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행된 풍경 Committed Landscape

조미영展 / CHOMIYOUNG / 趙美英 / installation   2014_0813 ▶ 2014_0904 / 월요일 휴관

조미영_감행된 풍경_알루미늄, 나무, 망사, 케이블 타이, 철, 시멘트, 에폭시_140×320×90cm, 가변설치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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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 홈페이지_miyoungcho.net

초대일시 / 2014_0813_수요일_06:00pm

이 전시는 폴락 크라즈너 재단지원금(뉴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 5길 66(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동사(動詞)로서의 풍경 ● W.J.T 미첼(Mitchell)은 '풍경과 권력(Landscape and power)'에서 '풍경(landscpe)'을 명사(名詞)에서 동사(動詞)로 그 의미를 전환 시킨다. 그에게 '풍경'은 보여 지는 대상이나 읽혀져야 하는 텍스트가 아닌, 사회적이며 동시에 주관적인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풍경은 피사체로서 바라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다. 나와 물리적으로 연결된 나의 유기적 확장체이다. 나의 몸은 나의 집 안에서 다양한 접촉으로 시간과 공간, 존재를 공유함으로서 확장되고, 이런 집들(또는 아파트들)은 모여 하나의 건축물을 이루며 제한된 땅에서 얼기 설기 구조화 되어 삶을 지원한다. 이들은 반복과 변주로 확장하여 도시를 이룬다. 방을 나서서 집 밖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거리를 걷고 도시로 나갈 때처럼 나의 존재는 조금씩 더 큰 세계로 연결되어 '풍경'을 만난다. 그러나 '풍경'은 없다.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은 원거리의 풍경을 가로막고 근거리의 건물과 거리들만 허락한다. 원거리의 도시의 모습을 조망하려면 운전대를 잡고 올림픽 도로나 강변도로를 달려야한다. 변화를 감행하는 풍경은 말한다. "너는 낡았어. 너는 초라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어. 그런데 넌...." ● 기억이, 추억이 낡은 건물과 함께 소멸하고 그 위에 영원히 시들 것 같지 않은 건물들이 자란다. 영생을 얻은 것처럼 당당한 자태로 서 있는 건물들은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소유다. 그 새로움이 소유자들의 욕망을 채우고 자본주의를 안도하게 한다. 그러나 '나'와 더 많은 '나'들에게 조망되어진 풍경은 매끈한 표면의 껍질이다. 감행된 욕망이다. 나의 소유가 아닌 그들의 '풍경'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그것은 시각과 공간으로 나의 눈과 몸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나의 감성들을 어떤 식으로든 점유한다. 오늘도 어떤 '나'가 파괴되고 지워지고 또 새로 자라난다. 그것은 표피적이고 폭력적이다.

조미영_감행된 풍경_알루미늄, 나무, 망사, 케이블 타이, 철, 시멘트, 에폭시_140×320×90cm, 가변설치_2014

그림 그리듯 구축하기 ● 머릿속 떠다니는 이미지들 중 하나를 잡아채어 '심리적 풍경'이라는 작업에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사용 되어 왔던 아이소핑크라 불리는 고강도 스티로폼과 종이 상자의 겉면, 몇 종류의 접착제가 사용되고 재활용품이나 다양하고 산발적인 재료들이 사용된다. 에스키스를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작업의 크기를 가늠하거나 도면이 필요할 때 그림을 그리곤 한다. 빈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 듯 커다란 덩어리를 잘라낸다. 열선을 이용해 잘라내다 보면 언덕이 되고 길이 되고 나무가 된다. 아직까지 작업은 새벽안개 속 흐릿한 물체들만큼이나 모호하다. 기대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될까?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무슨 말을 할까? 이제 조금 자세히 해야 할 차례이다.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거나 자료를 찾아본다. 실제 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용접을 해서 이어 붙일 때도 있다. 큰 덩어리와 작은 덩어리들 또는 서로를 이어붙일 때는 오공 본드나 글루건, 순간접착제나 스프레이 접착제를 적절히 사용한다. 형상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제는 종이들을 얇게 뜯어내어 붙인다. 밝고 다채로운 색은 아니지만 그려진 그림위에 색을 칠하는 회화의 과정과 유사하다. 입체적인 형태의 표면적을 다 붙여야하기 때문에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이런 단순한 반복은 때로는 성취감을 주거나 머리를 맑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몇 가지의 과정을 더 하면 작품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조미영_감행된 풍경展_갤러리 조선_2014
조미영_감행된 풍경展_갤러리 조선_2014

그렇다고 나의 작업들이 회화적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회화의 평면에 없는 덩어리와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덩어리와 선들이 공간 안에 잘 놓이도록 자리 잡는 과정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건축적인 감성들이 내제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과정들은 구축적이며 내 안에 있는 건축적인 감성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복기할 때 혹시 그림을 그려보거나 형태를 만들어보지 않은 이들은 각각의 과정마다 같은 강도의 수고로움이 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의 의도와 달리 다른 쪽으로 가려하는 재료들에게 끌려 가기도하고 그 것에 끌려가지 않으려 나로서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다가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내가 토라져 재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재료들이 삐져서 애를 먹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재료와 나의 의지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결정된다. 그것은 재료와 나의 타협일 수도 있고 나의 손을 통해 나온 어떤 숭고한 이끌림 같은 거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명확한 것은 나의 손, 그러니까 나의 몸이 물건들, 재료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분명한 시각적인 이미지에 길들여진 요즘, 손으로 만지고 자르고 찢고 잇고, 붙이고 다듬고를 반복하는 이 촉각적인 감각들을 이용하는 행위들이 무용(無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느리고 지루한 과정들이 우리를 동물이 아닌 문명으로, 하나의 존재로서 여기까지 오게 하였던 것은 아닌지, 쓰임이나 요구에 맞게 재료를 탐색하고 손으로 다루어 만들어낸 그릇과 도구들, 집과 무덤들 거리와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존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든 기술과 과학으로 척척 지어내고 만들어내는 요즘. 내가 느끼는 감각들과 생각들을 손으로 다루어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조미영_심리적 풍경-거여동_ 아이소핑크, 종이, 나무, 혼합재료_160×290×30cm, 가변설치_2014
조미영_심리적풍경-몽유도원도_아이소핑크, 종이, 나무, 혼합재료_120×160×30cm_2013

'감행된' 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무모하거나 어렵거나 비난을 받을만하더라도 과감하게 실행된'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이 용감하고 거창한 단어가 내게는 ' 협의 없음'과 '공감 결여'등으로 읽혀진 것은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건축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무모함과 연결되어서 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작업을 '감행한다.' 거대함과 보잘 것 없음, 자본과 속도, 음모와 은폐, 관습과 혁신, 소비와 가난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음으로. ■ 조미영

조미영_Land Delivery1_아이소핑크, 종이, 종이상자, 혼합재료_80×80×80cm, 가변설치_2014
조미영_Land Delivery2_아이소핑크, 종이, 혼합재료_25×50×30cm_2014

Landscape as verb ● W.J.T Mitchell presents a shift in the import of 'landscape', from noun to verb, in his book Landscape and Power. To him, landscape is not an object to be seen or text to be read but a process by which social and subjective identities are formed. ● A landscape is not an object to be seen but my organic extension physically associated with me. My body expands by sharing space, time, and existence in my house through diverse contacts. Forming an architectural structure, such houses (apartments) support life through structuralization in a limited space. Houses expand and form a city through repetition and variation. As one leaves home and enters a city after getting out of an elevator, one's existence meets a 'landscape', linked to a broader world. However, there is no 'landscape'. High-rise apartments and buildings do not allow us to see a distant view, enabling us to see a close-range view. If we want to see distant urban views, we have to drive along Olympic highway or a riverside road. ● Carrying out change, the landscape mentions "You are old. You look shabby." "I am being born again, but you ----?" Memories and reminiscences perish alongside old buildings, and new buildings that seem unlikely to wither grow from the buildings. The buildings standing imposingly as if they have eternal life are possessed by those who failed in gaining their eternal life. This newness meets their desire and relieves capitalism. However, the landscape viewed from 'I' that 'Is', is a sleek surface and dared desire. Their 'Landscape', not my landscape, is not the 'other' any more. It occupies my emotion, producing chemical reactions in my eyes and body. Some 'I' is destroyed and deleted today also, and a new 'I' grows, that is superficial, and violent. Constructing like drawing ● I work on 'psychological landscape' by capturing one of the images floating in my mind with high-strength Styrofoam called iso-pink, cardboard box surfaces, several kinds of glue, recycled items, diverse, miscellaneous materials. No esquisse is drawn for my work. Instead, I draw a picture when required to gauge the size of my work or a floor plan. I cut off a huge lump as if making a rough sketch. When cutting with a hot wire foam cutter, a hill, path, or tree emerges. My work is still as equivocal as a blurred object in mist at dawn. I have some expectation. What will happen? What will they say at last? It is time my work should be more sophisticated. I take photographs or look for materials for creating concrete form. I at times use actual branches or weld some objects. I also properly use adhesive, a glue gun, instant glue, or spray adhesive for bonding large and small lumps. Through this process clear images come up. I attach thin paper pieces. This process is like painting, applying colors to painted images. The process of attaching paper pieces to the entire surface of a three-dimensional shape is boring and extremely difficult, but this simple iteration at times makes me feel a sense of accomplishment and keeps me awake. My work is completed by adding more processes to this. ● And yet, my work cannot be concluded as painterly because it has lumps and three-dimensional space. I consider the process of placing lumps and lines in space very significant. I also think everyone has an architectural sensibility. The process above is constructive, and organically associated with my architectural sensibility. Those who have no experience of drawing pictures or making form may suggestively think the same amount of labor was required for each process. That is not true. I often contend with materials: I am led by material or struggle not to be led by it. I at times intentionally disregard material or have a hard time due to its sullen response. The use of material is thus determined at a halfway point between its response to my will. It may mean I compromise with material or I am led by some sublime feeling deriving from my hand. What's obvious is the trace of a narrative my hand or my body exchanges with things or materials. ● As we are tamed by visual images, the act of harnessing our tactile sense – touching, cutting, tearing, joining, and polishing by hand – may be considered of no use. However, this slow, tedious process may enable us to be here as civilized men, not barbarous animals. We can survive as we explore materials to meet our demand and use and produce vessels and tools, houses and tombs, streets and all others. In present days, we can automatically produce anything we want thanks to science and technology. I think about the import of my act dealing with and expressing my sensation through my hand. ● The word 'committed' hovers in my mind. The dictionary definition is 'carried out drastically even though reckless, hard, or blamable' but I interpret its connotation as 'no consultation' or 'lack of sympathy' because it reminds me of reckless scenes that form with rapidly among changing architectural structures. I thus 'commit' my work as it is the only thing I can do between significance and insignificance, capital and speed, conspiracy and concealment, convention and innovation, consumption and poverty. ■ CHOMIYOUNG

Vol.20140812d | 조미영展 / CHOMIYOUNG / 趙美英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