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다-내안의 세월호

2014_0820 ▶ 2014_0831 / 월요일 휴관

박은태_팽목항의 대한민국_장지에 아크릴채색_202×145c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서울민족미술인협회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시_(사)민족미술인협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SeMA Gyeonghuigung of Seoul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새문안길 60(신문로2가 2-1번지) 1 전시실 Tel. +82.2.723.2491 seoulmoa.seoul.go.kr

통곡과 비탄이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최근의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국가인가?"를 궁극에서부터 성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을(乙)-국민'을 재난으로부터 지키고 구휼해야 할 '갑(甲)-국가'라는 사회적 계약이 지켜지지 못했다는, 이 체제 아래서는 그 계약은 원천적으로 지켜질 수 없겠다는 아픈 각인이 그것이었습니다. 구난할 장비는 갖추고 있는가? 구난에 뛰어들 도덕적 인류애적 결단은 있는가? 우리의 절망은 이 두 가지만 점검해 보아도 충분했습니다. 단 한 대의 경비정도 없는 해안경비초소, 그 경비정보다 더 긴급한 사업, 수백 억원대의 골프장…. 하급관리, 중간간부, 장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위급상황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신의 자리보존만이 급선무인 '행정적 꼼꼼함'….

박은태_한강의 기적_장지에 아크릴채색_202×145cm
김보중_먼바다_캔바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
김보중_가까운 바다_캔바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

우리가 훨씬 더 주목하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긍휼할 줄 아는 이타심, 인류애와 같은 도덕심이 생겨날 수 없도록, 필요치 않도록 만들어진 이 세계의 비참이었습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정글. 그곳엔 모래알같은 개인들만이 생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린 우리 자신이 만약 그 선장, 그 장관, 그 대통령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잔인한 가정을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나는 그렇지 않을 텐데"라며, 과연 낙관할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 분야의 직위, 그 분야의 전문가만큼 미세한 '생존할 수 있는 행정처리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개인들에 대한 비난에 보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각자도생'의 야만상태의 개인들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국가 정체(政體)가 더 무거운 유죄평결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송창_인간의 탑_캔바스에 철판_181×227cm
이흥덕_검은바다_캔바스에 유채_130×162cm
김봉준_평화를 행동하는 기도/거위의 꿈_설치

전시 주제, "나는 우리다"를 통해 성찰해 보려는 것이 이토록 온전한 사유를 조건 없이 허용했을 리가 없는 기형적 사회의 기형적 사유의 구조입니다. 즉 인류애, 이타심 같은 도덕심을 불가능하게 하는 국가의 정체, 그 구조역학을 사유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형적 사유'라 하여 그것이 일탈적 기형이거나 악마적 외양이거나 하리라는 상상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무지'라고도, '이기심'이라고도 하지 못할, 그저 일상이라는 탈을 쓴 악(惡), '평범한 악' 정도인 것입니다. 검찰의 수사방향이 이미 그 끝을 환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증주의적 죄형법정주의라는 이름으로 진정한 사건의 진범, 국가를 기소하진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은 국가를 기소할 수 있고, 기소해야 합니다. ● 한없는 무의미와 분열의 속절없는 열망의 시대, 포스트모던 미술의 시대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성, 자연, 진보, 주체, 로고스와 같은 모더니즘의 중추를 의심하고 회의에 부쳤던 포스트모던은 이들 형이상학의 자리에 가볍고 소비적인 주제, 피상적인 내용, 장식적 이미지라는 스펙터클(spectacle) 취향을 대체했으나 마침내 글로벌화, 경매체제화, 금융화라는 시장의 논리일 뿐인 비루한 품격을 드러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체의 '공동체'가 허물어진 폐허에 생존하고 있는 비루한 주체, 비루한 미술에 사관(史官)의 임무를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영진_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_캔바스에 유채_130×191cm
김종도_부활_디지털 프린트_50×43cm
김천일_늦은오후- 광장에서_캔바스에 아크릴채색_133×52cm

한편으로 '우리', 그것은 타자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이는 '나'들, 즉 대상을 정복하고 상대를 타자로 전락시키며 그 자리에 절대적 ․ 자율적 주체로서의 자만심을 과시했던 자아들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우리에겐 그간 '타자'란 항상 '나'와 상반된 위치에 놓인 무엇이라 생각하곤 했던 빈곤한 상상력, 이항대립적인 무엇으로 간주했던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자는 '영원히 자기로 담아낼 수 없는 타자'인 것, 윤리의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담겨지지 않은 타자'와의 만남, 그것은 자아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타자와의 비상호적 관계를 의미하며, 그리하여 자기를 타자들과 유사한 하나의 타자로 만들 용의라 할 수 있습니다. '겸허한 주체'가 "너는 곧 나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이것은 모던으로의 속절없는 회귀도, 포스트모던으로의 맥락 없는 귀속도 아닌 대지적 만남인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적 삶의 터전이자 이를 통해 모든 존재들의 삶이 공유되고 있음을 깨닫는 터전인 대지(大地) 위에서야 모던의 단절이니 무의미니, 탈모던의 몰가치에 대한 탐닉이니 하는 미학들을 반성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탁영호_바람부는 처음으로_종이에 아크릴채색_60×90cm
서수경_가라앉다_장지에 아크릴채색_124×148cm

군사쿠데타와 유신의 폭압, 그 정신분열의 매트릭스 독재체제를 지나오고, 또 이어 군인독재라는 기나긴 겨울공화국을 끝장냈는가 싶었던 1987년의 시민적 승리. 그러나, 다시 이번엔 '자본-공화국', 괴물이 된 기술(technique)을 소유한 거대 자본이 국가를 접수한 초유의 사회, 그곳에서의 삶은 급기야 치유할 수 없는 내파(內破), 우울증 사회로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 자살, 타인살해, 산업재해, 교통사고 그 모든 것에서 최악의 지표를 기록하고 있는 최악의 야만상태의 우리에게 예술은 마지막 단 한 사람마저 행복해지기 전에는 축배를 들지 않겠다는 고결한 고집, 추상같은 최고법정의 판결로 남아있으라 합니다. ■ 박응주

Vol.20140817c | 나는 우리다-내안의 세월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