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tory

박용일展 / PARKYONGIL / 朴鎔一 / painting   2014_0917 ▶ 2014_0923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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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보따리에 고이 싼 삶, 꿈, 현실 ● 땅 민들레 시리즈, 잠자는 땅 시리즈, 풍경 바람 시리즈, 어수선한 풍경 시리즈, 종이배 풍경 시리즈, 그리고 목련이 피기까지 시리즈. 박용일이 지금까지 자신의 그림에 부친 주제들이다. 실제로 주제 속에 풍경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풍경을 그린다. 그러나 그 풍경은 자연풍경이나 전원풍경과 같은 예사로운 풍경이 아니다. 재개발이 예정되거나 진행된 풍경들이며, 풍경이라기보다는 정경이라고 해야 할 풍경들이며, 삶의 현장 내지는 실제에 밀착된 일종의 사회학적 풍경이며 인문학적 풍경들이다. ● 경제제일원칙과 효율성 극대화의 법칙에 경도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휩쓸고 간 그 척박한 땅에도 어김없이 민들레는 자라고 바람이 분다. 여기서 민들레는 민초(아님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바람은 그 생명력을 흔드는 외풍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 풍경은 어수선하다. 어수선하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사회학적 풍경에 작가의 스산한 마음이 오버랩 된 탓이리라. 작가는 그 어수선한 풍경 속으로 종이배를 슬쩍 밀어 넣는다. 여기서 종이배는 희망을 상징한다. 어수선한 풍경이지만, 그 어수선한 와중에도 한줄기 희망을 본 것이다. 종이배는 작가가 자신의 유년으로부터 호출해낸 추억과 회상의 기호로서, 그 호의적인 기호가 어수선한 풍경과 대비되면서 일말의 긴장감과 함께 어떤 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아마도 작가는 유년시절에 실제로 부근의 냇가에서 종이배를 띄우며 꿈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련이 다시 피기를 기다린다. 어수선한 풍경에도 목련은 어김없이 꽃을 피워 올리지만, 어수선한 풍경과 대비되면서 더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강조되는 것은 어수선한 풍경 쪽이다. 여기서 목련은 봄을 상징하고 호시절을 상징한다. 그래서 봄이 다시 올까, 라는 일종의 반어법을 그 속에 내장한다. 그렇게 작가의 유년의 추억이 투사된 자연풍경과 재개발 계획으로 어수선한 성년의 풍경이 중첩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하나의 지층으로 포개진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변방풍경이며 변두리 풍경을 그리고, 일말의 의심스런 풍경을 그리고, 일종의 시간의 풍경을 그려놓고 있었다.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4

이처럼 작가에게 풍경 자체는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풍경은 다만 삶의 현장 내지 실제에 밀착된 것일 때에만 작가의 주목을 받을 수가 있었다. 풍경이 아닌 삶의 정경에, 풍경에 오버랩 된 삶의 형편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진 것인 만큼 풍경은 다만 삶이 반영된 상징 내지 표상으로서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질 수가 있는 것. 그렇게 삶의 정경은 척박한 땅에 피는 민들레에 투사되고, 바람이 불어와 주인 잃은 옥수숫대를 흔드는 스산한 풍경 위로 투사되고, 재개발로 어수선한 변방풍경 위로 투사되고, 작가가 자신의 유년으로부터 되불러낸 종이배에 투사되고, 그리고 근작에선 보따리에 투사된다. 웬 보따리? 여기서 작가의 근작은 전작과 일맥상통하면서 구분된다. 전작과 근작이 상통한 것은 여전히 삶의 정경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며(이를테면 각각 풍경과 보따리에다 삶의 정경을 투사하는 식의), 전작과 근작이 구분되는 것은 풍경에서 보따리로 소재가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것이라기보다는 중첩된 것이며, 보따리 위에 풍경이 겹쳐지고 포개진 것이다. ● 작가는 이삿짐을 싸고 푸는, 그리고 그렇게 이사를 오고가는 일상적 정경에서 보따리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일련의 풍경 시리즈가 풍경 자체보다도 사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둥지를 잃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사를 상징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듯(일종의 부재하는 풍경?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증명하는 풍경?), 보따리 역시 보통사람들의 일상사가 투사된, 그네들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재라고 볼 수가 있겠고, 따라서 풍경으로부터 보따리로의 변화는 자연스럽다. 여기서 보자기와 보따리는 다르다. 보자기가 보자기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면, 보따리는 보자기 자체보다는 짐을 싸고 푸는 과정에 개입되는 사연들, 이를테면 말 못할 사정이나 피치 못할 사연들과 같은 삶의 서사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보자기를 실제로 사용했을 때 보자기는 보따리가 된다. 보자기의 용법이 보자기를 보따리로 의미 전환시켜주는 계기가 된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보따리는 어떤 삶의 이야기들을 구구절절이 풀어놓는가.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4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89×130cm_2014

이를테면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벽돌 벽 위로 조각난 하늘이 드리워진 풍경을 배경으로 여느 때처럼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고,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재개발 현장의 을씨년스런 정경에도 어김없이 자기의 존재를 주장하는 화사하게 핀 꽃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각난 하늘? 하늘마저도 조각난? 하늘마저도 마음껏 품을 수가 없는? 전작의 풍경 시리즈에서 발휘되던 화법, 이를테면 자기의 존재를 주장하는 흐드러지게 핀 꽃이 오히려 스산한 풍경이며 을씨년스런 삶의 정경을 강조하는, 조각난 하늘이 오히려 피폐한 삶의 현실을 강조하는, 그런 강조화법이며 반어법을 심화시켜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철거를 기다리는 텅 빈 아파트 아래로 마치 크레용으로 뭉개놓은 것 같은 노란 개나리와 더불어서 저작거리며 시장의 정경을 배경으로 한 일상사는 계속되고 있음을 증언해준다. 철거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된다. 일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심지어 철거마저도. 일상은 마치 언제 핀 줄도 모르게 저 홀로 피어있는 진노란 개나리처럼 반드시 현실 위로 회귀하고야 만다. ● 짐을 싸고 푸는 보따리의 표면에 이러저런 삶의 풍경을 그려 넣은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풍경은 짐을 싸고 푸는 보따리의 형태에 따라서 왜곡돼 보인다. 왜곡돼 보인다? 꾸러미의 형태에 따라서 표면에 덧그려진 그림이 왜곡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자꾸 왜곡된 형태며 그림에 의식이 머문다. 여기서 그림이 왜곡되고 형태가 왜곡된다는 것, 그것은 혹 어떤 의미심장한 의미라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무분별한 재개발 현장이 그렇듯 혹 우리네 삶이 왜곡된 것임을 증언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보따리를 관통해 가로지르는 나무 막대가 눈에 밟힌다. 나무 막대는 보따리를 옮기기 위한 효율적인 장치로도 보이고, 보따리로 상징되는 서민의 삶에 대한 폭력처럼도 보인다. 고운 분홍색 보따리와 거친 나무막대의 대비가 이런 독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가하면 풍경 군데군데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그림에서 빨간 깃발이 이곳이 다름 아닌 재개발현장임을 말해주는 표식이면서, 이와 동시에 그 자체가 왠지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삶을 잠정적이고 임시적이게 만드는 제도적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65×91cm_2014
박용일_He-story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4

그런가하면, 마치 싸다 만 듯한 풍경도 있다. 미처 풍경을 다 싸지 못한 보따리가 잦은 이사에 망실되는 살림살이며, 삶이 간과하고 있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작가는 보따리를 매개로 잠정적인, 임시적인 삶의 정경을 그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고운 색동천으로 만든 보자기에 싼 꾸러미를 매개로 이런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기를 잊지 않는다. 당신은 보자기에 고이 꿈을 쌀 수도 있고, 아님 판도라의 상자를 쌀 수도 있다. ● 작가는 보따리를 매개로 그린 이 일련의 그림들을 He-story라고 부른다. 역사라는 용어를 그의 이야기 내지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라는 의미의 용법으로 전유한다. 여기서 그는 그이면서 동시에 그녀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반사로 보따리를 싸고 푸는, 그리고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유목민의 유예들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그림은 자신의 주변머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상사로부터 그 주제며 소재를 취해온 것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현실성을 얻는다. 그러면서 그 자의식을 작가 개인에 함몰시키지 않고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의식으로까지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힘이 있다. ■ 고충환

Vol.20140917g | 박용일展 / PARKYONGIL / 朴鎔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