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ying flower

김현주_정영한 2인展   2014_0703 ▶︎ 2014_0808 / 주말,공휴일 휴관

김현주_Neo-Flower1406_디지털 프린트에 리토그래피_50×50cm 정영한_Beyond the myth_ed.3_플렉시글라스에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마운트_50×72.7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리나갤러리 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424번지(삼성동 113-3번지) TROA 빌딩 1층 Tel. +82.2.544.0286 www.linaart.co.kr

존재하는,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지평 ●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잡지, 방송, 인터넷까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매체들은 매일 엄청난 정보들을 쏟아낸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아도 밀물처럼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판단과 조율에 난해함을 겪고 매사에 무언가를 결정토록 하는 갈등에 휩싸인다. 문명이 진화할수록 이 역시 심화된다. 이중 특정 또는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시사에 관한 뉴스를 비롯한 정보 지식 오락 광고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인 신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아니 직접적으로 '나'라는 주관이 객관인 타자와 조우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우리를 매개하는 전통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문의 생명력은 대단이 짧아 하루만 지나도 비조직적인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전달하는 대량의 사회정보는 효용성을 잃고 만다.

김현주_Neo-Flower1407_디지털 프린트에 리토그래피_50×50cm

'꽃' 역시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화무십일홍이라고, 아무리 아름다운 자태와 색을 자랑하던 꽃도 열흘을 넘기기 힘들며 애초의 향기는 독한 악취가 되어 부유하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곱다는 양귀비는 물론이고 범접하기 힘들었다던 클레오파트라 꽃 등도 시간의 그늘 앞에선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만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러하듯 유일무이, 영원불멸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술가에 의해 선택되어 미학적 범주에서 피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문을 통해 켜켜이 쌓인 역사의 일부는 레핀의 작품에서처럼 기록화로 전이되고 황홀한 시선과 미감을 자극하는 꽃의 향취는 마치 샤갈이나 모네, 반 고흐의「만개한 밤나무 꽃」과 같이 시대를 가로질러 새롭게 개화한다. 예술의 진정한 진혼은 그렇게 예술가들에 의해 비로소 가치를 부여받기도 하며 죽음이란 없는 영생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김현주_Neo-Flower1409_디지털 프린트에 리토그래피_50×50cm

김현주의 작품에는 공교롭게도 전혀 다를 것 같으면서도 동일점을 발견할 수 있는 꽃과 신문이라는 두 소재가 하나의 화면에 녹아 있다. (어떤 작품은 공간을 배경으로 떠 있고 또 다른 작품은 도시와 같은 배경을 뒤로한 채 폭넓은 내레이션을 함축하고 있다.) 꽃과 신문은 투명하게 교차되면서 꽃이거나 신문이거나, 혹은 전혀 다른 차원의 그 무엇이 된다. 꽃과 신문이 하나의 프레임에 안착됨은 일차적으로 작가 내부에서 발화된 의식이 단순한 소재주의, 재현을 벗어나 생명의 영원성과 같은 의미론적인 서사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드러낸다. 감각적인 꽃과 삶의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신문의 교집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내용의 확장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주도면밀한 사실주의적 기법 덕분에 시각적 명료함을 더하지만 상식적이지 않는 것들의 합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이차적으로 초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다소 판타지적인, 환각적인 장면을 연출함은 이러한 유추를 확신으로 치닫도록 만들며, 특히 현실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구성, 논리를 거부하는 조합,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의 중첩 및 결합은 확정의 단계를 불허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 감지되는 가장 큰 특징은 그게 어떠한 이론을 뒷받침으로 하던, 장르가 판화든 회화든, 디지털이든 수작업이든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던, 우리들의 평소 의식하지 않던 개별적 궁극의 단면을 들춰내거나 자극한다는 사실에 있다.

김현주_Neo-Flower1410_디지털 프린트에 리토그래피_50×50cm

김현주는 평범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읽혀지는 고유함 너머에 존재하는 인식, 교육과 경험과 사례로 고착된 이미지에 대한 이율배반 혹은 완전한 순응을 작품 내부로 끌어들여 전위적 방식으로 펼쳐냄으로서 다분히 정신적인 데칼코마니를 생성해낸다. 고정불변한 두 사물, 즉 신문과 꽃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념을 뒤바꿔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즉 현실에서 초현실적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결과는 시간의 유한성과 풍요로움, 동일률을 근본원리로 하는 형식논리, 즉 고찰된 상관성과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일종의 변증이랄 수 있다. ● 신문이 일상의 무미건조하고 비극적인 삶의 단락들(미담보단 확실히 아픔이 많은 게 신문 아니던가.)을 나열한 것이라면 꽃은 사람들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소망이나 꿈 등과 구체적으로 연관 지을 수 있다.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작가는 이를 특정한 상관으로 구성하곤 동시대적인 삶의 특정성과 현대인의 일상성의 문맥 속에서 꽃과 신문의 존재의미를 되묻는다. 신문의 활자와 내용이 전하는 공해, 꽃이 지닌 아름다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 이면에 놓인 감각의 간극이 그의 작품으로 인해 다시 피어나 조명된다. ■ 홍경한

정영한_Beyond the myth_ed.3_플렉시글라스에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마운트_50×72.7cm_2014

나의 작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기 충분하지만 관객들이 던지는 질문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소재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마도 직관적으로 볼 때 나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인식되는 것이 바다풍경, 꽃, 신문과 같은 소재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가운데 바다풍경은 가장 많은 관심과 질문을 받아왔다. 나에게 있어서 바다를 그리는 특별한 이유, 예를 들면 향수 또는 사연과 같은 것들은 없다. 사실 물과 바다는 지금까지의 작품제작에서 늘 다루어졌던 소재이기에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작품에는 일종의 패턴처럼 표현되는 배경이 존재하는데, 과거에는 도시풍경을 백그라운드로 표현했었다면 지금은 바다를 선택해서 쓰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도시와 문명에 대비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력과 시대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우리時代 神話」이전의 작품에서도 바다가 그려진 경우가 있는데, 그 때에는 아주 작은 부분으로 그려졌다. 예를 들면, 상자처럼 만들어진 화면의 부분이나 디스크의 표면, 모니터의 화면에 묘사됨으로써 바다가 가지는 상징성을 강화시켰는데, 도시를 사는 현대인들의 건조한 삶의 환경에 대비되는 수분, 물기를 머금은 자연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 따라서 문명과 자연, 도시의 이미지를 통해「現代-21世紀 風景」시리즈를 만들어 냈다면, 최근「우리時代 神話」시리즈에서는 기존의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존재했던 물과 바다의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보다 확대된 시각적 존재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의 속성과는 엄격히 다르다. 비록 잘 그려진 바다의 풍경위에 사진처럼 전사된 꽃 이미지나 흩날리는 꽃잎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낭만적인 시각경험의 첫인상을 남기게 되지만, 이러한 황홀한 시각경험 이후에 던져지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질문들이야말로 나의 작품으로부터 유발되는 본질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풍경이미지 위에 돌발적으로 삽입된 꽃의 이미지는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 것인가? 왜 꽃인가? 어째서 바다인가? (...)

정영한_Beyond the myth_ed.3_플렉시글라스에 디지털 프린트, 페이스마운트_50×72.7cm_2014

나의 작품을 세밀히 관찰해보면 사실적으로 그려진 바다의 표면이 너무나도 인위적으로 평면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일정한 패턴과 색감의 차이, 조금씩 커지는 주름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마치 친숙한 바다의 물결처럼 보이지만 겹겹의 주름들은 그리는 과정을 통한 시간의 누적, 기법적 특성으로 인한 시대적 요소, 그리고 가공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조작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은 결국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오늘날 이미지보기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기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대상을 조작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듯이, 나의 작품에서 바다의 모습은 회화적 매체로 편집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 오늘날 우리는 실제의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현실이 갖고 있는 색채와 우연한 형태보다도 인공적인 색채와 형태가 적절히 조합되어 출력되어진 사진이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본 대자연의 과잉된 시각적 가상체험에 압도당하기도 감동받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환경 속에서 오늘날의 관객들이 나의 작품 속에 그려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다와 자연 이미지를 통해 잠재된 자연의 실재감을 복원하고 그것이 주는 쾌감을 획득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나는 바다의 형태나 색채를 캔버스에 구현할 때 실제의 바다를 보고 베껴 그리거나 자연의 색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조와 등장하는 소재, 표현하려는 감성에 조화를 이루는 색감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한다. 또한 실재감을 부여하기위해 명료한 명암대비나 극단적인 원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색이 갖는 상징성에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관객들이 회화의 개념을 중성화 시키고 관조적인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를 가진다면「우리時代 神話」에 표현된 바다색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영한_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3

나의 작품에 그려지는 소재들은 모두 회화적 편집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 그것이 가진 고유성에 대한 흥미나 외형적 특성은 나에게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 또한 굳이 희소성이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자 애쓰지 않는데 소재가 특별하다고 해서 작품이 좋아 보인다거나 특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경우에는 친숙한 소재들을 작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더욱 의미를 둔다. 작품을 통해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회화가 줄 수 있는 커다란 시각적인 즐거움이다. 또한 작품 감상을 통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소재 즉 회화적 장치에 의해 여러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작가의 내면과의 만남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넘어서는 여운을 남기도 한다. (일부발췌) ■ 정영한

Vol.20140703d | undying flower-김현주_정영한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