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혼, 곡. Requiem

오종은展 / OHJONGEUN / 吳宗恩 / painting   2014_0716 ▶︎ 2014_0722

오종은_Requiem-2014_혼합재료_가변설치_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정림리 갤러리)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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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은 블로그_blog.naver.com/hohocand

초대일시 / 2014_071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감각이 유영하는 공명(共鳴)의 공간 ● 얼핏 보면 꽃을 닮은 듯하지만 다시 보면 물고기 같기도 한 생물, 현미경 아래에 헤엄치는 미생물이나 세포 조직, 혹은 식물 줄기나 잎 같기도 한 형체들이 화면 여기 저기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 유영하는 형체들은 물거품이나 빛 같은 배경에 둘러싸여 있으며, 얇은 표면 같기도 하고 깊은 공간 같기도 한 배경 속으로 스며 들어가거나 거기서 나오고 있는 듯 보인다. 오렌지색의 불꽃처럼 작열하는 붉은 물감의 폭발이 검은 화면을 가로지르거나 푸른색의 거품들이 겹겹의 물감 층 속으로 용해된다. 깊은 바다 속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 물방울들이 공기 속에서 터져 작열하는 빛 속에서 용해되는 듯한 화면. 누에고치 같은 껍질 속에서 솟아오르거나 식물 넝쿨처럼 뻗어가는 줄기 끝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얼굴들. 화폭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물감층의 흐름은 물방울이나 잎사귀 아니면 세포처럼 보이는 형태들을 감싸며 흘러내리고, 화면에 번진 회색빛 물감의 층 아래에서 분홍빛과 붉은빛의 밑색이 스며나온다. 번지기, 흘리기, 겹치기와 같은 우연의 효과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감의 분방한 방향성과 자유롭게 출몰하는 형체들의 리듬이 오종은 작품의 첫인상을 만들어낸다. 연필, 아크릴 물감, 유화 물감 등 다양한 재료가 만들어내는 겹겹의 빽빽한 층은 밀도와 두께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가볍고 빛나는 표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면에 여러 재료의 안료를 겹쳐 칠했는데도 두터운 마티에르의 물성만이 아니라 반짝거리는 베일처럼 얇은 표면 효과가 만들어진다. 캔버스의 전면으로 진출하는 듯한 평면의 느낌과 뒤로 확장되는 듯한 깊이가 공존한다. 하지만 이 깊이 있는 공간은 일루전적인 재현의 공간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의 두께로 체험되는 공간이다.

오종은_소라의 스토리 counch's story-2014_코튼, 에나멜 페인트, 자연광_127×127cm_2014
오종은_나를 잊지 마세요 Don't forget me-2014_유리, 운동화, 에나멜 페인트_130×100×80cm_2014

추상적이거나 반추상적인 작업을 주로 하지만, 작가 오종은은 자신의 작품이 환경 문제나 정치적 사건 등 여러 가지 사회적 관심사에서 촉발되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사회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등장시키는 대신, 질감과 터치, 색채와 같은 조형적 요소들로 구성된 은유적이고 환상적인 공간과 그 속을 유영하는 낯선 형체들을 창조했다. 현실을 구성하는 사실적 요소들이 작품 속에 복사되듯이 찍혀야 한다면 미술은 현실의 중복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종은의 작품은 예술에 표현된 현실이 언제나 '체험된 현실'일 수 밖에 없으며 이 체험된 현실의 장소로서의 작품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생명력과 존재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과 현실이 연관을 맺는다는 것은 두 가지가 기호와 지시대상으로서의 일 대 일 관계를 형성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종은이 만들어내는, 꿈과 무의식의 공간으로서의 작품의 장소는 오히려 현실과 일종의 '탯줄'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탯줄은 영양소를 공급하며 생명의 지속이라는 절대적 조건을 통해 외부와 내부를 연결시킨다. 이 탯줄을 통해 현실과 내면 사이에 세워져 있던 견고한 대립의 틀은 녹아내리고, 세계 속에 주관적 감각들이 풀려나며 현실의 엄혹함과 꿈의 유연함은 혼합된다. 작품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상투적인 주장은 나와 무관한 '현실 그 자체'란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는 자각의 지점에서 힘을 잃는다. 탯줄로서의 캔버스는 일종의 전이지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은 현실과 대립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뛰어넘는 공간이다. 오종은의 작품이 이런 전이와 변형을 지향하고 또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그의 작업이 단지 주관적인 암호에 머물지 않고 어떤 식으로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소통을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감이나 소통은 어떤 명료한 기호를 매개로 하는 의미나 개념의 주고받음이 아니다. 그것은 공통의 경험이나 감정에 바탕을 둔 감각 혹은 정서의 소통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달되는 어떤 의미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떤 감각이 다른 사람에게 추체험되고 공명되는 것이다.

오종은_Life of p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1.5×194cm_2014
오종은_chair_종이에 혼합재료_38.5×27.5cm_2012
오종은_music of the sea_캔버스에 혼합재료_111.7×162.3cm_2011

오종은의 작업에서 이러한 추체험 혹은 공명은 서두에 언급한 '유영'이라는 단어에 의해 잘 대변된다. '유영'은 유영하는 형체와 그것을 실어나르는 매질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오종은의 작업이 갖는 추상성은 혼돈이나 침잠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형체와 배경의 상호침투 혹은 혼합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형상이 질료 속으로 해체되고 또 다시 질료로부터 형상이 빚어진다. 이러한 유영의 느낌을 우리는 작가가 2010년의 개인전에 붙인 '몽실몽실한 꿈'이라는 제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몽실몽실하다는 것은 '통통하게 살이 쪄서 매우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느낌을 주는 모양' 혹은 '구름이나 연기 따위가 동글동글하게 뭉쳐서 가볍게 떠 있거나 떠오르는 모양'을 뜻한다. 구름송이나 세포들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며 뭉쳐졌다가 다시 풀려나는 움직임, 이것은 상호영향에 의한 변형의 작동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종은이 만들어내는 꽃이나 식물, 혹은 세포 같기도 한 낯선 형체들이 어떤 현실적 지시대상을 일 대 일의 대응으로 지시하는 기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화면을 누빌 때에도 이 형체들은 브랜드나 트레이트 마크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 형체들은 기호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성을 가진 생명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은유는 작가가 회화 이외에 병행하는 사진작업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사진 작업은 주로 연작의 형태를 띤다. 파도에 발을 담그며 모래를 밟고 있는 발을 찍은 사진들, 혹은 작가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연작 사진들이 그 예이다.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지워지는 모래 뒤의 흔적이나 그림자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은유 같은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조금씩 변형되고 또 환경에 영향을 주는 변화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이미지이다. 형상들은 배경 속으로 조금씩 녹아들며 또 그 배경에서 출현한다.

오종은_don't trust her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90cm_2011
오종은_where are you going3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12×194cm_2012

유영, 공명, 변형이라는 키워드는 매체를 대하는 작가의 기본적인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통상적으로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유사한 재료와 구성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색채 역시 한정된 주조색을 기본으로 조금씩 변형하거나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 흔한 방식이다. 그러나 오종은의 경우는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 있다. 재료나 구성, 형태나 색채, 모든 면에서 어떤 원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다채로운 표현이 나온다. 우연을 수용하는 직관적 방식, 흘러가는대로 그리는 방식이다. 드로잉이 색채와 섞이고 형상이 추상과 혼합된다. 작가는 추상이라는 형식에 대한 고집을 갖고 있지 않다. 때로는 깔대기 속에 눈알 모양이 보이고 꽃 속에 얼굴이 보인다. 마티에르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얇은 흑백의 드로잉에서 물감의 두꺼운 물성으로 쉽게 건너간다. 아크릴과 유화물감을 섞기도 하고 그래픽과 같은 단순한 구성이 세밀한 묘사와 함께 사용된다. 자를 대고 그은 기하학적 형태들이 손으로 그린 자유분방한 형체들과 겹쳐진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직선의 들이 경쾌하게 둥근 형태와 맞물리지만 이 맞물림은 엄밀한 구조적 조형성에 근거한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들끼리의 순간적이고 우연한 만남이라는 느낌을 준다. 화면의 곳곳에서 서로 마주친 기하학적 도형들은 정중동의 상태 속에서 진동하는 듯 보인다. 오종은의 작업은 이렇듯 특정한 양식을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얼핏 특징을 잡아내기 힘들고 눈에 확 띄는 강한 인상이 부족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채로운 특성은 그의 작품의 최대 장점이다. 오종은의 작업에서는 직관적 체험의 흐름을 고정된 기호나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포착하려는 여유로운 태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장점은 표현력의 기술적 완성도를 더욱 높임으로써 더욱 연마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조선령

오종은
오종은

멀쩡히 살아 돌아와야 할 아이들 몇백 명이 어이없게 허무하게 수장돼 죽었다. 아무리 사고라지만, 눈만 뜨면 떠오르는 끔찍한 현실. 어른들의 이기와 무책임으로. 틈 생긴 둑이 터지기 시작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많은 것으로 그들은 말할 것이다. 얼마 전 지방 레지던시 작업실에서 서울로 올라와 추모제를 다녀와, 지방에서 내내 편치 않던 알 수없는 죄책감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갑갑한 맘 감출 수 없었다. 우릴 돌아보자. 우리도 사회나 삶에서 나보다 약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를 내치며 본의 아닌 살인과 같은 언행을 한 적 없는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처럼 우리도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살인을 한 적 없는지. 그렇다면 우리들도 그들과 다름없다. 무기력한 날들이 전 국민들의 마음처럼 어둡고 침울하게 지나갔다. 예상했던 생존자는 없었고 정부의 늑장대응은 최후의 참사를 낳았다. 한동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죽은 느낌 이였다. 계속 침울하고, 무기력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언젠가 쓸 설치를 위해 지하실에 둔 큰 나무상자를 꺼내 사포질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작업으로 말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 힘이 너무 미약하여 세상을 뒤집을 수 없으니, 나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부터가 변화하지 못하면서 누구 탓하자니 더 원통하기 그지없었다. 작품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혼란과 고통을 표현코자 한다. 무슨 이야기든 말하고 변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길 미약하게 바래본다. ● 어두운 죽음의 빛깔은 모든 사물을 정지시키고 물속을 떠다니는 물체를 유영하듯 공기 속에 존재한다. 왜?! 이런 상황이여야만 했는지 우린 또 돌아보고 반성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희망이 없다. 나 또한 갈 곳을 잃은 듯했지만, 눈을 크게 뜨고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살아있는 동안 볼 것이다. ● "아이들의 엷은 노래는 소라속의 검은 피 속에서 빛으로 환생해 날아갈 것이다. 그들의 여린 영혼이 아프지 않게 조용히 침묵의 진혹곡을 난 나지막이 부를 것이다." ■ 오종은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그 분들께 이 전시를 바칩니다.

Vol.20140714d | 오종은展 / OHJONGEUN / 吳宗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