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

이재열展 / LEEJAEYUAL / 李宰列 / painting   2014_0820 ▶ 2014_0824

이재열_서직수 초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2×48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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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블로그_blog.naver.com/sanjung333

초대일시 / 2014_0820_수요일_03:00pm

후원,공동기획 / 원주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원주창작스튜디오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118-3번지 시민복지센터 1층 Tel. +82.33.763.9114 www.wcf.or.kr

몇 갈래의 긴장 위에 서 있는 그림이재열의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 여섯 번째 전시에 부쳐 도식적(圖式的). "모든 사물을 일정한 틀에 기계적으로 맞추려는 경향"으로서의 의미와 "사물의 구조나 관계 변화 상태 등을 일정한 양식으로 나타내다"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를 갖는 말이다. 전자가, 인간과 세계가 얽혀 만드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한 현실을 납작하고 단순한 방식(-예컨대 흑백논리 같은)으로 치환함으로써 오히려 해석자의 무지와 편벽을 드러내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다면, 후자는, 지나치게 복잡한 대상을 추상(抽象)함으로써, 인식 및 해석의 확장에 기여하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문학적 수법의 하나로 발전해온 '패러디(Parody)'는, 그리스어 'parodeia'가 어원으로, "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어원에서 보듯, 기원을 짚자면 그리스 시대까지로 올라가며, 이미 발표된 작품의 기법을 본떠서 해당 작품의 허점을 사정없이 폭로하거나, 모방하되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시대와 작품의 허위를 풍자하는 예술 창작의 한 기법이 패러디이다. ● 도식적인 패러디, 패러디로서의 도식화.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는 주제로 4년째 작업 중인 작가 이재열의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두 가지 열쇠이다. 미술 감상이야 워낙 관람자/감상자의 주관성에 크게 기대고 있는 영역이고, 특히나 현대미술에서 해석의 모범 따위를 언급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일 수 있으나,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말처럼 역설적으로 꽉 닫혀 있는 말이 범람하는 오늘날, 그 무엇에건 자신의 견해를 세워 발설해 보는 것은, 용기와 창조성을 요청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이명기와 김홍도가 합작한 「서직수 초상」, 5만원권 화폐 뒷면에 실려 있기도 한 어몽룡의 「월매도」등, 교과서에서, 박물관에서, 화집에서 누구나 한 번쯤 접했을 법한 제목과 그림들을 꽤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 모티프(motif)로 삼고 있는 작가가 조형하고 또 지향하는 세계가 무엇일지 몇 가지 작품을 읽어보면서 짚어보고자 한다.

이재열_초충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13

「초충도」(2013)의 원전을 잠깐 상기해보자. 짙은 보라색의 탐스런 가지 두 개에 먼저 시선을 뺏기고 나면, 수줍은 듯 하얗고 작은 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흰 가지에서 시선은 다시 위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흰나비와 붉은 나방, 하단의 벌들을 통해 배경을 한 바퀴 돌고, 오른 쪽 아래에 있는 방아깨비 한 쌍과 왼쪽의 개미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원근과 대소, 식물과 동물, 땅에 박힌 것과 하늘을 나는 것을 한 그림 속에서 고루 보게 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지만, 화면의 구성은 흠잡을 곳이 없을 만큼 촘촘하게 짜여있다. 의미는 또 어떠한가. 예컨대 한문으로 '가자(架子)'라 쓰는 가지는, 곧 '가자(加子)', 즉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말이고 방아깨비 역시 알을 99개 낳는다는 속설처럼 다산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재열의 그림 「초충도」(2013)로 오면, 조형의 핵심인 보라색 가지 두 개와 두 줄기, 좌상단의 나비와 우하단의 방아깨비 한 마리씩이 남고 나머지는 생략되었다. '가지'의 전통적 상징을 암시하듯, 벌거벗은 아이 둘(-필시 사내아이일 듯)의 모습이 곁붙고, 작가의 서명과도 같은 하얀 '생명의 눈'(-이렇게 불러보자)들과 캐릭터 상품을 연상케 하는 형상들이 화면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장악하기도 한다. 색상과 색면 처리의 팝아트적 요소, 아동용 에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비례와 표정이 '고전'이란 뿌리가 갖는 무게를 제거하고, 다소 친근하고 때론 정겹거나 만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원전을 분명히 하면서도 풍자나 조롱이 전면화된 패러디라기보다 고전에 대한 '오마주'(Hommage)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 「서직수 초상」(2013)도 화면의 조형원리는 「초충도」와 유사하다. 조선시대 초상화로서는 드물게 전신 입상이라는 점, 머리에 쓴 동파관(東坡冠), 숱이 많지 않은 수염, 두 손을 맞잡고 소매로 가린 읍(揖) 자세 등의 형상 정보는 원전에서 그대로 가져오되 동그랗게 도식화된 얼굴과 밋밋한 화면의 장식효과를 염두에 둔 듯한 하단의 배치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우리의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재열_초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2cm_2013
이재열_초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2×82cm_2013

'서직수 초상'에서, '서직수'의 얼굴을 없애버리면 그 그림은 아무리 다른 대목이 닮아 있어도 더 이상 '서직수' 초상이 아니며, 특정인의 얼굴로 대치된 것도 아니므로 서직수 '초상'의 패러디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원전에서 따온 그림의 제목이 그림을 다 담지 못하거나, 그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태로 옮아가는 것, 분명 원전을 통해 창작의 동기를 부여받았지만, 점점 더 원작과는 무관해지는 길로 나아가는 흐름. 이번 전시에 「초상」이란 제목을 부여받은 그림들은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이다. 선명히 가리키던 대상이 부재하는 데서 오는 묘한 공허함과 부재의 긴장. ●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행된 그의 첫 전시가 폭발하는 재치와 색채의 향연, 발랄함과 유쾌한 정조가 특징적이었다면, 동일한 주제 아래 벌써 여섯 번째 치러지는 이번 전시(-그는 참으로 성실한 작가이기도 하다)는, 조금씩 관념과 추상성이 짙어지는 흐름을 타고 있는 듯 하다.

이재열_귀거래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91cm_2013
이재열_용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13

반복되는 모방과 변형은 근원적으로 자기배리의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근원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창조에 대한 희구라는 모순적인 욕망을 배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매화그림으로 유명한 어몽룡의 「월매도」를 동일한 원전으로 하는 두 개의 다른 그림, 「월매도」(2011)와 2013년작 「월매도」는 이러한 회귀의 한 예로 보이기도 한다. 장지 위에 샛노란 바탕과 알록달록한 장식성을 보여주었던 2011년작에 비해, 캔버스에 그려진 이번 「월매도」(2013)는,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정조와 표현법에서 보듯 원전에 더욱 가까워졌으며, 그럼에도 그간 사용해 온 장식적 요소들과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그 밖의 몇 몇 그림들도 조형요소에서 조선시대의 그림을 연상케 할 뿐, 인물의 표정은 조금씩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스스로 구축한 기존의 도식성을 깨는 실험이 진행 중임을 짐작케 한다. ● '조선의 그림을 훔치'는 일은, 과거-현재라는 시간의 축과 '물질과 의미'(-굳이 이것을 유물론과 관념론이라 부르지 않더라도)라는 전통적인 대립 위에 서서, 앞서 언급한 '도식'이 낳을 수 있는 두 갈래길, 곧 '기계적 변용'과 '해석의 확장'이라는 양극의 긴장을 견디는 작업이다. ● 그의 작업들이, '이미 불러진 다른 노래에 병행하여 부르는 노래'이면서도 새로운 노래라면,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이 갖는 묘한 차가움과 더불어 그 배경에 흐르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따스한 애정은 끝없이 불러질 돌림노래가 아닐까. ■ 하여경

Vol.20140820g | 이재열展 / LEEJAEYUAL / 李宰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