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링크 GALLERY ARTLINK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6-17(안국동 17-6번지) Tel. +82.2.738.0738 www.artlink.co.kr
장용주의 고전연구와 상징투쟁 ● 예술가들이 기성이미지를 차용하는 까닭은 그 속에 담긴 안정적인 기호작용을 끌어다가 자신의 문맥으로 만드는 전유의 가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용주가 한국고전을 끌어들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전적인 방법과 도상들이 동시대적 감성과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한국인의 감성영역을 다루는 메타비평가 역할을 지향한다. 그의 예술은 매우 어려운 전제를 안고 있다. 고전과 동시대의 문맥을 연결하기 어려운 한국사회의 감성장애가 문제다. 식민지시대와 서구화시대를 거쳐 형성된 동시대 한국의 감성은 전통이나 고전과 단절한 결과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개인과 집단, 내면과 외향, 관습과 제도 등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극심한 감성적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장용주의 예술은 바로 이러한 지점, 단절의 역사로 인해 발생한 감성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과 실험이다.
장용주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차용은 전통회화를 전공한 후 범본을 베껴 그리는 임모 분야 전문가로 자리잡아온 그의 이력으로부터 나온다. 그의 임모화는 몇몇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임모가 회화의 방법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재영역에서 쓰이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는 사혁의 육법 가운데 하나인 전이모사의 방법으로 고전연구를 새로운 조형언어를 개발하기 위하여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고전회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끌어 쓰는 그의 그림들 속에는 수축과 팽창, 번짐과 흘러내림, 셈과 여림 등 이원적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기하학적인 도형들과 비정형의 형태들이 뒤섞여 있다. 하나의 화면을 완결하기 위하여 그가 끌어들인 기법과 시각들은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등 이원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 1990년대에 그는 고구려고분벽화의 빛바랜 벽색깔을 재현하고 그 위에 벽화이미지 일부분을 그려 넣는 「기억의 벽」 연작을 발표했다. 배경을 이루는 벽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단색조의 부드러운 색채를 사용하여 큼직큼직한 면분할로 화면구도를 짜는 색면추상의 경향을 보이면서, 동시에 거친 붓질의 추상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옛무덤벽그림 외에도 신사임당의 초충도, 정선의 산수도와 같은 여러 가지 고전들을 차용했으며, 거기에 아이들의 낙서 같은 자신의 일상 모티브를 개입시키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는 베끼기와 짜깁기에 근거하는 고전차용의 재현회화적 요소를 지속하면서도 미니멀한 색면추상의 요소를 강화한 「기억 속에서」 연작들을 발표했다. 사진적 재현과 회화적 재현을 병치한 이 연작들은 회화를 닮으려는 사진과 사진을 닮으려는 회화 사이의 갈등과 조화를 한 화면에 압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신작들은 두 가지 기법으로 나뉜다. 첫째는 아크릴 표면에 전동드릴로 흠집을 내는 스크래치 기법이다. 투명한 아크릴 표면에 생긴 흠집들은 보는 각도나 빛의 각도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그 형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조명을 쐬었을 때 그 뒤의 색면 위에 그림자로서 또렷한 형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아크릴패널 스크래치 그림은 빛의 힘을 입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자 그림이다. 둘째는 그림 위에 에폭시를 바르고 그 위에 스크래치를 가하고 다시 그 위에 에폭시를 바르고 스크래치를 가하는 과정을 반복한 에폭시패널 스크래치 그림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 속에서 희뿌옇게 드러나는 역사의 실체를 찾아내듯이,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그라지는 고전의 형상을 희뿌연 물질 위에 새겨둠으로써 아련히 흩어지는 과거와의 감성적 만남을 주선한다.
고전과 동시대의 감성을 매개하는 장용주의 예술은 고전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아크릴패널 스크래치 그림과 에폭시패널 스크래치 그림을 병치한 작품들도 있다. 말끔한 단색평면 위에 깔끔한 선으로 나타나는 전자와 흐릿한 표면 위에 아련하게 드러나는 형상들의 후자가 만나는 이 작품들은 장용주의 근작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언어개발의 성과를 집약,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에너지가 있다. 종이 위의 브러쉬페인팅으로부터 아크릴패널과 에폭시패널 위의 전동드릴 스크래치로 확장한 그의 새 언어는 감성비평을 향한 그의 고전연구가 상징투쟁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우리가 그의 새로운 언어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전을 차용함으로써 특수성을 구가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시대의 보편언어를 재구성하는 데 동참할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 김준기
Vol.20140911d | 장용주展 / JANGYONGJU / 張蓉妵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