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ace between them

김정희展 / KIMJUNGHEE / 金貞姬 / painting   2014_0904 ▶ 2014_0916 / 9월6~9일 휴관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8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9월6~9일 휴관

제이에이치갤러리 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www.jhgallery.net

구조와 균열의 공간 - 현현(顯現)하는 삶의 메타포 ● 혼성의 공간-구조와 탈구조 - 일견 표현주의적 감성이 충만한 김정희의 회화에는 이지적 이성이 구축하는 메타포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것은 질박한 화면과 표현주의적 붓질의 바탕 위에 세운 기하학적 구축물이 전면에 배치된 세계이다. 이러한 그녀의 회화에서 '계단'은 대표적인 메타포이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위로 혹은 위로부터 아래로 잠입하는 '물리적인 이동의 공간'이자. 때로는 치솟고 때로는 추락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메타포'가 된다. 그녀의 작품 제목이자, 전시 주제인 「그들 사이의 공간(Space between them)」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계단'은 위와 아래를 가로지르는 물리적 공간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횡단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확산한다. 그것은 세계를 구조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탈주하는 '혼성의 공간'을 형성한다. 즉 그것은 인간들의 친밀한 거리를 가늠하는 '물리적 접촉의 장'이자, 인간들 사이에 위치한 '사회학적 위계의 층' 혹은 '심리적인 사이 공간'이자, 인간과 환경이, 주체와 대상이 구별 없이 스멀스멀 섞여 들어간 '혼성의 공간'이다. ● 구조와 탈구조가 맞닥뜨리는 그녀의 회화적 공간을 필자는 '구조와 균열의 공간'으로 지칭한다. 특히 실내의 풍경을 회화적 대상으로 삼는 그녀의 작업은 천장, 바닥, 벽 그리고 기둥과 같은 구조물들을 수직과 수평으로 끊임없이 교차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간'을 파편적으로 분할한다. 그녀의 회화에서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수직의 블라인드 창과 같은 형식으로 층층이 분절해내거나 때로는 나선형의 계단으로 위층과 아래층의 3차원 공간을 미끄러지듯이 이어주면서 양측의 공간을 매개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옆으로 성장하는 듯이 보이지만 위로 상승하고, 위로 상승하는 듯이 보이지만 옆으로 성장하는 수평과 수직의 이율배반적 조우가 그녀의 회화 안에 가득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만남 주체들의 운동 지향성을 동반적으로 강화시켜낸다. 달리 말해,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구조의 공간을 구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구조의 공간을 균열시키고 해체하는 작업을 병행해나간다고 할 것이다.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1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3

인간의 심리적 투명성- 투사와 왜곡 ●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바로 인간 사이의 심적 공간으로 표상된다. 물리적 공간이 비물리성을 견지하는 방식은 수직과 수평으로 맞물려 구축하는 공간 안에 '심리적 투명성'을 투사하는 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그녀의 작업에서 기하학적으로 정합하게 맞물려 구조화된 '계단'이, 유리와 같은 투명한 재질로 이루어져있는 경우에서나,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경우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난다. 전자는 구조적 공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후자는 구조적 공간의 파편 사이로 그것의 모순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유리 재질로 만들어진 '계단'을 대상으로 삼아, 표면에 투영된 주변 풍경 혹은 인간 군상과 더불어 내부로 투과되는 빛의 양상을 과도하게 왜곡하여 교차시킴으로써 이러한 물리적 공간 안에 비물리적 속성, 즉 '인간의 심리적 투명성'이 여실히 드러날 수 있도록 장치했다. 특히 유사한 두 작품으로 양면화((兩面畵)의 방식을 취한 작품 「세 사람(Three figures) 」(2013)에서 그녀는 반투명한 거울에 '투사'되고 있는 세 인물뿐 만 아니라, 계단의 단층들 사이로 희미한 실루엣으로 '투과'되는 동일한 세 인물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자신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결국 인간의 심리적 공간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즉 '구조적 공간 속에 거하는 인간', '인간들 사이에 위치한 구조적 공간'과 같은 표현처럼, 그녀는 억압, 자유 등과 연관된 사회학적 개념을 조형언어를 통해 대조, 비교, 실험한다.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2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3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5_캔버스에 유채_73×85cm_2014

그녀의 작품에 있어 투사, 투과, 투영 등과 같은 조형적 결과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다. '안정을 희구하는 구조화'가 극에 달한 오늘날의 사회적 제도 속에서 그녀가 고민한 것은 '인간의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회화적 테마 속에서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가운데 그녀의 작품이 잉태했고, 그 결과 구조적 조형과 그로 인한 투사, 투과와 같은 조형적 결과가 도래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인간 형상의 왜곡 역시 그러한 일련의 질문들 속에서 찾아진 조형적 결과물이다. 인간 군상을 '사진적 눈'으로 포착할 때 왜곡이 가장 가시화되는 방식은 클로즈업과 부감법(俯瞰法)이라 할 수 있다. 실상 클로즈업은 기계의 '한 눈'으로 포착할 때 왜곡이 극대화되는 방식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왜곡의 정도는 심하지 않다. 이와 달리, 부감법은 위에서 아래를 향한 시각이라는 점에서 인체는 과도한 두상에 짧아진 팔다리 등 왜곡의 정도가 심해진다. 그녀의 작품에서 공항의 로비, 빌딩의 옥상 등에서 군상들을 내려다보는 일련의 부감의 시각은 이러한 왜곡의 출발점이다. ● 나아가 인간 형상의 구체성이 탈각된 채, 실루엣이 건축적 구조들에 드리워지거나 그것과 오버랩된 작품들, 또는 수평 혹은 사선으로 분절된 배경 속에서 배경과 침투하는 인물 형상들은 왜곡의 극대화가 빚어낸 해체와 소멸의 단계에 이른다. 이러한 해체의 방식은 수평, 수직, 혹은 사선의 구조화의 골간은 유지하되, 그 구조의 세부들과 인간 형상을 함께 산산이 흩트려놓음으로써 우리에게 혼돈의 풍경을 선보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의 파편들로 인해 사물과 인간의 만남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풍경과 인물의 오버랩과 상호작용의 운동성 그리고 보색 면들의 부딪힘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6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4

삶의 메타포-현실의 표현주의적 반영 ● 그녀는 해체와 소멸을 표현주의적 붓질과 조형언어로 탐구한다. 그것은 현실을 이성으로 재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현실의 경계 너머'의 것이라기보다는 '현실 안에서 다른 보기의 형식'으로 찾아질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간주된다. 표현주의란 객관화의 기준이기 보다는 내면의 주관화와 상대화가 주요한 조형언어이다. 그것은 세계를 일대일로 대면하는 예술가의 아방가르드의 관점이 오롯이 구현되는 세계이다. 해체와 소멸은 죽음과 부정의 극한을 달려가지만, 이내 그것은 죽음과 부정 이전의 존재와 긍정에 대해 갈망한다. 씨앗이 썩어 없어져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이 되듯이, 죽음과 해체 뒤에는 언제나 소멸 이후의 생명을 약속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 삶에 있어서의 '균열'과 그를 잉태케 하는 '트라우마'는 현재적 미래를 사는 힘이다. 그녀가 해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구조는 삶을 지탱시키는 필요악이다. 그곳으로부터 억눌린 유기적 생명들이 언젠가는 스멀스멀 자라나는 자생력을 갖고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녀의 작품에서 화면을 사선으로 가르는 불안, 위기, 위태함은 안정을 수립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파편과 분절이 이내 통합의 기원을 소망하게 하듯이, 그녀의 회화에서, 하나의 프레임 속에 무질서하고도 자잘한 프레임으로 분쇄되는 화면들은 보편적 인간의 거시적 서사라는 커다란 프레임 안에서 인간 개개인의 미시적 소사들이 질주하는 운동성을 십분 은유한다. ● '해체'는 구조와 탈구조, 인물과 맥락, 실내와 실외, 그리고 오름, 내림, 미끄러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운동한다. 아크릴을 사용하면서도 유화를 혼용하는 그녀의 회화적 붓질은 이러한 꿈틀거리는 생성의 운동성을 강화시키는 기제가 된다. 생성의 운동성은 표현주의적 감성만큼이나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까닭에 외려 현재적 미래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한 면에서 '현실의 표현주의적 반영'을 실험하는 그녀의 회화는 많은 부분 '현실의 비현실적 환영'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이질성의 지속과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의외성'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것은 그녀가 언급하고 있듯이 마치 '장님이 보는 세상'을 그리는 것처럼 모호한 것들일 뿐이지만, 이러한 모습 자체가 바로 우리의 삶이며 예술이라는 메타포가 그녀의 화면 곳곳에서 읽혀진다. '비현실적 환영', 그것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표현주의적 언어는 우리가 사유할 수 있음에도 미처 상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하나의 창으로 자리한다. ■ 김성호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7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4
김정희_the space between them #12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4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음 순간으로 넘어 가야 할 때가 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답답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든지,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 준비없이 놓일 때가 흔한 예이다. 이런 때 그냥 마음과 몸은 분리되고 떠밀려 다음 순간으로 넘어 간다. 사실 삶은 이런 경험으로 점철되지 않나 싶다. 준비나 연습 없이 새로운 경험으로 이입되고, 우리는 삶에서 불연속선을 느낀다. 사고나 이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는 보다 극적으로 우리 삶에 균열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인간을 지배하는 더 큰 힘을 드러낸다. ● 이번 그림은 이러한 삶에 내재하는 이질감, 불연속선, 균열의 느낌을 공간적으로 표현해본 것이다. 여기서 공간은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초현실적 함의를 가지며, 각각 다른 프레임을 갖고 있다. 다양한 함의를 가진 공간들은 서로 물들이기도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공간들은 인간과 상호작용 한다. ●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계단은 우선 기하학적이며, 물리적 공간이다. 동적인 공간이지만 안정감을 주지는 않는다. 동시에 인간의 욕망의 메타포이며, 계층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히 유리 계단일 경우 유리라는 재료의 허약성은 보는 사람에게 불안한 심리를 유발한다. 유리 계단은 그에 어리는 빛의 반영으로 비현실적 환영을, 그리하여 또 다른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 김정희

Vol.20140904c | 김정희展 / KIMJUNGHEE / 金貞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