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opia in Emptiness 그 곳의 유토피아

전희경展 / jeikei JEONHEEKYOUNG / 全姬京 / painting   2014_0801 ▶ 2014_0914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전희경_생_몽상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6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709d | 전희경展으로 갑니다.

전희경 홈페이지_jeonheekyou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작가와의 대화 / 2014_0822_금요일_02:00pm * 상기 일정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갤러리에 문의 부탁드립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롯데갤러리 중동점 LOTTE GALLERY JUNGDONG STORE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길주로 300 롯데백화점 중동점 10층 Tel. +82.32.320.7605~6 gallery_jd.blog.me

유토피아는 없다"청춘은 지금 방황 중. 청춘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하기 어렵다. 살아있는 한 겪게 되는 자신과의 가장 큰 전투의 시기." 상처받은 자의 유토피아 ● 유토피아(Utopia)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다. 현세와의 연속선상에서 꾼 꿈이건, 시공을 단절한 양상이건, 결국 이상국(理想國), 도원경(桃源境), 하데스(Hades) 등은 현실 속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곳에서 본능처럼 낙원을 떠올린다. 이상세계(理想世界)를 그린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의 소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현실은 고단하지만 피안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행복할 꺼라 믿으며 많은 이들은 위안을 삼는다. 실재하진 않지만 현실에 원본(original)을 둔 허상(illusion)이며, 현실의 고통이 더할수록 선명해지는 이상(ideal), 유토피아. 분명 아이러니다. ● 역시 유토피아로 호명되는 한 세계가 있다. 전희경 작가의 2014 신작展에는 '유토피아'(Utopia in Emptiness_ 그 곳의 유토피아)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그러나 실상은 스스로의 내면에 오롯이 몰입 하고 있는 세계다. 그 결과가 행복한 유토피아의 이미지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내적 몰입 의 목적은 '심미적인 유토피아 이미지의 추구'나 '관람자 취향에의 봉사'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화면 속 요소들은 서로 뒤엉키고 뒤섞이고, 흐트러지고 흐른다. 묘사인지, 그저 붓질인지 그 경계 도 분명치 않을 만큼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가 최고조인 공간이다(몽상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24cm_2014). 당연히 이곳에 타인이 노닐 곳은 없다. 환영하는 주인장의 손짓도, 몰래 불쑥 끼어들 틈도 보이지 않는다. 쉽사리 연상되는 평안한 유토피아와는 짐짓 다른 세계다. ●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뭉글뭉글한 덩어리들은, 그녀의 작업이 유토피아 세계와 짝지어 지도록 공헌해 온 요소다. 구름과 골짜기들을 닮은 이 유기체적 형상들은 작가의 분신, 즉 아바타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천국의 지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붓 놀림, 색조, 배치 등 면면의 뉘앙스들을 짚어 볼 때, 우리는 이 올 오버 (all over) 페인팅이 결코 천국의 노래가 아님을 알 게 된다 (생_몽상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6cm_2014). 도리어 번뇌로 인해 터져나간 뇌의 파편들, 혹은 눈물로 꾸역꾸역 삼킨 온갖 잡동사니들의 배설물이나 토사물의 흔적이라는 통찰에 옳거니 손을 들게 된다. 분명 이곳은 친절한 만찬장(晩餐場)이 아닌 심란한 배설의 장에 가깝다. 전시타이틀 'Utopia in Emptiness' 역시 유토피아가 '공허함'과 결합된 모순적 조합이다. 위안의 장소마저 염세적인 숨결로 덮어버린 흔적이다. 고통의 배설장이 되어버린 이 유토피아는 처연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작가의 머리 속엔 유토피아 따위는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전희경_Moon Sce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0cm_2014

'장뇌'의 숭고함 ● 입구도 출구도 없이 꽉 막힌 이 몸부림의 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날에 대한 그녀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한다. 순조로운 엘리트 코스로의 행보가 '화가로 성공하기'의 필수보증이 될 수 없다는 현실적 깨달음, 정작 작업에 몰두해야 할 시간의 대부분을 학비벌이에 쏟게 된 예비작가 시절의 자괴감, 그리고 내밀한 개인사에 얽힌 상실감 등이 그녀의 속을 검게 태웠다. 당시 작업들에 대해 그녀는 "괴물같이 변하고 의도치 않는 촉수가 자라나는 오브제들" 이었다고 회상한다. 자신이 매일매일 걸어가는 길이 궁극적인 목적지와 어긋나고 있다는 불안감이 카오스의 세계로 터져 나오기 시작. 배설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유토피아라고 부르고 있는 그 세계다. ● 2006년 첫 전시로 선보인 것들은 의외로 그림이 아닌 '오브제 조각(object sculpture)'들이었다. 긴 꼬리의 외눈박이, 촉수가 여럿 달린 얼룩이 등이 투명한 소품들을 지지대 삼아 함께 배치되었다(「Desire of Growing Stimuli Series, mixed media, 2006」). 그저 괴물이라 통칭하기엔 석연치 않은 이 오브제들은 아메바, 짚신벌레 등의 원생동물이나 히드라, 말미잘 등의 자포동물을 빼 닮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뇌가 없다는 점이다. 즉, 장이 뇌의 역할을 한다. 두뇌가 아닌 '장뇌'가 있는 셈인데, 진화론적으로 신경계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두뇌가 아닌 '장'이라는 연구결과나, 두뇌가 멈춰도 숨이 멎지 않지만 장이 기능을 못하면 바로 숨이 끊어진다는 사실은, 이성만 숭배해온 우리의 오만함을 찌른다. ● 무엇보다, 그녀가 토해내듯 빚어내어 끈덕지게 붙들고 온 형상들이 바로 이 '장뇌생명체들'과 유사하다는 점은 놀랍다. 두뇌는 없고 단지 생사에 근본적으로 관여하는 '장뇌'만을 가진 생물들의 존재, 그런 생물을 닮은 형상들을 토해낸 무의식적 재현들, 그리고 애끓는 고통을 예술을 통해 이겨내 보려 한 그녀의 의지 사이의 묘한 일치는, 분명 놀라움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상처로 신음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 욕구를 채워 줄 책이 아닌 생명연장을 위한 처방이다. 실제로 번뇌가 극에 달했던 수년간, 이 형태들은 조각과 회화를 막론하고 그녀의 분신처럼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2011년 개인전에서 만나게 된 이 생명체들은 전보다 '사람다워진' 모습으로 변모했으나, 여전히 몸체로만 생존하는 살덩어리 상태로 남아있다. 물론 머리는 없다. 독하리만큼 고통의 근원을 파고드는 이 같은 연속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만다.

전희경_몽상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50cm_2014

누구나 고통은 있다. ●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다. 단지 상대적 차이가 있을 뿐이며 중요한 것은 고통을 대하는 태도다. 퀴블러 로스(E. Kubler Ross, 1926~2004)는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를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5단계로 나누었다. 생물학적 죽음뿐만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정신적 충격들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볼 때, 거의 10여 년에 달하는 전작가의 작업세계에서 우리는 위 단계들에 상응하는 양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부정 과 분노'의 과정은 현실거부와 외부의존적인 특징을 갖는데, 2008년까지 즐겨 사용한 촉수 달린 오브제들의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은 이 단계의 특징들과 부합된다. 한편, 그녀는 캔버스나 종이류가 아닌 인화용지나 합성피혁을 사용했을 만큼 선명한 발색을 원했는데, 색채와 형태간의 이율배반적인 이 배합은 주목을 끌 수 밖에 없다. 촉수 달린 기형적 생명체가 고통의 산물이라면 고채도의 화려한 색채는 이에 모순되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발랄한 조증(은 우울증세 중 하나다. 화려한 색채로 치장한 고통의 이미지들은 현실거부를 위한 위장술의 한 양태로 볼 수 있다. ● 절대자에게 모든 힘을 의지하고 온순하게 행동하는 '타협'의 단계는, 주로 2011년 회화들의 배경(background)과 이미지간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배경과 이미지간의 관계성은 전작가의 심리적 변화와 맞물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전 단계까지의 이미지들이 휑한 배경과 확연한 경계들을 지니고 있다면, 이 시기는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배경의 일부처럼 보이는 암반형상들에 오브제들이 들러붙어 착생하는 '군락'의 형태들이 지배적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타협'단계에 부합되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특성은, 2011개인전('현실과 이상의 간극 또는 연옥', 갤러리AG) 출품작들이 '살이'시리즈라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현실인정과 직시를 특징으로 하는 '우울'의 단계는, 우울의 정서를 직시한 2013년도 개인전('번뇌의 변태', 오픈스페이스 배)이 드라마틱한 예시가 된다. 이때 미분화된 생명체가 아닌 인간형상이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없고 접힌 살덩어리가 강조된다. 무엇보다, 예민한 선과 흑백 톤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연필 드로잉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였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음울한 흑백톤은 드로잉이 아닌 회화작품「Practice being human」(2013)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 이 정도로 많은 검정 톤이 할애된 회화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원색의 화려함으로 우울을 감추던 '조증의 위장술'과 달리 부조리한 삶에 대한 한숨을 감추지 않는 형식이 돋보인다. 그리고 2014 신작들에서 더 이상 조증을 연상시키는 색톤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원색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희경_몽상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24cm_2014
전희경_In between_합성피혁에 아크릴채색_100×224cm_2011

새로 짓기 위해 흔들다. ● 2014 신작들은 실상 죽음의 '수용'의 단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준다. 신작들의 유기체들은 그 형태가 거의 해체되어 배경을 파고들거나 덮거나 흔들어대는 파괴적 양상을 띤다. 화면은 머지않아 폭발할 것처럼 무질서의 에너지가 고조되어 있다. 이는 새로운 질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실제로 신작「연무도」(2014)와「Moon Scene」(2014) 두 점은 정처 없던 부유에서 또박또박 보행으로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준다.「연무도」에서 하얀 안개들은 막강한 힘으로 먼저 그려진 과거의 형상과 배경들을 덮는다. 마치 죽은 자의 유품을 흰 보로 씌워 삶과 죽음의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명백한 경계를 지우 듯 말이다.「 Moon Scene」은 지금까지의 작업들과 확연히 다른 구도의 작품이다. 거의 대부분 올 오버 구성이던 작업들 가운데 처음으로 구심점으로서의 정원(正圓)을 그려 넣은 변화다. 마치 다음 목표지점을 알려주듯이 그 큰 원안에는 보다 실제적인 형태의 점묘산수가 그려져 있다. 지금까지의 유토피아가 혼돈과 배설의 장이었음을 직시하고 이제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려는 의지처럼 말이다. ● 고통의 여러 단계들을 내적으로 승화해 온 그녀는 하나의 주제를 향한 솔직 당당한 열정으로 수년에 걸친 이 방황의 지도들을 완성해 가고 있다. 그 시작은 상처를 치유하는 도피였다면 이제는 아픔을 직시하는 용기를 보게 된다. 멀리 떠나보면 집의 고마움을 알 듯, 현실에서 도망쳐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답이 나온다. 전희경의 유토피아는 그런 삶의 변증법을 보여주는 여정이다. 방황과 아픔의 흔적들을 그대로 토해내고, 이상과 현실, 예술과 삶을 쉽사리 통합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은 청춘의 시그널이자 결과적으로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수 있다. 모두 흔들어 헐고 나타날 그녀의 새집이 궁금해진다. 물론, 애증과 희망이 뒤섞인 곳,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 살 바로 그 땅 위의 새집이다. 유토피아는 이제 필요 없다. ■ 김소원

전희경_To Be a Man_대만 전통종이에 연필_12×12cm_2013
전희경_in dailogue with her 4_종이에 연필, 수채, 과슈_32×44cm_2011

There is no Utopia ● "Youth is wandering now. It is hard for youth to become lenient toward oneself and others as well. The big battle is one they will undergo as long as they live." Utopia for the wounded ● The term "utopia" means "no place". There is no ideal state, golden age, Peach Garden, or Hades in reality. And yet, we dream of a utopia and envisage a paradise by instinct even if we do not mention Utopia, a novel by Thomas More (1477-1535). Many comfort themselves with the thought that their reality is arduous but their life in the other world will be happy. An ideal or a utopia is inexistent but ironically becomes apparent in the pain within reality. ● There is a world called a utopia. The 2014 exhibition of new works by artist Jeon Hee-kyoung is titled Utopia in Emptiness. This is in fact the world where the artist is immersed in her inner self. Her immersion may result in envisaging "a happy utopia", the purpose of her inner absorption seems far from any "pursuit of an aesthetic utopia or, service for viewer preference". Elements in her scenes are intermingled, mixed, scattered, and flowing. Her scene is a place where entropy reaches its peak. (Daydream, 2014) There is no place where others can play. There is no owner welcoming us and no room to intervene. This is a world completely different from a peaceful utopia. ● Masses appearing throughout the scene of her work are the element matched with her utopia. These organisms similar to clouds and valleys are like her alter ego or avatar, and may look like heavenly topography. Examining each nuance deriving from brush touches, shades of colors, and arrangements, we realize her painting is not a heavenly song. (Life_Daydream, 2014). We also realize what she portrays are pieces of a brain burst by agony, or excreta, or the vomit of odds and ends. Her place is surely approximating a forum for excretion, not a venue for a feast. The exhibition title Utopia in Emptiness hints at a pessimistic breath and traces with a contradictory fusion of utopia to "emptiness". This utopia as the venue for where excretion appears abject. The artist probably did not consider any utopia from the beginning. The sublimity of the intestine-brain ● We have to pay attention to her confession to understand the venue for this struggle with no entrance or exit. She was torn by her realization of the reality that the elitist course she had taken could not guarantee her success as an artist, the low self-esteem she felt as a would-be artist who had to spend most of her time earning school expenses rather than devoting time to artistic work, and a sense of loss interwoven with her clandestine personal history. Jeon harks back to works at the time were "objects transfigured to something like freaks and from which tentacles grow". As anxiety about the path she had taken might deviate from her ultimate destination comes out from the world of chaos excretion started. This is the world we call now utopia. ● Works displayed at her first exhibition in 2006 were "object sculptures" unexpectedly. A one-eyed object with a long tail and a spotted object with many tentacles were arranged with transparent props playing the role of support fixture. (Desire of Growing Stimuli Series, 2006) These objects - hard to call freaks - looked just like amoeba or cnidarian such as hydra and sea anemone. These creatures have one thing in common: they have no normal brain instead the intestines operate as the brain. This means they have an "intestine-brain" instead of a "brain". Research shows here that the nerve system was initially made in the intestines, not in the brain, and the fact breathing stops when the intestines cannot function properly, even when breathing does not stop when the brain is dead, is perhaps an assault on our arrogance in worshipping reason only. ● Amazingly, the images she has persistently portrayed to overcome her pain, as if vomiting, are akin to the creatures living with the intestine-brain. What's required for those suffering wounds is not a book to fix their cerebral desire but treatment to extend their lives. The creatures with only the intestine-brain involved in life and death, unconscious reproductions of images similar to them, and her will to overcome pain, are surprisingly consistent with one another. Everyone suffers pain ● Everyone suffers pain. Pain can be felt differently, but what's important is our attitude toward pain. Kübler-Ross (1926-2004) delineated the five stages of one facing impending death: denial, anger, bargaining, depression, and acceptance. If assuming that death is inclusive of not only biological death but also psychological trauma, we can find aspects approximating the stages above in Jeon Hee-kyoung's art. The stages of "denial" and "anger" are characterized by denial of reality and reliance on the external world. The unrealistic, abstract character of her images with tentacles matches with the trait of denial of reality. As the artist wanted vivid primary colors, she used photographic paper or synthetic leather in lieu of canvas or paper. The antinomic coalescence of color and form may be the issue to be focused on for discussion in her work. If a freakish life form with tentacles is the product of pain, flashy colors with a high chroma can be seen as a violation of her pictorial grammar. Such colors can be regarded as another aspect of a rejection of reality. ● The stage of "bargaining" in which one relies heavily on the absolute and behaves obediently is reflected in the backgrounds of paintings she produced in 2011. The relationship between background and image is one of the key elements associated with changes in her mental state. Shapes like a colony overridingly emerged in this period. The images depend completely on and are entirely obedient to the background. The stage of "depression" characterized by recognition of and facing reality is exemplified by pencil drawings she did in 2013. In these drawings, she featured gloomy emotion. She first portrayed humans in such drawings, but they are still headless, and a folded lump of flesh is emphasized. Noteworthy is the use of black tone away from flamboyant primary hues. Her painting Practice being human (2013) shows this change. Much more black is used in this painting than any other works. Unlike the brightness of primary colors concealing depression, its form of unveiling absurdity stands out. Hues reflecting a manic or depressed mood are no longer used in her latest pieces of 2014. Demolishing for new building ● Jeon's new works produced in 2014 emit a new energy, going beyond the stage of "acceptance". In these pieces, organisms appear almost deconstructed in their form, showing destructive aspects of infiltrating, covering, or shaking the background. The energy of disorder reaches a climax seemingly on the verge of exploding. This is a shift to new order. The two new pieces, Smoke and Fog (2014) and Moon Scene (2014) display an apparent shift from floating to firm settlement. In Smoke and Fog, white fog covers past shapes and backgrounds with great power as if drawing an apparent distinction between life and death by covering articles left by the deceased with white cloth. Moon Scene has a composition obviously different from that of other pieces. This painting has a center and shows a garden for the first time in her works based on the all-over composition. A substantial landscape is depicted in a huge circle as if to make a point. It seems to denote her will to look for new hope, facing the fact that her utopia was a venue for confusion and excretion. ● The artist has sublimated many stages of pain internally, completing the map of her wandering with great verve for just one theme. Starting from an escape for healing her wound, she presently displays courage to face such pain. As we become aware of the importance of an abode when staying outside, we can get an answer how to live when escaping from the reality. Jeon's utopia is a journey suggestive of the dialectic of life. Pouring out the traces of wandering and pain and conflict between the ideal and reality, art and life, may be a signal of youth or the privilege young people can enjoy. I wonder how her new house is to be built after the demolition. The house is of course the new one she inhabited, and will inhabit, in mixed feelings such as love, hatred, and hope. ■ KIMSOWON

Vol.20140804h | 전희경展 / jeikei JEONHEEKYOUNG / 全姬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