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력』 Errantry

제4회 Peep!展   2014_0724 ▶︎ 2014_082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0724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권동현_김기범_김한울 김혜리_백경호_우찬송_홍지훈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송원아트센터 SONG WON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5(화동 106-5번지) Tel. +82.2.735.9277

「세르반테스의 위대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주제에 관해서는 수많은 글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는 이 소설에서 몽롱한 이상주의에 대한 돈키호테의 합리주의적 비판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다. 또 다른 글들은 이 소설에서 바로 이상주의 자체의 환호를 보기도 한다. 이러한 해석들은 소설의 근본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편향을 찾아보려는 것이기 때문이 모두 다 낡아 빠졌다.」 (밀란 쿤데라,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권오룡 옮김)에서) ●『편력』이라 지은 이 전시의 제목은 세르반테스가 그 행적을 기록한 위대한 편력기사 돈키호테에 대한 오마주다. 이번 전시는 송원아트센터에서 2007년부터 열어 온 『Peep!』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서 기획되었다. 『Peep!』은 신진 작가들을 조명하고 동시대 미술계에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젊다든가, 신진이라든가 하는 수식어는 특히 미술계에서는 쓸 때마다 적용 범위가 애매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번 전시의 출연진은 학부를 갓 졸업한 이들까지 포함하는 여지없이 젊은 작가들이다.『편력』은 이 전시가 그들의 작업에 주목한 이유를 나타낸 말이기도 하다. 서문을 빌어 그 의미를 설명해 보려 한다. 이는 작가들 못지않게 제도적 입지가 불안정한 무명의 젊은 큐레이터의 욕망이기도 하며, 또한 바라건대 나와 같은 세대의 예술을 위한 한 가지 유의미한 관점이기도 하다. ● '편력'에는 여행, 방랑, 수행 등의 뜻이 담겨 있지만, 여기서 그중 가장 중요한 의미는 '모험'이다. 그러나 이 모험이란 것이 놀이공원이나 영화 및 게임에서 종종 그려지는 무슨 어드벤처(adventure)와 같은 오락적 이미지로 읽히지는 않길 바란다. 또한 편력은 요즘 흔해진 해외 여행이나 견문을 넓히는 유학과도 별 상관이 없다. 현대 문명을 거스르는 유목민(nomad)의 삶이나, 서슬 퍼런 칼을 품은 방랑자(vagabond)의 여정과도 거리가 멀다. 작금에 유행하는 모험에 대한 이런저런 선입견을 물리친 이 개념이 뜻하는 것은 미리 선을 그어 두자면 이런 것이다. 편력은 이 세계의 '마법'에 대항하는 여정이다. 이는 돈키호테가 활약하던 17세기 초뿐 아니라, 오히려 동시대의 현실 속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모험이다. ●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에서 근대와 함께 탄생한 그의 소설을 높이 평가한다. 신이 떠나간 시대, 지고의 심판관이 사라진 세계는 돌연 지극히 애매한 모습을 드러내며, 돈키호테의 편력은 그런 세계에 가득한 불확실하고 상대적인 진실들과 맞서는 모험이었다. 니체는 19세기 말에 '신은 죽었다'고 하여 센세이션을 낳았지만, 사실 계몽주의와 함께 근대를 살아가던 지식인들은 이미 그런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직 젊은 데카르트가『방법서설』(1637)을 쓰기도 전에 시골 마을을 뛰쳐나간 돈키호테는 기사로서 신의 뜻을 따르는 성실한 기독교인이지만, 그의 혼란한 모험 속에서 신의 뜻이 과연 무슨 뜻인지는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 이 소설을 읽으면, 그 묘미는 이쪽저쪽을 판단할 수 없는 혼돈 자체에 있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문학 주인공의 활약을 신봉하여 모방할 때는 미치광이 같지만, 뜻밖에 청산유수 같은 언변과 교양 있는 예절을 보일 때는 고결한 인품을 드러낸다. 그의 충직한 하인 산초 판사도 비슷한 의미에서 무식한 촌놈인지 영리한 자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돈키호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그의 행태에 감탄하거나, 이 선량한 미치광이를 두들겨 패거나, 그의 광기에 동조하는 척 일을 꾸미고 즐거워하는 다른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뒤얽힌다. 이 세계의 진실은 선악과 시비의 기준이 될 어떤 진실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 모호함에 더 박차를 가하는 '마법'이라는 장치가 있다. 가령, 아름다운 둘시네아 아가씨를 모셔 오라는 돈키호테의 성화에, 귀찮은 산초는 아주 못생긴 시골 처자를 가리켜 그녀라고 해 버린다. 그러자 돈키호테는 이 처자를 보고 실망하거나 그의 연인이 아니라 부정하는 대신 이렇게 반응한다. 오, 나쁜 마법사들이 또 내 눈에 마법을 걸었구나. 이하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마법은 '진실'의 왜곡이자, 그것을 사람들의 눈에 자명한 현실로 보이게 하는 힘이다. 다시 말해, 이는 의혹과 상대성을 감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세계를 만드는 환상으로서, 거기에 속지 않는 돈키호테의 낭만적 이상과 양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 이 마법은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던 17세기보다, 모든 것을 수긍하는 다원주의를 잇는 동시대의 현실 속에서 더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 아서 단토는『예술의 종언 이후』(1997)에서 거대서사의 종언과 함께 도래한 예술에 있어서의 다원주의에 갈채를 보냈다. 작품의 겉으로 드러난 형식을 두고 이것이 참된 예술이네 아니네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적 정서에 잘 맞는 주장으로서 당대 예술계의 긍정적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반면, 그가 다원주의와 함께 제기한,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정의가 절박하게 필요해졌다는 주장은 (이를 비판하려는 시도를 빼면)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단토가 말하는 다원주의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와 함께 명백해진 지각적 식별불가능성에 근거한다. 평범한 비누 상자와 눈으로 구분되지 않는 「브릴로 박스」조차 예술로 인정받았으니, 이제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술의 본질을 찾으려 할 때, 거기에는 예술이 어쨌든 평범한 사물과 뭔가 다른 비범한 것이라는 전제가 놓여 있다. 그런데 양자를 구분하는 전통적 기준은 다 쓸모 없어진 것이다. 작품들 간의, 혹은 예술과 다른 문화적 산물들 간의 민주적 평등을 옹호하는 이들은 단토를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학적, 미술사적 신념이 어떻든 간에, 예술은 이미 비범한 취급을 받고 있다. 미술 시장에서 매겨진 높은 가격, 작품을 범접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드는 전시 제도, 역사적 보물처럼 다루는 보존 제도를 통해서, 혹은 전시 홍보물들 속에서. ● 문제는 예술이 예술인 이유, 혹은 각 작업이 비범한 이유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이 부재할 경우, 작품들이 마법에 의존해 예술로서의 '자명한' 지위를 획득하곤 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작가의 삶이라는 신화든 예술계의 제도적 권위든, 마법은 모더니즘 이후로 예술이 가장 적대시해 온 진부한 환상이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현재 예술계에 속한 시점에서 바라볼 때 마법과 손잡는 (더 있겠지만) 두 가지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나르시시즘'과 '현학(衒學)'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으며,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비교적 흔한 현상이다. 미리 요점을 짚으면, 둘은 작품에 허세를 더해 심오한 분위기를 지어내는 관습이다. ● 나르시시즘은 작가의 내밀한 욕망의 노출, 사연 및 심정의 토로, 혼자만의 연구에 몰입한 고상한 자폐증 등을 느슨하게 묶는 이름이다. 예술이 저자 자신을 소재로 삼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의 어폐는 자아를 대상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심취해 버린다는 데 있다. 이는 작업을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만약 지금이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시대, 혹은 조지 오웰이 그린 '1984년'처럼 개인의 욕망이 철저히 억눌린 시대라면 단지 자아를 한껏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주의가 현실이며, 미디어는 온갖 욕망의 표현을 계속 생산하고 SNS에는 개인들의 정치적 발언과 진부한 일기가 수없이 올라온다. 나르시시즘은 분명 흥미를 끌지만, 대중매체가 시청률을 올리는 전략을 반복하는 한에서 그렇다. ● 다른 한편, 현학은 작품 안팎에 난해한 이론적 용어나 문장을 문맥 없이 차용하는 습관을 가리킨다. 이는 제도적 관행이라는 점에서 나르시시즘보다 훨씬 큰 문제다. 작가나 기획자가 작업과 얼마나 관련 있는 어휘를 어느 만큼 소화해 쓰는지는 몇몇 전문가나 신경 쓸 법한 소수의 관심사다. 그 반면, 독해가 힘든 글의 수수께끼 같은 느낌을 빌어 예술적 비범함을 가장하는 전략은 작금의 예술계에서 널리 통용된다. 비평이 현재의 문제의식 하에서 과거의 이론을 다시 해석하여 채택한다면, 현학은 그 권위에 의존하여 자신의 의미와 정당성을 찾는다. 후자는 마치 돈키호테가 줄줄 외우던 기사도 책 구절들처럼, 길게 읊을수록 점점 더 현실의 논점을 벗어난다. 그러나 이는 20세기의 전위적 예술 운동들을 계승한 현재 예술계가 승인하는 담론 형식이기도 하다. 거기서 뭔가 과도한, 시대착오적 성격을 느끼지 않는 이들에게 지금 하려는 편력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할 것이다. ● 모험을 찾는 것은 돈키호테보다 우리 시대에 더 어려운 일이다. 그가 용감히 맞서 싸우던 근대(modern)의 마법은 근대 '이후'(postmodern)를 거치며 세계에 널리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다원주의는 배타적 진실을 강요하던 소수의 거대서사를 전복하고, 대신 수많은 전문 영역과 개인적 서사들에 자명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 상대성도 어떤 의미로는 세계의 안정을 위한 마법의 일부가 된 듯 보인다. 선악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정치적 상대성은 기득권 유지에 기여하며, 서점에는 저마다 인생의 진실에 대해 강의하는 온갖 자기계발서가 길 잃은 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이는 심지어 가장 전위적인 영역이라 가정된 동시대 미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술에 있어서의 다원주의는 정확한 실체도 없이 권력만 존재하는 느슨한 제도적 담론에 불과한 예술계의 권위에 기대는 현실로 귀결되었다. 여기서는 양립할 수 없을 듯한 것들도 무난히 공존할 수 있다. 설혹 예술이 다시 전위적 영역을 모색한다 해도, 제도 바깥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여기서 제도란 현 사회의 제반 현실이나 작가를 등단시키는 공모전 등의 외면적 여건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나르시시즘이나 현학 같이 예술계 구성원들의 자아에 내면화된 관습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 그러나 예술의 목적이 현실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자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설령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드넓고 자명한 현실의 한계를 초월해 넘어가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조건은 마법에 손상을 가하고 혼란을 낳는 것, 즉 제도화된 일상적 세계 이면의 근본적 상대성을 다시 드러내는 데 있다. 이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다시 모험을 열어 밝히는 한 가지 길을 조명한다. ● 편력은 밖을 향한 모험이다. 다만 여기서 밖이란 이쪽의 자폐적, 제도적인 틀 안에 끌려들지 않은, 상대편에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세계를 뜻한다. 돈키호테 역시 자신의 서재에 곱게 머물렀다면 아무 소동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안정된 인식의 틀을 깨고 나간다는 점에서, 지금 말하려는 것은 미술사적으로 보면 해프닝과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러나 해프닝이 즉흥적, 연극적인 것이라면,편력은 보다 길고 소설적인 모험을 나타낸다. 이미 다원주의가 뿌리내린 오늘날, 낡고 보수적인 인식을 순간의 충격을 통해 전복하는 전략이 과연 계속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보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불확실성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즉,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상대적인 여러 존재가 하나의 시공간에 머무르며 빚는 방황의 깊이다. 쿤데라가 '소설'이란 말로 의미했던 이 복잡하고 혼란한 상대성은, 다원주의가 요구하는 쿨한 상대성에 비해 이 세계의 훨씬 깊은 진실에 닿는다. 정파적, 도덕적 확신에 근거하는 사회 참여적 예술이나 단지 쇼킹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골몰하는 작업은 거기에 다가갈 수 없다. ● 불확실성의 깊이는 수평뿐 아니라 수직적인 상대성 또한 암시한다.『편력』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눈에도 평범해 뵈는 소소한 일상과 사물들, 익숙한 장소와 제도에 개입해 들어간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 대상들은 작업 속에서 하나의 주제 하에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외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며 소설적 서사 속으로 흩어진다. 거기서 미끈한 예술적 기교를 찾기란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작가들은 자신의 뜻대로 주무를 수 없는 물리적, 사회적인 현실과 대면함으로써 자폐적 환상에 빠지지 않되, 그렇다고 해서 자아를 애매한 현실 속으로 망연자실하게 흘려보내는 것도 아니다. 개인이 어쩌지 못할 거대한 현실에 몸을 맡기고 적응하는 것 또한 동시대의 진부한 서사들 중 하나다. 반면, 예술의 편력은 상대적인 현실에 다시 상대적으로 맞서는 또 하나의 결단을, 즉 돈키호테와 같이 기이한 확신에 찬 모험을 감행할 때 시작된다. 세계의 상대성을 진정한 의미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댈 곳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이상이다. 그리고 이 전시는 그런 힘을 예감하게 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조명한다. ●『편력』의 작가들은 '예술 밖'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그들의 작업은 예술가의 자아, 혹은 예술 제도라는 보호막 밖에 실재하는 현실의 무게를 선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작가가 좌우할 수 없는 심상치 않은 대상일 수도 있고, 예술의 고상한 취지가 먹히지 않는 복잡하고 넓은 세계의 단편일 수도 있다. 예술과 현실의 이런 공존은 부조리, 희극, 또는 모순의 광경을 빚는다. 다만 이 작가들은 그런 광경을 강 건너에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운데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예술은 불확실한 현실에 처한 작고 유한한 존재인 한편, 조용한 물을 휘젓고 불확실성에 깊이를 더하는 장본이기도 하다. 이 깊이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리킨다거나, 주체를 비판한다거나, 무슨 질서를 해체하고 이분법 너머의 감각을 제시한다는 등 판에 박은 비평적 수사나 추상적인 논리에 기대지 않는다.『편력』의 작업들 속에 나타나는 낯익은 존재들 간의 경험적인 관계는 논리나 감각보다 더 모순을 설득력 있게 포착하며, 또한 그 구체적 내용으로 인해 역으로 보편성을 얻는다. 다른 한편, 그 속으로 관철되는 작가들 각자의 편력은 자명한 현실에 혼란을 가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 혼란을 직접 감당하는 미적 정체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범한 의미를 갖는다.

권동현_철거 표식을 위한 위장무늬 #2_디지털 프린트_150×225cm_2012 권동현_모각-이미 있는 조각 작품을 보고 그대로 본떠 새김 #1_콘크리트 설치_35×7×8.5cm_2012

비천한 삶의 흔적들에 새겨진 순수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권동현의 순례에 대하여 ● 권동현의 작업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미적 거리를 극적으로 좁힌다. 「철거 표식을 위한 위장무늬」시리즈(2011-2013)는 재개발로 인해 강제 철거되는 건물의 벽에 남겨지는 철거 표식을 가리려는 의도로 시작된 작업이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 '위장무늬'의 목적은 점차 버려진 지역의 폐허처럼 몰락한 모습에 마치 화장을 하듯 순수한 미적 형식을 가미하는 것으로 옮아간다. 이 작업에 나타나는 미는 작가가 창조한 것이라면, 「모각: 이미 있는 조각 작품을 보고 그대로 본떠 새김」 시리즈(2012-2013)에서 조명받는 아름다움은 그가 단지 발견해서 빌려 온 것이다. 여기서 권동현은 길을 걷다 마주친 대상에서 보이는 순수한 조형미를 조각으로 본떠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작은 조각품은 달동네 골목에서 볼 법한, 포장되지 않은 거친 형태의 계단을 재현한다. 일상적 언어와 통념을 기준으로 본다면, 작업에 일견 나타나는 이미지와 작가가 지향하는 목적 사이에는 현저한 간극이 있다. 물론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들 곁에 종교가 있는 것처럼,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도 천상과의 연결 고리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순수한 아름다움? 생존이 당면 과제인 곳에서 미학 이론서들 속에나 존재할 듯한 미적 이상은 아마 무의미할 것이다. 이런 모순을 암시하듯, 그의 작업들은 그 심플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위화감과 거기서 오는 떨림을 간직한다. ● 그러나 이 작가의 작업에서 남루한 형식과 순수한 내용을 결합하는 것은 그의 자의적인 논리가 아니다. 인간은 때로 모순된 것들을 동시에 욕망한다. 집이 철거되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근심하면서도, 더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재개발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사회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에 늘 비판적 관심을 가지면서도, 순수한 조형미에 끌려 거기에 천착하는 예술가도 있다. 철학서나 추상 예술에서 등장하는 모순은 학생들의 공허한 논쟁거리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한 인간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실천적 문제로서 던져진 모순은 절박하고 답 없는 번민을 가져온다. 권동현의 작업은 후자를 나타낸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관념적 시뮬레이션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철거 지역이나 골목의 삶에 깊숙이 발 들이는 한편, 다시 그 속에서 조형미를 추구하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작업에 역설적 깊이를 더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미적 형상은 비록 희미하지만 구원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업들은 일순 거리가 사라진 두 세계가 부딪혀 생긴 조용한 종소리를 낸다.

김기범_ZF39_단채널 영상_00:09:09_2012 김기범_낭독방_설치_200×150×120cm_2013

사물을 둘러싼 접근 형식들의 간극을 벌려 들어가는 김기범의 작업에 대하여 ● 김기범은 주로 일상적 대상들을 작업의 소재(subject matter)로 한다. 기본적으로 그의 작업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오브제의 힘을 빼거나, 역으로 대수롭지 않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작은 변화로도 이런 과정은 부조리의 어감을 머금는다. 왜냐하면 일상 속에서 사물들이 갖는 중요한, 혹은 하찮은 의미는 현실의 질서와 역학관계를 반영하며, 따라서 그런 의미의 경중을 뒤바꾸는 일은 혼란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과정에서 사물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사물의 즉물적 형태, 혹은 특정 목적에 따른 기존의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기능을 관찰 및 가공한다. 즉, 소재에 자의적 감상을 강요하는 대신, 가능한 한 보존된 원래 형태에서 그 역할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들이 별로 가공되지 않은 일상적 모습 그대로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 위와 같은 작업의 결과, 김기범의 소재는 기존의 현실적인 의미와 새로 부여된 예술적 기능이 공존하는 거점이 된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에서 일상적 오브제는 단지 주관적 관념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시차(視差)적 간극의 주축이 된다. 낙차가 클수록 그 여파도 크고 강해진다. 「ZF39」(2012)는 2차 대전 때 독일군이 쓰던 저격용 조준경으로 서울 풍경을 바라보려는 단순한 흥미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그러나 이 물건은 비극적 역사를 담는 흔치 않은 수집품이자, 국내에서 법으로 금지된 총기류와 관련된 오브제다. 'ZF39 '의 현실적 무게는 그것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작가가 감수해야 했던 웃지 못할 경험담의 형태로 작업에 기록된다. 영상 속 풍경은 비단 시공간을 넘은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작은 스코프 하나를 둘러싼 수소문의 과정, 수입 및 허가 절차, 소요 시간과 비용 등 부조리한 크기의 방황을 함축한다. ● 「낭독방」(2013)은 노래방 기계를 차용하여 시 낭독을 기능으로 부여한 작업이다. 작가는 시와 노래방을 '텍스트를 따라 읽는다'는 공통점에 끼워 결합하며, 둘 다를 사회에서 통용되는 형식과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다. 여기서 노래방은 흥에 겨워 감정을 분출하는 세속적 놀이 문화가 아니라, 절제된 서정적 텍스트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는 낯선 의식의 장소가 된다. 또한 시는 과거의 유물이나 소수 취향의 독백에 그치지 않고, 심정을 노래한다는 본연의 목적을 돕는 육신을 얻는다. 「낭독방」은 관조적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관객이 그 안에 들어가 원하는 작품과 배경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시 낭독에 사용할 때 완성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우습기도 하고 생경한 광경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시 문장을 마이크에 대고 읽는 순간은 세속과 이상의 간극을 가로지르는 극적인 경험을 제시한다.

김한울_잔반처리_사진, 단채널 영상_가변설치, 01:07:02_2013

식당에서 먹다 남은 음식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곧 퇴식구로 사라져 간 김한울의 작은 기념비에 대하여 ● 김한울은 일상 속에서 느낀 사소한 불편함을 예술적 방법으로 해소하는 작업들을 보여 준다.「잔반처리」(2013)는 그중 하나로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남은 음식들을 한데 모아 식기를 반납할 때, 뒤죽박죽이 된 음식을 보는 불쾌함을 해결해 본 시도였다. 작가는 잔반을 마치 새로 나온 음식처럼 재구성하고, 이를 식기와 함께 미적으로 연출하면서 작은 조형물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완성된 작품은 퇴식구를 통해 식당 직원에게 전달되었다. 「잔반처리」는 여러 군데의 식당을 돌면서 총 12번 진행된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결과물을 찍어 둔 사진으로 구성된다. 이 작업은 뱅크시의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2011)가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거리 미술(street art)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동안 거리 미술은 지나친 상업화나 언론 플레이로 오염되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에 나타나는 거리 미술의 매력은 부정하기 힘든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거기서 예술이 자청해 떠안는 불안한 조건이다. 길가의 벽 아무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법이므로, 작가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서 밤에 어렵사리 작업을 완성해도, 그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공무원들에 의해 지워진다. 여기서 미술은 으레 파괴당할 것을 전제로 태어난다. ●「잔반처리」는 가장 비천한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음식 쓰레기를 미적 대상으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이 작업은 특별한 존재로서 다뤄야 할 물신적 오브제로 남기는 게 없다. 오히려 작가는 잔반 조형물이 완성된 직후 관객들(즉, 식당 아주머니들)의 손에 파괴되도록 함으로써 작업 의도와 과정을 그 산물보다 기념할 만한 것으로서 조명한다. 그녀가 식기를 탑처럼 쌓아 만든 몇몇 조형물은 마치 작은 기념비처럼 보인다. 이제 사진만 남은 그것은 아우라도 없고 위용을 과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식당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기록한다. 여기에 미술 제도의 후광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잔반처리」의 과정을 지켜본 식당 직원들 중에는 김한울이 만든 조형물이 예쁘다며 좋아하는 이도 있었지만,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며 주의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예술이다, 라고 단언하는 제도적 조명과 권위적인 해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에 작게나마 아름다움이 묻어난다면, 거기에는 고상한 미술관에 품위 있게 놓인 작품들과는 또 다른 예술적 힘이 있다.

김혜리_NO FUTU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3cm_2013 김혜리_두 개의 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224cm_2013

작가가 아닌 타인의 그림을 예술로서 재조명할 무대가 되는 김혜리의 회화에 대하여 ● 김혜리의 회화에서 보이는 드로잉의 출처는 타인의 그림이다. 작가가 아닐뿐더러 미술을 특별히 배우지도 않은 이들의 그림은 때로 전문가의 작업에서 보기 힘든 매력을 갖는다. 미숙한 표현력에서 비롯된 이런 그림에는 비정형의 형식, 또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속마음과 같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김혜리는 이런 매력을 자신의 작업에 차용하되,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진부한 메시지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물음은 비전문가가 낙서하듯 그린 그림을 어떻게 예술로 만들 것인가에 가깝다. 즉, 여기에는 이미 예술과 비예술의 갭이 전제되어 있다. 단순한 낙서로 보이는 그림은 사람들의 시선을 잘 붙잡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그림을 관객들이 관심을 갖고 그 의미를 숙고하는 대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녀는 타인이 그린 드로잉의 형태는 크기만 키워 그대로 가져오되 그 뜻은 재해석하며, 또 물감을 수없이 겹쳐 뿌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거기에 깊이감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김혜리의 회화 작업은 타인의 그림을 예술로서 등장시키기 위한 '무대'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 그녀가 완성한 작업 속의 드로잉은 어떤 의미로는 이물질이다. 그것은 예술이 된 후에도 어디까지나 남의 것이자 서툰 것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간직한다. 작가는 이미 있던 낙서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고, 아는 누군가에게 특정 주제로 그림을 의뢰하기도 한다. 그렇게 준비된 드로잉에 배경과 텍스트를 부여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이런 작업 프로세스는 감각적 언어로 쏠리기 쉬운 회화라는 형식에 비평적 색채를 깊이 가미한다. 다시 말해, 김혜리의 작업은 화면 안에 도입된 회화적 기법뿐 아니라, 그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의미심장한 깊이를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작업들이 공유하는 테마는 가족이다. 가족은 나와 가장 친밀한 존재로서, 편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하며, 어쨌든 나 자신일 수는 없는 타인이다. 특히 젊은 작가에게 가족은 최대의 후원자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그 결실에 일정한 지분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작업들은 가족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작가가 그녀의 후원자를 오히려 뒷받침하는 아이러니한 위치로 물러날 때, 회화는 미적 표면을 넘어서는 보다 넓고 이질적인 관계를 끌어들이며 확장된다.

백경호_log out_캔버스에 유채, 천_130.3×162.2cm_2013

작금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비약을 종횡무진 감행하는 백경호의 농담에 대하여 ● 백경호의 회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복잡한 플롯이다. 그가 구성한 화면은 마치 소설이나 협주곡이 그런 것처럼 다양한 요소가 혼재하며 상이한 층과 굴곡들을 만든다. 더 자세히 보면, 혼재의 느낌이 강한 것은 구성 요소들 간의 단락 때문이다. 작가는 종종 하나의 화면에 원근법적 구도와 평면적 화법, 원색과 탁색, 기하학적 형태와 우연한 물감의 흐름, 애매한 추상적 표현과 만화처럼 단순한 캐릭터 등을 함께 배치한다. 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이런 상반된 것들 사이를 넘나드는 비약의 산물이다. 작가 자신도 이를 '넌센스'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그는 이런 혼란한 전개를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낸다. 회화에 통일감을 주는 것은 특정하기 힘든 절묘한 균형이다. 아마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 – 평소 대화에서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각적 서술에 있어서는 –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미 소설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백경호의 회화는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일상에서의 이야기를 종종 반영한다. 그 내용은 고단한 삶의 경기장에 난입한 망상, 작가의 작업실에서 생긴 돈 문제, 혹은 스마트폰이 있는 지하철 풍경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단절된 것들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최근 관심사들 중 하나인 디지털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것 자체의 근본 원리가 아날로그의 연속성과 대비되는 단절을 전제하기도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과 함께 변화하는 삶의 방식들과 증가하는 문화적 복잡성도 어떤 비약을 암시한다. 이는 회화를 하는 예술가에게도 고민을 안기지만, 그 밖의 수많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시대적 현실이다. 작가는 이처럼 일상적 삶의 모습을 한 보편적 비약에 주목하며, 다시 그 내용을 회화적 언어로 바꿔 농담처럼 제시하곤 한다. ● 농담은 그 내용이 뻔한 부조리를 담고 있음에도 공감을 낳거나, 혹은 현실적 난관을 가볍게 우회하는 말로 안도감을 줄 때 웃음을 낳으며 성공한다. 갈수록 복잡하고 수상해지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감할 만한 넌센스는 사방에 많다. 그러나 그것을 희극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사회나 개인이 실제 경험하는 단절과 부조리는 종종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는 작가가 작업 제목에도 썼던 말처럼 사생아를, 즉 사소한 의미로든 심각한 의미로든 버려진 것으로 낙인 찍힌 불행한 존재들을 낳는다. 백경호의 회화가 빚어내는 혼란한 감각은 이런 시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비약과 넌센스를 회피하거나 불편하게 조명하는 대신 오히려 심화하며 즐기는 감각을 통해, 그는 시대적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선 굵은 농담을 던진다.

우찬송_찾아가는 대중미술 no.1_단채널 영상_00:02:40_2013

미술을 밖으로 나가 팔면서 말 그대로 '팝아트'로 만든 우찬송의 모험에 대하여 ● 우찬송이 「찾아가는 대중미술 no. 1」(2013)을 제작한 의도는 다음과 같다. 동시대 미술이 겪어 온 역사에는 조형적 아름다움이나 예술의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 외에, 미술의 공공성 또는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큰 비중으로 존재한다. 후자는 주로 미술관 등의 개방된 장소에서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시각적 향유를 장려하는 형태로 추구된다. 예술계가 쓰는 '대중'이라는 말에 그어진 이런 한계에 의문이 든다. 미술관을 일부러 찾는 소수의 사람들이 대중을 충분히 대변하기는 힘들 듯하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더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우리 주변의 동네 사람들도 포괄하는 것이 진정한 대중 개념이다. 작가는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대중미술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과제로 방문 판매를 선택했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처럼 누구나 쉽게 구입하고 소유할 수 있어야 대중미술이다. 그래서 우찬송은 지체 없이 팝아트가 연상되는 햄버거 오브제를 만들어 동네로 나가 야채장수 아저씨처럼 확성기로 광고하며 팔기 시작했다. ●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고급과 저급 문화의 경계를 해체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 이미 미술사에서 정전(canon)이 된 탓인지,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그의 작업들은 꽤나 고급스럽다. 워홀 이후로 현재까지 등장한 다른 유명한 팝아트들도 비싸긴 마찬가지다. 팝아트는 대중문화나 하위문화 이미지를 차용해 그 정체성을 확보하지만, 대개 그 종착역은 미술 시장을 비롯한 제도적 후광에 힙입어 새로운 형태의 '고급 미술'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마 이는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며 자본주의적 우상(즉, 아이돌)을 만들어 내는 팝 문화의 일반적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찬송은 흥미롭게도 이런 문화적 구조를 뒤집는다. 대중미술 – 이를 영어로 직역하면 '팝아트'에 다름 아니다 – 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방문 판매에 나서면서, 그녀는 제도적 기름기가 보기 드물게 쏙 빠진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 의의는 단지 팝아트를 비꼬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찾아가는 대중미술 no. 1」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가 지극히 수수하게 동네를 돌아다니는 중에도, 거기에 평범한 일상과 섞이지 않는 뭔가 '예술적'인 것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 작업은 고급 미술의 제도를 거슬러 순수 예술이 존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홍지훈_응급처치_철제 프레임 구조물, 인공 조명, 소리, 영상 모니터_ 가변설치, 180×240×260cm_2013 홍지훈_죄와 벌_단채널 영상, 무음_00:07:25_2013

사회의 어느 한 곳에서 욕망을 조명하여 사건 현장을 만드는 홍지훈의 모험에 대하여 ● 홍지훈은 그의 관심을 끄는 대상의 어두운 부분, 즉 욕망이나 허무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 왔다. 그가 파고드는 대상들 중 대표적인 것이 탄산음료 캔이다. 그것은 속이 부글거리는 액체와 기체로 가득하며, 자본의 욕망이 잘 나타나는 대량 생산품이며, 음료가 나오는 구멍 디자인이 특이하고, 흔들어서 따면 하얀 거품이 넘친다, 등등. 작가는 일단 이런 징후에 주목하면 여러 작업에 걸쳐 거기에 천착한다. 또 한편, 사회와 개인의 욕망을 겹쳐 놓는 메타포 역시 그의 작업 특징들 중 하나다.「죄와 벌」(2013)은 나체의 남자가 철근을 들어 똑바로 세우려고 애쓰는 퍼포먼스를 담는다. 길고 굵은 이 철근은 욕망을 상징하며, 그 무게로 인해 남자는 자기 욕망에 매달리는 것 자체로 위협적인 좌절을 맛보며 처벌받는다. 그리고 이때 하나 더 의미심장한 것은 그가 있는 옥상의 배경에 펼쳐지는, 철근으로 지어져 높이 치솟은 빌딩들의 숲이다. ● 사회적 맥락에서 욕망의 징후를 탐색해 가던 홍지훈은 2013년 여름, 폭발물 소동에 휘말렸다. 그는 당시 탄산음료 캔을 사제 폭발물처럼 연출하는 작업,「I.E.D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자료 사진을 찍으려고 아파트 옥상에 두었던 그 오브제를 누군가 신고했고, 군경합동조사단이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이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닌, 그로서도 불편한 해프닝이었다. 다만 이 사건은 그의 작업 취지를 반증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뉴스 보도를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반응은 한편으로 희극적인 오버액션처럼 보이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그 '폭발물'은 정말 두려울 만한 대상이다. 작가의 욕망은 이런 오해의 틈으로 뜻하지 않게 분출되었고, 그 결과로 남은 것은 흥분이 아닌 씁쓸한 허무함이다. ● 이 사건은 작가를 비평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홍지훈의 작업이 만드는 장면들은 사건 현장에 비할 만하다. 이런 성격은 개인의 욕망과 허무를 표출하는 일, 혹은 평범한 사회의 한 지점에서 그런 욕망을 조명하는 일이 풍기는 불온한 느낌에 기인한다. 아니면 허무의 순간에 뒤따르는 비참한 기분도 거기에 일조할 것이다. 「 I.E.D. 프로젝트」를 한데 모으는 작업「응급처치」(2013)는 그 제목에 두 가지 의도를 함축한다. 예술을 통해 출구 없는 욕망을 일부나마 구원한다는 것, 그리고 '어둠'을 없는 것 취급하는 현실에 급제동을 건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의도를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하면서 겪는 실질적 부담, 또 잠재적 위험은 그의 어둠에 내밀한 서사를 넘어선 보편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응급처치」 이후로도 그의 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황대원

Errantry ● "What does Cervantes's great novel mean? Much has been written on the question. Some see in it a rationalist critique of Don Quixote's hazy idealism. Others see it as a celebration of that same idealism. Both interpretations are mistaken because they both seek at the novel's core not an inquiry but a moral position." (from Milan Kundera, "The Depreciated Legacy of Cervantes", trans. by Linda Asher) ● As implied in its title,『Errantry』pays homage to the great knight-errant Don Quixote, whose whereabouts were traced by Miguel de Cervantes. The exhibition is designed to be the fourth edition of the project『Peep!』, which has been held in Songwon Art Center since 2007.t『Peep!』is the project, which intends to bring new blood into the contemporary art world by casting light upon emerging artists. Despite the sense of ambiguity that often follows adjectives like young or rising in terms of the radius of their applicability in the art world in particular, it is beyond doubt that the list of participants in this exhibition consists of young artists, some of whom are recent graduates of the college. Youthfulness does not mean much in describing these artists, if it refers only to their young ages and short careers. In this regard, "errantry" is the word that speaks for the reason the exhibition pays attention to the work of these artists. Throughout the preface I will try to explain its meaning. This is the desire of an unknown young curator, whose place in the institution is fraught with uncertainty likewise the artists in this exhibition, as much as a useful perspective, I hope, on art practices contemporary to my generation. ● Among many meanings usually attached to errantry, ranging from travel, wandering, and self-training, one of the most important will be "adventure." However, the concept of adventure, as employed here, should be distinguished from its stereotyped image that serves entertainment industries, which is not difficult to come across in the amusement part, movies, or games. At the same time, errantry has very little to do with the oversea travel, which is a la mode these days, or studying abroad that broadens the scope of experience and knowledge. It also differentiates itself from the life of nomad that resists modern civilizations or the journey of a vagabond who harbors resentment deep in his heart. Separated from variegated popular prejudices, which have been associable to the word in our society, errantry can be defined as follows: errantry is an odyssey filled with battles against this world's "magic." This adventure proves its true worth rather in our contemporary reality, as much as it did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when Don Quixote was most active on his part. ● In his essay "The Depreciated Legacy of Cervantes," Milan Kundera values highly of Cervantes's novel, which was born with the Modern Age. As God slowly departed from his seat, in the absence of the Supreme Judge the world appeared in its extreme ambiguity and the errantry of Don Quixote was an adventure to face uncertain and relative truths, with which that world was overflowing. Even though Nietzsche brought about a scandal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by declaring the death of God, it had already been foreseen by the intellectuals who were living the time of modernity under the inescapable influence of the Enlightenment. Don Quixote, who ran away from his country town even before young Descartes wrote『Discourse on Method』1637), was a devoted Catholic knight who followed the divine will, but the true meaning of the divine will was vanished into the air as his perplexing adventure proceeded. The delicate beauty of reading this novel lies in confusion itself that does not allow any judgmental fixity to our interpretation. Don Quixote seems to be no more than a lunatic when he worships and imitates the activities of the protagonist of chivalric romance, unlike some instances when he betrays our expectation by disclosing the nobility of his personality embedded in the proper etiquette and eloquent speeches. His royal servant Sancho Panza also poses a similar conundrum to readers, whether he is an ignorant bumpkin or nobody's fool. Such sense of perplexity would be readily extended to other figures inextricably entangled one another in the story, who are asking for help from Don Quixote, amazed by his behaviors, pounding on this good madman, or pretending that they buy his folie and thrilled about their schemes against him. The only truth about this world is nothing but the fact that there is no truth, which can draw a line between good and bad, and right and wrong. ● Moreover, "magic" functions as a device that reinforces the obscurity of the story even further. For instance, pestered by Don Quixote who wants to have beautiful Dulcinea as a guest, Sancho introduces an ugly country maiden to him as Dulcinea. Then Don Quixote is neither disappointed at her nor denying that she is his lover, but considers the situation as a deception played by magic: Alas, evil sorcerers cast spells on my eyes again! This reaction can be unraveled as follows: Sorcery means the distortion of "truth" and has the power that makes people see the manipulated truth as the self-evident reality. In other words, it is an illusion that conceals doubts and relativity so as to conjure the rational and naturalized world, which is incommensurable with the romantic ideals of Don Quixote who is not deceived by that world. If so, we can presume that such a kind of magic should be granted more ubiquitous operation in contemporary reality, whose pluralism affirms everything, than in the Seventeenth Century, where the unknown world still remained. ● In After the『End of Art』(1997), Arthur C. Danto praised the arrival of pluralism in art at the end of grand narratives. The period when people were able to judge true or false about art merely by its outward appearance came to an end. Parallel to the atmosphere of the time, his assertion gained positive responses from the contemporary art world. However, his other contention about the urgency to define the nature of art, which accompanied the one about pluralism, has attracted almost no attention (except the attempts to criticize it). Danto based his theory of pluralism upon the indiscernibility, which became irrefutable after Andy Warhol's「Brillo Boxes」(1964). Anything was capable of being art, since the「Brillo Boxes」were acknowledged as art, even though our eyes were unable to distinguish them from ordinary soap containers. Nevertheless, when he strived to find the nature of art, there was still a premise that art was something extraordinary and different from mundane objects. But the conventional measures that used to separate the two lost their use. Danto has been criticized by the advocates of the democratic equality among artworks or between art and other cultural products. Regardless of our aesthetic and art historical belief, however, art is already treated as exceptional. It is not difficult to witness the special treatment of artworks in their high prices estimated by the art market, their inaccessibility constructed by the exhibitionary system, their status as historical treasures pampered by the preservation system, or in diverse exhibition publicities. ● The problem with the absence of critical discourses, which explain why art is art or each work deserves to be extraordinary, is that artworks often take over the "self-evident" status of art by the aid of magic. However, whether the legend of an artist's life or the institutional authority of the art world, magic has been one of the hackneyed fantasies, against which art has held since Modernism. In this context, from the perspective of an insider of the contemporary art world, two tendencies (among many others) of conniving in magic can be mentioned here: they can be named as "narcissism" and "pedantry," which are dissimilar to one another but both are relatively common phenomena. To give the gist of my argument first, the two are the conventions to forge the abstruse aura around artworks with pretensions. ● Narcissism is an umbrella term that refers to the exposure of inner desires of artists, the expression of personal circumstances or feelings, the elegant solipsism immersed into one's own research, etc. There is nothing wrong or peculiar about taking the author themselves as the materials for artistic creation. Narcissism, however, leads to the inability to objectify the self and ends up in the infatuation with it. This appears more often than not among young artists who start their career. The unconstrained expression of the self could be greatly valuable, if we are living under an authoritarian regime, which oppresses our personal desire, just as described by George Orwell in「Nineteen Eighty-Four」(1949). In reality, however, capitalism is at its height, the media keep stimulating the effusion of assorted desires, and SNS has been deluged with political comments and trite daily journals of individuals. Narcissism does arouse people's interest, in so far as the mass media are recycling their tactics for raising audience ratings. ● On the other hand, pedantry indicates the habit of appropriating esoteric theoretical jargon or sentences inside and out of the work, in disregard of the context. This causes a more serious problem than narcissism, for pedantry has been settled in the customary practices of institutions. It will concern only a small number of professionals, whether artists and curators make proper use of vocabulary on the ample understanding of its meanings and relations to artworks. However, the art world nowadays has widely been pervaded by the strategies for invoking the enigmatic mood of inexplicit writings in order to fabricate an artistic idiosyncrasy. While criticism takes up on theories of the past by reinterpreting them against the backdrop of the present problematics, pedantry is only after the justification of its own meaning in reliance on its authority. The longer a harangue of pedantry continues, the more it deviates from the issues of reality, just like the lines of chivalric romance Don Quixote recites. But this is also the legitimate form of discourse approved by the current art world, which has inherited the avant-garde art movements blossomed throughout the Twentieth Century. It should be noted that my argument about errantry that will be developed henceforward in these pages and in the exhibition would appear meaningless to those, who do not sense the existence of certain excess, certain anachronism in the aforementioned landscape of the contemporary art world. ● To discover an adventure is more challenging in our age than it was in the time of Don Quixote. Passing through the reflective stage of the "post-modern," the world has been permeated by the magic of the modern, against which he fought with courage ad infinitum. Pluralism turned the tables on grand narratives, which had been maintained by the privileged few in order to force the exclusive truth, and bestowed self-evident rationales for the presence of numerous professional realms and personal narratives. Now it seems that, in a sense, even relativity has become part of the magic that buttresses the stabilization of the world. Political relativism, according to which even the judgment of right or wrong is inevitably influenced by the person's point of view, contributes towards the perpetuation of established privileges, and bookstores are flooded with every type of self help publications, which are ready to lecture about their own versions of the truths of life for the readers who get lost in their lives. Contemporary art, allegedly the most radical area, cannot be an exception to this trend. Pluralism in art has ended up in the reality that relies on the authority of the art world, which possesses no clear substance but the power arranged by the loosened institutional discourses. There becomes possible the unlikely coexistence with no trouble between seemingly incommensurable things. Does something called the outside of the institution exist, even if art resumes its search for radical realms? Here, the term institution stands for not only the external conditions, including the extensive circumstances of the society or contest exhibitions where artists make their debut as professionals, but also the conventions internalized in the self of each members of the art world, such as narcissism and pedantry as pointed out above. ● If the aim of art is more than to be contended with merely occupying a place in reality, however, we are in need of perspectives that transcend and stretch beyond the limited and vast horizon of the self-evident reality, notwithstanding the seemingly obvious impossibility of such a task. The minimum precondition for this is to inflict damage on the magic and intensify confusion, to put it differently, to disclose the fundamental relativity of the other side of the institutionalized quotidian world. In this regard, the exhibition brings into light one of the potential paths to open up the adventure again. ● Errantry is an adventure heading towards the outside. The outside, as mentioned here, refers to the concrete world existing in actuality on the opposite side of and without being tarnished by the solipsist and institutional frame. Don Quixote too could not bring about any scandals, if he stayed within his study like a delicate flower in a glass house. In a manner of breaking away from the stabilized mold of recognition, what I want to say here shows an affinity with the happening in the context of art history. Whereas the happening holds the improvised and theatrical qualities, errantry alludes to rather longer and fictitious adventures. Today where pluralism has already been firmly rooted, it is questionable if the strategy for turning over the outdated and conservative recognition through the momentary shock will be effective. What is more interesting is to unveil the depth of uncertainty. This is to cast light on the profundity of wandering woven by sundry beings, whose coexistence in a single spatio-temporal continuum is too relative to comprehend. This is the complicated and confused relativity, as put forward by Kundera through his use of the word "novel," touches far more fundamental truth of the world than the cool relativity demanded by pluralism. It is a goal impossible to achieve for the artworks engrossed only in fabricating scandalous images or the so-called socially engaged art, which is largely circumscribed by its strong commitment to the factional and moral conviction. ● The depth of uncertainty implies not only the horizontal relativity, but also the vertical one. The artists participating in『Errantry』intervene in familiar places and institutions, and trivial objects and everyday routines, which cannot look more ordinary from their appearance. These actual objects, however, are not absorbed into the unique subject of each work, but manifest unexpected meanings of their existence and disperse throughout the development of novelistic narratives. It might be difficult to see a refined artistic technique there. Again, however, the artists do not let go of the self into the nebulous reality in a total amnesia about their subjectivities, while they keep distance from the solipsist illusion by confronting the physical and social reality, over which one cannot wield complete control. It is also one of the trite narratives of the contemporary world to submit and acclimate oneself to the enormous reality, which is out of the reach of an individual's ability to handle. Contrary to this, errantry of art is to commence with the decision to defy the relative reality in a relative way, in other words, when one embarks on an adventure driven by the eccentric conviction just like that of Don Quixote. Paradoxically, what can cope with the relativity of the world is the ideal, which stays unshakable even without a thing to lean on. The exhibition sheds light on the works of young artists who hints at such power. ● The artists of『Errantry』share the qualities of "the outside of art." With clarity their works divulge the burden of reality existing behind the cocoon of the institutional system of art or the self of the artist. It can be reminded in the form of peculiar objects, which remain intractable against the controlling grip of the artists, or the snapshots of the convoluted and vast world where the gracious raison d'être of art cannot pull its own weight. The coexistence of art and reality results in the sceneries of absurdity, comedy, or contradiction. However, instead of adopting the postures of onlooker or researcher from a distance, these artists engage in the midst of these. Here art is not only the puny and limited being thrown in the sphere of precarious reality, but also the constitutive that adds significance to this very precarity by roiling the calm water. That meaningful depth does not rely on the formulaic mobilization of critical rhetoric or the logical abstraction, such as indicating the invisible, castigating the subject, deconstructing certain orders, and presenting the sense that overcomes the dualism. Drawn from experiences, the relations between familiar beings are realized in the artworks participating in『Errantry』in a way that captures the incongruity better than logics or senses and, in turn, earns universality thanks to the specificity in their content. Meanwhile, each artist's errantry accomplished in this process bears an extraordinary meaning in applying commotion to the seemingly self-evident reality and, at the same time, proposing an aesthetic identity capable of dealing with the chaos in its own right. * On the pilgrimage of Donghyun Gwon, who documents pure beauty inscribed in the traces of humble lives. ● The work of Donghyun Gwon narrows the aesthetic distance between the ideal and reality. The original intention behind「Camouflage for Demolition Sign」series (2011-2013) was to veil the marker of demolition left on the wall of the buildings, which were forced into removal for the sake of redevelopment. As the project proceeded, however, the purpose of the "camouflage" pattern gradually shifted into the application of a purely aesthetic form, as though it was to put makeup on the ruined façade of abandoned areas. While the artist fabricated the beauty realized in this work,「Duplicate Sculpture – sculpting a preexisting sculpture as it is」series (2012-2013) shows a different kind of beauty, which was merely discovered and borrowed by him. By means of sculpture, Donghyun Gwon attempted to document pure beauty found in objects, which he encountered while roaming along the road. Betraying the viewer's expectation, on the other hand, his small sculpture represents the crude and unpaved image of a stairway, which is easy to come across in the alley of a poor neighborhood on a steep hillside. Considering the conventionally circulated understanding of beauty and its common use in everyday language, the interval between the images materialized in the artworks and what the artist aims at is too conspicuous to neglect. Of course, there must be a certain link between the lowest place on earth and the heaven, as religion stays on the side of the poor and exhausted. Nevertheless, doesn't it sound absurd to mention pure beauty here? In the place where the urgency to survive reigns, it would be meaningless to invoke the aesthetic ideal, which tends to exist only in the pages of the books of aesthetic theories. As foreshadowed by such a contradiction, the artworks of Donghyun Gwon, despite their simple appearance, cherish a subtle sense of incompatibility that makes the viewer quiver. ● Even so, it should be underlined that there is no place for arbitrariness in the artist's practice of combining the shabby forms and the pure contents. Human more often than not desires conflicting things at the same time. While deeply concerned about the lack of accommodation after the demolition of their houses, some people would aspire to redevelopment in favor of a more pleasant environment of living. Similarly, there might be an artist attracted by and absorbed in the pursuit of purely formal beauty, even though she or he keeps critical eyes open to the rather ugly and troublesome reality of society. A contradiction of the sort that appears in philosophy books and abstract art is prone to the subject of empty arguments among students. In contrast, there is a different type of contradictions, which bring about the desperate and irremediable languishment in our mind, in that they are practical problems stemming from the circumstance of human existence in actuality. The work of Donghyun Gwon signals the latter. This is not a result of the intellectual simulation about the relations between the ideal and reality. Rather, the artist deeply engages with the life in the alley or the areas doomed to be demolished, and strives to elevate his work into the stage of paradoxical significance through the process of pursuing aesthetic beauty in that engagement. The aesthetic imagery accomplished at the end of such an endeavor tends to allude to redemption, no matter how feeble it looks. In front of his artworks, we hear a dim sound of bells rung by the collision of two worlds, the chasm between which has disappeared for an instance. * On the work of Gibum Gim who widens the gaps among the modes of approach towards objects. ● The subject matter of Gibum Gim's work mostly consists of ordinary objects. His work is basically a result of the process of removing the importance out of social or historical objects or, conversely, adding meaningful values to insignificant objects. This type of process generates a sense of absurdity even with a small change. This is because the substantial or trivial meanings of objects found in quotidian surroundings reflect the dynamics and orders of reality, and therefore to alter the level of importance attached to their meanings calls for confusion. Throughout this process, the artist concentrates on the "function" of the objects. He observes and manufactures the functionalities of objects with a primary focus on their original designs, which comply with the practical shape of the objects or any special purposes. To reiterate, he educes the role of objects out of their initial shape at the utmost intact condition, rather than imposing his arbitrary opinions upon materials. This results in the appearance of the objects starring in his work, which look pretty much the same as they are in ordinary settings without severe alteration. ● As a consequence of pursuing the approach explained above, the subject matter of Gibum Gim's work becomes the ground where the initially given meanings of practicality and the newly added artistic functionalities coexist. In other words, quotidian objects in his work are not reserved only for representing subjective ideas, but repositioned as the pivot, around which the parallactic gap would form. The wider the gap is, the bigger and stronger ripple effect it makes.「ZF39」(2012) is originated from a simple interest in looking at the landscape of Seoul through the German sniper's scope used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is thing, however, is not only a rare memorabilia that embodies the tragic history, but also an object associated with the category of firearms, which is banned by laws in Korea. The weight of reality around "ZF39" is documented in the form of a not-so-laughable anecdote, which the artist had to go through in order to get to have the object. The scenery in the film alludes not only to the historical meaning imparted across spatio-temporal restrictions, but also the absurd degree of extravagance around one small scope, such as the course of inquiry about its existence, the process of importation and permission, and the overall expense in time and money. ●「Poetry reading room」2013) is an artwork, which appropriated a karaoke machine and invested the function of reading poems into it. The artist conjoined poem recitation and karaoke by taking up on their common element of "reading after the text," and moved them to the forms different from what is usually considered as valid for them in society. Here, karaoke is no longer an exemplar of secular entertainment culture that runs after a sort of catharsis in the excess of pleasure, but the place for a strange ritual where the participants imbue their voice into lyrical texts. At the same time, poem stops being the relic of the past or the monologue that meets the taste of only a small number of people, and obtains the corporeality that buttresses its intrinsic purpose to express our feelings by singing.「Poetry reading room」is by no means an object of contemplation. Rather, it will be completed when the viewers step into the chamber, select the pieces of poetry and backgrounds they want, and finally make full use of the work by performing their own poem recitations. It is a humorous and unfamiliar spectacle to watch, on the one hand. But on the other hand, it offers a dramatic experience that transgresses the separation between the secular and the ideal at the moment when you pronounce into a microphone the lines of a poem showing on the screen. * On the small monuments of Han-ul Kim, which have been made of food leftovers and disappeared into the returning pass-through of cafeterias. ● Han-ul Kim introduces artworks that reconcile the trivial inconveniences found in her ordinary life through artistic maneuvers. One of them is「Disposing of Food Waste」(2013), the creation of which was an attempt to deal with the unpleasantness she felt from the mixture of different food leftovers put together in a bowl before returning tableware to the kitchen in cafeterias. The artist reorganized leftovers as if they were newly served foods and turned them into small sculptures by decorating them artistically with cutlery. The finished works were handed into the pass-through, where people returned their food trays with leftovers, and eventually passed on to the employees working at the kitchen.「Disposing of Food Waste」consists of the video documentation of the project, which spanned twelve iterations of the basic process performed in various restaurants, and the photographs that captured the final results. This work reminds of street art, which has made a great impression on a larger number of viewers with the help of the film「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1) directed by Banksy. Of course, street art has been bombarded with criticism for being excessively commercialized and corrupt with manipulating the media. Nevertheless, the charm of street art at least visualized in the film is hard to resist. Perhaps, one of the reasons for this attraction would be the fact that art voluntarily puts itself into unstable conditions in this film. Since it is illegal to draw pictures on the walls on the roadside, street artworks are supposed to be erased by public officers within a few days after the artists manage to finish them during the night with difficulty. In this context, art is born to be destroyed. ●「Disposing of Food Waste」metamorphosed food leftovers, one of the lowest materials available out there, into aesthetic objects. Even so, this work does not leave anything behind, which will be considered to deserve special treatment as the object of fetishism. Instead, the artist shifts the focus of commemoration from the final product to the intention and process of the project by allowing the destruction of the work in the hands of viewers – that is, the staffs of the kitchen. Made of stacks of dinnerware in the shape of pagoda, some of the sculptures look like small monuments. Even if they have survived only as photographs, bereft of aura or grandeur, but they are more effective in documenting small happenings occurred at ordinary restaurants in a dramatic manner. No endorsement from the art institution has place here. After witnessing the course of creating「Disposing of Food Waste」, some of the restaurant employees praised the beauty of sculptures assembled by Han-ul Kim, but some others warned her that food should not be played with. From these reactions, it is possible to infer the absence of institutional doctrines or any interpretative authority, which would assure "this is art." Despite all that, if we can talk about beauty in this work, no matter how small it may be, it springs from its artistic significance, which is dissimilar from that of the artworks displayed elegantly in lofty museums. * On Hye-ri Kim's painting, which serves as the stage of redefining the drawings made by other people as art. ● The drawings that appear in the paintings by Hye-ri Kim are initially from the pictures created by other people. Neither pursuing careers as artists nor being taught specially about art, these laymen realize in their pictures certain charm, which is difficult to come across in the work of professionals. Relying on immature expression skills, such pictures share an interesting characteristic similar to the form of the formless or laying bare the bottom of one's heart. Hye-ri Kim appropriates that attraction for her work, yet without promoting the trite message that anybody is able to be an artist. Instead, she poses an inquiry about the ways in which the doodle like pictures by inexperienced people can be turned into art. To elaborate, this question presupposes the segregation between art and non-art. Generally speaking, the pictures that look like mere doodles do not arrest people's eyes. What does it take to transform them into the object, to which the viewers give attention and upon the meaning of which they ponder? While she adopts and enlarges the form of drawings produced by others, she reinterprets their meanings and provides them with the background, which carries a sense of depth, thanks to her unique technique of superimposing numerous layers of sprayed paint over and over again. To put it differently, the paintings of Hye-ri Kim hold in common the identity as "stage," on which other people's pictures will make their appearances under the name of art. ● In a sense, the drawings that inhabit the work completed by the artist can be considered as foreign matters. Even after they obtain the title of art, these drawings remain unchanged in the core of their meaning as something inept and owned by others. The artist happens to discover the doodles already existing somewhere or asks her acquaintances for new drawings of specific subjects. Her part is to add the background and texts to the drawings prepared as such. This process of the project injects the tone of profound criticality into the form of painting, which is vulnerable to the inclination towards sensuous qualities. In other words, the work of Hye-ri Kim presents not only the painterly techniques employed in the canvas, but also the significant depth realized through the dialogue with the objects that reside outside the canvas. Her artworks participating in this exhibition share the theme of family. A family is comprised of the beings closest to myself and, therefore, you feel comfortable around them. At the same time, however, maintaining the relationship with them costs a grave responsibility on your part and they are others after all, who cannot be yourself. For a young artist in particular, her or his family often plays the part of biggest patron and, hence, they own certain amount of shares of the final fruition of the work of the artist. Furthermore, these artworks are bold enough to bring to the front the members of the artist's family. Even as the artist steps back to the rather ironic position of supporting her patrons, her painting is stretched to the extent that encompasses the broader and heterogeneous relations, which are overcoming the aesthetic surface of the canvas. * On the jokes of Kyungho Baek, which dare to deploy various logical leaps all over the ground of our contemporary daily life. ● The painting of Kyungho Baek draws the eyes of the viewers first and foremost to its complex plot. The sceneries the artist composes establish different strata and curves by muddling up variegated elements, just as the way novels or concertos are. Under close observation, it becomes clear that the intense feeling of topsy-turvydom in his painting originates from the short circuits occurred in the network of its constituents. The artist often deploys in a single pictorial plane the perspectival arrangement and techniques for accentuating flatness, primary colors and dusky colors, geometric shapes and spontaneous traces of the paint, ambiguous abstract expressions and cartoon-like simple characters. At the heart of his work exist nonsensical leaps that bridge disparate elements without acknowledging the conflict between them. Even the artist himself sometimes refers to this quality as "nonsense," yet at the end he succeeds in weaving that entangled lines of development into a narrative. What gives a sense of unity to a painting is a subtle balance, which is difficult to put a finger on. This has been feasible to achieve in the work of Kyungho Baek, perhaps because he is a natural storyteller – maybe not in ordinary conversations, but at least in visual descriptions. ● As I already compared it to novels, the painting of Kyungho Baek goes further than the mere experiment in form by mirroring the stories found in the actual quotidian life. It encompasses a wide range of contents, such as daydreams intruding into the arena of weary lives, the financial problems that happened in the artist's atelier, or the view of a subway car with a smart phone. In common they speak to the coexistence of the disconnected. Digital technology, one of his latest interests, can be situated in the same context. Not to mention that digital itself presumes discontinuity as its characteristic, as opposed to the continuity innate in analogue, there are certain logical leaps implied by the changing ways of living and the growth of cultural complexity, which have arrived with the rapid conversion into a digital society. While this condition has been causing for the artists who are practicing painting, it also is the reality of our age that has exerted influence to a great number of people. The artist pays attention to those logical leaps in general, imbedded in the description of routine lives, and then presents their contents as jokes in visual language. ● A joke can fulfill its purpose of causing laughs successfully, when it engenders empathy in spite of the blatant absurdity in its content or offers a feeling of relief through the words that circumvent the relevant difficulties in actuality. Ever increasing complexity and skepticism of our period offers a plenty of nonsense, to which we are able to relate. However, unlike what we think, it is not easy to assume them as the subjects of humor. As in the experience of individuals and society, disconnection and absurdity often lead to tragedy. To quote the title of the artist's work, they give birth to illegitimate children (that is, bastards), that means, to the miserable existences stigmatized as the abandoned in a trivial or rather serious sense. The painting of Kyungho Baek arouses a sense of chaos, which can be interpreted as portraying the aforementioned aspects of the times. Instead of avoiding logical incongruities and nonsense or choosing distasteful ways of staging them, he poses jokes audacious enough not to surrender to the gravity of reality. * On the adventure of Woo Chan Song who transformed art into the literal"pop art" by selling it outside ● Chan Song Woo created「Visiting Pop Art no.1」(2013) with the purpose as follows: Throughout the history of contemporary art exists the concern for the publicness or popularity of art as much as the pursuit of plastic beauty or the autonomy of art. The former often takes the shape that unveils artworks in public, in museums for example, and encourages the participation in visual appreciation. However such confines that circumscribe the usage of the word "public" in the art world are open to doubt. This is because a small number of people willing to trouble themselves to come to museums do not tend to properly represent the public. The true concept of the public should be inclusive of a wider spectrum of the demographics, which stretches out as far as to cover people ignorant of art, such as the residents of our neighborhood. Keeping this in mind, the artist chose door-to-door sales as the first task for her pop art project. Pop art should be readily available and easily affordable, just like commodities purchasable in the market. Without slightest hesitation, Chan Song Woo went out to the neighborhood, advertised over a loudspeaker like a vegetable vendor, and started selling the hamburger objects, which she made and reminded of pop art. ● The pop art of Andy Warhol has been appraised as of deconstructing the borders between high and low cultur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resent, however, his work looks quite high class, perhaps because it has become a part of the art historical canons. Equally pricey are the other well-known pop artworks produced since Warhol. Despite the fact that pop art has nourished its identity through appropriating mass culture or various subcultures, it ends up more often than not in the metamorphosis into a new form of "high art" by the grace of the institution, including art market. This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general tendency in mass culture to keep fabricating capitalist idols (in its double usages) while criticizing elitism. Interestingly enough, however, Chan Song Woo turns over that cultural structure. Carrying out her door-to-door sales, which was originally inspired by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pop art – the name of which was derived from "popular art" – she carries a performance that does not conform to the endorsement from the institution. This means more than mere sarcastic remarks on pop art.「Visiting Pop Art no.1」deserves serious attention, in that even the artist's extremely simple meandering around the neighborhood leaves behind something "artistic," which does not blend with everyday life. In other words, this work is conducting an experiment about the capability of the fine arts to survive against the institution of high art. * On the adventure of Jee Hoon Hong who creates the scenes of accidents by casting light onto the desire at a corner of society. ● Jee Hoon Hong has introduced the work that discloses the dark side of the objects attracting his attention, that is to say, the desire and futility innate in them. Soda cans make the best example of the objects, which he has been digging into. They are filled with bubbling liquid and gas; they are mass products that reveal the desire of capital; they have the peculiarly designed hole, through which the liquid pours out; they brim over with thick white froth when you open them after good shakes. Once he takes notice of such phenomena, the artist obsesses with them through diverse practices. Meanwhile, the metaphor that superimposes the desire of an individual onto that of society constitutes another characteristic of his work「Crime and Punishment」(2013) contains a performance that shows a naked man who tries to erect an iron bar. The man gets frustrated to the dangerous extent and punished for pursuing his desire itself, which is symbolized by the long and thick iron bar. One more significant aspect worth pointing out here is the forest of soaring skyscrapers made with steel bars in the background of the rooftop where he is. ● In the midst of his quest for the symptoms of desire in the context of society, Jee Hoon Hong got involved into a scandal over the possession of explosives in the summer of 2013. At the time, he was continuing「I.E.D. Project」, which utilized cans of soda pop to manufacture fake improvised explosive devices. After he placed the work on the rooftop in order to take its photographs, someone notified the police about the suspicious object and the army and police united investigation team was dispatched. Unintended by the artist, this was of course an unpleasant happening even for him. Nevertheless, the incident can be read as a proof that testifies the intention behind his work in a negative way. Even though the series of social responses to the event, including news reports, look farcical and overly exaggerated, the "explosive" is a truly serious threat to people who are not aware of the circumstances. The artist's desire has been emitted through the crevice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artwork, which was created by the possibility of such a misleading. As a result, the work is surrounded by a lingering sense of futility, not excitement. ● The incident provides with an interesting clue to the critical understanding of the artist. The vistas produced by the work of Jee Hoon Hong are tantamount to the scenes of actual accidents. This quality is based on the disturbing sentiment, which stems from the act of expressing an individual's desire and its hollowness, or bringing that desire to light at a corner of ordinary society. Or, the miserable feeling that accompanies the moment of futility would contribute towards it. Amalgamating「I.E.D. Project」altogether,「First Aid」 (2013) tend to be connotative of two intentions with its title: first, to rescue by means of art at least some amount of desire that has no channel, through which it could be released; second, to put a hold to the reality that ignores "darkness." The dark side of the artist's work achieves universal implication that surpasses the status of private narratives, thanks to the actual burden and potential danger the artist has to go through as he extend the aforementioned intention towards the context of society. His errantry still continues after「First Aid」. ■ HWANGDAEWON

Vol.20140724c | 『편력』 Errantry-제4회 Peep!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