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Blue : 먼 곳으로, 보이지 않는「알 수 없는」곳으로 사라지다.

성왕현展 / SUNGWANGHYUN / 成旺鉉 / painting   2014_0824 ▶ 2014_0930

성왕현_lighthou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93.7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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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강원도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강원문화재단

관람료 / 개인 7,000원 / 단체 6,000원 / 지역주민_경로우대 1,000원 할인

관람시간 / 09:00am~06:00pm

하슬라아트월드 미술관 HASLLA ART WORLD MUSEUM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산33-1번지 Tel. +82.33.644.9411 www.haslla.kr

The Great Big Blue World ● 작가 성왕현(1985년생)은 방수포로 뒤덮인 도시의 집들을 그린다. 그는 예전부터 동네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는데 우연히 목격했던 공사현장은 방수포로 뒤덮여, 마치 바다처럼 울렁이는 퍼런 대지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이 그에게 강하게 각인되었고, 그는 그것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 풍경은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진행된 재개발 사업은 많은 것을 부수고, 또 새로 지었다. 하나가 완성되면, 또 다른 하나를 부수는 무수한 반복 속에 공사현장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함께 해왔다. 어느 샌가 우리는 거대한 파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88만원 세대의 예술가로서 작업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또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떠난 동네들은 머지않아 파란 방수포로 뒤덮여 완전히 낯선 풍경으로 변했고 이것은 흔한 경험이 되었다. 충정로-북아현-문래-대방동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그동안 여러 동네를 옮겨 다녔다. 어떤 동네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였고, 또 어떤 동네는 머지않아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떤 곳은 공장 일대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작업실이었다. 이렇게 언제나 그는 파괴와 건설의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 이것이 반타의적이었던 그의 이주를 마치 일종의 순례처럼 느껴지게 한다. 작가는 그 동네가 무덤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그렇게 방수포로 뒤덮인 그 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무엇이 소멸하고, 무엇이 생성되는가?

성왕현_점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0.9cm_2014

작가에게 '방수포'란 그렇게 현실과 초현실을 가르는 일종의 경계선이었다. 초현실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던 방수포 안의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을, 작가는 침묵과 외면 대신에 애도와 기억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의 작업에서 방수포는 처음엔 주요한 소재로써 작업의 전면에 등장했다. 첫 개인전 'WANDERER'(2013)에서 볼 수 있듯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퍼런 방수포들은 마치 거대한 홍수처럼, 때로는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재해 앞에서의 무기력함처럼, 그에게 방수포로 뒤덮인 현장은 무기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최근작에서 방수포는 이제 후면으로 물러난다. 이것을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던 현실의 경계, 그 너머를 보고자하는 의지라고 봐도 좋을까? 확실히 전작들에 비해서 많은 형식적 변화가 눈에 띈다. 일단 작가 자신을 의인화 하여 풍경 속에 개입되던 고양이들이 따로 분리되어 나오고, 풍경으로써 요소를 이루던 구도와 공간의 활용법이 전작과 차이를 보인다. 전작에서 방수포로 덮인 풍경을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최근작에서는 그 세상을 직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성왕현_놀이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100cm_2014

그가 보는 거대한 파란 세상 안에는 어떤 집들이 외로이 서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혹은 머지않아 세상에서 사라질 집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제 그의 그림은 어떤 풍경이라기 보단 집들의 초상화에 가깝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영정 초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건물들 하나하나가 유기체처럼 느껴졌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업에서의 집은 풍경을 이루는 요소가 아니라 각각 개별적 대상들이다. 과연 그 집들이 개별성을 가질 수 있을까? 몇 해 전 숭례문이 불타버렸을 때, 그 현장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수많은 국민들은 한동안 어떤 허탈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단순한 문화재의 화재가 아닌, 어쩌면 우리의 대한민국도 저렇게 불에 타 소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모두 비슷한 외관과 구조로 지어진 집들이 무너져 내려갈 때, 슬퍼할 이는 과연 누구일까? 나의 집이 아니면 괜찮은 걸까? 아니, 오히려 우리의 집과 비슷해 보이는 집들이 무너져 가는데, 어째서 우리는 그 집들을 무심하게만 바라보는 걸까? 무수한 파괴의 현장에 무감각해진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인간성도 무너져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이미 무감각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성왕현_충정아파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14

언제부턴가 낡은 아파트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되어 그 동네는 재개발을 둘러싼 많은 대립과 갈등으로 아파트 곳곳에 대형 플랜카드가 걸리기 일쑤였다. 좋은 합의가 이루어지든, 어느 한쪽이 눈물을 흘리든, 어쨌든 그 아파트는 결국 파괴된다. 그리고 또다시 방수포로 뒤덮일 것이다. 언젠가 그 순번은 나의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기분으로 이 땅을 떠나야 할까? 작가에게 이 반복은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한 슬픔(Great Big Blue)이었다. 아마 이 좁은 땅에서 그 일은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성왕현_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14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개발과 재개발을 둘러싼 어떠한 정치적 시선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와 감정이다. 실제로 작가는 장소를 선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터에서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 묘한 느낌들이야 말로 잃어버린 우리의 인간성을 메꿔버린 거대한 슬픔이 아닐까? 그는 그 슬픔을 애도하는 길로 예술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이제 작가의 작업이 충분히 그 슬픔을 애도하고 있는지 지켜볼 차례다. 또한 앞으로 그가 작업으로써 스스로 그 슬픔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가 궁금하다... ■ Q

성왕현_Moonlight Blu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72cm_2014
성왕현_파란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7.5×45.5cm_2014

The Great Big Blue World ● The artist Wanghyeon Sung (Born in 1985) paints the houses covered with tarpaulins in a city. His long-time hobby was taking pictures of a town, and a construction site that he accidently witnessed was that of blue land waving like ocean, covered with tarpaulins. That moment was engraved in him, and he translated it onto a canvas. In fact, that scenery is not unfamiliar to him or to us. The redevelopment business that rapidly progressed in the recent years destroyed many things and built new things. In an endless cycle of completing one thing and then destroying the other, the construction site was always with our daily lives. We might have been living in a giant blue world before we knew it. ● It was the same for him, too. As an artist from the ₩ 880,000 generation, he repeated the life of moving from one place to other when the lease of his studio ended. The towns that he left like that soon covered with blue tarpaulins, turning into unfamiliar scenery, and it became a common experience for him. From Chungjeong-ro to Bugahyeon, to Mullae, and to Daebang-dong, he moved around quite a bit. One was an old apartment built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other experienced redevelopment soon enough. And he once had a studio placed in the middle of a factory complex. He was always near to the site of destruction and construction. It makes his half-forced migration feel like some kind of pilgrimage. He could only watch those towns turning into graves powerlessly. What was happening inside the tarpaulins? What ceased to exist, and what was created? ● To him, "tarpaulins" was a certain borderline between real and surreal. He decided to lament and remember the confusing and incomprehensible scenery inside the tarpaulins that could not be explained otherwise surreal, rather than looking away and being silent. At first, the tarpaulins appeared in the front of his work as the main material. As it can be seen from his first individual exhibition 'WANDERER (2013)', blue tarpaulins waving like ocean look like great deluge and sometimes like gigantic mountains. Just like the powerlessness in front of natural disaster, the site covered with the tarpaulins was the powerlessness itself. However, the tarpaulins moved to the back in his recent works. Is it okay to see it as the willingness to look beyond the borderline of reality that he treated with silence and avoidance? Compared to his previous works, the changes in formality are clear. The cats that personified the artist himself and that intervened in the sceneries were separated. The usage of composition and space that established the elements of scenery show differences compared to the previous works. If the scenery covered with tarpaulins was seen with observing perspective in the previous works, the same world is viewed with intuitive perspective in his recent works. ● Inside the big blue world that he sees, some houses stand alone. It is conveying the houses that already don't exist or that are soon to be demolished on the face of the earth. In fact, his paintings are close to the portrait of the houses, rather than some scenery paintings. No, to be more specific, they are like the portrait of the deceased. As his comment that each building felt like an organism, the houses in his work is an individual object, not elements that construct scenery. Can they indeed have individuality? When Sungnyemun Gate burned down few years ago, many Koreans, who watched the site powerlessly, could not escape the feeling of despondency for some time. Perhaps it was certain anxiety that Korea was becoming extinct by fire like the gate, instead of being a simple burn down of a historical asset. However, when the houses that are built with similar appearance and structure crumble away, who would grieve? Is it okay if it's not my house? But why are we indifferently looking at the houses that look similar to our own when they crumble away? Maybe, we who became numb to the numerous sites of destruction are numb to the fact that our humanity is also collapsing. ● From some time ago, I frown when I look at old apartments. Soon enough, the town with old apartments get covered with large banners because of the conflicts regarding redevelopment. Whether good agreements are made or one party cries, the apartments will be destroyed in the end. And then it will be covered with tarpaulins again. It might be my house's turn someday. When that day comes, with what feelings should I leave the land? To the artist, the repetition was already Great Big Blue itself. Perhaps, it will repeat endlessly in this small land. ● The important aspect to the artist is not some political perspective surrounding development and redevelopment, but the attitude and emotion looking at it. In fact, the most important fact to the artist in selecting a place is the unknown feeling felt from a certain place. Maybe those strange feelings are the great sadness that filled the lost humanity of ours. He chose arts as the way for lamenting that sadness. Then it is now the time to see if his work is lamenting the sorrow sufficiently. Also, I am curious as to how he will sublimate the sorrow through his work. ■ Q

Vol.20140824a | 성왕현展 / SUNGWANGHYUN / 成旺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