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갇히다 Locked out

김정현展 / KIMJEONGHYUN / 金正炫 / installation   2014_0823 ▶︎ 2014_0929 / 월요일 휴관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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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823_토요일_04: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제주, 그 섬에 가고 싶다? ● 8월, 여름. 작가는 제주를 사유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감미로운 노랫말처럼 떠나고 싶은 그곳이다. 뜨거운 여름 푸른 바다가 있는 제주도로의 여행은 많은 이들이 꿈꾸는 바람이지 않은가? 그러한 제주를 작가는 어떻게 사유하고 표현했을까 궁금하기 그지없다. 기다릴 것 없이 이제 작가가 사유한 제주를 들여다보자.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전시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전시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가? 기웃기웃 들여다본다. 가장 먼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윈도우 갤러리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이다. 외부에서이기는 하지만 그 작품은 그나마 온전히 볼 수 있다. 그 옆으로 전시장 입구가 있는데, 들어갈 수는 없어도 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 볼 수는 있었다. 가운데 주먹만 한 돌이 공중에 떠있는데, 거칠~한 줄 세 갈래가 그것을 잡아당기고 있다. 그리고 그 선들 중 하나는 바깥으로 주~욱 나와 있다. 입구를 막아 놓았으니 들어갈 수는 없고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당황하여 그 옆의 창문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다행히 아주 조금 창문이 열려있다. 그리고 그 작은 틈으로 다행히 그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있었는데 방과 같은 공간에 작은 소반이 놓여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어쩔 줄 몰라 진땀이 다 난다.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작가가 사유한 제주는 입구가 봉쇄되어 있고 안으로는 진입할 수 없으며, 외부에서 서성이며 작품을 마주하여야 한다. 당황스럽고 난감하여 조금은 불쾌해지고, 심지어 민망하게까지 하게 한다. 아~ 작가는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형성했구나. 이제 조금은 안심이 되고 조금은 이해가 되며 그래서 작품을 면면히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작품은 크게 세 가지 공간을 구성한다. 첫 번째 공간은 투명하다. 투명하나 접근할 수 없으며 철저히 외부에서 구경해야만 한다. 두 번째 공간은 열려 있으나 개입할 수 없으며, 보일 듯 말 듯 투명하지도 불투명하지도 않은 애매한 보기방식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은 닫혀있기도 하고 열려있기도 하며, 불투명하기도 투명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닫힌 공간에 아주 좁은 틈으로 볼 수 있는데 그곳은 열려있고, 투명하여 선명히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훔쳐보기의 방식으로만 볼 수 있다. 이렇게 공간의 열림의 형식과 보기의 방식이 다른 이 세 작품은 세 공간을 구분하고 통합한다. ● 공간의 구성과 보기의 방식의 차이를 지닌 세 작품은 그 형식도 상이하다. 기하학적 추상 공간에서부터 연극적 공간 형식에까지.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비좁게 열린 창틈으로 바라본 공간에는 작은 소반 위에 신문이 덮어져 있다. 누군가를 위하여 차려진 상인 듯하다. 상 앞에는 방석이 있고 마주보는 벽에는 사진 하나가 걸려있다. 매우 단순하지만 이곳이 방을 나타내고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소박한 상과 환상으로 가득한 벽걸이 사진. 그리고 그 사이 음식을 덮어주는 도구이자 대중매체인 2014년 5월 29일자 신문. 좁은 창틈으로 바라본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이며, 그 내부 공간에는 다시 외부로 향하는 창문과 같은 액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외부 공간을 매개해주는 신문 매체가 소반 위에 놓여있다. 즉 세 개의 창문이 존재하는 작품에는 내부로 향하는 실제의 창문과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게 하는 사진과 신문으로서의 매체로서의 창문이 존재한다. 사진은 매우 호화스러운 환상적 외부 공간을 지시하며, 신문은 현재의 제주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열려진 창문으로의 연극적 실제-이미지(곧 작품), 그리고 이 작품 속의 이미지-가상인 사진과 이미지-서사인 신문이 뒤엉켜 제주라는 공간을 지시하고 재현하고 은유한다.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사방이 막혀있으나 투명한 윈도우갤러리에는 기묘한 설치작품이 놓여있다. 거치대에 붉은색의 링거병이 수혈하고 있는 것은 현무암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이다. 투명한 방은 명확하게 보이는 사물만이 존재한다. 거치대, '萬事如意', 'made in china'가 쓰여 있는 붉은 액체가 담긴 링거병, 링거관, 초록 식물이 자라고 있는 현무암. 쇼윈도우처럼 작품은 상품처럼 설치되어 있는데 상품이 상품 이상의 기호로서 작동하듯이 작품도 보여지는 대상 이상의 기호로 작동된다. 투명하지만 닫혀있는 공간처럼 기표-이미지는 단순하게 사물을 지시하지 않는다.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김정현_바깥에 갇히다展_문화공간 양_2014

왼쪽의 투명하고 닫힌 공간과 오른쪽의 투명하지도 닫히지도 않은 매개된 공간의 상반된 두 작품에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현무암으로 지시되는 제주도와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으로 표상되는 중국이다. 중국의 자본이 대거 유입되는 제주도를 작가는 알레고리와 서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운데, 열려있으나 들어갈 수 없고 그래서 명확히 보기 어려운 이 추상적 공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중에 떠 있는 작은 현무암은 전시장 중심에 놓여 있다. 중심에 있으나 혼자의 힘으로 위치를 잡고 있지 못하다. 세 개의 줄에 매달린 현무암은 양 옆의 작품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제주도이다. 세 개의 줄은 각각 방향도 강도도 다르다. 심지어 하나는 외부 공간에서 깊숙이 침투하여 현무암까지 깊숙이 작용한다. 이 세 개의 줄 중 하나라도 힘이 느슨해지거나 끊겨지면 상황은 어찌될까. 관람객인 우리는 그 공간에 들어서지도 못하듯이, 그 힘의 관계에 직접 참여하지도 못하는 구경꾼과 같다. 결국 작품은 공간의 개폐의 방식, 보기의 방식, 그리고 표상의 방식의 상이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각각의 표현방식을 퍼즐 맞추듯이 연결하면 전체의 공간이 지시하고 의미하는 바를 찾아갈 수 있다. 닫혀있거나 조금은 열려있는 그리고 열려있으나 들어갈 수 없는 공간. 투명하고, 불투명하고 흐릿한 보기 방식, 직접적이고, 은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의 표현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며 공간으로서 작품을 체험하게 한다. 그러한 작품으로서의 공간은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제주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며 나아가 그곳에 우리가 사물을 보는, 지각하는, 체험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매우 독특하게 구성하였다. 주로 사진과 영상을 통한 매체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는 매체를 통해 인간 상호 관계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하여 왔다. 그런데 작가는 이번 제주에서의 전시를 매우 새롭게 선보인다. 작품의 주된 문제도 '사람'에게서 '공간'으로 이동했으며, 작품의 형식도 사진과 영상이 아닌 설치의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전의 작품들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이전의「로맨틱 팩키지 romantic package」시리즈와「프로토콜 protocol」,「서바이벌 게임 survival game」등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작품들은 사람들의 일상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제도와 관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도와 관습, 권력이 보이지 않으나 작동되고 있음을 드러내는데, 작가는 동일한 방식으로 매체를 작동시킨다. 매체가 개입되어 있는데, 그 매체는 작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함을 드러낸다. 존재와 힘의 관계의 문제를 매체를 통해서도 나타내고 매체 자체로도 나타내는 작가는 매체를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매체 그 자체를 드러낸다. 그러한 매체의 사용을 이번에는 기술매체를 넘어 공간으로 확대하였다. 이전의 작품에서 작가는 사진과 영상으로 사회를 관찰하며, 관찰하는 매체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벤야민이 언급한 바와 같이 지각방식, 소통방식, 권력의 작동방식 등에 대해 일종의 예방접종으로서 감상자인 우리를 사회에 대한 적응훈련을 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매체를 수단으로서 사용하고, 그리고 나아가 매체 그 자체를 탐구하면서 작업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과 영상이라는 기술매체를 넘어서 '매체'를 폭넓게 활용한다. 그리고 이는 벤야민의 매체 개념과 그의 예술과 정치의 문제를 발전적으로 사유하는 랑시에르의 매체 개념으로 보다 설명이 가능한 듯하다. 랑시에르는 매체는 항상 무언가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의 목적으로도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매체는 물질-도구이면서 예술일 수 있는(동시에 기술이면서 예술인) 그 흐릿한 경계에 놓이게 되는 '환경으로서의 매체' 개념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김정현 작가의 전시는 설치라는 형식을 통해 물질-도구 자체를 예술로 만들고, 관람 방식과 체험 방식을 새롭게 함으로써 문화공간 양 전체를 작품으로 형성하였다. 그리고 작품이면서 작품이 아니기도 한 외부 공간에서 끊임없이 작품과 경주를 하게 만드는 지각방식과 경험방식을 통해 매체를 항상 무엇이면서 무엇인 아닌 것으로 형성한다. 나아가 공간이자 작품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예술이 아닌 흐릿한 감각적 환경을 형성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서성이면서 작품을 대해야만 하는 감상자는 바깥에 갇혀서 끊임없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그 경계에서 예술이면서 사물인 대상을 지각하고 경험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이 사회를 경험하는 방식임을 인식하게 하며, 나아가 이 경험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거리두기하여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 작가는 우리가 꿈꾸는 제주가 결코 아름답기만한 섬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이, 이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공간과 사회가 아님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공간, 사회에 바깥에 갇혀서 주체로서 개입하지도 못하고 깊이 있게 통찰하지도 못함을『바깥에 갇히다』전시를 통해 경험하고 체득하게 된다. ● 다시 한 번 이 제주라는 섬을 사유하게 된다. 해외 자본 유치라는 명분하에 중국의 투기성 자본을 무분별하게 유치하는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작가는 자문한다.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섬 이곳 제주를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 없음을 작가는 공간을 사유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해주면서 이야기 해주고 있다. 중국 때문만이 아니라 이 곳 제주는 강정마을이 있고, 또 제주 수학여행 길을 채 시작도 못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 올해 제주도는 더욱 처연하게 아름답다. ■ 최창희

Vol.20140823g | 김정현展 / KIMJEONGHYUN / 金正炫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