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얼굴

Collaborations for Homo Empathicus展   2014_0820 ▶ 2014_0826

초대일시 / 2014_0820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기획,시 / 안숭범 그림 / 이은혜 캘리그라피 / 박인한

* 이 프로젝트는 네 개의 주제에 걸쳐 시와, 회화, 캘리그라피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전시합니다.

후원 / 순간과 영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올 GALLERY ALL 서울 종로구 관훈동 23번지 원빌딩 3층 Tel. +82.2.720.0054 www.kpaa-all.or.kr

누군가의 얼굴은 그만의 삶에 대한 특수한 상징입니다. 우리 각자의 얼굴 안에는 객관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보편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표정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시키는 가장 신비한 장소가 바로 얼굴인 것입니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대하며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이해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그때 서로의 얼굴은 공감을 구하고, 내면의 무엇인가를 표현하며 말 걸어오는 힘으로 존재합니다. 우린 인상적인 감정을 안기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오해와 이해를 거듭하는 존재인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순간, 그 '시선-응시'가 교환되는 순간에 우리 각자가 윤리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의미있는 각성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새롭게 구성했던 때가 있었다면, 바로 그런 순간의 힘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서도 궁금한 적 없었던 진짜 나의 얼굴과 내 안에 머물렀던 얼굴들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서의 삶을 함께 성찰하길 원했습니다. ■ 당신의 얼굴

간이역_37.2×46.5cm_2014

2013년 겨울 어느 날, 서울 시내 도로가를 점거한 앙상한 가로수들에서 저의 자화상을 봤습니다. 당시 저는 속절없이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 소식이 제게 도착한 이후에 펼쳐질 미래에 관해서만 집착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저의 삶을 비껴갔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제가 좇던 신기루가 제 삶을 너무 팍팍하게 만들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컨베이어라인 위에 올려놓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품들을 짜 맞추며 살아왔다 느꼈습니다. 아무런 영감도 없이 무미건조한 생활을 견디고 있었던 것입니다. ● 어릴 적 저의 꿈은 화가였습니다. 부모님은 글도 모르고 연필 쥐는 법도 제대로 못 배운 어린 자식에게 갱지 뭉치부터 선물하셨습니다. 당시 저에게 갱지의 회백색 공간은 세상을 마음대로 재편하는 놀이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글보다 그림으로 세상을 먼저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제게 아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논리적인 의미화 능력은 학습과 훈련으로 기를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형상화해낼 수 있는 능력은 나이를 먹고 나서는 좀처럼 개발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여하튼 저는 아들의 그림보다 아들이 그림을 그리는 풍경을 사랑하셨던 부모님께 항상 감사합니다. ● 대학에 입학한 이후엔 음악에 빠져 살았습니다. 미디음악을 한답시고 4인이 함께 쓰는 기숙사 방을 스튜디오처럼 꾸며 살기도 했습니다. 용돈이 고향으로부터 공수되는 족족 사야 할 악기나 음악장비 목록을 들추며 살았죠. 통기타를 튕기며 작곡으로 시간을 방기하던 밤이면 창문 밖으로 평소 보이지 않던 별들이 다가오곤 했습니다. 조악한대로 뮤지컬 삽입곡들을 만들기도 했고, 음악하는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며 살았습니다. 몇 해 전, 아내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만든 노래가 제 작곡목록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지금도 저는 음악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게으른 푸념_37.2×46.5cm_2014

스물네 살에 바닷가 소초에서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쓴 시로 저는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해무가 잔뜩 낀 만조의 바다는 서울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시어를 물어다 주곤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도 아니고 낙서도 아닌 당시의 문장들 안에 글쟁이의 운명이 이미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장교로서 받는 월급덕분에 저는 영화사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로 손꼽힌다는 작품들을 VCD로 주문해 보곤 했습니다. 누구의 군생활도 그러하지만, 저 역시 괜스레 외로웠고, 외로움의 힘은 대상이 불분명한 그리움들을 양자로 거느렸습니다. 당시 시와 영화는 일종의 도피처였고 퍽퍽해지는 정신에 일종의 윤활제가 되었습니다. ● 이후 저를 사로잡은 건 좋은 영화 안에 머무는 황홀한 시간들입니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든 대중예술을 사랑했지만, 영화 안에서 제 삶을 시뮬레이션해보는 순간에 제일 행복했습니다. 그 힘으로 서른 무렵, 영화평론가로 등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사랑하는 시와 영화의 수사적 방법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가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어떤 전망도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그 무렵 마냥 행복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들이 빈곤한 정신을 부축해주던 나날이었으니까요. ● 그런데 그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창조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저 스스로는 어제와 같은 밋밋한 일상에 머물렀습니다. 공감하는 능력이 정서적인 지능이라고 강변하던 제러미 리프킨을 좋아했지만, 저는 저만의 세계에 갇혀 메말라 갔습니다. 아우라가 없는 삶을 견뎠고,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할 수 있다는 전망을 얻기 위해 최대한 움츠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겨울 저는 그런 저의 불균형적인 상태를 뒤늦게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 그때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이 개연성없이 생각났습니다.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만났던 그의 기괴한 그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시인이고, 화가(특히 목판화가)였으며 지금 용어로 치면 핸디 아티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예술 문법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영감이 신으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누군가와 공유하기 힘들지라도, 자신의 직관을 사랑했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강렬한 신비감에 쉽게 도취됐습니다. 저는 그의 시에서 그림을 보고, 그의 그림에서 음악성이 강한 시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데이빗 린치의 영화와 음악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초월명상가로 3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화 앞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문하는 몽상적 주체가 되곤 합니다. 저는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이 남긴 잔상에서 그의 중독성 강한 음악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한편, 그가 만든 음악, 그러니까 음산한 모던 블루스를 듣고 있노라면, 잊었던 그의 영화 장면들 몇 개가 마음의 창을 다시 넘어오기도 합니다. 이따금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그가 영화 속에서 했던 말을 다른 뉘앙스로 반복하기도 하죠.

그렇다면우리_37.2×46.5cm_2014

그렇게 맥락없이 떠오른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들, 그들로부터 온 영감들과 교유하다가 이 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준비 과정을 말씀드리면, 우선은 겨우내 적은 낙서가 담긴 저의 시작노트를 바탕으로 제가 몇 편의 시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회화 작가를 찾았고, 캘리그라피스트를 찾았습니다. 각자의 작업만으로도 완결성을 갖지만, 함께 덧붙일 때 새로운 의미와 느낌으로 고양되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의도했습니다. 함께 모여 주제를 공유했고, 작업 방식을 의논했으며 전시와 출판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무미건조한 삶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소소한 혁명이 기획되었습니다. ● 이 작품집은 공동 작업한 동료들의 열정이 빚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살인적인 일정을 견뎌 준 두 명의 동료들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화가 은혜의 그림은 저의 시가 불충분하게 담아낸 느낌을 더욱 세련되게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맞댔을 땐 느낄 수 없는 내면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캘리그라피스트 인한이의 글체에선 종종 음악이 흘러내렸습니다. 언제나 파격적인 감정들이 흥건했고 평범에 갇히지 않으려는 도전정신이 엿보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작품들은 서로의 단물을 빨아들이며 완성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종합예술인’으로 칭하고 싶은 문화콘텐츠 기획사 ‘순간과 영원’의 대표 강상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평소 알고지낸 동생이지만, 철없는 형을 향한 그의 배려와 지원은 크고 넉넉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는 지난한 과정을 온전히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 미리 밝히면, 우리의 작품들은 더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코드와 루트를 생각하며 만든 기획물입니다. 부족한대로 이 첫 번째 프로젝트가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의 기회를 열망하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작은 자극이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매년 콜라보레이션 작품집을 기획하고자 합니다. 함께 이색적인 이정표를 세워가고픈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을 환영합니다. 당신들이 보낸 포트폴리오로부터 매년 새로운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가 창조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인 호모 엠파티쿠스, 곧 공감하고 연민하고 위로할 줄 아는 모든 이들에게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 상상력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2014년 7월 우주세기를 건너는 건담 프라모델에 둘러싸여 ■ 안숭범

회개_38.5×29cm_2014
나와 당신 사이_38.5×26.5cm_2014

얼굴, 혹은 세상을 읽는 코드# 1. 예수와 어머니 가끔 어머니의 여생이 서울 간 자식들의 전화를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 적 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꿈에 대해 말하며 살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의 삶을 좀처럼 이상하다 여기지 않으며, 그 무관심의 힘으로 쑥쑥 자란다. 홀로 자취하며 보낸 지난 15년 가까이, 어머니는 나의 생활반경으로부터 3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계셨다. 그러나 내 자취방에 놓인 작은 냉장고의 속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유일한 분이시기도 했다. 이를테면, 어머니는 밑반찬과 얼린 찌개의 상황을 거의 정확히 가늠하셨다. 서른 무렵, 이른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잠깐 눈물을 흘린 적 있다. 냉장고 안엔 1인분씩 따로 팩에 담겨 서울로 공수된 찌개들이 단단히 얼린 채 가지런했다. 당일 특송으로 그 전날 고향으로부터 올라 온 나의 양식이었다. 그 날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새벽 예배당을 향해 걸었다. 서울 하늘에도 항상 그 자리에 별이 머물다 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 어떤 순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예수 얼굴의 윤곽이 선명히 그려지기도 한다.

늦었지만, 전해주_46.5×37.2cm_2014

# 2. 시 혹은 시적인 것 ● 잠든 아내의 얼굴이 오늘따라 안쓰럽다. 연애 시절, 그녀의 마음 안에 내가 머물 방 한 칸 마련하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아내의 얼굴을 살폈던가. 그 무렵 아내의 얼굴은 배후에 그녀 전체를 감추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은 해석을 요하는 흥미로운 코드였고, 낙관적인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비밀스런 루트였다. 때론 그녀만의 역사가 거기 고여 있었고, 가끔은 그녀의 얼굴 언저리에서 처음 듣는 노랫말을 가진 아름다운 음악과 불순한 상상이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다투기도 했다. 해석 불가의 문장이 수시로 자리바꿈하는 날엔 시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아내의 얼굴에서 과거에 없던 상징을 읽는다. 그에 관해 나는 책임이 많다.

당신그림자_35.5×29.5cm_2014

# 3. 주술이거나 종교 ● 내 책상 위엔 부모님의 사진이 있고, 그 옆엔 이제 갓난 아들의 사진이 있다. 사진은 영화와 달리 제 안에 흘러가는 시간이 없다. 단지 어떤 순간, 그 곳에서 있었던 찰나의 사건을 증언할 뿐이다. 사진이 기록을 넘어 어떤 ‘실재’를 보여주기도 한다지만, 대개의 사진은 어제도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다. 때론 사진 안에 고인 것은 사건이 될 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나약해지는 날이 있고, 피폐한 현실에서 나를 구원해 줄 힘을 간절히 찾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 책상 위 사진들은 사진이 아니라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보듬는 얼굴들이 된다. 볼 때마다 다르게 해석해도 무방한 시간이 거기 얼굴들에 있다. 그렇게 도착한 위로는 주술이거나 종교를 닮아 있다. 당신도 그와 비슷한 어떤 힘으로 당신을 긍정한 적 있다고 믿는다.

당신의 자리_39×25cm_2014

# 4. 사랑의 형식들 ● 이 골목은 매우 익숙하다. 그 언젠가 간만에 시 청탁을 받고는 시어를 찾기 위해 여기 이 길을 배회한 적 있다. 그 날 나는 아주 낯선 풍경을 건져낼 수 있었다. 애견마트 간판과 사철탕 간판이 멀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생각한 것은 사랑의 형식들이었다. 아니, 사랑을 대하는 태도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랑은 항상 불충분하거나 불가능하다. 그에 대한 이해없이는 사랑의 크기에 비례하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렵다. 오늘 다시 와서 보니, 애견마트는 그대로인데, 사철탕집이 사라졌다. 그 부재의 자리가 쓰라린 사랑의 맨얼굴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언제든 사랑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대화_38.5×29.5cm_2014

# 5. 어떤 모순 ● 오랜만에 낙원상가를 멀리 건네다 보며 종로를 걷는다. 대학 시절, 낙원상가와 탑골공원이 마주 선 이 길 위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거기서 나는 나를 덥힐 준비를 끝낸 음악이나 영화 속으로 기울어지곤 했다. 되뇌어 보면, 이쪽에선 늙은 장기판 위를 배회하는 주름진 시선들이 세월을 견디거나 붙들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저쪽에선 게리 무어와 지미 페이지가 쓰던 레스폴의 음률에 기대어 시간을 용감하게 방기하는 한 무리의 젊음이 있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신디사이저를 수리하거나 순대국밥을 사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쪽과 저쪽 사이 낙차에서 시간의 얼굴을 보았고, 그 얼굴을 배면에 깔고 있는 도시의 표정을 보았다. 나는 그 표정을 쓰다듬으며 평정을 찾기도, 잃기도 했다.

심야의야상곡_46.5×37.2cm_2014

# 6. 내 안의 '나 이상의 것' ● 어느 봄날, 연구실에서 별 것 아닌 일로 후배에게 화를 낸 적 있다. 내가 뱉은 말들은 필요 이상의 고온이었다. 그 다음 순간, 너무 미안해져서 수습할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그때 후배의 얼굴에 비친 건, 내 안의 ‘나 이상의 것’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 ‘타자’라고 불러도 좋을 그의 형상이 거기 그늘로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언제든 나는 나 자신보다 이 타자에 속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불가항력적인 순간에 내 얼굴은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다. 오늘을 보내는 중에도 내 안의 타자가 나를 동요시키는 순간이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 당신이 그 때의 내 얼굴을 봤다면 나도 잘 모르는 그의 흔적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린 서로 얼굴을 모르고_65×53cm_2014

# 7. 익숙한 우연 ● 어떤 냄새를 맡으면 그가 생각난다. 어떤 분위기에 취하게 되면 그 날의 날씨가 떠오른다. 어떤 장소를 지나치게 되면 거기서 뱉은 한때의 말들이 귀밑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익숙한 기억 과정이어서 이를 통제할 방도가 내겐 없다. 굳이 비유하면, 얼큰한 찌개를 대할 때 침샘이 열리는 과정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런데 기억이 되새김되는 그 순간의 메커니즘 속에 삶의 진실 같은 게 숨어있지 않나 생각했다. 이를테면, 나는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가 싸 온 도시락이 생각난다. 그 친구는 할머니 손에 자랐고, 도시락은 할머니의 최선이었지만, 친구에겐 항상 부끄러움이었다. ‘가난’이나 ‘생계’라는 단어가 다 포용할 수 없는 감정이 그 기억 속 장면에 있다. 그처럼 오래 살아남은 기억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 기억들 속에서 내 인생의 남루한 얼굴 같은 것을 본 적 있다.

우린 여기서 깨달음보다 늦어서_37.2×46.5cm_2014

# 8. 신기루 ●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이 내게로 오지 않았다. 이팝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팝나무 꽃이 가지 위에 눈처럼 앉아있다. 하얗고 푸른 문신을 한 나무의 머리카락 저편에서 햇살들이 부서진다. 부서진 햇살과 햇살을 투과하는 바람이 어지럽게 내 얼굴을 쓸어댄다. 생각해 본다. 이 햇살과 바람은 원래부터 내 얼굴에 도달할 꿈을 꾸며 그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일까. 언제였던가. 광주 사직공원에 동물원이 있던 시절. 어린 나는 아버지가 쥐어 준 풍선을 놓친 적 있다. 처음엔 나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로 그 풍선이 간절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점점 작아지는 풍선을 보며 포기할 때 아름다워지는 풍경을 만났다. 이팝나무 그늘 아래에서 신기루로 가득 찬 세상이 더욱 신비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정표_36.5×29cm_2014

# 9. 세 남자 ● 월요일 오후 1시, 아파트 11층에 위치한 내가 사는 집을 나섰다. 대학 강의 시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할 심산으로 오늘은 집에서 좀 꾸물거렸다. 그러나 아내의 당부대로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한 비닐봉지를 들고 나가는 일을 잊지 않았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음식물 분리수거대로 가는데, 이미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30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검정색 비닐봉지를 든 다른 30대 남자가 내 뒤를 바짝 따라 왔다. 우리 셋은 아무 말없이 각자 가져 온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했다. 이 시간, 이 장소에 30대 남자 셋이 모이는 일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들도 나처럼 다른 두 사람의 직업과 생계가 궁금했을지 모른다. 서둘러 탄 전철 안에서 최대한 젊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아버지가 30대에 어떤 얼굴이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 전철이 다음 역에 멈추기 위해 속도를 늦췄다. 젊은 아버지 얼굴의 희미한 윤곽이 전철 바닥에 촉촉하게 고이고 있었다. ■

Vol.20140819e | 당신의 얼굴-Collaborations for Homo Empathicu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