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

2014 Invitation Exhibition of Young Artists展   2014_0819 ▶ 2014_0831 / 월요일 휴관

나현철_DVD Rom_디지털 C 프린트_2012

초대일시 / 2014_0819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대일_남선모_나현철_강동호_안동일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문화예술회관 DAEGU CULTURE AND ARTS CENTER 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Tel. +82.53.606.6114 artcenter.daegu.go.kr

대구문화예술회관(관장 박재환)은 8월 19일(화)부터 8월 31일(일)까지『2014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을 개최한다. 지난 2월 작가 공모 후 3월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서예, 공예, 사진 분야에서 선정된 신진 작가 5명의 작품을 한데 모아 대구문화예술회관 1~5전시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김대일(서예), 남선모(공예), 강동호(사진), 나현철(사진), 안동일(사진) 등 5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다.

김대일_꿈Ⅳ_목판에 먹_51×51cm_2014
김대일_꿈Ⅵ_목판에 먹_51×51cm_2014

김대일은「꿈」을 연작으로 쓴다. 다양한「꿈」시리즈는 서예를 기초로 한 필치에서부터 뿌리기와 같은 현대적인 조형 방식에 이르기까지 현대 서예의 다양한 변용을 보여준다. "(전략) 비옥한 토양에서 자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꽃은 단순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훈훈한 향기를 뿜어낸다. 마찬가지로 학문적 바탕 위에서 인문의 소양을 머금은 예술은 美를 발산할 뿐더러, 지성의 향기와 감성의 매력이 그윽하다. 특히 동아시아 예술 가운데 학문의 토대와 인문의 자양을 중시하는 분야는 서예가 두드러지며, 담곡 김대일은 그러한 서예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담곡의 예술이 인문과 맞닿아 있는 이유는 아마도 文鄕(문향)인 예천에서 태어나 선현들의 禮樂(예악)을 자연스레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 청나라 때 劉熙載(유희재)는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 그 사람의 학문과 같고, 그 사람의 재능과 같으며, 그 사람의 뜻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여 '書如其人(서여기인)'을 말한 바 있다. 글씨는 그 사람의 사상과 정감을 표출하듯, 글씨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 글씨와 더불어 '詩如其人(시여기인)' 혹은 '畵如其人(화여기인)'이라 하여 시 또한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써, 그림도 자기의 생각을 형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또 郝經(학경)은 "書法(서법)은 곧 心法(심법)이다."라고 하였다. 즉, 글씨의 법은 마음의 법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서법이 심법이 되는 까닭은 글씨를 쓰는 것이 순전히 외형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도야의 궁극적인 목적도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예를 '書道(서도)'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담곡의 서화도 분명히 심법에서 노정되었고, 그의 성품과 인문정신이 서법에 베여나는 것이다. ● 담곡의 서화예술을 일축하면 '學古用新(학고용신)'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것은 바로 옛 것을 배워서 새롭게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옛 것을 배우는 궁극적 이유는,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전통을 계승하는 것도 변화를 위한 것이지, 전통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古(고)'는 '新(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新'은 '古'를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담곡은 한문서예 ․ 한글서예 ․ 전각 ․ 문인화 ․ 현대서예 ․ 캘리그라피, 동양고전 등 다양한 방면을 섭렵하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향해 각고의 노력으로 정진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은 유한이 아니라, 무한의 경계이므로 멈출 수가 없는 법이다. 어떠한 생명도 영양분만큼만 생장하고 결실을 보게 된다." (김광욱)

남선모_위로_조형토(금속 산화물 조합)_68×50×40cm_2014
남선모_춤을 그리다1_조형토(산화철)_52×50×30cm_2011

남선모는 인물 도자 도형의 주로 하면서, '한국에 선' 주제 등 새로운 도자 조형의 세계를 개척해 나간다. "(전략) 그의 인물 도자 조형에서 보이는 특징은 무엇보다 속도감이 넘치면서 속도감 속에 묻어나는 해석의 확실성에 있다. 이 확실성은 의외로 매우 섬세한 기분을 전달한다. 숙련된 손의 기술과 기술에 저항하는 재료를 능란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작업에서 보이는 속사(速寫)같은 촉감의 구현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작품이 주는 섬세한 기분은 무엇인가 다정한 작은 소리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기도 한데,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이다. 남선모는 흙, 조형, 유약, 소성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노력과 위력을 넘어서는 자연의 언어와 마주하고 그에 도전한다. 알다시피, 흙의 선택과 조합, 유약의 사용 그리고 특히 불의 기술은 다른 재료를 다루는 작업과 달리 매 단계마다 인간적인 자신감을 보기 좋게 무너트리며, 언제나 한계에 직면하게 한다. 이 점이 도예를 특별하게 만들며 종국에 인간학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인물 도자 조형에서 눈의 감각은 촉각의 감각으로까지 확장하여, 이들의 공명으로 조형물에 피부를 만든다. 조형물의 외양, 이 피부는 가리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기록과 언어를 정확하게 기록한 살이자 내면 이야기 자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선'은 단순한 조형언어를 넘어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하는 감각의 총체를 상징하는 것이자 그 내용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략) 남선모는 작가의 시선을 보다 폭넓게 확장하여,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시도한다. 도자 조형에서 인물은 조형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티프를 잘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세상을 담아내고 이를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어떤 몸의 상징체라 생각된다. 그 인물 하나하나에는 대지, 인간, 내면 혹은 기억이 버무려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성찰이 깃들어 있다." (남인숙)

나현철_맥주병뚜껑001_피그먼트 프린트_32×30cm_2006

나현철은 독일 유학시절부터 계속해온 작품을 '찾기, 보기, 생각하기' 테마로 세 개의 시리즈를 구성해 선보인다. "(전략) 나현철의 첫 번째 연작인「병뚜껑」은 새로운 환경에 뿌리내리기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낯선 도시에 떨어진 나현철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른바 '똑딱이'로 불리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들고 무작정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땅에 박혀버린 병뚜껑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토양과 함께 퇴적한 지층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점을 활용해 인위적인 구성이나 연출을 배제한 프레임을 잡는다. 거친 바닥에 한두 개 혹은 점점이 박힌 물질이 강한 표현의 힘을 가지고 말하기 시작한다. ● 첫 번째 연작에서는 대상을 관조함으로써 시간과 삶의 무게를 찾았다면, '보기' 작업에서는 익숙함/낯설기의 변증법적 전개로 시각적 모험을 시도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오브제가 재배치됨으로써 신선한 시각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이점은 특히 화면을 꽉 채운 '올오버' 구성에서 두드러진다. 굵은 동선들이 얼키설키 엉킨 채 똬리를 틀고 있거나 형광등 접속부분들의 조합으로 채워진 화면은 관람자의 시선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밖으로 내몬다. ● 2012년부터 시작된 '생각하기'란 테마는 일련의 통신수단 부품을 근접 촬영한 작품들로 표현된다. 나현철은「구체적/추상적」연작부터 지속적으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를 손에 잡는 '첫 순간부터 카메라가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카메라 옵스큐라' 제작에서부터 모든 수동식 카메라의 변천사를 연구하고 그 매커니즘을 실험했다. 스마트폰, 컴퓨터 CPU, 노트북(laptop)에 내장된 초소형 부품을 반사판이 깔린 바닥에 두고 2m의 주름막 장치가 된 망원렌즈가 부착된 대형카메라(무게 5kg)로 20~30cm 거리에서 촬영하는 과정은 구도자의 고행에 대적할 만하다.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 호흡이 정지되고 천체의 시간도 멈춰버릴 듯하다. 삶과 죽음 사이에 팽팽히 당겨진 화살에 비유할 수 있는 초월적인 시간이다. 확대된 이미지는 경이로움, 완전한 미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감성과 디지털이 조화를 이룰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소영)

강동호_Unseal_break the seal of ruin #04_피그먼트 프린트_76.2×101.6cm_2014
강동호_Unseal_break the seal of ruin #12_피그먼트 프린트_76.2×101.6cm_2014

강동호는 숨기고 싶은 삶의 단면을 작품에 들추어냄으로써 우리의 의도적인 외면과 직면하게 하고, 그늘진 세계를 조명한다. "(전략) 강동호작가는 이 거대한 세상에 가려진 현실에 주목한다. 그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피사체들은 상투적인 감각이 비틀어져 있다. 비틀어진 감각은 왜곡되고 가려지거나 버려진 현실의 단면들이 그의 지각위에 오버랩 된 것이다. 미세한 혈관이 뒤엉킨 두상(頭狀) 이미지, 삶의 불안이 투영된 낡은 공간, 녹슨 시간의 침전물, 폐허 이미지가 그렇다. 이 모두는 딱딱하고 위선적인 비 인륜의 각질을 뚫고 올라온 삶의 자취이자 그에게는 끊임없이 작업의 필연성이라는 영감을 보내준 단서들이다. 세속적인 통념의 불순함을 분해하고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상,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경계에서 가치를 탐색하게 하는 대상들이다. 특히 버려진 폐허나 난삽한 공간은 낡고 버려진 것들의 의미를 넘어 그에게는 조형매체이기까지 하다. 이들을 담은 그의 사진은 이성과 논리가 덮고 있는 감성의 통로이자 창이다. ● 녹슨 철근과 습한 콘크리트 내벽, 도처에 버려진 그늘진 풍경이 강동호의 감성과 만났다. 작가의 감성은 버려진 폐허에 숨어있던 조형미를 발견했다. 발견한 조형미는 단절된 공간이 품었던 생의 발자취이자 숨결이다. 가려진 숨결이 폐허에 남겨진 작은 창의 빛과 조우한다. 폐허(또는 무용지물이)가 빛의 예술을 만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순간이다. 그의 낡은 공간이 더 이상 괴기한 기피의 장소가 아닐 수 있는 이유이다. 어둠의 궁극에 도사리고 있을 죽음마저 예술은 생명으로 부활시킨다. 이렇듯 그의 작업은 버려진 삶의 단면들을 오려내고 그 위에 감성을 입히는 방식이다. 그 감성은 상처 받고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의 암연(黯然)을 어루만진다. ●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은 디지털 합성방식이다. 디지털 안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작가의 직관과 만난다. 그의 직관과 결합한 세상은 사진의 재현적 디테일을 회화적으로 변모시켰다. 작업 전반을 디지털 기술에 의지하기보다 회화적 장치로 후처리함으로써 회화적 영역을 넓혔다. 때문에 그의 사진작품은 전통적인 재현의 틀에서 살짝 비켜나있다. 이것을 작가는 사진의 궤도를 잃어버림이 아닌 새로운 기법에 대한 방법적 모색이라 설명한다. ... 흑백에 가까운 풍경은 채도를 낮추고 약간의 색만 허용했다. 때문에 음영이 조화로운 안정된 조형골격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두상 이미지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병치되어 소리 없는 외침처럼 가려진 사실을 역설로써 토로한다." (서영옥)

안동일_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3가 55-3_디지털 C 프린트_43×357cm_2014
안동일_1호선(동두천-소요산)_디지털 C 프린트_29×43cm_2014

안동일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비슷한 모습의 대형마트(홈플러스) 매장을 그 건물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촬영하고 편집해, 익숙하거나 낯설다고 생각했던 삶의 근거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려 한다. "(전략) 안동일의 망막을 찢은 첫 번째 지표는 '홈플러스'이다. 안동일의 홈플러스 연작은 대구 9개, 서울 19개의 홈플러스 지점을 다룬다. 익숙하지 않은 서울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는 당연지사 자신의 온갖 환타지를 작동시켜 자신의 삶의 터전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쉽게 무너진다. 자신의 눈이 감당하지 못할 망막적 환상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익숙한 풍경과 이미지가 그를 포획했다. 홈플러스는 공간의 차이를 지우며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홈플러스는 어디에서건 자신을 바라본다. 그에게 내재된 낭만적 시선을 거두고/지우고/삭제하고 거대한 눈으로 안착한 홈플러스의 눈이 되어, 홈플러스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홈플러스가 바라보는 모습을 촬영한다. 이때 작가는 주관을 제거하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홈플러스 눈 그 자체가 되고자 한다.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건물의 정면성을 촬영한다. 카메라의 왜곡, 자신의 눈의 왜곡을 염두하며 수많은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홈플러스가 바라본 풍경을 이어주는 편집을 한다. 이 과정은 자신의 주변을 익숙하다고, 혹은 낯설다고 생각했던 삶의 근거지를 조심스럽게 꿰매는 과정이다. 그는 삶은 더 많은 삶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중략) ● 안동일의 망막을 찢은 세 번째 지표는 지하철 1호선이다. 안동일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지하철은 서울을 읽는 지도였다. 특히 1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를 제외한 전 노선이 지상으로 운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간헐적일 뿐만 아니라 순간적이다.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고 넘어간다. 결국 획득할 수 있는 풍경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풍경이 전체는 아닐 수 있지만, 작가가 본 풍경은 그 자체는 맞다. 작가는 여기에 가감을 하는 것을 피하고 오히려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보이는 것 그대로를 담고자 했던 안동일은 지하철 1호선 전 노선의 구간을 촬영한다. 그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그 순간에 모든 것들을 가감없이 담아내,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동시의 안동일의 망막에서 춤사위를 펼친다." (이대범)대구문화예술회관

Vol.20140819c | 2014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