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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우展 / LEEJEWOO / 李濟雨 / painting   2014_0813 ▶ 2014_0818

이제우_My ex-wife’s skin_종이에 흑연_150×250cm_2014

이제우 홈페이지_www.leejewoo.net

초대일시 / 2014_08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작품에 가장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텍스트는 무엇일까? 전시회를 가면 작품 아래에 붙은 작은 텍스트들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캡션이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작품의 제목과 재료, 크기, 제작 연도를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정보 용도로 쓰인다. 그런데 문득 캡션이 정말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추상회화 같은 경우에 제목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작가의 생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제목을 생각하면서 나는 작가로서 과연 적절한 선택을 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명료하게 한 문장 혹은 몇 개의 단어로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물론 작품의 의미 또는 가치에는 제목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형적 요소나 개념도 포함이 되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가까운 텍스트는 바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목을 가지고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제우_The invisible man_종이에 흑연_150×250cm_2014
이제우_The prophet_종이에 흑연_78×109cm_2014

일반적으로 제목의 지시적인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관객들은 쉽사리 제목을 작품과 연관시켜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일종의 관습적인 행동들인데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에 당연히 목적지가 존재할 것이라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과 제목의 관계를 설정한다. 하지만 표지판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 관객들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물론 제도화된 사회에서 혼란을 일으킬만한 표지판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예술 영역에서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사실 모든 것이 제목 탓일까? 오히려 아무 고민이나 의심 없이 오랜 습관처럼 작품을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과 제목을 전혀 다른 관계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관객은 작품의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익숙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의미를 찾는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우_SKY3_종이에 흑연_109×236cm_2012
이제우_This is not a caption_종이에 흑연_61×73cm_2014

나는 작품의 제목뿐 아니라 작품에 관련된 다른 텍스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작품평이라거나 혹은 작가 본인의 생각들 역시 의도되었건 의도치 않았건 잘못된 표지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관객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되려면 관객 스스로 표지판도 없는 험한 길로 모험해야 한다. 이 과정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만들어진 제목이나 다른 텍스트보다도 스스로 더 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이제우

Vol.20140813d | 이제우展 / LEEJEWOO / 李濟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