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ue

권경엽展 / KWONKYUNGYUP / 權慶燁 / painting   2014_0905 ▶ 2014_0928 / 월요일 휴관

권경엽_Monologue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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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엽 홈페이지_www.louisekwon.com

초대일시 / 2014_090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org

잿빛 소녀 혹은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새털같이 많은 날 중 어느 하루, 최초의 인류였던 한 여성이 잔잔한 옹달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녀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막연한 익숙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경험한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기의 반영임을 깨닫는 동시에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다른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동일한 존재에 대해서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서- 자신과 다른 이를 동시에 발견하는 경험은 그녀의 인지환경에 일종의 예술적 공간 혹은 여백을 만들었다. 많고 많은 날들이 흘러서, 잔잔한 옹달샘에 비친 자신을 구현한다. 거울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손으로 그것에 비친 자신을 그린다. 이제 자기 자신은 세 개의 층위를 가지게 된다. 원래의 (총체적인 시각적 인식이 불가능한)자기 자신과 거울 속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보고 그려낸 자기 자신이 그것이다." (거울과 그림에 대한 나의 상상에 근거한(허구) 재구성)

권경엽_Melancholia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4

1. 거울 ● 밀턴의「잃어버린 낙원」에는 이브가 물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자신을 처음으로 타인으로 인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동은 물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여 그를 따라 물로 뛰어들어 죽어버린다. 서양의 유명한 동화에 나오는 여왕은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미모를 확인한다. 그리고 마침내 의붓딸을 시기하여 죽인다. 애써 자신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보고 싶어 했던 노력으로 만들어진 구리거울(銅鏡)에 이르면 현생인류의 자신을 확인하고자 하는 태도는 거의 집착에 가깝다. 이렇듯 거울에 관한 이야기는 무수히 많으며, 하나같이 자신과 타인의 존재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거울은 엄밀하게 말하면 '허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허상을 기반으로 우리의 세계가 설계되었고 거울을 통해서 자신과 다른 이를 구분하고 '자기 자신'이라는 본원적인 개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리한 이해에 도달한 어느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는 갓난아이의 일정한 시기를「거울의 단계」라고 하고는 자기 자신(自我)이라는 생각이 관계 속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말하고 욕망, 불안, 억압 등 모든 삶의 근원이 (반영으로써) '거울'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허상을 통해서 주체라는 실재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 권경엽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늘 '거울'을 생각했다. 매끄러운 거울에 잡티 하나 없이 잘 비추지만 모호하게 왜곡된 거울 안에 들어 있는 '인물'은 작가의 반영임은 물론 작가가 모르거나 숨기고 있는 자신이기도 하고, 작가가 발견한 타인이기도 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만큼 권경엽이 그리는 인물은 미묘하고 복합적이지만 보이는 형식은 명료하다. 거울이다. 그것도 최초의 인류였던 여성이 옹달샘에서 본 그 얼굴로써의 거울이다. 현실에서의 작가의 모습과 화면에 재현된 인물은 매우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그리고 다층적으로 다르다. 다른 것은 거울에 나타나는 양식이 아니라 그 인물의 섬세한 층위이고 심리이며, 그녀의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다층의 양상들이 거울처럼 반영되는 것이다.

권경엽_Mirror Room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4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그림이라기보다는 거울에 가깝다. 그래서 그 거울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작가가 모르는 작가 자신 그리고 작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변주 혹은 작가가 가공하려는 것과 감추려는 것들이 내용으로 담긴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매력의 근원은 여기서 발생한다. 단순한 이미지로 명료하게 제시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 다층적으로, 그것도 매우 즉자적(卽自的 an sich)인 수준에서 매우 감각적으로 해석의 영역이 열린다. 읽기를 감각적인 수준에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앎 이전의 앎 혹은 구조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상계(想像界 Imaginary)와 관련되는 것이고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진실이 은폐되기 이전의 세계, 보편적으로 말하면 강 건너 잊혀진 그들 삶의 근원과 관계된 것, 즉 현생인류가 가진 심리적 근원이 그녀가 그리는 것의 내용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 기실, 그린다는 행위는 거울을 보는 행위와 유사하다. 자신 혹은 대상을 마주보는 재현이 회화가 가진 본래적인 특질이라고 할 때, 권경엽의 그림은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거울 속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그 은밀함 그리고 대상이 주체를 응시한다는 점에서 회화의 본래적인 특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

권경엽_Rain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4

2. 거울의 내용들 - 1) 거울 속 소녀 혹은 그녀의 성장 ● 거울은 늘 밖의 사람이 자신을 바라볼 때만 그 사람을 볼 수 있다. 밖의 누군가가 거울 안의 대상을 보고 눈을 마주쳐야 비로소 작동하는 '수동적 자아'이다. 거울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할 수 없으며 거울 밖의 '또 다른 주체'에 의해서 자신을 구성한다. 거울 밖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거울 속의 자신은 '나'로 인해서 비롯되고 오로지 나에 속한 것 혹은 나의 반영이겠지만 거울의 입장에서는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밖에서 거울로 유입된 주체는 거울 밖의 나를 통해서 거울 속의 자신을 구성하고 거울 밖의 자신과 다른 자아를 형성한다. 간혹 혹은 좀 더 빈번하게, 거울 속의 나와 밖의 내가 서로 생경하고 감정적으로 다른 선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다르다! ● 거울과 눈을 마주치면, 거울 속의 인물은 점차 나와 닮아가서 합일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울 속에서 또 다른 주체를 형성하고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재현 자체가 다른 개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거울을 보는 이는 다른 나 혹은 나 밖의 나 혹은 다른 이를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울 안에서 현실의 내가 아닌 나를 본다. 거울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허구이자 판타지이다. 그래서 거울은 근본적으로 '예술적-공상적' 공간이 된다. 그 허구는, 내일의 욕망일수도 있고 좌절된 고착일 수도 있으며 혹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이나 허영일 수도 있다. 혹은, 내일 이 모습이지 않을 것에 대한 우울로 만든 오늘의 고착된 환상일 수도 있다. 거울은 현실에서는 없어야 할 우울을 환상 속에서 구현할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거울은 환상과 현실의 층위를 다각적으로 반영할 것이므로 실재적이지만 허구이다. 거울에서 비롯된 삶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울뿐만 아니라 '감정'은 판타지적 허구의 측면이 있다. 거울 속의 그녀는 작가이자 작가가 아니며 그녀의 다양한 아바타르(分身)이다.

권경엽_butterfly_캔버스에 유채_162.2×112cm_2014

작가의 거울은 대부분 창백하다 못해 푸른 회색으로 탈색이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탈색 되었다. 작가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에게 말 걸고, 환상을 만들고,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발견하거나 자신 속에 숨어있는 존재를 찾아낸다. 그리고, 결과는 시리도록 창백한 슬픔의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그림자답게 회색을 지향한다. 화면에 반영된 핏기 없는 회색의 소녀는 불행할 수는 있으되 고귀한 존재라는 환상에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 환상의 요체는 죽음이며 탈색되는 것처럼 보이는 낯빛으로 그것을 가공한다. 죽음을 떠올리는 회색은 작가자신과 그림을 보는 이에게 제시하는 프레임이다. 작가는 '색'을 통해서 말한다. '그 액자 밖의 것은 보지 말 것'. ● 작가가 거울을 가지고 만든 프레임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나 현실과 동일하지 않은 무엇이다. 잿빛의 소녀와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이며 그 자아의 판타지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그 소녀가 자라나서 여성이 되었다. 중성적인 이미지는 종종 관능적이기도 하고 눈동자의 초점은 좀 더 직선적이 되었다. 상처의 고착은 더 이상 그 거울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에 상처를 대체하는 상징이 등장하고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거울 속의 소녀는 자라났고 '여인'은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듯싶다. 작가의 변화이며, 향후 작업에 대한 단초이다.

권경엽_Peach Dream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4

2) 유입된 세계, 거울 속의 공간 ● 곧 비를 내리게 할 것 같은 구름 그리고 대기를 가득 메운 습한 기운, 그 앞에 시든 백합과 서양식 검(劍)을 들고 서있는 길고 짧은 머리의 두 여인이 흡사 라파엘로의「아테네 학당」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서있다. 한 여인은 허공을 처다 보고 있고 한 여인은 반쯤 눈을 감고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이 작품과 유사한 또 하나의 작품은 일종의 대구(對句Parallel & Antitheses)이다. 여인이 거울 속에서 구성한 세계의 도해(圖解)라 할 수 있다. 거울 밖에서 유입된 거울 속의 자아가 분열해 변주를 만들고 있으며 그 변주는 자신들 모습으로만이 아닌 구름과 하늘과 습기를 가득 머금은 대기와 같이 화면 속에서 나타난다. 「Rain」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Mirror room」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과 대구이며 각각의 작품도 각각 유사하지만 다른 자아 그리고 배경들과 대구이며 서로 영향 하에 놓여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권경엽_Lilium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3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여인에서존재를 바라보는 여인이 여인'들'이 된 것도 그렇고 이전의 작품에서 붕대가 했던 역할을 하는 다양한 장치, 예컨대 칼이나 꽃, 시선 그리고 착-탈의 들이 등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인들과 배경의 유기적 연관성이다. 꽃은 시들어 메마르고 여인들은 회색으로 더욱더 창백하다. 창백하다기보다는 점점 지워지고 있거나 흐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기화(氣化)한다기보다는 화석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꽃과 그녀들의 생명은 온통 대기를 메운다. 구름은 곧 비를 내릴 것이고 그러면 화면 속의 여인들은 다시 생명을 얻을 것이고 화면의 대상과 배경은 순환론적 세계를 이루게 된다. 이 작품은 바로 비가 내리기 전 대기가 가득 습기를 머금은 그 순간이다. 게다가 여인들은 이제 거의 등신대(等身大)이다. 작가의 시선은 이제 감정이 중시되던 '표정'에서 '상태'가 중심이 되는 존재로 변화한다. 그리고 실물과 같은 크기의 작품은 몸 자체가 삶의 기억으로 또는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표정을 대신한다. 그래서 조금 더 상호적이며 거울 속에서 구성되고 있는 세계, 그것도 서로 연관된 순환적 세계가 된다. 이제 작가가 거울 속에서 만든 세계는 고착된 상처와 그것이 유발한 환상의 세계에서 생활세계와의 유사성을 기초로 보편지평으로서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존재 방식이 완결된 자아가 세상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 In-der-Welt-sein)로서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현상학적이고 하이데거식이다.

권경엽_Scarlet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3

3) 대화, 해석이 아닌 대상과 말 걸기 ● 예술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자신의 성찰이자 치유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 파편화된 삶을 복원하고 위로 받는다. 모든 정신적인 가치들이 수치화하고 생활세계가 체계에 복속되는 양상이 지속되고 예술 혹은 그 결과물도 거래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원래는 행위 자체가 행위자에게 봉사하는 '무엇'이었다. 행위 자체가 자신을 구원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 예술행위이며 결과로서의 예술작품이다. 권경엽은 예술의 본래적 의의, 즉 자기에게로 향하는 행위로써 예술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일종의 '울림'을 가진다. 작가가 만들어낸 화면은 작가의 거울이자 보는 이의 거울이다. 그리고 상처를 보듬고 자신을 치유한다. 매끄럽게 잘 그려낸 여인과 작가가 제공한 상징들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거울이자 주변의 삶에서 대하는 사람들의 삶과의 연관들을 떠올리게 된다. 단지, 작가가 반영된 거울로 보이는 슬프거나 공허한 얼굴과 눈을 마주치면 우리는 그것이 다만 자기고백 그 이상의 것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서 자신을 발견하거나 나의 누이나 먼 기억의, 내가 모르는 어머니를 본다. 그리고 그녀와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치유하고 대상과의 공감을 회복한다. 권경엽의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며 본령이다. 작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작품들이 보는 이에게 공감을 획득하고 감상 자체가 삶을 치유하고 세계를 복원하게 하는 것은 진정성 때문이다. ●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자신을 향하거나 고백적이지만, 권경엽의 고백은 그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이고 순도(純度) 또한 방식의 직접성만큼이나 높다. 작가는 자신의 삶 (그것이 시간을 두고 어느 시점을 선택하든 그것이 시간을 멈추고 고착되어 있든)에서 발견된 자신을 거울에 투영하듯 작업을 한다. 그리고 투영된 거울은 작가의 분신이자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존재가 된다. 솜씨는 작가가 자신의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작업과 연관시킬 때 혹은 삶과 작업을 만나게 할 때 빛을 발한다. 솜씨는 작가가 자신이 삶과 작업을 만나게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거나 선택되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삶과 작품이 만나는 밀도에 따라서 솜씨는 드러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은 작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 뒤에 숨게 된다. ■ 김영민

Vol.20140906b | 권경엽展 / KWONKYUNGYUP / 權慶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