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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백展 / LEEHWABAEK / 李畵伯 / painting   2014_0711 ▶︎ 2014_0731 / 월요일 휴관

이화백_m-15_캔버스에 유채_40×8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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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칼리파 갤러리 Khalifa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 201호 Tel. +82.2.516.9643 www.khalifagallery.com

세상은 우리들의 기대와는 다른 곳이다, 적어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우리들이 그런 믿음을 갖기를 기대한다. 미술의 형식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에 제기되는 질문들의 해답을 요약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에게 어떠한 질문도 허용치 않으며 그러한 질문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오로지 사물과 그에 따른 흥분된 느낌만을 시종일관 추구할 것을 주장한다, 또는 과거와 현재를 어우르는 상호소통의 역할에 무게를 두어 미래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의 현재의 모습만을 강조하는데 과거를 돌이켜보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위풍당당하게도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낙천적 묵비권사용과 그 어떠한 유토피아적 환상보다도 높은 성역을 꾀하여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의문에 대한 질문 자체를 금기시하기에 이르렀다, 최소한 이 시대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약속한 만족만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너무도 즐겁고, 근심걱정 없는, 우리에게 어떠한 목적, 욕구를 벗어나도록 면제 부를 줄 것이며 그 결과 우리의 자축할만한 성격변화를 기대한다.

이화백_the bigger ring_캔버스에 유채_80×160cm_2013
이화백_artist_s studio # 2_캔버스에 유채_100×120cm_2000
이화백_ballet # 3_캔버스에 유채_120×100cm_2000

이화백의 최근 작업들을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완전히 부질없는 과제라는 것을 인식한 듯 끊임없는 작업의 발전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최근 그림들은 냉소적 도용이라는 속임수에 빠진 듯싶다, 이제 모든 이들에게 완전한 행복의 고유명사인 텔레토비를 마약, 술, 강력한 기관총으로 뒤섞고 덤으로 가볍게 성모 마리아의 젖을 더듬으며 나란히 마네와 라파엘 , 그리고 러시안 사회주의 미술을 어우른다. 우리의 마땅한 권리로써 최근 이화백의 작품들은 Mark Tansey의 작품이 갖는 미숙한 모사 내지는 모호하게 과장된 도용과도 같다고 치부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문제제기는 그의 작품들이 갖는 요점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며 더 많은 인상적인 요소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화백의 작품은 지루하게 참호 속에서 자기방어에 급급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오히려 새로운 영역을 공격한다. 우리들에게 뚜렷한 주목과 호의적인 비평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정확히 의도된 불안정한 구성연출과 현실과의 뭉툭한 거리를 유지이며 우리들로 하여금 편협하고 절단된 문화로부터 눈 돌리고 싶도록 미술 개념의 확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고려된 색다른 요소가 드러나는데 그의 그림들은 2가지 상반된 위치에서 작용 한다 - 관람객들이 가장 싫어할 순종적인 어린이 프로그램을 건드리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현대의 우리들에게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욕설일수도 있고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에게 저급과 고급간의 간격에 선 긋기가 부질없다는 결론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이화백_ballet# 3_캔버스에 유채_100×110cm_1999
이화백_bar# 2_캔버스에 유채_80×100cm_1998
이화백_bar# 3_캔버스에 유채_100×110cm_1998

앞서 보이는 이화백의 그림들은 현대와 과거 사이에서 위험한 협상을 통해 인상적인 해답을 끌어내는데 초기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명백하게 재등장함으로써 미숙하고 요란한 현대문화와 과거의 훌륭한 결과물 사이에서 그의 작품은 극단적 뒤섞기와 원작의 존경이라는 반대되는 양식을 재구성한다, 아니면 정확히 그 반대일수도, 그리고 우리가 촌스런 과거에 몰두해서 현대문명의 최상품을 지나치는 건 아닌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푸마토 기법에 대한 논의보다 그의 작품을 처음보고 떠오르는 유쾌한 오~호 의 어감이 갖는 운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낳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 이화백은 어떠한 대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그 점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수수께끼 같은 곳에서 이화백은 재치 있는 응수를 하고 있다. 이화백의 작업은 여러 가지 미술경향들 위를 배회하며 어떠한 요구에도 냉소적 대응을 보인다, 아름다움과 고약함의 공존으로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뒤흔들고 더 나아가 우리의 무능한 판단과 무능한 변별력을 새삼 확인 시키는 미묘하지만 도덕적 고찰의 힘을 발산한다. ■ Scott Contreras-Koterbay

Vol.20140711a | 이화백展 / LEEHWABAEK / 李畵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