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 Overlooked

이선현展 / LEESUNHYUN / 李宣賢 / painting   2014_0913 ▶ 2014_1005 / 월요일 휴관

이선현_붓6_캔버스에 유채_33×41cm_2013

초대일시 / 2014_0913_토요일

2014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 초대展 www.thinkartkorea.com

주최 / (주) 신한화구 www.shinhanart.co.kr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포네티브 스페이스 ponetive space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4 Tel. +82.31.949.8056 www.ponetive.co.kr

소박한 이미지 속에 담긴 지적인 희열 ● 손으로 무엇을 그리거나 만든다는 행위에는 즐거움이 있고 또한 몰아의 순간이 있다. 그리거나 만든다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재능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그 행위의 결과물에서 성취에 따른 희열을 느낀다. 행위의 즐거움과 성취감이야말로 예술로 이끄는 유혹이다. 무엇을 목표하지 않더라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때 그로부터 예술의 꽃이 피어난다. ● 이선현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형상을 창조하는 아주 단순한 행위에 매료돼 있는 듯싶다. 자기 과시 또는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그의 작업은 초등학교 시절의 어눌한 손놀림을 연상시킨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행위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몰입의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에서는 당연히 사실적인 묘사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즐기는 행위와 그에 따른 몰입은 감정이 소거된 이성적인 사실 묘사와는 다르다. 다시 말해 즐기는 행위는 무엇을 어떻게 묘사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기교적인 완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는 형태미가 너무 소박하다는 인상이다.

이선현_붓7_캔버스에 유채_33×41cm_2013
이선현_붓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3cm_2013

이처럼 기교적인 묘사로부터 자유롭기에 감정표현에 집중할 수 있고 사유의 공간은 확장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감정의 과잉은 없다. 사유의 공간에서 감정은 적절한 상태로 유지된다. 일테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행위는 감정에 의해 주도되며, 감정은 꼼지락거리는 행위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렇듯이 적절한 감정의 절제로 인해 표현행위 자체는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게 된다. 일정한 리듬은 시각적인 자극을 지양하는, 균질한 터치를 이끌어내는 요인의 하나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붓의 터치가 활달한 모양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결코 자율적인 규범의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 어쩌면 사유의 공간에서 길들여진 절제된 감정의 생산물이기에 그런지 모른다. ● 이처럼 손가락을 자분자분 움직이는 행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형태는 어눌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풍경은 물론이려니와 정물 그리고 인물에서도 명암 및 원근을 무시한 최소한의 형태만이 드러나고 완성도는 낮다. 작품에 따라서는 반추상 또는 비구상의 영역까지 넘나들지만, 일정한 조형적인 형식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조형적인 사고의 전개를 즐기는 듯싶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시각적인 긴장 및 이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어눌한 형태미와 최소한의 표현으로 요약되는 통일된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선현_붓1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24cm_2014

정물화의 경우 병을 비롯하여 컵이나 과일 따위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소수로 조합한다. 더구나 화면 중앙에 모음으로써 아주 단출한 구성이다. 그리고 그 형태미는 미완성의 상황으로 남겨져 있는 듯싶다. 물론 형태가 단순화되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추상적인 이미지로 변환하기도 한다.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이미지에 초연함으로써 어떤 이미지로 귀결하든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행위의 결과에 스스로 만족하는 듯싶다. 어쩌면 형태묘사와 관련해 완성도가 미흡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에 연유하는지 모른다. ● 화면구성은 일상적인 소재 및 자연물의 형태를 압축하는 방식이어서 간결하다. 하지만 그 간결한 형태 이면에는 꼼지락거리는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사유의 공간이 자리한다. 일테면 시각적인 이미지 너머에 그림의 내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지닌 힘은 바로 심미를 유도하는 데 있다. 시각적인 이미지 뒤에 은닉된 별도의 공간을 설정하여 감상자의 심미적인 안목이 거기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눌하게 보이는 형태미가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과도 만날 수 있도록 하려는지 모른다. ● 그가 만들어내는 그림은 대다수가 소품이다. 그림과 연관된 현실적인 공간 또한 그처럼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넓은 세상을 지향하기보다는 자신의 몸 하나를 감싸는 작은 공간이 오히려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 작은 공간이야말로 광활한 사유의 공간에 이르는 통로이기에 그렇다. 행동반경을 좁힘으로써 거꾸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논리로 그림의 내적인 체적을 키워나가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선현_붓의 고향_캔버스에 유채_162×259cm_2014

색채의 발색이 억제되는 것도 내면으로 치중하고 있다는 증거의 하나이다. 지나친 발색은 확실히 감정을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그의 경우 전체적으로 발색이 억제되는 분위기여서 작품에 따라서는 금욕적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금욕적인 색채 이미지는 감정의 과잉을 억제하는 내재율의 발로이다. 안으로부터 은은히 배어나오는 중간색조의 미묘한 상황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한한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에는 지적인 희열이 있다. 시각적인 이미지 그 경계를 넘어서면 책을 읽는 듯싶은 지적인 쾌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 스스로가 많은 사유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까닭이다. 보이는 것 이면의 정신적인 영역으로 이끄는 것은 역시 교태가 없는 소박한 형태미라고 할 수 있다. ● 그의 그림에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탐색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읽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이미지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감상태도가 필요하다. 눈으로 읽히는 이미지 뒤편에 자리하는 작가의 은밀한 사유의 공간을 훔쳐봄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미적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신항섭

Vol.20140913e | 이선현展 / LEESUNHYUN / 李宣賢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