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unk 덩어리들

변대용展 / BYUNDAEYONG / 卞大龍 / sculpture.installation   2014_0614 ▶︎ 2014_0915

변대용_누워 있는 사람_FRP. 레드퍼티_205×701×303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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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4_0614 ▶︎ 2014_0810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미부아트센터 MIBOO ART CENTER 부산시 서구 암남공원로 82(암남동 616-4번지) Tel. +82.51.243.3100 blog.naver.com/artmiboo

2014_0815 ▶︎ 2014_0915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휴관

홍티아트센터 HONG-TI ART CENTER 부산 사하구 다산로 106번길 6(다대포동 1608번지) Tel. +82.51.263.8661~3 hongti.busanartspace.or.kr

경계와 복선의 이중주, 시각인지 너머 의미로의 과정-변대용, 동시대 삶과 예술의 층위 읽기1. 예술 작품의 아우라는 이제 작품 자체나 작가에 의해서만 형성되지 않는다. 보는 행위와 밀접한 예술에 있어 개념의 물질화는 그 자체로 미적가치를 생성하는 중요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바로 그 장소에서 형성되는 예술의 사회적 수용, 현실과 지속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할 때 비로소 당대 예술의 가능성은 올곧게 지정된다. 이는 예술이 현실로부터 이탈된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일정한 상호 속에서 얽히고설킨, 무한의 그리드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 과거와 달리 동시대미술은 세계의 다양성이 일시적, 유토피아적, 역동적이면서 불확실하게 혹은 복잡하게 재편되는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성적 가치 판단을 넘어 사유와 감성의 근간이 되거나 선대 예술이 남기고간 기념비적 작업에 근거한 문제들을 직시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처럼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예술 및 예술행위의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흐름에 있어 특정한 상태에 안주하는 양태보다는 훨씬 가볍지 않은 미학적 분동을 내재하고 있음엔 틀림없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이든 그 시대에 맞는 예술형식과 내용이 있고, 낯섦과 새로움이란 늘 그러한 방향에 시선을 고정시켜온 이들로부터 발현되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시각의 안위에 만족하지 않은 채 일부분에서 과감한 변화를 내세운 변대용의 이번 전시 '청크(Chunk)-덩어리들' 전은 변주의 폭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 시대의 한 단면에 주목해온 특유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예술이란 즉시각적 인지보다는 '의미로 이끄는 과정'임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신선한 진화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변대용_누워 있는 사람_FRP. 레드퍼티_205×701×303cm_2014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누워있는 사람」(2014)이다.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인체형상의 이 작업은 여러 덩어리로 분할되어 있는 만큼 각기 다른 인간 삶의 처지와 환경, 위치를 가늠케 한다.(개념상 교합과 분할의 이중주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습에서 작가는 고의적으로 다양한 층위의 해석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설정해 놓고 있으며, 이는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작가의 해설을 누락 혹은 부재시킴으로써 되레 자유로운 해석의 여백을 던져준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누워있는 사람」은 타자 간 각기 다른 사고와 기억, 상상이 이입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완성되는 작품이랄 수 있다. ● 또 하나 시선을 고정시키는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인간 신체이미지를 이어 붙인 「연결된 금빛」(2014)이다. 이 불규칙하고 거친 트로피모양의 황금빛 조각의 집합은 레지던시 참여 작가로 몇 개월 간 미얀마에 머물 당시 받은 영감을 밑동으로 한다. 온통 금빛 찬란한 파고다로 뒤덮인 미얀마에서 생활하며 받은 느낌을 투박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 외피라면, 조용한 불교의 나라가 개방물결을 타고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의 함축은 그 내부에 침전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포된 의미 중에는 개발에 따른 욕망의 가시화, 경제발전에 의한 성공에 대한 열망,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고 체감되는 경쟁의 심화(이기고 눌러야 살 수 있는) 등이 고루 들어서 있다. 작가는 이를 치열하게 맞물린 형상과 성과의 부유물인 황금색을 통해 상징화 하고 있다.

변대용_연결된 금빛_오브제_500×140×90cm_2014
변대용_연결된 금빛_오브제_500×140×90cm_2014

2. 「누워있는 사람」과 「연결된 금빛」은 사실 작품의 내용에 앞서 오늘날 변대용의 예술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으며 산출되고 촉진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열려진, 특정한 구속(팝아트적 이미지, 예쁘고 상업적인 여운 등등)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실행적 리얼리즘(Operative Realism)의 한 측면을 염두에 두도록 한다. 즉, 귀엽고 단아한 느낌에 머물던 기존 표현방식에서 이탈해 고정적이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의 사실을 바꾸거나 그 사실에서 자발적으로 탈바꿈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작가적 의중이 담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타 작업들과 차이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런 차원에서 이 두 작업은 작가 개인에게 모험이자 흥미로운 시도였을 것이며, 그 결과는 다행히도 긍정적 단언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참다운 예술가란 다른 무엇이 아닌 언제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채찍질하며 담금질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며, 안주가 아닌 능동적 변화와 전이가 진정한 변천의 촉매가 될 수 있는 탓이다. 변대용은 이 부분의 수용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그러나 변대용의 근작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와 사회체계의 불균형이 인간의 관계를 폐색토록하고 단절해왔다는 절대적 인지 아래, 인간 삶의 구조성을 직시하거나 해체시키는 포괄적인 시도를 놓지 않고 있다. '캐릭터로써의 시각물'이라는 낯익은 접근을 허용하는 듯싶으면서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오늘날의 물질우상을 역설적으로 이미지화 하고, 그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네 삶과 연관된 다양한 맥락을 훑고 개입하는 언어를 지속적으로 펼쳐낸다. 사물, 관계, 유추사이의 가장 깊고 신비스러운 관계를 묻는 상상 또한 여전히 폭넓게 혹은 유유히 부유한다.

변대용_빛의 3원색_FRP. 포맥스, 자동차 도색_60×60×6cm_2014

일례로 작품 「고양이」(2014)는 무리에서 빚어지는 집단 내부의 지양적 상호성, 필연적 우열 등에 관한 비판적 시선의 결과물이며, 「빛의 삼원색」(2014), 「색의 삼원색」(2014)은 눈에 보이진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관계에 대한 직시와 불완전한 미래 그리고 삶의 불평등을 잇고 교합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불편함을 시각 너머로 이끄는 작품이다. 이중 「고양이」는 「화면조정시간」(2011)이나 「메두사」 연작에서처럼 사회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무리와 개인의 상관성, 소외와 고독, 무관심과 소통의 부재를 담아내고 있다. 아무런 의식 없이 나를 제외한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당대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종국엔 나 자신마저 소외라는 틀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비판, 경고한다. 「미키 & 키티」(2009)나 「하얀 미키」(2010)에서의 여적은 이번 작품에서도 균등하게 묻어난다. ● 이와 함께 「화면조정시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부조 「색의 삼원색」과 「빛의 삼원색」은 작가의 말마따나 "긍정과 부정, 삶의 윤택함과 그렇지 못한 미래에 대한 비전과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비유"를 담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집합‧교집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형태로서의 작업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형식상으론 매체에 의해 매개된 지각, 미술적 맥락의 투영으로 또 다른 관점(사상과 개념을 통해 현실을 읽어내고 대화를 통해 발전되는 철학적 양상의 짙음 등)의 시도가 일궈지고 있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이밖에도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냉혹한 현실을 팝 이미지 뒤에 숨겨 놓고선 은유적으로 발언하고 있으며, 관계의 미학을 공감의 미학으로 치환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 '청크(Chunk)-덩어리들' 전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대용_명도 9단계_FRP. 자동차 도색_36×366×36cm_2014
변대용_명도 9단계_FRP. 자동차 도색_36×366×36cm_2014

3. '청크(Chunk)-덩어리들' 전에 소개된 작품들은 각각의 분리된 덩어리를 통해 개별적이며 교류적인 마이크로 커뮤니티를 원천으로 하는 국지적인 대화를 생산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전후사정 안에서 이뤄지는 상호관계를 언급한다. 한편으론 심미적 조각의 식상한 한계를 스스로 이탈하며 단순한 공간 속 오브제 이상의 사회적 기능으로써의 예술성을 견지한다.(필자는 이 부분이 특히 흡족하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 물론 「누워있는 사람」이든, 「연결된 금빛」이든 이들 작품은 공히 우리네 삶 속에서 느끼는 인성의 황폐화, 문제의식 없이 수용되는 비이타성,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이질감을 담아내고 있다. 때문에 우린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진정한 불편함을 촉발시키는 메시지에서 대동소이한 입각점을 발견한다. ● 특히 삶의 내외적 양태를 묻고, 나와 다른 대상과 융합되며 실질적, 인식적, 감각적으로 관계 맺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기 폐쇄적인 현상에 대한 자문 역시 같은 등선을 그린다. 다만 개별적이며 동시적이고, 동시적이면서 개별적인 양태를 명징하게 지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각각의 작업들에게 '따로 또 함께'라는 거푸집을 설계토록 유도하고 현실을 기저로 한 우리사회의 당면 문제들과 그 문제가 잉태한 관계적 부산물들을 예술을 통해 드러내며 주체적, 우회적인 방식으로 다가서 재해석하고 해체 및 분석해 공명의 틀을 구축하려 함은 이전 작품들과의 변별점으로 꼽힌다. 물론 그 축조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유가치한 일이다. 이번 전시처럼. ■ 홍경한

Vol.20140714a | 변대용展 / BYUNDAEYONG / 卞大龍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