유병언을 비롯한 국가 정부에 돌릴 수는 있지만 그 근본은 자본의 증식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파이를 키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신자유주의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 신자유주의 세계는 약육강식을 통해 살아남는 그들만의 세상인 것이다. 무한경쟁을 통해 세계 곳곳에 잠재된 자본을 증대시키는 것. 그것만이 목적이다.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확장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고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면서 전 세계의 파이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숫자 놀음판에서 드러난 결과이지 실제 지구인의 삶을 개선해주지는 못했다. 지난 30년간 급속히 증가한 자본은 도시의 인프라 구축과 초국적 기업의 발전에 투자되었지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자본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자본 취득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노동 착취와 자본 취득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소비 착취를 동반한다. ● 한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지 않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결과임을 알고 있다. 원래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증식을 위해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간자본이 그 자본의 증식을 위해 국가권력과 결탁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원리 원칙은 없고 오로지 돈이 되는 것만 쫓는 태도다. 국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이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는 공적 사업을 민영화했다. 민영화와 더불어 생각해할 것은 규제완화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규제완화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민간 자본의 증대에 기여한다는 점이었다. 국가 권력과 음성적으로 결탁한 민간 자본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한국은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나라 중 최악의 사회구조개편과정을 겪고 있다. 문제는 총체적 난국인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 ● 그래서일까. 윤성지 작가는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말 그대로 직면하길 원한다. 절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폭압성을 몸소 체험하길 바란다. 희망 역시 허구이며 절망조차 사치스러운 것이라 읊조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피할 길 없는 비를 그저 맞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맞고 받아들이고 자각해야는 것. 만약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 전시장을 빠져 나오면 된다. 어둡고 침울하고 정신없는 전시장을 나서자 평온한 새소리와 따뜻한 햇살이 나를 맞이한다. 전시장 바깥의 세상으로 나오면 정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시스템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듯이. 혹 그녀는 우리가 새로운 시스템을 상상하길 바라는 것일까. ■ 김재환

윤성지_신자유주의 Neoliberalism_ wood, sound, wall painting, light site-specific installation_오픈스페이스 배_2014

전시장 안은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로 꽉 차 있다. 각목으로 만들어진 가로막들은 80cm 너비의 통로들만 남겨둔 채 전시장 가운데로 가는 길을 막고 있고. 작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맹렬한 빗소리로 채워져 있다. 양쪽의 두 벽면에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의 문자가 쓰여 있다. 빛은 2x6 미터의 좁은 공간 안에서 저희들끼리 불을 밝히고 있다. 설치는 " 직면하다" 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자유주의를 경제정책으로 선택한 한 국가에서,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이 전시의 관객이다. 쏟아지는 빗소리는 나와 당신의 얼굴에 정수리에 사정없이 내려 꽂힌다. 허술한 가로막은 우리에게 쉴 공간을 내어 주지 않는다. 빛은 우리와 관계없이 존재한다.윤성지 ■ 윤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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