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설화

고권展 / KOKWON / 高權 / painting   2014_0730 ▶︎ 2014_0911

고권_성산관일(城山觀日)_장지에 먹, 채색_194×13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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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 홈페이지_www.kokwon.com

초대일시 / 2014_0730_수요일_05:00pm

미술체험-먹으로 우리동네 그리기 2014_0805 ▶︎ 2014_0821 매주 화,목요일 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광화문 SHINHAN GALLERY GWANGHWAMUN 서울 중구 세종대로 135-5(태평로 1가 62-12번지) Tel. +82.2.722.8493 www.shinhangallery.co.kr

개인의 설화(說話)는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 오정희의 「유년의 뜰」(1998)은 전시(戰時) 중의 어수선하고 가난하던 시대를 살았던 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복원한 소설이다. 예닐곱 남짓한 노랑눈이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이야기하고 기억하지만, 어여쁜 이름과는 달리 그의 유년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 아버지 없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노랑눈이네 가족. 집안에는 항상 긴장감이 돌고 가족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지만 노랑눈이는 걸귀가 들렸는지 노상 먹을 생각만 한다. 잠이 든 어머니의 지갑에서 슬며시 돈을 빼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액수 또한 대범해진다. 이렇다 할 놀이도 없이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면 언니 뒤를 따라 저잣거리를 배회하며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곤 한다. 외눈박이 목수의 딸이 갇혀있다는 감나무 집을 지날 때면 마을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은 그 골방에는 귀신처럼 예쁘다는 부네가 정말 들어앉아 있을까...

고권_나비_장지에 아크릴채색_60×52cm_2014
고권_바람 센 날_장지에 먹, 채색_194×130cm_2014

아버지의 부재, 허기, 도벽, 괴담으로 얼룩진 그 시절, 보호와 애정이 결핍된 채 뚱보에 멍청이가 돼버린 노랑눈이가 경험한 세상은 부네가 갇혀있던 골방처럼 작고 어두웠던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랑눈이는 세상의 한계를 거부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게 된다. ● 이처럼 성장기의 보편적인 경험으로써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유년의 기억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절을 생생하게 불러내어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직물처럼 촘촘히 짜인 기억이 이야기로 전환되는 것은 인간이 언어를 지녔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어 안에서, 오로지 이야기의 움직임 안에서 존재하며 화가는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1980)의 말대로 "그림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일반적인 기호"라면 이미지는 타자와의 소통 수단으로 작용할 때 큰 의미를 지닌다. 결국 화가는 이미지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면서 그 의미를 실현한다.

고권_별이 되고싶은 소망_장지에 먹, 채색_162×112cm_2014
고권_손님_장지에 먹, 채색_74×41cm_2014

화가 고권은 『개인의 설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란 노랑눈이와 마찬가지로 유년기에 경험하게 되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것들이다. 작품의 근원이 되는 이야기는 대부분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그의 작업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 중에 하나이다. 성장기는 개인의 온전한 모습이 남아있는 시기이지만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이는 모호한 시기이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십대 시절에 받았던 충격으로 인생의 절반을 살아간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성장기에 응축된 사고와 감수성은 개인의 삶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입증하듯 고권의 그림은 예민한 감정들이 뒤엉켜 있던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솔직한 개인사가 투영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것은 결코 비밀스러운 기억이 없고 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설화이다. ● 고권의 작업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제주도'라는 공간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의 풍물과 무속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제주도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신비로운 생태를 줄곧 보고 자랐다. 그의 작품에서 제주의 자연유산은 물론 바다 생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한편 섬이라는 지역적 한계는 그가 성장할수록 이방인의 느낌을 주곤 했는데, 그의 작품에서는 미성숙한 존재인 한 소년이 이를 대신한다. 이 소년에게는 독특한 생물들이 항상 함께하면서 작가의 또 다른 분신처럼 존재한다. 개중에는 에스키모 소년과 열대지방의 파충류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주도는 한 겨울에도 야자수를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곳이 아니던가! 이 같은 생경한 풍경과 이질적인 요소들은 제주의 지역적 특성임과 동시에 작가가 상상해 온 파편의 결과물들이다. 결국 제주도는 작가의 태생을 결정하고 환경적인 영향을 준 물리적인 공간이면서 그가 바라는 상상의 유희로 완성된 환영적인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개인의 설화』는 이러한 요소들이 누적되어 서서히 완성된 그림들이다. ● 제주도의 풍광을 그린 채색 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1702)에 수록된 「성산관일」은 성산일출봉에서 해 뜨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일출봉과 우도의 지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작가는 이 역사적 자료를 차용하여 자신만의 그림으로 완성하였다. 고권의 「성산관일」에서 성산일출봉은 '성과 같은 산'이란 의미 그대로 육중한 성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높은 지대인 성산포의 수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을 "영험하고 위엄 있었다"고 회고한다.

고권_여신_장지에 먹, 채색_194×130cm_2014

● 「섬」은 고권의 작업을 구성해 온 오랜 테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육각형의 주상절리 위에 상어를 들고 있는 소년과 몇 채의 집들을 배치하여 섬을 표현하였다. 용암이 결정체로 떨어져나간 이 경이로운 광경은 그에게 "가깝고도 먼 비현실의 세계"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에게 섬, 즉 고향이란 바로 그런 공간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육각형의 주상절리 외에도 현무암과 오름 등 화산활동이 만들어 낸 형상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비정형의 풍경들은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자연이 지닌 근원적인 힘과 생명력을 일깨워준다. ●「손님」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 1960)의 단편 「손님」에서 모티프를 얻은 그림이다. 까뮈는 평소에도 고권이 자주 언급하는 작가로서 어린 시절 읽었던 그의 작품은 성장한 후에도 오랜 여운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까뮈의 작품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아름다운 단편 속의 건조한 북아프리카 대지는 거친 바다, 검은 바위, 휘어진 나무가 있는 풍경으로 옮겨졌다. 그곳에 한 이방인이 서 있다. 비행기와 여행 가방을 보라. ● 제주도의 바람을 실감케 하는 「바람 센 날」은 초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소년은 거대하게 변형된 해마를 부여잡고 있다. 이 거센 바람 속에서도 소년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금발은 소라로 흰색 원피스는 보라색 가오리로 대체되었지만 「여신」이 마릴린 먼로를 그린 것이라 하면 어떤 장면인지 바로 떠오를 것이다. 작가는 관심 밖의 배우였던 마릴린 먼로의 삶을 우연히 알게 된 이후 그녀의 아름다운 순간을 그림 안에 투영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시대의 아이콘을 상징하는 그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여신'은 어머니라는 모성을 대표하며 여성이 지닌 치유의 힘을 뜻한다. ● 몽골인처럼 씨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사가 되고 싶은 소망」과 성게를 쓰고 있는 「별이 되고 싶은 소망」에는 제목 그대로 작가의 염원이 담겨있다. 북방유목민족들의 강인함과 순수함을 닮고 싶고, 별처럼 따뜻하고 진실 된 삶을 살고 싶은 소망.

고권_좋은날_장지에 먹 채색_162×130cm_2014

인간이란 무릇 유년기의 원초적 감각을 좇는 존재들이다. 『개인의 설화』와「유년의 뜰」은 바로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들이다. 고권과 노랑눈이가 좇은 감각적인 기호들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녹아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의 유기적인 한 부분으로서 현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 없다면 현재 또한 없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나'를 확인하는 작업이고, 부재하는 '나'를 재구성하는 존재화 작업이다. 과거는 이 점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 고권에게 있어 과거의 기억이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실존의 문제이다. 『개인의 설화』를 통해 그가 보여준 과거의 의미화 작업은 현재의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삶은 그만큼 충만하고 치열하게 살아갈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살고, 또 기억하는 것이다."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 김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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