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적 여백 Uncertain Emptiness

신민주展 / SIHNMINJOO / 辛旻炷 / painting   2014_0919 ▶ 2014_1003 / 월요일 휴관

신민주_uncertain emptiness 13001, uncertain emptiness 13003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46cm×2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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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91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 1205번길 183 (가경동 633-2번지) 제2,3전시장 Tel. +82.43.236.6622 www.spacemom.org

탈경계의 자취 ● 어떤 행위를 지시하는 단어와 일련번호가 조합된 건조한 제목을 달고 있는 신민주의 무채색 톤 그림은 그리기보다는 지우기, 세우기보다는 무너뜨리기, 구성하기 보다는 해체하기에 가깝다. 그러나 서로 반대되는 듯 한 범주는 붓질이라는 하나의 행위로 뭉뚱그려진다. 휘몰아치는 붓질과 단호한 밀어내기 와중에 종종 빈 캔버스 바닥을 노출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형태와 여백은 뒤섞인다. 신민주의 몇 년 동안의 그림은 이러한 무화가 체화된 모습이다. 한 번의 붓질은 하나의 경계를 구획하지만, 그 경계는 이내 다른 경계에 의해 지워진다. 완전히 지워진다기보다는 사라지는 경계의 자취를 남긴다. 이러한 자취들이 예술이고 삶이다. 삶이라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서도 억압적인 경계, 그것의 침범과 위반은 불경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야기한다. 원인과 결과, 기원과 목적, 본질과 실체가 없이 자취들만이 난무하는 형상들은 오직 캔버스라는 지지체를 바탕으로 서있을 수 있다. 캔버스는 매순간 자리를 바꾸는 미묘하고도 불확정적인 순간을 받아낸다.

신민주_uncertain emptiness 140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82cm_2014

따로 정해둔 시공간 속에서 행해진 것들은 일련의 놀이, 실제의 목적과 기능이 없음으로서만 목적과 기능이 있는 놀이이다. 완전한 몰입이면서도 전적인 무상의 행위—그림이 돈과 지위, 명예를 주는 것은 아니므로—는 행위주체로 하여금 고양과 추락을 반복하게 한다. 그러나 차이를 낳는 반복은 단순한 되돌이표는 아니다. 그것은 매번 새로운 시작을 낳는다. 작가에게는 시작하는 자유가 있으며, 당사자만 아는 어떤 끝맺음의 순간도 있다. 신민주가 중시하는 순간은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작가는 '현실에 대한 압박과 그에 대한 반발력이 나의 뮤즈'라고 다소간 냉소적으로 말한다. 현실에 대한 답답함은 질주본능을 자극한다. 탈주와 자유는 서로를 고무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게 초월될 수 없으며, 자유란 한정 지워진 시공간 속에서 선택된 몇 가지 규칙으로 실행, 또는 실험될 수밖에 없다. 법칙처럼 다가오는 침울하고 무거운 현실을 유연한 규칙으로 대체하여 견딜만하게 하는 것이다. ● 화가는 심폐기관을 통해서 뿐 아니라, 그리기를 통해서도 숨을 쉰다. 숨쉬기에 어떤 의도와 의지가 필요하지 않듯, 그림은 몸의 자연스런 일부가 되었다. 마치 들숨과 날숨처럼 무의식적 반사로 행위 하는 가운데 생명이 이어지듯, 화가의 붓질은 또 다른 차원의 절박한 삶이 된다. 빈 캔버스 앞의 막막함은 불확실함이 야기하는 설렘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기(氣)의 충전이 필요하며, 충전된 기가 남김없이 풀어 헤쳐져야 한다. 현실은 생산하고 절약하고 쌓아두고 소유하고 지배하지만, 예술은 소비하고 소모하고 흩어지게 하고 나누고 향유한다. 최근 작품에서 발견되는, 위로 올려서 아래로 잡아 빼는 붓질은 기가 흐르는 방향을 알려준다. 화면에 명멸하는 에너지 분포는 그림 안에서 만의 밀고 당기기가 아니라, 현실과의 역학관계 속에 있다. 억압이 클수록 반발력도 크다. 전시의 주를 이루는 150호 크기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한시적이지만 자유롭게 논다. 15호 크기의 작은 작품들에서는 보다 짧은 호흡으로 순간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작은 작품들은 보다 내밀하다.

신민주_uncertain emptiness 1303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6cm_2013
신민주_uncertain emptiness 140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27cm_2014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아크릴 물감이 마르기 전에 해치워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동양화의 일필휘지를 떠올리는 속도감을 통해 무의식과 우연이 발현된다. 캔버스와 화가는 매번 다르게 직면한다. 그렇게 두 번은 다시없는, 뉘앙스와 서사가 다른 그림들이 나온다. 미세한 순간을 증거 하는 것은 화면 위에서 바로 섞이면서 펼쳐지는 흑/백의 무한한 계열이다. 충돌이 만들어내는 색과 형태는 마치 암석의 단층처럼 억겁의 시공간이 응결된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일순간 캔버스 위에 고착된 물감의 단면은 어떤 단호하고도 강력한 힘이 실행된 흔적이다. 이렇게 캔버스에서 직접 섞이는 색은 둔탁한 회색이 아니라, 맑은 회색이다. 이를 통해 보다 날 것의, 형식 이전의 질료의 느낌이 강조된다. 무채색은 차분하고 안정감을 주지만 물감을 실어 나르는 행위는 질풍노도와 같다. 건설적이지 않고 재난 현장에 가깝다. 흑/백 사이의 계열 외에 화면에는 녹슨 쇠 같은 느낌도 배어 나온다. 산화철이나 산화망간이 들어 있는 황갈색 물감의 흔적은 무채색조의 질펀한 붓질과 어우러져 멜랑콜리한 느낌이다. ● 어떤 격한 감정의 흐름도 시간의 질서에 순응한다. 줄줄 흘러내려 얼룩진 물감은 공간의 질서에 순응한 흔적이다. 그것은 막 끝낸 행위를 자연스럽게 증거 한다. 간혹 화면에는 빈 바탕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우리 앞의 평면이 자못 무거운 실존적 행위의 결과이기 보다는,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단지 한 장의 그림이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허구에서나마 누군가의 온전한 자유가 가능함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자유는 재현과 어울리지 않는다. 재현은 노동이나 생산, 겉포장과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 너울거리는 파도, 스쳐 지나는 바람 등등 변화무쌍한 기상현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신민주의 그림은 어떤 아득한 원형에 근거를 두는 재현과는 무관하다. 작은 작품의 경우, 종유석과 심연이 있는 깊은 동굴 속 같은 풍경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의도치 않은 결과이며,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마음의 풍경이라 할만하다. 재현이 노동이나 생산과 관련된다면, 신민주의 붓질은 놀이에 가깝다. 놀이라고 해서 가벼운 기분전환이나 장식적 잉여는 아니다.

신민주_uncertain emptiness 1400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182cm_2014

이러한 작업의 놀이로서의 특징은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작가가 정한 규칙을 통해 수행하는, 유용성과 무관한 행동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강렬한 몰입을 낳는다는 점이다.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붓질만이 그 특징인 작품에서 한정된 시공간이나 규칙 같은 일련의 폐쇄적 속성을 말하는 것은 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란 것이 그저 무한한 방종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는 작업을 지속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엄존한다. 작가는 그 조건을 애써 지켜왔고, 헌신에 가까운 그러한 대가를 치른 이들에게만 그림은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놀이란 구속받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생활에 영향력이 없는 활동이긴 하지만, 작가 자신에겐 특정한 기능을 가진다. 인류학자 로제 카이유와는『놀이와 인간』에서 자연의 무질서 상태를 규칙이 따르는 세계로 바꿀 필요가 있을 때, 놀이가 제공하는 모델은 그러한 세계를 앞질러 보여준다고 말한다. 놀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은 자연의 단조로움, 결정론, 맹목성과 난폭함에 저항할 수 있게 된다. 카이유와는『인간과 성』에서 놀이에서는 현기증의 추구조차도 현실의 혼란을 완벽한 상황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우리는 형상이 불확실한 그림에서 막막함이나 혼란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막막함을 막다름의 절망이 아닌, 미지의 설렘으로 뒤집을 수도 있다. 이러한 역전에 작가의 도전이 있다. 마르쿠제가 '현존하는 현실 내의 다른 현실'이라고 명명했던 그 가상을 만들어냄으로서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잠재적 가능성을 해방시키는 자유로운 유희 안에서의 만족'(마르쿠제)이 된다. 개인적 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수많은 시간들...그러나 그 누구라도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작가란 다름 아닌 그 방식을 가진 하나의 모델이다. 이러한 비유적 차원으로서만 예술의 사회적 의미나 자율성, 그리고 자유로움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가 작업실에서 매일 대면하는 캔버스는 무위의 놀이를 위한 자족(self-containment)의 무대가 되고, 최소한 여기에서 만큼은 소외되지 않으려 한다. ● 온통 무채색조의 그림들은 다소간 우울하지만, 색이자 선이자 형태를 함께 실어 나르는 액션은 그렇지 않다. 무한한 결이 살아있는 맑은 회색의 층들은 보이지 않는 심층을 전제하지 않는다. 밀고 밀리면서 새로운 경계가 계속 만들어지는 화면에서 심층을 대신하는 것은 여러 표층들이다. 무엇인가 재현하고 표현하는 전래의 미학이 심층에 있는 원형이나 무의식을 전제한다면, 현대 예술은 다층의 표면들 사이를 떠도는 무의식에 집중한다. 표층의 모델에서 주체의 양상 또한 달라진다. 펠릭스 가타리는『기계적 무의식』에서 주체성이란 원형적이지도 구조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지고한 창조주의 개입이 없는 무수한 창조적 배치 무수한 구성요소, 무수한 지표, 무수한 탈영토화선 등이 중요하다. 표층의 모델에서는 분석이나 적응, 기표적 질서에의 순응을 위한 자리는 없다. 신민주의 형상은 끝없이 밀고 밀리며, 허물어지면서 생겨나고 다시 허물어진다. 그것은 가타리가 무의식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 구조를 대신하는 지도처럼 모든 차원으로 개방되어 있다. 미술 또한 언어라면 그것은 그 자신에 준거하지 않고, 모든 다른 기호화 양식을 향해 열려있다. 가타리에 의하면 언어는 수학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언어의 구조는 차용, 혼합, 접착, 오해로 이루어져 있는 일종의 헛간이 화석화한 것에서 생긴다. 정합성은 모든 방향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배열체계, 혹은 모든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규칙체계일 뿐이다. 이질적인 지층 간의 우연적 관계에 의존하는 신민주의 조형언어는 어떤 초월적 형식체계나 보편성과는 무관한 이질적인 현실(실재)이다. 가타리가 원형적이거나 심층적 무의식 대신에 '기계적 무의식'을 통해 강조한 것은 모든 가능한 침입, 모든 파국, 새로운 신진대사적 결정화 지점의 모든 출현이 지닌 다양성과 이질성의 보존이다. 코드와 영토에 의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을 생산하려는 몸짓은, 공리계처럼 지배 권력이나 자본이 자명한 듯 사용하는 관계와 관념으로부터 탈주하려는 몸짓이다.

신민주_uncertain emptiness 1302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3

신민주의 작품에서 무너지고 지워지는 경계들의 흐름은 미를 넘어서 숭고의 미학에 가닿는다. 장-뤽 낭시는 자신이 편집하고 필진으로 참여한『숭고에 대하여-경계의 미학, 미학의 경계』에서, 미가 바깥으로 향하는 또 다른 종류의 유출, 즉 숭고를 거쳐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의 고유한 특질을 획득한다고 말한다. 미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자리를 갖지 못하며, 저 자신을 넘어설 때만 미가 된다는 역설은, 흐름 그자체가 본질인 회화의 일단을 설명해 준다. 낭시는 미가 스스로로부터 이탈하여 끊임없이 옆길로 미끄러지거나 위로 넘쳐 버린다는 사실을 말한다. 미와 달리 숭고는 그어지는 궤적 속에, 형태의 소거 속에, 그 형태가 윤곽을 그어 규정하는 형상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미가 경계를 한정하는 형태나 윤곽을 강조한다면, 탈경계는 숭고의 영역이다. 탈경계는 무한과 가장 내밀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숭고는 경계의 가장 자리에서 발생하는 탈경계의 움직임이다. 신민주의 작품은 바탕의 형상, 또는 바탕이 지어내는 형상이라는 점에서 숭고하다. ● 여기에서 바탕은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제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탈경계의 자취이다. 낭시에 의하면 탈경계는 오직 시작만 거듭할 뿐,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작의 끝없음이다. 시작의 가능성, 그것이 바로 자유이다. 자유는 뛰어나게 숭고한 관념이다. 칸트는 예술의 목적이 진리의 재현이 아니라, 자유의 제시에 있다는 것을 아는데서 출발한다고 했다. 숭고는 저 자신의 윤곽을 그으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경계의 궤적에 맞추어 스스로 소멸하고 경계를 지워가는 탈경계의 움직임이다. 윤곽이나 틀, 자취는 오직 그것들 자신으로 귀착할 뿐 그것이 제시할 대상이 없다. 경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계에 다다른 주체가 겪는 느낌이 바로 숭고이다. 신민주의 작품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움직임만을 지향한다. 하나의 세계는 형태의 소거와 경계 넘기의 과정을 통해 제시된다. 화가에게 작업이란 이러한 '제시의 자유이자 자유의 제시'(낭시)이다. ■ 이선영

Traces of De-bordering ● Min-joo Shin's achromatic paintings with their bland titles — consisting of serial numbers and words that demand a certain gesture — are more about erasing than drawing, tearing down than building up, and deconstructing than constructing. However, such seemingly contradictory realms are unified through the single gesture of the brushstroke. Form and empty background mix in most of Shin's works, in which the empty canvas surface is revealed in the midst of swirls of brushstrokes and firm thrusts. The last few years of Shin's oeuvre is the accumulation of such non-forming. A brushstroke creates a border, which is soon erased by another border; actually, it leaves traces of borders which vanish rather than disappearing forever. Such traces signify art and life. The intervention and violation of borders — which is violent yet necessary in order to maintain the homeostasis of life — yields irreverence and catharsis simultaneously. The forms running rampant with traces without cause and effect, origin and purpose, and essence and truth, stand existent only through the support of canvas. The canvas captures the exquisite, perpetually-shifting moments of indeterminacy. ● What takes place in the specifically defined space-time signifies a series of play, which has purpose and function without actual purpose and function. Completely absorbing and abundant, the supreme gesture repeats praise and fall through the subject of the gesture. However, the repetition that gives way to difference is not merely a simple repetition mark because it produces a new start every time. The artist has the freedom to start, as well as to end; thus the important moment for Shin is to propel to the end. Shin said, more or less cynically, 'I'm inspired by the pressure from reality and its repulsive power'. Frustration towards reality inspires the instinct to speed up, and escape and freedom inspire each other. However, reality cannot easily be surpassed, and freedom can only be actualized or experimented through a limited set of regulations in fixed space and time. It's about enduring reality, by replacing its heavy and gloomy laws with flexible regulations. ● A painter breathes not only through the lungs but also through drawing. Just as breathing requires no separate will or intention, drawing becomes a natural part of the body. As a life is sustained through the involuntary response of exhalation and inhalation, the painter's brushstrokes become a desperate life of a different dimension. The artist must be charged with chi (energy) in order to sublimate the sense of frustration one feels in front of an empty canvas, to the sense of thrill roused by such uncertainty, and the charged chi must be fully let out. While reality is about producing, being thrift, accumulating, possessing and dominating, art is about consuming, dispersing, sharing and indulging. The brushstrokes that pull up and thrust down, found recently in Shin's work, demonstrate such direction of chi. The dispersion of chi, dazzling in the painting, extends beyond the push-pull relationship within the work, to the relation of dynamics in reality. ● The greater the suppression, the greater the repellent force. In the large paintings, which make up most of the works in the exhibition, the artist indulges temporarily but freely, while the small paintings, which are more private, demonstrate momentary intense concentration through short breath. ● Small or large, the painting must be finished before the acrylic paint dries. The subconscious and chance reveals itself through speed that reminds one of the quick brush strokes often seen in Eastern paintings. The canvas and the artist confront each other differently each time, producing work of completely unique nuance and narrative. What testify to the delicate moment are the infinite layers of black and white that mix and unfold from the top of the painting. The color tones and forms produced by the collision evoke the effect of accumulated eternal time and space in rocks. The cross section of paint fixed instantly on the canvas is a trace of certain form and powerful force. The mixture of color produced on the canvas is not dull grey but clear grey, and this accentuates the feel of raw pigment before its form. Achromatic color is tranquil and serene, but the act of physically moving the paint is a turbulent process. Not constructive, it's more like a scene of disaster. Besides the layers of black and white, the canvas gives off traces of rust. Containing oxidized steel or manganese oxide, the traces of yellowish brown paint merge with the sloppy brushstrokes of achromatic colors and give off a feel of melancholy. ● All violent emotions comply with the temporal order. The paint, trickled down and stained, is the evidence of having complied with the spatial order, and this is naturally an evidence of a gesture that has just been performed. The viewer confronts empty background in Shin's work at times, to which the artist explains that it's nothing more than a painting as opposed to being the outcome of heavy existential gesture. It's not futile because it's merely a painting; rather, it's fortunate that one can perform complete freedom even in the futility of painting. Freedom doesn't suit reality, because reproduction is closer to labor, production and packaging. While Shin's work evokes endlessly changing weather such as violent storms, surging waves or breeze passing by, her paintings are unrelated to the process of reproduction which bases itself on a certain remote source. While her small works suggest images of deep cave filled with stalactite, such outcome is unintentional, and if it had to be named, it would be called something like Landscape of Mind. While reproduction is related to labor or production, Shim's brushstrokes are more about being playful, and 'playful' here does not refer to light emotional refreshment or being extra decorative. ● The unique characteristic of such playful work is that it is a gesture that has nothing to do with futility which takes place in a fixed space time within regulations set up by the artist, and that this completely seizes the viewer. It may be unjust to talk about closed elements like fixed space time or regulations in such works that are marked by free brush strokes; however, freedom is not something that's just infinitely self-indulgent. In reality, there are definitely conditions that are required to sustain work. Shin has devoted herself to sustaining such conditions, and paintings become part of life only for those who have paid such price of dedication. While play is something that cannot be restrained and has no influence on reality, it has a particular function for the artist. In his book Les Jeux et Les Hommes, anthropologist Roger Cailois said that when there's a need to transform the disorder of nature into a world of regulations, the model of play transcends such world. Through means of play, human is able to resist nature's monotony, determinism, blindness and violence. ● In Man and the Sacred, Cailois said that through play, we pursue the vertigo in an attempt to replace the chaos of reality with a perfect situation. Although one might get a sense of desolateness in paintings with indefinite form, this bleakness can be subverted to a sense of a thrill for the unknown rather than remaining a blank wall of despair. The artist's challenge lies behind such twist. By constructing the illusion which Marcuse termed 'another reality within reality', the work becomes what Marcuse defines 'satisfaction in the free play which liberates the dormant potential in human and nature'. This signifies the countless hours that transcend personal satisfaction. However, it's important for anyone to have his or her own way of actualizing freedom, and an artist is a model of such means. Only through such figurative dimension can I talk about the social meaning of art, as well as its autonomy and sense of freedom. The canvas, which the artist confronts every day, becomes a stage for self-containment and idle play, and at least here, the artist is not alienated. ● The paintings in neutral colors might seem quite depressing, but the action behind the colors, lines and forms aren't. The translucent grey colors with boundless layers do not premise invisible depth. In the surface where new boundaries are made through a relationship of push and pull, the numerous surface layers replace the depth. While traditional aesthetics — which expresses and reproduces something — premise deep original forms or the subconscious, contemporary art focuses on the subconscious which roams through the multiple layers of the surface. The subject also changes in the model of the surface layer. In his book The Machinic Unconscious, Felix Guattari stated that the subjectivity is not archetypical, structural or systematic. What is important is countless creative disposition, countless components, countless index, and countless deviation from lines of domain, without the sublime creative intervention. In the model of the surface layer, there is no room to adapt to the order of analysis or index. Shin's form is produced and destroyed through endless push and pull. ● As proposed as a new model of the unconsciousness by Guattari, this is open in all dimensions like a map that replaces a structure. If art were language, it would be open to all other signs and styles. According to Guattari, language is not mathematical or logical. Consisting of appropriation, mixing, adhesion and mis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language derives from a type of fossilized storage. Coordination is only just an arrangement structure which pulls all the elements in from all directions, and a rule system which can analyze in all ways. Relying on the accidental relationship between disparate layers, Shin's formative language is a heterogeneous reality (truth) that has nothing to do with a certain transcendental formal system or universality. What Guattari emphasized through the 'machinic unconscious' rather than the archetypical or deep-rooted unconsciousness is the preservation of diversity and heterogeneity in all possible invasion, collapse, and in all emergence at the point of new metabolic crystallization. The perpetual struggle to produce new flow and not adhere to previous codes and terrains signifies the efforts to evade the relationships and conventions employed in ruling power or capitalism. ● The borders, endlessly collapsing and erased in Shin's work, transcend beauty to arriving at a state of the beauty of sublime. In The Sublime, the Ineffable, and Other Dangerous Aesthetics, a book which Jean-Luc Nancy edited and co-wrote, Nancy explains that only through the process of sublime, which is another way aesthetics is produced, can it acquire its own unique characteristic. The paradox, where aesthetics cannot stand on its own but becomes aesthetic only when it transcends itself, explains painting in which its essence is flow itself. Nancy suggests the truth that aesthetics evades itself and perpetually deviates or flows over. Unlike aesthetics, sublimity exists independently from the trajectory of drawing, elimination of form, and form which defines itself through outline. While aesthetics focuses on the form or outline which limits border, de-bordering belongs to the realm of sublimity. De-bordering forms the most intimate relationship with infiniteness and sublimity is movement of de-bordering that takes place at the very edge of borders. Shin's work is sublime in the sense that it is the background itself, or the form produced by the background. ● Here, the background is a trace of de-bordering in the sense that it is not about forming but about eliminating. According to Nancy, de-bordering only initiates the beginning, and never ends, which signifies the endlessness of beginning. Thus, the possibility of beginning means freedom, which is a remarkably sublime conception. Kant said that the goal of art begins from knowing that it reproduction of the truth, but on the suggestion of freedom. Sublimity signifies the movement of de-bordering, which draws its own outline, eliminating itself and the borders it creates. Frame, outline and trace only conclude in itself; it has no subject to propose. There's nothing beyond the border. Sublime is arrived at when the subject reaches its limitation. Shin's work is geared towards endless movement rather than a fixed state. A world is suggested through the process of elimination of form and crossing borders. According to Nancy, art making is about such 'freedom for suggestion and suggestion for freedom'. ■ LEESU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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