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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展 / LEELEENAM / 李二男 / video   2014_0725 ▶︎ 2014_0828 / 일요일 휴관

이이남_꽃과 만물 Flowers&Creations_LED TV, 영상_77×129×10cm, 00:07:40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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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72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소울아트스페이스 SOUL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 해변로 30 엑소디움 Tel. +82.51.731.5878 www.soulartspace.com blog.naver.com/soulartspace

이이남: 되살아난 전통의 끝나지 않는 여정(旅程)1. 무심히 주변을 지나치다가 어디서 본 듯한 동양화 앞에 멈춰 선다. 잠시 후, 그림에서 멈춰 있던 나비와 벌이 움직이고, 꽃잎은 바람에 나부끼며, 물고기는 뛰어놀기 시작한다.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살짝 놀란 채로 뒤로 물러서고 보니, 이 움직이는 동양화가 담겨 있는 화폭의 새로운 성격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은 평면 디스플레이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이 전시된 벽면의 아래쪽 한 구석에는 제목과 사이즈, 그리고 이것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이이남의 이름과 작품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눈에 처음 들어온다.

이이남_겸재정선 고흐를 만나다 Meets GyeomjeJungsun Gogh_ LED TV, 영상_77×477×10cm, 00:06:10_2014

2. 그의 작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디스플레이는 종이」라는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다. 이것은 전자매체인 평판 디스플레이와 그림의 배경이 되는 종이라는 매체를 우리의 머릿속에 강하게 결합시킨다. 이 결합은 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즉각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의식적 사고를 할 필요조차 없다. 일단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디스플레이의 역할이 동양 고전 회화에서 화선지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사람들이 간과하고 지나치는 것은 이이남의 작품이 이 개념적 은유를 구체화시키기 전에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와 같은 생각이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지각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갖는 동적인 성격이다. 원래의 그림은 종이 위에 그려져 고정적일 뿐만 아니라 분할 불가능한 속성을 가진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디지털 시스템에 의해 재처리된 것이다. 정보를 기본적인 단위로 분할할 수 있는 디지털의 특성상 불연속성은 재조정 과정을 통해 복제와 변형을 가능하게 만든다. 정지했던 새의 이미지는 공간을 이동해서 불연속적으로 배치되지만, 그것은 프레임의 연결을 통해 우리의 시각에 동적인 속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원래의 정보 속에 전혀 다른 맥락으로부터 기인하는 정보를 삽입할 수도 있다. 동양화의 한 복판을 위 아래로 가로질러 날아가는 비행기의 이미지가 삽입될 수 있는 것도, 기하학적인 선들이 횡단할 수 있는 것도, 심지어 동양화의 이미지 속에 전혀 문화적 맥락이 다른 인물과 동작들이 병치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매체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이미지는 문화적 차이를 갖지만, 정보는 등질적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디지털 시각 매체를 다루는 창작자의 표현의 한계는 사실상 그의 상상력의 한계인 것이다. ● 이처럼 개념적 은유를 통한 혼성과 디지털은 굉장한 근친성을 갖는다. 디지털은 혼성을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키기에 편리하고, 혼성은 디지털에 의해 거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보장받는다. 남는 것은 무엇과 무엇의 혼성인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다시 말해, 동양의 고전 회화 전통은 어떻게 해서 이이남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예술소(藝術素)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는가?

이이남_신-확대경 New-Magnifying Glass_LED TV, 영상_129×183×10cm, 00:05:30_2009

3. 디스플레이가 종이라면「TV 는 액자」이고,「영상은 그림」이다. 이러한 연관된 개념적 은유가 사람들에게 손쉽게 받아들여지는 인지적 이유가 있다. 영상 자체는 정지 이미지의 연속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림은 하나의 정지 이미지이다. 따라서 영상은 그 자체로 정지 이미지의 축적이다. 이런 유사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영상은 그림」은유도 사람들의 두뇌에서 활성화되는 데는 인지적 어려움이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이남의 작품에 두 가지 서로 다른 효과를 가져 온다. 하나는 강력한 보편성이다. 동양의 회화 전통에 약간이라도 이해가 있는 사람은 이이남의 작품이 그것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파악한다. 이이남의 작품이 여타의 아방가르드적인 미디어아트와 달리 난해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익숙한 것의 차용(借用) 혹은 혼성 때문이다. 이 혼성은 이이남의 작품에 두 가지 대비되는 속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게슈탈트적인 두 가지가 충돌하면서 공존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동양 회화의 시각적 재현은 그의 작품에 일종의 원전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차용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전(original)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그 작품의 원전 속에 담긴 것이 똑같이 이이남의 작품 속에도 담겼을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추측하게 된다. 즉, 감상자는 일차적으로 이미지에 집중하게 되고, 이렇게 할 때 그는 아주 오래되고 권위 있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어떤 문화적 전통과 대면하고 있다고 여긴다. 누구든지 아주 오래된 전통이 현대적 양식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그의 작업은 방식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그 내용의 핵심적 함축이 알려진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그 매체적 특징은 배후로 소실되고 나타나지 않는다. 디스플레이 자체의 매체적 특징이 지각되는 것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볼 경우다. 이미지는 낡은 것이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은 새 것이다. 부분적으로 낡고 부분적으로 새로운 것, 낡은 내용의 새로운 형식을 통한 재현.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이러한 양식의 서구적 표현이라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양적인 표제어다. 즉, 이이남의 작품은 아주 낡았으면서도 새롭다.

이이남_베르메르의 하루 Vermeer's day_LED TV, 영상_129×77×10cm, 00:05:50_2013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혼성은 이미 고전적인 사례들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 건축에서 차경(借景)의 원리나, 시가 문학에서 차운(借韻)의 전통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욱 극적인 사례로는 저명한 시구들을 선(禪)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비유로 차용하는 경우도 거론할 수 있다. 차경의 경우는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광경을 보고 즐기는 풍경이라는 차원으로 의미를 전이시킨다. 차운은 이미 존재하는 시구의 운자(韻字)에 해당하는 특정 부분을 빌려 자신의 시어 속에 녹여냄으로써 형식의 반복과 내용의 차이를 즐기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선종의 선사들은 당대의 저명한 시구들을 곧잘 선의 경지에 대한 묘사로 애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법연(法演)이 인용한 것으로 알려진 통속적인 연애시 가운데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 "소옥아! 소옥아!" 불러도 시킬 일은 없지만 頻呼小玉元無事 / 다만 사랑하는 낭군에게 목소리 듣게 하려고 祗要檀郞認識聲 이 구절은 남편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일도 없으면서 몸종인 '소옥'의 이름을 부르는 부인의 수줍은 애정을 노래한 것이다. 문학적 독창성은 부인이 직접적으로 남편을 부르지 않고,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종의 이름을 부른다는 간접화법에 담겨있다. 선종의 선사들은 이 구절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선적인 깨달음의 속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수행자는 그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도 그것의 이름을 모른다.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그것마저도 그것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소옥을 부르는 부인이 수동적으로 남편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선의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을 다하고도 깨달음의 순간이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개념적 은유를 빌려 말하자면 「선의 수행은 사랑」이고, 「깨달음이란 사랑하는 이의 돌아봄」인 것이다.

이이남_복숭아 Peach_디지털 프린트_30×30cm×50_2008_부분

차경과 차운, 연애시에 대한 선종의 재해석은 모두 다 동일한 것을 공유한다. 아날로그적인 연속성을 갖는 자연은 창문이란 프레임을 통해 재해석되고, 동일한 운은 다른 시정(詩情)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론적 맥락을 획득하며, 연애시는 선의 깨달음이 가지는 수동성에 대한 은유가 된다. 하나의 대상이 다른 맥락에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이처럼 다양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다. 이이남은 그것을 평판 디스플레이라는 매체를 통해 동양 회화 전통을 차용해서 구체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중략) ■ 이향준

이이남_조춘도-Invisible Light_LED TV, 영상_77×129×10cm_2014

Lee Lee-nam, An Endless Journey of Revived Tradition1. Passing through works indifferently, I stop before an Oriental painting it seems I have seen before. After a while butterflies and bees move, petals flutter in the wind, and fish romp. Seeing all this and after my exclamation of surprise - "Ah!" - the new character of the canvas bearing this Oriental painting emerges. The elements mentioned move in a flat monitor. This work's title, size, and producer are visible at the bottom corner of the wall where this work is on display. Lee Lee-nam's name and his works come into viewers' sight for the first time. 2. What first draws our eyes in his work is the conceptual metaphor 'display and paper', reminding us of a strong bond between flat panel display as electronic medium and paper as ground of painting. As this bond occurs to viewers' mind immediately and unconsciously, people do not need to have any conscious thinking to understand this. Those who have seen his work once naturally accept the fact that the flat panel display plays the role of paper of classical Oriental painting. What they overlook is the fact that this idea never came up in their mind before Lee had concretized this conceptual metaphor. ● What is perceived next is his work's dynamic character. Pictures are usually painted on paper, remaining fixed and inseparable in its attributes. However, his work is reprocessed by a digital system. Due to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 of digital medium in which information can be divided into a basic unit, discontinuity enables reproduction and modification through a process of readjustment. The still images of a bird are discontinuously arranged, but our sense of sight understands they have a dynamic attribute connecting frames. The connected frames enable the expression of diverse movements and insertion of information derived from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With this feature of the medium the image of a plane flying across the center of an Oriental painting can be inserted, geometric lines crisscross, and figures and actions with a completely heterogeneous cultural context can be juxtaposed with Oriental images. Images may have cultural gaps, but information is homogeneous. The limit of expression a creator addressing digital visual media often faces due to this distinctive characteristic is in fact the limit of his imagination. ● The digital and hybrid anchored to such a conceptual metaphor has a very close affinity. The digital is convenient in concretizing visual hybridity whereas the hybrid can be boundlessly expanded by the digital. What matters is elements that are hybridized. In other words, how can the classical Oriental painting tradition secure a position as a new artistic element in Lee Lee-nam's work? 3. With a panel display as paper, television as a frame, and moving image as a picture, there is a cognitive reason such related conceptual metaphors are easily accepted by the public. A moving image itself is a succession of still images. A picture is a halted image, and a video image is an accumulation of still images. With this strong affinity between moving and still images, people feel ease in recognizing the metaphor "A moving image is a picture." This brings about two mutually different effects in Lee's work. One is a strong universality. One who has a slight understanding of Oriental painting tradition can immediately grasp that Lee's work is a modern representation of the tradition. The reason why Lee's work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unlike other avant-garde media art is due to the appropriation or hybridization of such familiar elements. ● This hybrid lends two contrasting attributes to Lee's work. The attributes appear when two Gestalt elements collide and coexist. The visual representation of Oriental painting invests his work with a sort of originality. As Oriental painting elements are appropriated in his work, his work implies the existence of the originals. Those viewing his work unconsciously conjecture that elements in the originals are also in Lee's work. That is to say, appreciators feel they face a long-standing, authoritative cultural tradition familiar to them rather than something very old and authoritative while concentrating on the images. Anyone may feel the ancient tradition is represented with modern idioms in Lee's work. ● Despite his new work method, a key connotation within his work is unconsciously known to viewers. In this process the feature of his work's medium vanishes into the background. We can perceive the feature of his medium, a flat panel display in his work, distanced from it. The image his work captures is outdated whereas the vessel containing it is up-to-date. Partly old and partly new, representation of old content through new form -------- The West calls this Renaissance while the East describes it as 溫故而知新, or Review the old and learn the new. Lee's work is very old and simultaneously very new. ● But that doesn't mean his work is completely new, because there are rich, classical cases in this kind of hybrid. They include borrowed scenery in Oriental architecture and borrowed rhythm in Korean classic poetry. A more dramatic case is the appropriation of well-known verses as an analogy of Zen's existentialism. In the case of borrowed scenery, extant landscape is transferred to the landscape to be seen and enjoyed through the frame of a window. In the case of borrowed rhythm borrowing specific parts of a poem and applying this to one's own poem plays the dual function of enjoying the repetition of form and the difference of content. Zen masters often used famous verses of their age for describing a level of Zen. The following is part of a popular love poem quoted by Fayan. ● I call "Xiao-yu! Xiao-yu!" with nothing to ask her. (頻呼小玉元無事) / I call her name just to enable my dear husband to hear my voice. (祗要檀郞認識聲) The above verses sing of the bashful love of a wife who could not call her husband directly, instead calling her handmaid even though there was nothing to do. Her indirect speech - calling her handmaid instead of her husband - implies the literary originality here. Zen Buddhist priests regarded these verses as a depiction of Zen enlightenment. Although completely lured by this, practitioners do not know its name. Though they called a different name, even this is nothing but a means to reveal their affection for this. As the wife calling her maid waits for her husband's response, Zen practitioners wait for the moment of enlightenment after completing their practices. Following the conceptual metaphor "Zen practice is love", then "Enlightenment is one who loves and looks back on his or her lover." ● Borrowed scenery and borrowed rhythm; Zen Buddhist reinterpretation of a love poem, all are similar. Nature with an analog continuity is reinterpreted through the frame of a window, the same rhythm obtains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through different poetic emotion, and a love poem becomes a metaphor for the passivity of Zen enlightenment. An object universally has different meaning in a different context. Lee Lee-nam just concretizes this fact through the appropriation of Oriental painting tradition, adopting the medium of flat panel display. ■ LEEHYANG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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